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미국의 연방정책(Federal Policy) 중 하나를 왜 2022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공부하고 있는가? 개정 커먼룰이나 유럽연합의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이 무슨 사서삼경 중 하나라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 일부러 공부하는 이유는 윤리적인 인간대상 연구의 수행을 위해 이 연방정책으로부터 참고할 사항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정책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국내법 상의 법(률),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소위 커먼룰은 인간대상연구 보호를 위한 연방정책(Federal Policy for the Protection of Human Subjects)을 일컫는 것이다. 'Common(공통)'이라는 낱말은 여러 정부 기관에 적용되는 규칙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우선 2017년 국내 학술지 「생명윤리」에 실린 다음의 논문을 클릭하여 읽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꽤 길다... 다 읽고 나면 뉘른베르크 강령, 헬싱키 선언, 터스키기 매독 사건, 벨몬트 보고서, 황우석 사태와 한국의 생명윤리법 제정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을 한 번에 꿰게 될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이제 바이오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한 학부 저학년 때에 배워야 한다!
미국 연구대상자 보호 정책의 최신 동향 - 개정된 커먼룰(Common Rule)을 중심으로 -
다음으로는 미국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HHS(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의 OHRP(Office for Human Research Protections)에서 제공하는 관련 설명을 보는 것이 좋다.
- [HHS] Revised Common Rule Q&As 교육자료이므로 설명은 매우 친절하다.
- [HHS] Regulations - 45 CFR 46 - 2018 Requirement(2018 Common Rule) CFR(Code of Federal Regulations)란 미국연방규정집을 의미한다. 45 CFR 46을 구성하는 A에서 E까지의 서브파트 중에서 'A'가 바로 개정 커먼룰(2018 Common Rule)에 해당한다. 맨 위에 보이는 푸른 바탕의 흰 글씨 "View an official version at e-Code of Federal Regulations"를 클릭하면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에 공개된 커먼룰 웹사이트로 이동한다. 연방 관보는 우리나라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와 가장 흡사한 구조의 문서를 제공하고 있어서 파악하기 쉽다. 반면 공식 PDF 문서(링크)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서의 구조를 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를 스크롤하여 아래로 내려가면 각 조문(§46.101-§46.124)이 나온다. 왼쪽 메뉴바 가장 위에 링크된 벨몬트 보고서도 터스키기 매독 연구 사건을 조사하면서 나온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니 생명윤리에 관심이 있다면 클릭해봄직하다.
NCBI taxonomy와 유사한 방식으로 Subpart A에 이르는 hierarchy를 알아보자.
Code of Federal Regulations - Title 45(Public Welfare) - Subtitle A(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vices) - Part 46(Protection of Human Subjects) - Subpart A(Basic HHS Policy for Protection of Human Research Subjects)
예를 들어 국내법에서 'X법 제Y조 제Z항'이라고 말하듯이, 미국 45 CFR § 46.116(d)가 바로 포괄 동의와 관련한 것이다('Elements of broad consent for the storage, maintenance, and secondary research use of identifiable private information or identifiable biospecimens').
다음은 SACHRP(Secretary’s Advisory Committee on Human Research Protections)에서 제공하는 권고사항(전체, 검색) 중 informed consent(설명 동의, 사전 동의, 고지된 동의 등으로 번역)에 관한 것이다. 포괄 동의와 관련한 템플릿도 제공하고 있다.
[SACHRP] Recommendations for Informed Consent (Broad Concent Guidance, Broad Consent Template)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개정 커먼룰에 도입된 '포괄 동의(broad consent)'이다. 이는 인체유래물등(유전체 정보 등을 포함하는)의 2차적 활용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동의사항이다. 1차적 연구(primary research)라면 연구자가 연구대상에게 직접 개입하거나 상호작용을 하는 연구이고, 2차적 연구(secondary research)는 1차적 연구가 끝난 뒤 남은 잔여 시료 또는 결과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2차적 연구의 내용이 어떻게 될지는 연구대상자로부터 동의서를 받는 시점에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때 2차 활용에 대한 포괄 동의를 받아 놓으면 생명의료과학(또는 의생명과학) 연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이전 커먼룰에서는 연구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study-specific) informed consent를 받거나 기관심의위원회(IRB)로부터 informed consent 면제(waiver of consent)를 받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를 따라야 했다. 개정 커먼룰에서는 여기에 포괄 동의라는 세 번째 옵션을 추가한 것이다. 필수 또는 기본 선택이 아니라 옵션의 하나이며, 1차 연구가 아니라 식별 가능한 시료 또는 개인정보에 대한 보관, 관리 및 2차 연구에 한정한다. 포괄 동의는 동의 면제가 아니고 study-specific informed consent를 대신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연구윤리가 대상자의 보호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연구를 통해 인류 전체가 얻게 될 혜택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2차적 연구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커먼룰이 개정되었다고 보면 쉽다. 물론 개정 커먼룰에서 달라진 점은 포괄적 동의의 도입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개정 커먼룰 체제에서 인체유래물과 데이터를 이용한 2차 연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NIH 생명윤리 웹사이트에 올려져 있으니 그만큼 정확한 설명 자료라고 볼 수 있다.
[Holly Fernandez Lynch, Univ. Pennsylvania] Secondary Research with Biospecimens and Data Under the Revised Common Rule
|
Lynch의 발표 자료 중 아마도 가장 중요한 42번 슬라이드(출처 링크). 가장 오른쪽 경로를 보라. 이차 연구의 경우 비식별조치를 취했다면 인간대상 연구가 아니므로 IRB도, 동의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이건 커먼룰 개정 전에도 그랬었다. 아, 부러워라! |
개정 커먼룰에서 도입된 포괄 동의를 공부하면서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2차적 연구는 다른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는가? CFR에서 이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특별히 금지하지 않으면 해도 된다는 미국법의 철학(무슨 근거로 이렇게 판단하는지 모르겠지만...)에 의해 판단하건대 제공도 가능한 것 같다. Ochsner Journal 20:62-75('Revised common rule changes to the consent process and concent form', PMC 링크)에 실린 동의서 사례(p.73)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FUTURE RESEARCH We may use or share you research information and/or biospecimen for future research studies, but it will be deidentified, which means that it will not contain your name or other information that can directly identify you...(중략)...We will not ask for your additional informed consent for these studues.
이 샘플 동의서가 커먼룰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3자에게 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때 연구대상자(시료제공자)에게 추가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을 것임이 마지막 문장에 나온다. 제3자 제공 시 비식별 처리를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자, 그러면 비식별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일한 비식별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가장 많이 참조되는 미국의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경우 HIPAA에서 정의한 18개 PHI(Protected Health Information)에 대하여 전문가 판단(Expert Determination)을 하거나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Safe Harbor)를 사용한다. HHS 웹사이트에 이에 대한 글이 있다("Guidance regarding methods for de-identification of protected health information in accordance with the 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HIPAA) privacy rule" 링크).
Safe Harbor method의 경우를 보자. 이름, 주소(주state는 살린다),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 18개의 식별자를 자료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각 보건의료 데이터 유형에 대한 가명처리 방법이 나온다. 모든 식별자는 삭제하거나 일련번호로 대체하고, 플러스 알파가 더 있다. 즉 식별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자체도 가명 처리를 해야 된다. 슬프게도 유전체나 전사체 자료는 안전한 가명처리 방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으므로 가명처리 유보 상태이다. 달리 말한다면 정보 제공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가 없다면 아예 쓰지를 못하는 것이다. 으흑흑... 연구대상자로부터 시료 수집 단계에 2차적 사용에 대한 동의를 깜빡 잊고 받지 못했다면 쓰지를 못한다! 데이터 3법 개정의 취지는 가명처리된 정보는 제공자(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몇 가지 목적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쓸모가 아주 많은 유전체 및 전사체 데이터는 가명처리를 아예 하지 못한다!
(가명처리 = 비식별처리)는 아니지만, 일단 이에 대한 논쟁은 하지 않기로 한다.
둘째, 제3자에게 주는 경우
유전체 정보의 개인 재식별 가능성과 그것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해 보련다.
둘째, 개정 커먼룰에 의해 제3자에게 제공된 자료의 운명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비식별상태를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계속 다른 연구자에게 넘어가도 되는가? 잘 모르겠다.
셋째, 시료 제공자가 보존 기한을 명시한 경우, 포괄 동의에 의해 타인에게 넘어간 자료 역시 보존 기한이 종료되면 폐기해야 하는가? 비식별 처리가 이미 되었으니 어느 자료의 유효 기간이 도래했는지 제3자는 알지 못하므로 폐기를 못할까? 만약 식별의 의미가 시료/정보의 원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1차 연구자는 이름을 '0001'이라는 일련번호로 대체하여 이 식별자를 갖는 상태로 정보를 제3자에게 준 셈이니(이것도 비식별처리에 해당), 유효기간이 도래한 시료의 경우 '0001' 자료를 폐기해 달라고 제3자에게 요청하면 되므로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후자의 방식이 엄격하게 실행되려면 정밀한 추적 시스템이 필요하므로 시료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넷째, 가장 어려운 궁금증이다. 여러 자료를 보면 포괄적 동의는 식별 가능한 개인정보 및 시료로 제한된다는 내용이 보인다. 여기에서 식별 가능하다는 것은 시료 또는 정보와 연결된 원 주인 및 그가 작성한 동의서와 연결 가능하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는가? 예를 들어 Ochsner Journal 20:81-86('Understanding broad consent', PMC 링크)의 표2에는 포괄적 동의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다음의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An investigator wants to conduct research on deidentified tissue samples from the institution's tissue bank. Broad consent is not an option, because broad consent only applies if the samples are identifiable. Because the tissue samples are deidentified, obtaining study-specific informed consent may not be possible. Therefore, the investigator should seek a waiver of consent from the IRB. (연구자가 기관의 조직 은행에서 식별되지 않은 조직 샘플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려고 합니다. 포괄 동의는 샘플을 식별할 수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포괄 동의는 옵션이 아닙니다. 조직 샘플이 식별되지 않기 때문에 연구별 정보에 입각한 동의study-specific consent informed consent를 얻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사자는 IRB의 동의 면제를 구해야 합니다.)
뭔 소리지? 식별되지 않은 조직 샘플을 채취할 때 받은 동의서가 broad consent에 따른 것이라면 상관이 없지 않나? 식별되지 않는 조직 샘플이라는 것의 의미는 '여기에 원래 딸려 있었던 동의서가 무엇이었는지 역추적이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가? 갑자기 조직 은행의 운영 방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조직에는 일련번호를 붙이고, 이를 수집할 때 받은 동의서에도 같은 일련번호를 붙여서 별도의 장소에 관리하지 않을까? 이 예문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누구 샘플인지 모르기 때문에 동의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포괄적 동의는 시료 제공 시점에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1차 연구가 끝난 다음에 시료 제공자를 찾아서 '1차 연구는 성공적으로 끝내게 되어 감사합니다. 남은 시료를 다양한 연구 목적으로 쓰려고 하오니 새로 만든 동의서에 또 서명해 주시되 이번에는 연구 목적이 아주 브로오-드하므로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하는 상황이 떠오른다. 시료의 채취는 1차 연구 때 이미 끝났으므로, 앞으로의 활용에 대한 위험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생물학적 시료를 조사하여 개인을 식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및 그 정보의 악용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이것은 동적 동의(dynamic consent)의 종이 버전이라고나 할까. 안 될 것은 없다. 그런데 문제의 시료가 누구 것인지 모른다면 당최 추가 동의서를 받을 방법이 없다. 이러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상에서 열거한 네 개의 궁금증은 무식의 소치일 수도 있고, 관련 분야 전문가가 답을 주어야 하는 수준의 것도 있을 것이다. 부디 혼자 더욱 깊게 공부하는 과정 중에 스스로 답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
혹시 지나가던 전문가께서 이 글을 읽고 글쓴이의 무식을 깨우쳐주고 싶으시다면 댓글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