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요일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캘리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뷔페의 서명.

지난 일요일, 20세기의 마지막 구상회화작가로 일컬어진다는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회를 다녀왔다(나는 광대다_베르나르 뷔페전: 천재의 캔버스 링크).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라서 호기심을 갖고서 관람을 시작하였다. 동행한 사람은 여자친구 C(음?)와 아내.

그가 추구하던 미술은 전후 주류 미술과 성격 잘 맞았던 것이 그가 이른 시기에 성공을 거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추상미술이 점점 화단을 점령하고 1960년대 들어서 팝아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의 변화를 받아들이 않고 분명한 자신의 색채를 유지하면서 작품 세계를 평생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써 가면서 이러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그는 충분히 누릴만 한 명성은 다 누렸던 사람이고, 그가 그렸던 소박한 그림과 그의 화려한 생활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cultural one-nigh stand라는 표현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파티, 롤스 로이스, 유명인과의 만남, 술, 그리고 다소 모호한 성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그의 실제 생활은 진실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고뇌하는 예술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 그건 나의 편견일까?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한 예술인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의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정물, 초상, 우울한 느낌의 자화상, 풍경, 그리고 창작 인생 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한 광대와 해골. 그의 그림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강하고 만화(또는 일러스트레이션)와 같은 느낌을 풍긴다 싶었더니 굵은 검정 선으로 대상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색채는 화려하면서도 차갑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출처: https://www.gemeentemuseum.nl/en/exhibitions/bernard-buffet-a-controversial-oeuvre

그는 국내에 그렇게 널리 알려진 화가가 아니라서 웹 공간에는 국문으로 된 자료가 별로 없다. 네덜란드의 어떤 웹사이트에 영어로 올라온 자료가 있어서 더듬더듬 읽어보았다(Bernard Buffet: a controversial oeuvre 링크). 그는 젊어서 크게 이름을 날렸지만 추상화의 시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묘사적으로 그리는 화풍을 고수했기에 진지한 화단에서는 슬슬 배척이 되었던 것 같다.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했고 고국인 프랑스 외 - 모스크바, Deurne(네덜란드), 일본 시즈오카 현 - 에서는 그의 작품만으로 채워진 미술관이 생길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트샵에서 촬영한 그의 작품.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그려진 대상은 아마도 그의 아내 아나벨 뷔페(Annabel Buffet)일 것이다. 첫눈에 반하여 1958년 결혼을 하고 40년간 평생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던 그는 말년에 파킨슨병에 걸려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졌고, 1999년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고 나서 조용히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무수한 캔버스 안에 그녀의 강렬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겼다. 아나벨 부페는 영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1951)]에도 출연하였고 저술가이자 가수였으며 당대의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와 교류하였다고 한다. 프랑스어 위키피디아에 나온 그녀의 항목을 보면 영화 중 배역은 마네킹(le mannequin)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구글 플레이 영화에 올라와 있으니 한번 구입하여 보아야 되겠다(링크). 결혼 전의 이름은 Annabel Schwob인데, 어려서 부모가 모두 자살한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영화배우로서 Annabel Buffet의 기록은 IMDb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를 찾으면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서 어제는 몇 편을 감상하여 보았다. 큰 눈의 미인 같다가도 낮은 저음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 느낌이 난다. 마치 문주란 씨의 노래를 듣는 것 같다.

Annabel Buffet - Les gommes (1970). gommes는 지우개, 즉 '고무'를 말한다.

말년의 그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까운 광대, 가죽을 벗기고 근육을 드러낸듯 한 모습의 몸(시신?), 복장 도착 해골 등 기괴한 것을 그린 것이 많다. 어둡고 선이 굵은 그의 그림은 한층 더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그가 남긴 인터뷰에서 그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광대로 기억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우스꽝스런 분장 뒤의 실제 표정은 알 길이 없지만 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광대의 슬픔과 이중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는 것일까. 그의 그림에는 사람 두개골이 종종 등장한다.

뷔페는 어려서는 미술계의 신동으로 각광을 받았고 일찍 성공하였지만 양성애자이자 알콜중독자이기도 했다. 화려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암울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번 전시회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인터넷판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 Buffet: A Life of Success, Rejection and Now a Celebration (2016)을 보면 그가 젊어서 거둔 대중적 인기와 부는 전후 유럽 지식인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것 같다. 첫 문장을 인용해 본다.
Few artists have known the roller coaster of fame and shame that the French painter Bernard Buffet experienced during his life. Buffet, who was once hailed as the artistic successor to Picasso only to be reviled later as vulgar and the epitome of poor taste, was an immensely popular artist before falling into near oblivion. He committed suicide in 1999 at the age of 71.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가 일생 동안 경험한 명성과 수치심의 롤러코스터를 아는 예술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뷔페는 피카소의 뒤를 이을 예술가로 칭송받았으나, 나중에는 저속하고 밥맛없는 사람으로 욕을 먹었고, 거의 잊혀지기 전까지도 대단히 대중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1999년 71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pitome of poor taste'는 번역을 하자면 쉽게 말해서 '밥맛의 표상' 정도가 되겠다. '잊혀지기 전까지는 유명했다?' 내가 우리말로 제대로 옮긴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나 죽기 직전까지는 살아있는 것이고, 잊혀지기 전까지는 유명한 것 아니던가.. 일찌기 그림으로 거둔 명성과 경제적 성공을 방탕한 생활로 소진하면서도 그림 자체는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그것도 구상 회화가 저물기 시작한 시점에) 고국에서는 점점 외면을 받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그러한 사생활까지 알려지기는 어려운 상태이니 오히려 그림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것이 지금 재조명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신은 화가로 태어난 것 같다.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의 외로움, 믿음, 사랑, 살아있는 모든 것,
자연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물질적, 도덕적 참담함에 마주했을 때의
비탄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주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선택했다.

당신은 우리가 종교에 빠질 때처럼 그림에 빠졌다.
당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 아나벨 뷔페 -

다음에는 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ojnarowicz)의 생에애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만화책, 아니 그래픽 노블 [7 Miles a Second]를 구해서 읽어보련다.




2019년 6월 16일 일요일

관심은 자본, 혐오는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

"가장 미친 놈이 모든 것을 갖는다"···'관종경제' 혐오를 부른다

경향신문에 오늘 올라온 기사이다. 관심을 끌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매우 보편적인 본능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별로 다르지 않던 시절에는 배우자의 관심을 끌어서 생식적인 면에서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포식자나 천적의 관심을 끄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을 희생해서 무리의 나머지를 살리는 고결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미디어가 시대가 되어서 관심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그러나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바야흐로 인터넷의 시대(특히 스마트 기기와 소셜 미디어)가 되면서 관심을 통해서 일반인 누구든지 '관심 상품'을 이용하여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굳건히 떠받치는 플랫폼 기업이 바로 그 일등 공신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잘 먹히는 관심 대상은 선정성과 혐오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뉴스 기사나 커뮤니티 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거칠고 편가르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혐]으로 시작하는 글들이 너무나 많다. 클릭을 하면 혐오스런 이미지나 동영상이 나오니 주의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나는 이런 사람들이 극도로 싫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글이기도 하다. 이런 꼴이 너무 보기 싫어서 크롬 브라우저에 Block Site를 몇몇 사이트를 차단한 다음 스마트폰과 PC를 동기화시켜 버렸다.

뉴스 일부를 인용해 본다.
관심은 희소성을 지닌 재화다...관심이 어느 한 곳에 주어지면 다른 곳에는 주어질 수 없다. 실제로 관심을 받는 이들은 뛰어난 외모와 같은 '매력자본'이 있거나 운좋게 시장을 선점한 소수에 불과하다.
부족한 관심을 끌려니 혐오를 끌어다 쓰고, 플랫폼 기업은 이로 말미암아 생거나는 클릭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한다. 거짓 정보를 이용하여 혐오 콘텐츠를 만들고, 대중은 이에 조금씩 면역을 갖는다. 따라서 제공자는 더 심한 혐오를 끌어낸다. 진지함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혐오는 또한 잘만 이용하면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창출할 수 있다. 타도해야 할 대상에게 혐오의 프레임을 잘 씌워서 선동하면 다음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므로. 그리고 그 이유는 언제나 '국민이 원해서'가 된다.

관심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지에 우리는 또한 관심을 갖는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 대상에 '동기화'되지 않으면 왠지 시대 조류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감기가 채 30분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실시간 검색에에 누구나 목을 맨다. 심지어 네이버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연령대·지역·업종 등으로 세분하여 놓았다.

'다른 사람의 관심'에 관심을 갖게 되면 관심은 더욱 한 곳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이는 관심으로 돈을 벌기 위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의 관심 분야가 다양해야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경향신문의 기사를 하나 더 링크한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의 인터뷰 기사이다.

"혐오는 핫한 '화폐'···지금도 넘쳐난다"

독특한 진공관을 찾아서 - 구 소련의 6P23P

내가 경험해 본 진공관은 총 8 가지가 되지 못한다. 여기서 '경험'이라 함은 진공관을 개별적으로 구입해서 직접 앰프를 꾸몄거나, 혹은 완제품 앰프를 구입했을 때 딸려온 것을 포함해서이다. 그중에는 소위 이름난 회사의 관은 하나도 없다.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오르면 제조회사와 생산연도가 다른 관에서 느껴지는 소리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다는데 말이다.

남들이 한번씩은 다 거쳐간다는 진공관(예: 45, 6V6, EL34, 2A3, KT88, ...  결국은 300B)에 대한 경험이 근본적으로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이베이에서 싸게 팔리는 구 소련, 즉 소비에트 연맹 시절에 제조하여 1개에 1~2달러 수준으로 싸게 팔리는 진공관을 구해서 뭘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식도 채 떼지 못했는데 생식이나 선식을 하려는 어줍잖은 욕심은 아닐까? 그것도 아래 사진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납땜질은 이어진다.
구글을 뒤적거리면서 구 소련제 진공관의 형번 맞추기를 해 보았다. 냉전 시절 서방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없던 시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진공관들이 있어서 이에 딱 맞는 관을 맞추기 어려운 것도 있다(굵은 글씨). 그런 관은 현재 매우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아래에 작성한 표에서 한 줄에 맞추어 놓았다고 해서 핀의 수와 위치까지 호환되는 것은 아니다.

  • 6P1P ~6AQ5|EL90, ~6V6 (The type was commonly used in Soviet-built vacuum tube radios and TV sets as an output audio amplifier, until it was replaced by the higher-performance 6P14P, an exact equivalent of the EL84 - 위키피디아에서).
  • 6P3S (제작 사례)  ~6L6G
  • 6P14P (6W 싱글 회로) = 6BQ5|EL84
  • 6P15P =6CK6|EL83
  • 6P18P = 6DY5|EL82
  • 6P23P ??
  • 6P43P ~6BQ5|EL84, ~6CW5|EL86 <- 6p43p-e="" li="">
  • 6F3P = 6BM8|ECL82
  • 기타 등등...

6P23P(6П23П)라는 독특한 빔 전력증폭관에 시선이 머물렀다. 9핀 MT관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트 단자가 꼭대기에 있는 고주파 증폭용 진공관이다. 게다가 플레이트와 히터가 일체인 직열형 진공관이다. eBay에서는 8-9개에 10달러가 채 되지 않는 가격에 팔린다.

[이베이] 6P23P high-frequency beam tetrode tube reflektor vintage ussr radio lamp 10 pcs

국내에서도 이것을 사용하여 싱글 앰프를 만든 사례가 있다([이안은 뭐하니?] 링크). 독일어로 된 웹사이트에 회로를 구하여 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디오적으로 들을 만한 결과물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6P23P SE Amp (von Reinhard Clajus)

Ep-Ip 특성 곡선을 비롯한 데이터가 인터넷에 잘 남아 있어서 오디오용 앰프를 설계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아니, 언감생심 '설계'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언젠가는 여기에 어울리는 드라이브단과 주변 수동 부품의 값을 계산과 실험에 의하여 구할 날이 오겠지만...

6P23P의 Ep-Ip 특성 곡선(원본 데이터 전체 링크). 3극관 특성을 닮았다.

이번 자료 검색을 통해 RadioMuseumr과 The Valve Museum 이외에도 Electronic Tube Directory - Guide to Radio Tubes에도 방대한 진공관 특성 자료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2019년 6월 17일 업데이트

6P23P의 작동 보증 시간은 최소 500시간이라는 글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5천 시간을 보증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이 진공관만 이렇게 수명이 짧을까? 고주파 회로에서는 이럴지 몰라도 음성 신호를 증폭하는 환경이라면 좀 더 오래 갈 수도 있다.

그러면 6P43P로 관심을 바꿀까? 아, 나의 줏대 없음이여.

2019년 6월 9일 일요일

"단색화(Dansaekhwa)를 사세요"

이미 위키백과에도 오른 단색화(Dansaekhwa)라는 용어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화랑가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전시 관련 간행물에서 바로 며칠 전에 이에 대한 기사를 본 것이다. 분명히 우리말인데 왜 이를 영어단어로는 소리나는대로 표기한 것인가? 재벌(Jaebeol)이나 화병(Hwa-Byeong)처럼 한국 사회·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낱말이 서구에 신조어로 소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색화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을 이룬 단색조의 미니멀리즘계 추상회화 작품들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미술관과 화랑(갤러리)을 한 달에 두어번 다니는 정도의 사람이 단색화라는 말을 모르면 부끄러운 일인가? 한국 추상미술의 매우 중요한 사조라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감상만 하는 사람이었지 비평하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재산 증식을 위해 미술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과거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줄리안 오피의 판화 작품(아주 작은 소품이었다)을 두 개 구입한 일은 있지만.

지난 주말, 인사동 화랑가를 둘러보다가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골목을 지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판매가 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한 화랑을 들어가게 되었다. 좁은 공간에 그림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들은 벽에 걸지 못하고 겹쳐서 세워두기까지 한 곳이었는데 유명한 작가의 그림이 많았다.

"단색화를 사세요"

천천히 걸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이가 지긋한 화랑 주인께서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해 보라면서 꺼낸 말이 이것이었다. 화랑 입구에 놓인 명함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대표라는 직함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그 어르신이 화랑의 실질적인 소유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분은 우리 부부를 그림 재테크의 길로 너무나 전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K Auction을 다니면서 어떤 그림이 비싸게 팔리는지 반 년 정도 공부를 하면 감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면 조금씩 그림을 사 모으기 시작하여 값이 오르면 팔기를 반복하면 된다고. 판화는 유일한 것이 아니니 값이 나가지 않으며, 구체적인 작가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런 사람의 것을 지금 사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서울에 작은 집 한 채 사고 싶다고요? 부인의 그런 꿈도 못 이루어 주겠어요? 나는 돈 한 푼 없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장사를 해서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생각만 해서는 재산을 모으지 못해요. 실천을 해야지. 저 친구(공식적인 화랑 대표)도 내가 가르쳐 준 대로 해서 10억을 벌었어요. "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는 비즈니스적인 마음을 갖고 실천하며 살지 못함을 나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말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상가건물의 지하 점포가 전부 자기 것이고, 자녀들에게 비싼 집을 하나씩 다 물려주고도 아직도 집에 수백 건의 미술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성공한 화랑 주인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화랑을 찾은 젊은(?) 부부가 너무나 소심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분은 화랑을 찾는 수많은 손님들에게 똑같은 멘트를 날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고객'들이 화랑가에 유입이 되면 어쨌든 사업적으로 이득이 될 터이니까.

"난 그림을 좋아하진 않아요."

아아, 안타깝다. 기왕이면 그림 자체를 좋아하는 것에서 이 일이 비롯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암著庵 유한준兪漢雋이 남긴 글처럼 말이다.
知則爲眞愛 지즉위진애
愛則爲眞看 애즉위진간
看則畜之而非徒畜也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곧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곧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인용문 링크)
단색화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알게 된 그 주에 화랑 주인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단색화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해외 미술품 경매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낙찰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미술의 자부심을 논하는 사람도 있고, 단지 거래 가격을 높이기 위한 화랑가의 기획이라는 불편한 시각도 있다. 심지어 위키백과에 단색화 열풍이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니까. 이에 대하여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2016년에 발간된 월간 [미술세계]에 실린 글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웹사이트에는 전문이 실려있지 않으므로 조만간 도서관이나 미술관 자료실, 혹은 대학로 아르코예술기록원에 가서 종이잡지를 보아야 되겠다.




화랑을 나와서 원래 목적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향했다. 무료 관람(오후 6시~9시) 요일이 금, 토로 바뀌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박서보 작가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미술관 전시 프로그램 링크; 기사). 구글 검색을 통해 얻은 짧은 지식에 의하면 그는 단색화의 거장이고 '미술시장에서 그의 이름 석자는 바코드와 같은 고유명사'라고 한다. 가만, 이름은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던가.

출처: 뉴시스

우리 부부가 앞으로 미술품 경매장을 다니는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 주말에 겪은 일은 기왕이면 공부를 해 가면서 미술품을 보는 노력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그림 읽기'라고나 할까? 물론 모든 작가가 자기 작품을 보고서 공부를 하라는 뜻으로 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스거 욘(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 링크)이 뭐라고 했더라? 작품은 그것을 감상하는 대중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 이상의 것이 결코 아니라고 했던가? 다시 아스거 욘의 [삼면 축구(재현작)]을 찾아서 그 벽면에 적힌 글을 정확히 베껴와야 되겠다.

2019년 6월 8일 토요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잡지 [마이크로 소프트웨어]를 읽다 - 코딩하는 공익 이야기

네이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면서 정자동에 위치한 그린팩토리를 찾는 것은 이율배반일까? 이런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서 훗날 해명을 해야 될 날이 올까? 혹은 지나치게 사소한 일이라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일일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정말로 양심에 맞게 한결같은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이러한 모습이 보여진든 말든 엄격한 자기 검열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배신을 했는지도 모른다. 네이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쓴 글의 시작 부분도 오늘 것과 거의 똑같다. 

어제 비가 내리고 나서 이른 더위가 잠시 가시고 공기도 무척 깨끗해져서 산책을 하기에 좋은 주말을 맞았다. 아내와 함께 필기도구를 챙겨들고 걸어서 그린팩토리를 찾았다. 잡지를 읽으면서 머리도 식히고, 예전에 사다 놓은 반도체 앰프용 정류회로기판을 6LQ8 PP 앰프에 사용하려면 어떻게 개조를 해야 될지 궁리를 해 보기 위함이었다.


Digital Insight라는 잡지에는 인터브랜드 그룹 전략 총괄 Manfredi Ricca가 발표한 글 Five changes in business가 실려서 이를 아주 간단하게(무성의하게?) 요약해 보았다.

  1. Commoditization : 복잡한 기술이 대중에게 쉽게 쓰일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 Abundance of choice
  3. Speed of adaption
  4. Rising expectations
  5. Next is now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새로운 서비스에 적응하는 속도도 빨라지며, 소비자의 기대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단 5년 뒤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비즈니스 현실이므로 적절한 시기에 과감히 행보하는 'iconic moves'로 혁신하자는 것이다. 

잡지를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을 직접 수첩에 적어서 온 것이 혹시 의미가 없는 일인가 싶어서 구글을 뒤져봤더니 전문이 다 공개되어 있었다. 이럴 거라면 적당히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서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하고 원본 글의 링크만 걸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내가 들고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어판을 펼치니 DSLR 광고에 실린 봉준호 감독의 얼굴이 너무나 젊다. 몇 장을 더 넘겼더니 보아(그렇다. 가수 보아 말이다)가 올림푸스 디지털 카메라 광고 모델을 하고 있다. 오잉? 이게 도대체 몇년도에 나온 잡지란 말인가? 맨 앞으로 돌아가 보았다. 어이쿠, 2006년, 보아가 만 스무살이 되던 해에 나온 것이었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보아는 2003-2005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2006년부터는 일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톱스타를 데려다가 광고를 찍은 셈이다. 2006년의 봉준호 감독은 13년이 지난 뒤 칸 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혹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늦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다음으로 읽은 잡지는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전문연구요원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사회복무요원(우리가 아직도 공익근무요원이라고 부르는)으로 일하는 반병현(블로그) 상상텃밭 CTO가 기고한 글 [개발자 문서와 PMF]을 재미있게 읽었다. PMF란 product-market fit의 약자로서 스타트업 종사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라고 한다. 이 신조어는 넷스케이프의 창업자인 마크 안드리센이 처음으로 쓴 것으로, 매력적인 시장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일컫는다(링크).

가만, 이 책은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몇 월호인가. 표지를 살펴보았다. 발간월을 가리키는 힌트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Vol. 396이라고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잡지가 이제는 매월 발간을 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 계간지로 바뀐 것이다. 396호는 2019년 4월에 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잡지의 성격도 기자에 의한 취재보다 기고를 더 많이 싣는 것으로 바뀐 듯하다.

반병현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업무 자동화를 위한 파이썬 스크립트를 만들었다가 정보보안을 담당하는 기관으로부터 차단을 당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소셜 미디어 등에 글을 올리면서 드디어 정부 조직을 움직이게 한 에피소드를 곁들여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개발자는 기술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제안서는 지나치게 전문 분야의 용어로만 범벅을 해 놓아서는 안된다 정도로 요약을 할 수 있겠다. 인터넷 접속자가 많은 유머 사이트를 이용하여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자신의 글에 대한 지명도를 올린 사례도 소개하였다. 

'브런치'라는 사이트에 '코딩하는 공익'이라는 매거진의 형태로 반병현은 꾸준히 글을 올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염연히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신분으로서 화제에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무언의 압력이 있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글은 비공개로 전환했다가 소집 해제가 되는 2020년 4월에 다시 공개한다고 하였다(링크). 단,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기고문에서도 언급한 다음의 글은 공개된 상태이다.


내가 석사를 갓 마친 당시와 비교해 보면 논리가 정연하고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불리한(?) 위치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결국은 사회를(그것도 정부 조직을!)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크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의 고리타분한 시각으로 보기에는 '뭘 이렇게 튀려고 애를 쓰나'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지 않고 과거에도 그렇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야 할 일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었나?

마이크로 소프트웨어의 개기자(개발하는 기자) 오세용 기자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내가 입은 티셔츠에 새겨진 그림은 무슨 기계일까? 그린팩토리에서.

[6LQ8 PP 앰프 제작] 전원장치에 대한 생각

우리나라 돈으로 송료를 포함하여 2만원 미만에 구입할 수 있는 중국제 6N1 + 6P1 싱글 앰프는 대단히 간단한 전원회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험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5 mH/120 mA의 초크 코일을 쓸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이것 대신 220옴 5와트 시멘트 저항을 넣어도 실용적으로 문제는 없다.

출처: AliExpress. 판매자 스토어는 CHINA BrandExport Store.
저항으로 초크 코일을 대신하는 아이디어는 다음 회로에서 얻은 것이다. NFB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위의 것과 사실상 동일하며, 초크 코일이 R8로 대체된 상태이다.


이번 여름 프로젝트로 구상 중인 6LQ8 앰프는 푸시풀이라서 싱글 엔디드 앰프에 비하여 험 잡음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왜 그러한지에 대한 정확한 이론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험 잡음은 교류로 히터를 점화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 전원트랜스에서 누설되는 자기장으로 인해 유도되는 것, B전원에 남은 리플 등 몇 가지의 요인에 의한다. 싱글 엔디드 앰프에 비해 PP가 험에 강하다는 것은 위에서 나열한 요인 중 어느 것이 줄어드는 것에 기인하는가? 복합적인 요인인가? 분명히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제이앨범에서 제공하는 PCB + 부품 세트를 활용할 계획이라서 전원부를 제외하고는 내가 크게 자율성을 발휘할 곳은 많지 않다. 제이앨범에서 제시한 전원회로는 트랜스 2차 출력(214 V)을 다이오드로 브리지 정류를 한 다음 200 uF/400 V 캐패시터로 평활시킨다. 다음으로는 135옴 저항(다소 생소한 저항값)과 200 uF/400 V으로 구성된 RC 필터를 여러 단 이어서 202 V까지 전압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내려야 할 전압의 폭이 꽤 넓어서 4~5단의 필터를 적용해야 한다. IC114에서 찾아보니 200 uF 전해 캐패시터라는 것은 없고 220 uF/400 V의 것이 있다. 가격도 2,000~2,500원 선으로 꽤 비싸고(105도 제품의 경우), 리드선 타입도 아니라서 만능기판에 꽂기가 좋지 않다.

제이앨범 이외의 웹사이트에서 제시한 6LQ8 PP 앰프 회로는 MOSFET을 이용한 리플 제거 회로를 채택하였다. 우선 KDK Labs의 Power N-type MOSFET으로 ripple 제거를 먼저 읽어보았다. 어쩌면 내 부품통에 있는 IRF740을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개된 리플 제거 회로를 검토해 보자. 다음은 네이버 카페 [앰프를 만드는 사람들(앰만사)]에서 제공하는 기판에 대한 설명글에서 그림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아래의 그림에서는 왼쪽 부분을 잘라냈는데, 실제 판매하는 기판에는 다이오드 회로와 첫번째 평활용 캐패시터가 포함된다. 220 uF/250 V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한 것은 배전압 정류로 사용할 것을 감안한 것이다.

출처: 앰프를 만드는 사람들
출력 전압은 어떻게 결졍하는가? 원문을 약간 고쳐서 인용해 보자.

  • 180K와 1M 저항으로 FET의 게이트 전압을 결정하고 출력전압은 보통 게이트 전압보다 5 V 정도 낮다.
  • AC 200 V를 정류한 경우 280 V가 되며 이때 게이트에 걸리는 전압은 280 V x (1M/(1M + 180K)) = 237 V가 되며, 출력 전압은 237 V - 5 V = 232 V가 된다.
다음 카페 [자작 진공관 앰프 라디오]에 실린 6LQ8 PP 앰프 회로도에서도 거의 유사한 회로가 쓰였다.

출처: 6LQ8 PP회로도(은철아빠님 작도)
이베이에서 판매하는 고전압용 교류 노이즈 필터(Tube Preamp/Amplifier High Voltage AC Noise Electronic Filter Board 400V 2A)의 회로도는 다음과 같다. 입력부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그려져 있음을 유의하자. 다이오드 브리지를 거친 전원을 별도의 평활 캐패시터 없이 이 보드의 입력에 연결하면 될 것이다. 이 기판은 2019년 6월 11일에 두 개를 주문하였다.

출처 링크

다음으로 고려할 사항은 히터 전원이다. 6LQ8 데이터시트에 의하면 6.3 V, 775 mA가 필요하다. 진공관이 총 4개가 쓰이므로 3 A가 넘는 전원이 필요하다. 나의 계획은 보유하고 있는 24 V SMPS  어댑터에 5 A급의 스텝다운 어댑터를 연결하는 것이다. XL4015칩을 사용한 모듈이 적당할 것이다(IC114, LED 디스플레이가 있는 것없는 것)

이번 제작에서는 감전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되겠다. 특히 양손 조심!

2019년 6월 7일 금요일

또 트랜스포머! (6LQ8 푸시풀 앰프 제작을 준비하며)

오늘 장사동 아세아전원에서 구입한 전원 트랜스 2종 3점을 사진으로 남겼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골목 입구를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매장을 찾느라 약간 고생을 했다. 종로 3가역 12번 출구로 나온 다음 마을금고가 있는 큰 골목으로 들어가면 안되고 세운상가쪽으로 좀 더 걸어 내려가서 CD마트와 종로 음악사가 입구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왼쪽과 가운데의 것은 푸시풀 출력트랜스 대용이다. 6V 탭을 사용하면 대략 10K : 8 옴의 푸시풀 출력트랜스에 해당하게 된다. 코어는 57 mm로서 10VA급이다. 실리콘 Z 코어를 쓴 것도 아니요, 샌드위치 권선을 한 것도 아니며, 권선비는 얼추 맞더라도 권선수 자체가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UL탭이 없으니 출력관의 연결 방식과 실제로 뽑아낼 수 있는 파워에도 약간의 제약이 따른다. 그렇지만 가격이 저렴하므로 실험용으로 일단 소리를 내 보는 데에는 적당하다.

싱글앰프용 출력트랜스라면 코어를 전부 빼서 E와 I를 한쪽으로 모은 다음 갭을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출력트랜스에 공급되는 전류는 완벽한 교류신호가 아니라 직류성분이 있는 맥류이기 때문에 코어에 자기포화가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전자석' 비슷하게 되어 제대로 2차로 신호가 나가지를 못한다. 그러나 푸시풀 앰프라면 이런 개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히터는 어떻게 점화할 것인가? 마침 24V SMPS 어댑터를 하나 갖고 있으니 여기에 스텝다운 컨버터를 붙이면 된다. 우선은 나무판 위에 기판과 트랜스를 대충 고정하여 소리를 내 보는 것까지를 진행해 볼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이 보이면 제대로 된 섀시를 꾸미면 되고, 오디오용 출력 트랜스를 연결하는 것은 그 다음에 생각해 볼 일이다. 57 코어 출력 트랜스는 하나에 25,000원이나 한다. 오늘 구입한 전원트랜스에 비해 다섯 배가 넘게 비싸다!

6LQ8은 원래 TV용으로 개발된 것인데 오디오 앰프 용으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서 자작에 종종 쓰인다. 6LQ8과 히터 전압은 같지만 특성이 같은 관에는 11LQ8, 10KR8, 8KR8, 6KR8가 있다. 이 진공관은 발진을 일으키기 쉬워서 오디오 앰프로 쓰기에는 다소 까다롭지만 소리는 매우 좋다고 한다. 푸시풀로 꾸미면 채널 당 5와트 정도가 나온다.

구글을 뒤지면 강기동 박사님, 제이앨범, 그리고 다른 인터넷 카페에서 만든 6LQ8 앰프 회로(싱글 엔디드 및 푸시풀)를 구할 수 있다. 아직 철저하게 확인을 한 것은 아니지만 6LQ8을 사용한 오디오 앰프는 한국인에 의해서 주도된 것 같다. 강기동 박사님이 2008년에 처음 프로토타입을 선보이고(링크)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제이앨범과 활발한 공동작업을 펼쳐나가서 PCB+부품키트로까지 개발되었다. 또한 R코어를 이용한 진공관 앰프용 출력트랜스도 이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나는 제이앨범에서 제작한 PCB와 부품 키트를 사용할 예정이다. 다음은 6LQ8 및 이를 사용한 푸시풀 앰프에 관한 정보 링크이다.
  • 제이앨범(각 링크로 들어가려면 회원 가입 필요)
  • 다음 카페 자작 진공관 앰프 라디오
  • [KDK Labs] 강기동 박사님 제작기 <= 여기는 인터넷이 흩어져 있던 강기동 박사님의 글을 다른 분(아마도 제이앨범 방장님)이 수고롭게 정리한 곳이다. 주옥같은 글들이 많이 있는데 일부 이미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강기동 박사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사이트는 My Audio Lab이다.

2019년 6월 3일 월요일

한강은 너무 넓다

구글플러스가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면서 뉴스나 사진에 간단히 글을 곁들여서 올릴만한 곳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원래 쓰지를 않는다. 매번 블로그를 활용하자니 평균적인 글의 길이가 너무 짧아져서 문제이다. 충분히 자료를 조사하고 생각을 가다듬어서 블로그를 쓰고 싶은데 자꾸 짧은 글을 쓰게 되면 내실을 기하기가 어려워진다.

여담이지만 SNS를 잘 쓰지 않으니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편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특히 카카오톡). LinkedIn은 탈퇴했다가 재가입을 했는데 이메일로 날아오는 각종 요청에 아직은 거의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LinkedIn에서는 '누구누구를 아십니까?'류의 질문을 계속 보내면서 Connect 버튼을 클릭하기를 유도하지만 이것이 당사자에게 불편함을 유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처럼 나의 생각과 같은 기고문을 발견하여 소개해 본다. 삭막한 도시의 생태에 강이 가져다주는 낭만적 요소를 떠올리기에 한강은 너무 넓다. 강남북을 연결하는 수많은 다리는 한강을 단지 극복해야만 하는 물리적 경계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어느쪽에서 비롯되든, 자동차 도로를 넘어서 둔치로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인력이나 인공물로써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 경계를 하루에도 몇번씩 다니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경향신문 [손아람 작가의 다리를 걷다 떠오르는 생각](1) "천만 도시 관통하는 아름다운 강, 그 적막함에 이방인들은 놀란다"

그 규모에서 비교를 할 수는 없으나 대전의 유성구와 서구를 가르는 갑천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의 문제가 수도권에 비하여 더욱 심각한 것은 사람과 기업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설립 40년을 넘는 대덕연구단지(요즘은 대덕연구개발특구라 부른다)은 여전히 유성구 내의 섬이나 다를 바가 없다. 좋은 인프라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전으로 오지 않는다. 갑천 북쪽 지역은 출퇴근 시간에만 반짝 교통체증이 일어나는데, 남쪽으로는 갑천으로 막히고 북쪽으로는 산과 개별적인 연구소에 막혀서 우회를 할 곳이 없다.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고 경제 활동이 집중되면서 모든 투자 역시 수도권에만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사람을 계속 수도권으로 모이게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그리고 후손이 지불해야 하는)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모두들 오르는 집값에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은 없는 것인지?

다이오드를 이용한 납땜인두의 파워 1/4 전환 장치(50%가 아님)

새로 구입한 세라믹 히터 납땜인두는 40W짜리라서 자작 용도로 트랜스나 커넥터 등에 납땜을 하기에는 아주 적당하다. 반면 기판에 반도체 부품을 납땜하기에는 열량이 좀 큰 편이라서 부품을 망가뜨릴까봐 부담스럽다. 20W가 조금 안되는 납땜인두는 대전 집에 있는데, 좁은 숙소에서 용도에 따라 인두를 두 개나 보유하고 있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새 인두를 사면서 터보 기능이 있는 것을 살 것인지를 놓고 정말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인터넷을 뒤지면 정류 다이오드를 이용하여 납땜인두의 파워를 "1/2"로 줄이는 아이디어가 흔히 나온다. 아래에 보인 유튜브 동영상 제목은 a dual-wattage soldering iron: an example circuit that uses a diode이다. 전환용 스위치가 아닌 일반적인 2핀 스위치를 쓴다면 두번째의 회로도에 보인 것처럼 다이오드 양 끝을 단락시키는 방식으로 스위치를 연결하면 된다.



출처: Tips and tricks pencil-type soldering iron

너무나 간단한 아이디어라서 따라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용한 다이오드는 1N4007이다. 다이오드를 통하면 반파 정류가 된 220V가 납땜인두에 전달되니 전력은 1/2이 되겠거니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와트에서 기대되는 열량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일단 40와트로 달구어 놓은 상태에서 적절히 스위치를 전환해 가면서 쓰면 저열량이 필요한 작업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왜 생각보다 덜 뜨거울까? 중학교 저학년 수준의 물리(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물상'이라고 불렀다) 또는 기술 과목에서 배운 지식을 떠올려 보았다. 이 회로에서 다이오드는 납땜인두에 공급되는 실효전압을 1/2로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전류도 1/2로 줄어든다. 전력은 전압 곱하기 전류이므로 결국 납땜인두는 다이오드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와 비교하여 1/4 수준인 10와트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50%로 파워를 줄이는 장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인터넷에 공개된 것들은 50%로 줄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단 말인가? 기본적인 사항을 잠깐 놓치면 이렇게 엉뚱한 결론이 나게 된다.

40와트에 어울리는 두툼한 인두팁을 10와트 수준으로 달구고 있으니 얼마나 늦게 온도가 올라가겠는가? 실제로 온도를 측정해 본다면 땜납을 충분히 녹일 수준에 살짝 못미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만약 납을 녹이지 못할 수준이라면, 작업 대기 중에 인두팁이 지나치게 뜨거워지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로 쓸 수는 있겠다.

2019년 6월 16일 업데이트

1/4 용량으로 설정하여 인두를 켠 다음 한참 두면 어쨌든 납이 충분히 녹을 정도까지는 온도가 올라감을 확인하였다.




2019년 6월 2일 일요일

6월의 첫 DIY - LM1876 앰프 보드를 고무나무 쟁반에 담기

쟁반에는 음식을 담은 그릇을 받쳐 들어야 하는데 가끔은 이렇게 앰프를 꾸미는 받침대로 쓰이기도 한다. 다이소에서 크기가 비슷한 손잡이 달린 쟁반과 나무 도마를 하나씩 구입하여 쟁반을 최종적으로 선정, 간단한 주말 공작을 마쳤다. 담긴 물건은 40VA 전원트랜스(2차: 12-0-12V)와 LM1876 앰프 보드이다. 상판을 만들어 덮을 일도 없고, 기껏해야 나무 재질로 된 것에 전동드릴로 구멍만 몇 개 뚫으면 그만이니 이보다 편할 수는 없다. 입출력 단자가 고정된 알루미늄판과 전원스위치 보드는 예전에 만들어 둔 것이다. 절연처리도 적절히 된 상태라서 감전의 위험도 없다.


이번 여름의 실험 목표는 리니어 전원장치에 FET를 사용한 리플 제거 회로를 응용하는 것, 그리고 최초의 푸시풀 앰프(아마도 6LQ8)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섀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등 돌리고 앉아서 같이 외출한 시간 이외에는 주말 내내 작업에 몰두한 무뚝뚝한 남편을 이해해 준 아내에게 감사를!

2019년 6월 3일 업데이트

네이버 카페 [앰프를 만드는 사람들(앰만사)]에서는 정류회로가 포함된 리플필터 PCB를 부품과 함께 공급한다. 이 링크에서 사진 및 회로도와 함께 상세한 설명을 수록하고 있다. 자작인들의 영원한 동반자 ebay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거의 모든 회로를 당연히 완제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한다. 아래 제품은 리플(노이즈) 제거 필터만 구현한 것이므로 일단 DC를 만든 다음 입력해야 된다. 출력 전압을 바꾸려면 적절히 전압 제한용 저항을 달거나 회로를 개조해야 한다.


ebay 판매자 정보: best-for-cell

전주 Cafe JB Blue는 이제 추억 속으로...

우리 가족이 전주를 즐겨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14년 5월에 열린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부터였으니 벌써 5년째가 되었다. 초보 전주 관광 시절에는 한옥마을의 엄청난 인파에 놀라고, 외지인으로서 너무나 뻔한 코스만 돌아다니기도 하였으나 점차 방문 횟수가 늘어나면서 치명자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로 한옥마을에 도착한 다음 그 주변과 객사길(고사동)을 돌아다니는 법을 알게 되었다. 지나는 길에 전라북도예술회관에서 전시회를 보기도 하고, 남부시장 청년몰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아직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전주의 아름다움은 글로 다 적기 어려울 것이다.




때로는 번잡한 한옥마을을 잠시 벗어나서 아픈 다리를 쉬면서 들고 간 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전동성당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앞에 위치한 Cafe JB Blue였다. 널찍하게 자리잡은 테이블, 저렴한 가격, 청결하고 센스 있는 인테리어, 그리고 늘 친절한 직원들.. 거의 한달에 한번 정도 꾸준히 전주를 방문하면서(주말 이틀을 연이어 간 적도 있었다!) Cafe JB Blue를 들르지 않는 적이 없었고 점주(매니저?)도 우리를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고는 했었다. 점주인지 매니저인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편의상 매니저라고 해 두자.

길 건너편의 전북은행(2층) 건물 1층에 Cafe JB Blue가 있다. 왼편으로 전동성당이 보인다.

마지막 방문은 작년 11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필이면 인테리어 공사 중이라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 이후 딸아이의 대학입시와 파견 근무 등으로 생활 근거지가 바뀌면서 한동안 전주를 가지 못했다가 대전 집에서 주말을 보내게 되면서 어제 모처럼 다시 전주를 찾았다. 헤아려 보니 거의 반년 만의 방문인 셈이었다. 늘 가던대로 치명자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세워진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전주의 인기가 줄어들었나? 오목대 앞 기린대로 노상 주차장에 차를 대기로 하고 이동을 하였다. 주차관리원 말씀으로는 노상 주차장은 관리인이 직접 요금을 징수하던 것으로부터 주차요금 정산기에서 시간제(30분 1천원, 일일 최대요금 12000원)로 요금을 내는 것으로 바뀌었고, 시에서 임차하여 사용하던 치명자산 주차장은 계약이 만료되어 약간 더 멀리 위치한 대성동에 공영주차장을 지어서 2019년 1월부터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전북일보 기사 링크). 새로 지은 주차장에서는 아직 요금은 받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셔틀버스는 운행 중이라 하였다. 그래서 차를 돌려서 대성공영주차장으로 향하였다.

한옥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사진을 찍으며 구경을 하다가 Cafe JB Blue로 향했다. 매니저 역시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우리 부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음날(6월 2일), 그러니까 바로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오전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 아닌가! 은행이 카페가 있던 1층으로 내려오고, 카페는 면적을 줄여서 테이크아웃 업장으로 바뀔 예정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카페 안쪽은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내 준 것 같았다. 아마 작년 11월의 공사가 이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부부가 늘 앉던 자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먹고 싶었던 빙수는 재료가 동이나서 주문을 할 수 없었다.

우리 부부가 한동안 오지 않아서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문을 닫기 바로 전날 방문해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늘 와서 책을 읽고 있어서 좋은 모습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매니저는 카페가 문을 닫으면 좀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본다고 했다. 인테리어 철거공사를 맡기로 한 업자로 보이는 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는 많은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하였다. 잠시 허락을 구하고 우리 부부가 늘 앉아있던 쪽 벽의 낙타 그림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마 이 카페를 즐겨 찾은 사람은 아래 사진 가운데에 선 매니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JB Cafe Blue의 점주였다면, 매니저로 오해한 것을 용서하시길!

JB Cafe Blue 영업 종료일 전날(2019.6.1.).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전주에 얽힌 우리 부부의 추억 한 토막이 이렇게 막을 내려야 한다. 여기 못지않게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공간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새롭게 발견한 맛집 [고자루] 앞에서. 발로 밟아서 반죽을 만드는 족타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전주성결교회 옆골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