이맘때쯤이면 궁남지의 연꽃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몰고 부여로 향했건만 연꽃은 이미 많이 진 상태였다. 부여서동연꽃축제도 연꽃이 한창인 시기에 맞추어 이미 7월 16일에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휴가철답게 사람들이 꽤 많아서 차량들 틈새에 어렵사리 주차를 해야만 했다. 연꽃 이외에도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있었다. 장미와 백합 조화를 너무 많이 꽂아놓은 것(이것은 심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이 조금 아쉬웠다. 아마 밤 늦은 시간에 방문했더라면 비록 만들어진 꽃이지만 요즘 유행인 야간 조명에 맞추어서 꽤 멋있는 장면을 연출했을 것으로 믿는다.
궁남지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글 지도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포룡정이 있는 중앙의 연못은 직경이 약 140미터 정도이다. 울창한 연밭 사이를 거닐다보면 미로와 같은 구조 사이에 길을 잃기 쉽다. 그럴땐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면 포룡정과 높다란 전통 그네의 기둥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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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래 음식특화거리에 위치한 <구드래돌쌈밥>에서 점심을 먹었다. 잘 알려진 관광지 식당이라서 늘 손님이 많다. 손님이 많으니 아무래도 번잡함은 피할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이 식당에 늘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는 편이다. 그러나 관광지 식당의 특성상 사람마다 이 식당에 대한 평은 좀 엇갈린다. 주문 착오로 약간 비싼 돌솥밥을 먹게 된 것이 오히려 좋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국립부여박물관. 몇년 전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그날은 우산도 없이 폭우를 만나서 홀딱 젖은 채로 다음 목적지로 향해야 했었다. 당시의 코스는 아마 궁남지-부여박물관-백제군사박물관과 계백묘(논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립부여박물관 기획전시관에서는 특별전 <왕흥사 - 청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이 열리고 있었다. 왕흥사는 백마강변에 있었던 절로 삼국사기와 삼국사기에 여러차례 기록된 절이라고 한다. 2000년부터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시작되어 명문이 새겨진 기와, 한 쌍의 치미, 사리기 등 다채로운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절은 백제 27대 왕인 창왕(위덕왕)이 서기 577년 창건하여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창왕은 사비로 천도를 하고 백제의 중흥을 이룬 한 성왕의 아들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된 아좌태자가 바로 창왕의 아들이다.
왕흥사터에서 발견된 유물, 사람 얼굴 모양이 새겨진 상태이다. |
사리장엄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왕흥사는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세운 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상태의 사리기 일체가 목탑터에서 발굴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역사서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던 왕흥사의 창건 연유까지 밝혀진 것도 더욱 놀랍다. 왕궁이 위치한 부소산성에서 강을 건넌 곳에 왕흥사를 지은 것도 늘 아들을 그리워하던 아버지 위덕왕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일 것이다. 부모님을 뒤로하고 2012년 1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처제를 생각하면 그 커다란 슬픔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터만 남은 왕흥사는 우리나라의 문화재 발굴조사 역사상으로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박물관 전시 관람 후 이렇게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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