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0일 일요일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 관람기

구글 앨범 링크공식 홈페이지(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2017년 5월 9일-8월 27일)
비석이었던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모습의 얼굴이다.
우리가 과연 '아라비아'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시각을 갖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원유, 70-80년대에 아버지 세대가 힘겹게 외화를 벌어오던 곳, 이슬람 근본주의, 서방 위주의 왜곡된 시각(문화적 충돌, 테러) 등. 외국인들에게 지금 '코리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김정은에 의한 핵미사일 위협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고, 끝없는 외침 속에서도 독자적인 문화(특히 언어)와 국토를 잃지 않고 자주성을 지켜오고 있으며, 짧은 근대화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를 이뤄왔다고 말해 보아야 외국인들에게는 그저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가장 큰 위험한 지역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 불편하다면, 우리가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바꾸어야만 한다.

지금 우리가 아라비아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저 경제적 이해관계와 선정적인 서방 위주 언론보도의 프레임을 통과한 '아라비아' 아니겠는가? 아라비아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먼 유럽이나 북미(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에 대해서 더 친근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당시에 촬영된 것이든 혹은 최근에 만든 것이든)를 보면서 향수를 느끼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실제로 나는 60년대 끝자락에 태어났음) 우리가 미국의 문화적 홍수에 얼마나 세뇌가 되었는지를 반성해 보았다.

'아라비아'는 (1) 아주 좁은 의미로는 지리적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사우드 가문의 아랍 왕국, 즉 사우디아라비아 왕국(المملكة العربية السعودية, al-Mamlakah al-‘Arabiyyah as-Su‘ūdiyyah, 나무위키에서 참조)을 의미하겠지만, (2) 보다 정확하게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걸쳐서 아랍어를 사용하며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와 민족을 통틀어 의미한다. 어쩌면 사우디아라비아 이외 국가의 사람들은 (1)의 입장을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1)은 아랍 국가들의 맹주 역할을 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의지가 담긴 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아랍 국가들은 자기네들 사이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형님 노릇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아라비아의 길' 전시를 흥미롭게 보았다. 전시 기간은 5월 9일에서 8월 27일까지이다. 7월 초에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8월 15일 전시 종료)를 관람하고 나왔더니 건물 바깥에 있는 매표소에서 '아라비아의 길' 전시까지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을 팔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당시 상설전시관 매표소에서는 오직  '프랑스 근현대 복식...' 입장권만을 팔고 있었고, 바깥 매표소에서 파는 동시 입장권에 대해서는 안내를 하지 않았었다. 안타깝게도 서로 다른 날 두 개의 전시를 모두 제값을 주고 본 셈이었지만 전시 내용이 모두 충실해서 큰 불만은 없었다. 단, 이번 '아라비아의 길' 전시에서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전시장 내부가 너무 혼잡하고 시끄러웠다. 어른 한 두 명이 소그룹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설명을 해 주는 모습은 요즘 대단히 흔해졌다. 그런데 육성으로 설명을 하니 그 소란스러움은 이루말할 수가 없고, 그룹 자체가 너무 많아서 일반 방문객의 편안한 관람에 지장을 주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성인 대상의 해설 프로그램에서는 무선마이크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들을 인솔하여 다니는 그룹에서는 대부분 인솔자가 육성으로 설명을 한다. 해설자의 전문성도 의심이 가고,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끌려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대표 유물은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기원전 4천년 무렵 만들어진 소박한 인간 모양의 석상이다. 극도로 단순화된 얼굴, 귀엽게 몰린 두 눈, 그리고 허리에 찬 칼이 이채롭다.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아라비아를 통해 전세계로 퍼졌고, 과거에는 비옥했던 이 땅을 통해서 향신료 무역이 성행하면서 세계 어느곳보다 앞선 문화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고대서에도 언급된 딜문(Dilmun) 문명은 아라비아만 연안의 타루트 섬에서 비롯되었다. 사우드 가문이 약 2세기에 걸친 투쟁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물리치고 아라비아 반도에 국가를 세우게 되면서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높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선포된 것은 1932년이다.

난 이 사진을 앞세운 홍보물만을 보고서 이번 전시가 아라비아의 고대 문화 위주로 꾸며졌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경이로운 유물들을 따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다보니 20세기의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정까지 해당하는 전시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오잉? 사우디아라비아의 과거와 현재를 전부 다 보여주는 것이 기획 의도였나? 한 전시에 이렇게 긴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게 말이 되나? 집에 돌아와서 안내지를 읽어보았다.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 55년을 맞아서 사우디관관국가유산위원회화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는 내용이 읽고 나서야 수긍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라비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로는 사실상 국내 최초라는 것도 포함하여. 

현재의 시각에서 본다면 신정일치의 전제군주제 국가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국민들이 택한 국가의 운영 방식은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유연성이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아라비아의 과거와 현대사에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 좋은 기회였다. 갑자기 문명교류사를 주창한 '무함마드 깐수' 정수일 선생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2005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정수일 교수의 문명교류기행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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