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오늘 쓴 글은 얼마든지 틀렸을 수가 있음을 미리 고백해 둔다.
태초에 의료기술평가(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라는 말이 있었다. 가천대 이선희 교수가 2018년 보건행정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운영의 개선현황과 발전방향"의 서론을 잠시 인용해 보겠다.
근거중심의 의사결정을 위해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 중 HTA가 수행되는데 이는 1960년대 말 미국의회에서 공식 사용된 것이다. 당시에는 'HTA를 기술의 적용과 사용으로 인한 단기 및 장기 사회적 결과를 평가하는 포괄적 형태의 정책연구'라 하였다. HTA의 주요 목적은 보건의료기술 관련 정책결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꾼다면 '신의료기술평가의 주요 목적은 국민건강보험 급여 여부 결정에 정보를 결정하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신의료기술평가는 new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또는 nHTA라고 쓴다.
그런데 구글 검색을 해 보니 nHTA라는 영문 용어를 쓰는 웹사이트 혹은 문서는 전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WHO나 EU의 관련 문서를 보아도 HTA는 있지만 nHTA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약어든 풀어서 쓴 낱말이든 전부 통틀어서 그러하다. EU에서 발간한 Regulation (EU) 2021/2282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 on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and amending directive 2011/24/EU라는 문서에서 HTA의 정의를 찾아 보았다.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 is a scientific evidence-based process that allows competent authorities to determine the relative effectiveness of new or existing health technologies. HTA focuses specifically on the added value of a health technology in comparison with other new or existing health technologies.
그렇다. 반드시 최근에 개발된 기술만이 의료기술평가의 대상이 되라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오래 된 의료기술이라고 해서 전부 HTA 절차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중 어느 것이 맞을까?
- new health technolgy assessment = new + {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
- new health technolgy assessment = { new health technology } + assessment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문서의 맥락에서 본다면 (2)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이는 적절하지 않다. 위에서 연달아 사용한 4개의 단어 중 technolgy assessment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어구로서 서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이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이 될 정보의 보편적인 안전성과 유효성이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이다. 그러나 국외 문서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1)의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았다. 'HTA의 새로운 방법' 정도의 의미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HTA란 개념을 들여와서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것으로 사용하면서 신의료기술평가(nHT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런 맥락을 모르고 이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래? 그러면 신의료기술은 뭔데?"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의문은 신의료기술이라는 개념이 먼저 생기고 나서 이를 평가하는 것이 신의료기술평가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의 구조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한다.
'의료기술평가' 또는 '기술평가'라는 개념이 먼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소 무리하게 신의료기술평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신의료기술'의 정의를 찾아 헤매는 답 없는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 글은 앞으로 좀 더 조사를 통해서 살을 찌워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