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9일 화요일

나이가 드는 것은 서글프기만 한 일은 아니다

평생 안경을 끼지 않다가 어느덧 찾아온 노안 때문에 돋보기 안경을 쓰게 되었다. 안경을 늘 갖고 다니는 일에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깜빡 잊고서 안경을 두고 퇴근하는 날에는 집에서 도통 잔글씨로 된 것을 읽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사무실과 집 두 곳에 돋보기 안경을 하나씩 갖다 놓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2017년도 정기 건강검진에서 내 시력은 1.5 정도가 나왔다. 먼 거리의 것을 볼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1미터 이내의 작은 글씨를 보려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조명이 어두우면 더 심하다. '눈이 어둡다'는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노안용 안경을 아무 것(중국제 저가품)이나 사지 말고 꼭 시력 검사를 한 뒤에 필요하다면 난시 교정 기능을 넣고 양안의 시력 차이를 감안하고 눈 사이의 간격을 맞추고 무반사 코팅에 블루라이트를 차단하여....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까지 지출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첫번째 안경도 그러했고 이번에 구입한 두번째 안경도 그러했다.

"싼 거 주세요"

젊어서는 전혀 필요가 없던 물건을 사고, 또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요즘 읽는 책이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국내 번역판은 2007년 출간)>. 머지 않은 미래에는 기술과 인간성(또는 인간다움)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가 점차 모호해 질 것으로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심지어 기계(혹은 기술)와 인체가 하나가 되면 어떠하랴! <공각기동대> <매트릭스>에서나 보던 장면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에서는 뒤통수에 케이블을 꽂았지만 그것조차 무선으로 가능하지 않겠는가? 물리적인 접속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더 이상 단말기라는 것을 거치지 않고 정보를 인터넷으로 직접 주고받을 것이다. 나의 경험과 감정, 지식을 마치 펌웨어 로딩하듯이 다른 사람에게 즉시 전달할 수 있다면 몇년씩 걸리는 교육과 수련 과정이 과연 필요할까? 또한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도 바뀔 것이다. 

그러면 <데몰리션맨>에 나오는 것처럼 체액을 교환하는 사랑은 법으로 금지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인기는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재미가 없는 미래인가? 과거의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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