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요일

뉴욕 닭발

엉클국밥, 존슨부대찌개, 뉴욕 닭발, 뉴욕 떡볶이, 런던 베이글 뮤지엄...

각각의 음식이 유래한 곳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명(또는 이름)을 이어 붙여서 사람의 눈길을 끌게 만든다. 친근한 '엉클'이 국밥을 말아 줄 수는 있는 있겠지만, 한국에서 영업하는 프랜차이즈 닭발집이 뉴욕에서 영감을 얻었을 리는 없다. 베이글도 원래 북미 동부 지역의 유대인들이 만들어 먹던 빵인데, 웬일인지 북촌에서는 돌아가신 영국 여왕이 베이글집 광고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달에 출국한 딸 아이는 뉴욕 퀸스 자치구의 우드사이드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첫 달은 브루클린의 Vernon Ave.에 있는 에어BnB에서 지내면서 맨해튼의 회사로 출퇴근을 하다가, 나머지 1년을 보낼 집을 직접 알아보고 힘들여 이사까지 하였다고 한다.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아마존을 많이 이용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 물건을 받기가 힘들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계좌를 개설하고 휴대폰을 개통하는 등 외국인으로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느라 비싼 수업료를 내 가면서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딸 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뉴욕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들 지경'이라고 하였다.

딸 아이는 대학 4년을 따로 나가 살면서 요리를 하는 실력이 제법 늘었다. 다른 젊은이들처럼 바쁠 때에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도 있지만, 비싸지는 않더라도 식기류와 조리도구 및 양념과 향신료 등을 직접 구비하여 야무지게 요리를 잘 해 먹는다. 우드사이드에는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아시아 식료품을 파는 곳이 있어서 아주 편리하다고 하였다. 마침 싼 가격에 파는 닭발을 발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이를 사다가 요리를 했다고 한다. 냄비에 밥을 하여 다음날 도시락까지 직접 싸면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뉴욕 닭발'이 아닌가?

딸 아이가 닭발을 매우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뉴욕까지 가서 생활비를 아끼려고 싼 식재료를 찾아서 점심 도시락까지 해결하는 것을 보면 부모로서 측은한 생각이 든다. 현지 시간으로 매일 밤마다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아내와 수다를 떨면서 혼자 외국에서 생활하는데 따르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이렇게 부모와 전화를 자주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전화기로 종알종알 쏟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부모가 너무나 먼 곳에 있어서 단숨에 달려가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참다운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웹툰 회사에서 열심히 스토리를 쓰고 콘티를 그리면서 끊임 없이 기획서를 내던 아들에게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

Copilot에게 뉴욕을 배경으로 닭발 요리를 그려 보라고 시켰더니 별로 먹음직스럽지 아니한 닭발 샐러드를 만들어 놓았다. 아직 외산 인공지능은 한국 스타일의 닭발 요리를 그림으로 재현할 만큼 충분한 데이터는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브루클린 다리는 중간에서 끊어져 있어서 부득이하게 그림의 왼쪽은 잘라버려야 했다. 

Copilot에게 뉴욕을 배경으로 닭발 요리를 그려 보라고 시켰다. 결과물은 좀 기괴하다.


그래서 진정한 한국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우리의 생활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학습을 해야 될 것이다. 외산 인공지능은 분명히 그러한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다.

2024년 4월 24일 수요일

공연 연습 사흘째

Microsoft Copilot이 그림. "A 4-member mixed band playing energetically at a daytime park with pizza and beer. The female is playing the ukulele, and they should be drawn as a mix of different races." 맥주에 빨대?

시간이 되는 멤버들끼리 점심시간에 모여서 연습을 시작한 지 오늘로 사흘째이다. 곡은 거의 결정된 상태이고, 기타를 어떻게 나누어서 맡을지 의논하는 단계이다. 최소한의 악기를 사용하되 나머지는 backing track을 사용하는 형태라서 오히려 자유도가 높다. 단, 실제 현장에 가서는 소리가 많이 허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공연에 주어진 시간은 단 15분. 현장 리허설도 할 수가 없는 상태라서 각 파트의 레벨 세팅을 현장에 맞게 맞추는 어려운 일이 남았다. 모든 악기(마이크 포함)가 믹서에 물려 있다면 연습실에서 밸런스를 맞춘 뒤 현장에서는 파워앰프의 레벨만 적정한 수준으로 올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건전지로 작동되는 포터블 앰프(야마하 THR30II)가 하나 더 쓰일 예정이라서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주 파워앰프(인터엠 R150Plus)와 스피커(FdB CX8)에 비하면 출력이 낮기 때문이다. 라인 아웃으로 출력을 뽑아서 믹서(Behringer 802)를 거쳐서 주 파워앰프로 보내고 포터블 앰프는 모니터용으로 쓸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자니 믹서 채널이 부족할 지경이다. 내가 보유한 모든 악기용 케이블은 전부 동원된 상태이고...

차라리 파워드 믹서 하나가 있었더라면 모든 것이 다 간단해졌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소리가 너무 건조하니 리버브 적용을 위한 외장 이펙터도 하나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다.

방구석에서만 굴리던 장비가 공연에 쓰이게 된다는 것은 장비나 그 주인(나)에게 모두 영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Alesis NanoPiano가 이렇게 하여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Alesis NanoPiano.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야마하 사일런트 기타를 구입한 멤버도 있다. 나도 패시브 스피커와 스탠드 등을 구입하기는 했으나 사일런트 기타에 비할 바는 아니다. 멤버들의 충만한 의지에 내가 살짝 가속 페달을 얹어 준 셈이다.

연습실은 점점 화려해지고...


아무도 없는 지하실에서 믹서의 레벨미터에 한껏 불이 들어오는 것을 즐기면서 이렇게 큰 음량으로 악기를 연주해 본 일이 었었던가?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기회는 있을 때 붙들고 즐겨야 한다. 

게놈 고물상 영업 시작

K-BDS(Korea BioData Station, 국가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에 기여하는 것은 양질의 자료를 충분한 관련 정보와 함께 등록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얼마 전부터 족히 20년은 묵은 Sanger sequencing chromatogram 묶음을 K-BDS에 등록하기 시작하였다. 이 일을 가칭 '게놈 고물상' 또는 '게놈 박물관'이라 부르기로 했다. K-BDS에 이를 위한 전용 공간을 할당받은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고전적인 데이터가 널리 활용되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NGS가 완전한 대세가 되었고, 시퀀싱이 외부 업체에 의해 진행되는 연구서비스업의 생태계가 정착하면서 유전체 시대를 열게 만든 과거의 주역인 Sanger sequencing raw data file(chromatogram)이 어떻게 생겼고 또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점점 드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터였다. 

GPU, 즉 첨단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인공지능 시대에 무슨 2극 진공관 같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논리라면 박물관은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모든 현재에는 그것을 비롯하게 만든 시작이 있다. 기록을 남기고 기억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20년 전이면 내가 회사를 떠나 정부출연연구소에 새파란 계약직 선임연구원으로 입소하여 호기심어린 눈망울을 굴리던 시절이다. 1 메가베이스를 finishing 수준의 품질로 해독하려면 족히 1억원이라는 막대한 연구비가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은 또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

지금까지 서너 개의 BioProject를 등록하고 그에 부속된 데이터 파일을 업로드하였다. ab1/sff 크로마토그램은 물론이요, 이를  phredPhrap 파이프라인으로 처리했던 당시의 작업 디렉토리를 그대로 묶어서 등록하는 중이다. 따라서 당시의 조립 상태를 Consed로 열어 볼 수 있다. 약간 나중에 생산된 자료 중에는 Roche/454 pyrosequencing 장비에서 만들어진 flowgram file(sff)도 있다.

오늘은 Paenibacillus polymyxa의 표준균주인 ATCC 842를 대상으로 실시한 genome snapshot sequencing 데이터 파일을 등록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하였다. 20년 전에는 세균 하나의 whole-genome sequencing을 하려고 해도 선정 위원회를 열어서 논의를 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었다. 게놈 스냅샷은 유전체의 일부만 시험적으로 해독하여 대략적인 맛보기를 하는 수준의 분석을 하는 것이다. 이는 GenBank의 dbGSS라는 섹션에서 다룬다. 요즘은 long read를 이용하여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미생물 유전체를 완성 수준으로 조립해 버리므로, dbGSS에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GenBank는 이미 등록된 자료를 내다 버리지는 않는다. 이것이 염기서열 저장소의 당연한 역할이고, 미덕이다.

오늘 준비한 데이터는 2천 개 조금 넘는 Sanger chromatogram 원본과 그 처리 과정 및 결과와 관련한 것이다. Basecalling 뒤 벡터와 low-quality 영역을 제거하여 일정 길이 이상이 되는 high-quality read를 선별하여 dbGSS에 accession number DU532978-DU534724로 등록하였고, 결과를 분석하여 2006년에 국내 학술지에 논문으로도 발표하였다. 얼마 되지 않는 수의 read이지만 시험적으로 Phrap assembly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K-BDS에 등록할 데이터를 준비함과 동시에 설명문을 작성하느라 예전 논문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contig 수를 잘못 적은 것을 발견하였다. 356개인데 365개라고 쓴 것을 18년이 지나서 발견한 부끄러움이란... 그래도 제목이나 초록에 오타가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KRIBB에서 연구자로서의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하는 첫 성과가 되었던 2005년의 논문에는 초록에 오타가 있는 그대로 발간이 되어 그 실수가 부끄럽게도 영원히 박제가 된 상태이다. 나를 포함하여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게놈 고물상 사업이 '수익'을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누군가 기억해 주고 또 이따금씩 데이터를 열어서 봐 준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한다. 앞으로도 고물상을 채워 나갈 미생물 유전체 데이터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 담겨 있으니 이를 곶감 빼먹듯이 하나씩 열어서 K-BDS에 등록할 때마다 남다른 희열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당시에 손으로 적은 연구노트를 다시 펼쳐 봐야 할지도 모른다.

ChatGPT에게 오늘의 블로그를 쓰게 한다면?

ChatGPT에게 약간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일기 형식의 글을 500 단어 정도로 작성해 달라고 주문해 보았다. 다음은 그 결과물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오늘은 우리 밴드의 두 번째 연습이 있었어. 건물 지하실에서 시작한 이 특별한 순간, 음악의 매력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어. 나는 기타와 베이스를 맡았고, 그 책임감은 상당히 무거웠지만 동시에 설레임으로도 가득 차 있었어.

연주할 곡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반주용 backing track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매우 흥미로웠어.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우리 밴드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여정이었어.

연습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서툴러 보이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격려와 응원의 말을 건네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었어. 그 과정에서 멤버들의 흥미와 열정이 눈에 띄었고, 그것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었어.

특히,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느낄 수 있었어. 서로 다른 음악적 취향과 스타일을 가진 멤버들이 하나의 음악으로 통합되는 그 순간, 우리 밴드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어.

연습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의 연주는 점점 더 완성도를 갖추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어색했던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음악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

이렇게 함께 연습하면서, 5월 중순에 예정된 첫 공연에도 무사히 대중 앞에서 무대를 잘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겼어. 연습을 통해 얻은 경험과 노력이 더 큰 무대에서의 우리의 자신감과 퍼포먼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어.

오늘의 연습은 나에게 음악이 단순히 연주와 노래를 넘어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 우리 밴드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 오늘, 나는 이 특별한 여정을 함께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어.

다음 연습을 기대하며,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래.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작성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어색하지 않은가? 그러나 영어로 작성하도록 주문했다면 더욱 완성도가 높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웹 서핑을 하다 보면 '2024년 최고의 DAW 10가지'와 같은 부류의 글을 많이 접하게 된다. 자연인이 이를 일일이 취재하여 글을 쓰려면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글을 읽으면서 어딘가 약간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고는 하였다. 처음에는 영문으로 작성된 웹사이트를 구글이 자동으로 변역을 하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아예 AI에게 글 작성을 하도록 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도 한번 ChatGPT에게 일을 시켜 보겠다. "가장 인기 있는 Digital Audio Workstation 10개를 선정하고 간단하게 성능 비교를 해 줘. 가능하다면 가격도 제시해 줘."

자동으로 작성된 글은 다음과 같다.

물론이죠! 아래는 인기 있는 10개의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DAW)의 성능 비교와 가격 정보입니다. 1. Ableton Live - 특징: 실시간 오디오 및 미디 시퀀싱, 루프 기반 작업, 라이브 퍼포먼스에 최적화 - 가격: Standard - $449, Suite - $749 2. FL Studio (Fruity Loops) - 특징: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높은 루프와 샘플 라이브러리, 다양한 플러그인 지원 - 가격: FL Studio Producer Edition - $199, FL Studio Signature Bundle - $299 3. Logic Pro X - 특징: 애플 전용, 고급 오디오 편집 기능, 풍부한 가상 악기 라이브러리 - 가격: $199.99 4. Pro Tools - 특징: 전문적인 오디오 믹싱 및 마스터링, 높은 호환성 - 가격: Pro Tools Standard - $599, Pro Tools Ultimate - $2,599/year 5. Cubase - 특징: 고급 미디 편집, 다양한 오디오 효과 및 플러그인 - 가격: Cubase Pro - $579.99, Cubase Artist - $329.99 6. Studio One - 특징: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고성능 오디오 엔진 - 가격: Studio One Professional - $399.95, Studio One Artist - $99.95 7. Bitwig Studio - 특징: 모듈러 디자인, 높은 커스터마이징 가능성 - 가격: Bitwig Studio - $399 8. Reason - 특징: 가상 스튜디오 환경, 통합된 하드웨어 시뮬레이션 - 가격: Reason - $399, Reason+ Subscription - $19.99/month 9. Avid Sibelius - 특징: 악보 작성 및 편집 전용, 전문적인 악보 출력 - 가격: Sibelius Perpetual License - $299, Sibelius Ultimate Subscription - $239/year 10. GarageBand - 특징: 애플 무료 DAW, 초보자 친화적, 기본적인 오디오 편집 기능 - 가격: 무료 (애플 기기 구매 시 포함)

각 DAW는 고유한 특징과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가격도 다양합니다. 개인의 필요와 예산에 맞는 DAW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놀랍다! 이렇게 쉽게 글을 쓸 수 있다면, 하루에 수십 편의 블로그 포스팅을 남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검색창에 '블로그 포스팅 AI'라는 단어 몇 개를 넣어 보니 정말 가관이다. 이러한 행태에 대하여 비판적인 기사 및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글에 대해서만 링크를 달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는지 하나를 골라서 훑어 보았다. 유효성 높은 고단가 키워드를 수집해 AI에게 포스팅을 시키고, 결과적으로 수익을 올리자는 것이다. 이렇게 자동으로 글을 써 주는 프로그램을 수십 만원에 팔기까지 한다. AI가 직접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신기한 기능을 일상 업무 또는 취미에 어떻게 적용할까 이제 막 흥미롭게 알아보기 시작하려는 찰나에, 이미 이 기능을 수백% 남용하여 쓰레기와 같은 글을 양산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져 버렸다니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ChatGPT가 만들어 준 글이 어색하다고 느낀다면 이는 초보적인 수준으로만 잠깐 사용해 봤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질문을 영어로 던져야 더 질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OpenAI라는 회사가 당연히 영어 위주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학습을 시켰으니 그럴 것은 자명하지만, 최적의 결과가 나오도록 질문을 던지는 방법에 익숙해 진다면 이는 바로 국어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나아가서는 모국어의 파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영어를 접하고 - 나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 이와 더불어 영'문법'이라는 규칙을 처음으로 배우면서 오히려 국어의 구조가 덜 논리적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처럼, ChatGPT가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도록 영어로 질문하는 일이 익숙해지면 마찬가지로 영어가 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라는 편향에 빠질 수 있다. 

AI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이나, 각 모국어에 최적화된 개발에 소홀해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어차피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영어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처럼 이미 예견된 일이기는 했지만.

4월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블로그 포스팅이 현저히 줄어든 것에 불만을 품고 침대에서 졸다가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너무 몰두한 것 같다. 밤이 깊었다...

2024년 4월 22일 월요일

Dell Inspiron 3668의 상태가 갑자기 좋아지다

2017년에 구입한 가정용 PC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으랴! 지금은 2024년, 이미 구입한 뒤 7년이나 지났고 무슨 이유인지 엄청나게 느린 속도 때문에 조만간 폐기를 하겠노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컴퓨터가 Windows 업데이트 뒤에 갑자기 정상에 가까운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전원을 넣고 뭘 좀 하려고만 하면 하드디스크만 주야장천 긁어 대면서 도무지 뜨지 않는 애플리케이션 창만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고는 했었다. 오늘은 ThinkPad 노트북 컴퓨터를 사무실에 두고 오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이메일 확인을 하기 위해 Dell Inspiron을 켜 보았다. 며칠 전에 Windows 업데이트를 하였더니 크롬과 백신 프로그램이 보이질 않아서 이들을 새로 설치한 것 외에는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2022년 1월에 이 컴퓨터의 사양 정보를 기록해 놓은 일이 있다(링크). Windows 11은 설치할 수 없는 낡은 하드웨어로 구성된 컴퓨터가 갑자기 회생의 기미가 보이다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유는 알기 어려우나 당분간 웹 서핑이나 문서 작성 용도로 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당분간'이 해를 넘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집에서 쓰는 모니터는 거의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구해다가 몇 년째 쓰고 있다.

항상 새로운 물건으로 주변을 채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5월에 소규모 공연을 한다고 또 얼마나 많은 물건을 사다가 차곡차곡 쌓고 있는지... 패시브 스피커와 마이크 스탠드에 이어서 내일 새벽에는 XLR female to 6.35 mm TRS male 케이블이 배송될 것이다. 개인 연습이 부족한 상태에서 첫 연습을 했던 오늘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다른 멤버의 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연습을 위한 음원은 겨우 준비를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음향 엔지니어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각 파트의 레벨 세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Backing track은 노트북 컴퓨터의 3.5 mm 스테레오 출력 단자로부터 믹서의 2-TRACK IN으로 넣었는데 다른 채널로 입력한 악기에 비하여 레벨이 너무 높았다. 이를 적절히 줄이는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컴퓨터에서 음량을 조절하거나, 레벨 조절 놉이 있는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중간에 경유하든지 또는 믹서의 정상 채널에 넣어 주어야 한다.  

기타용 케이블 중 일부는 접촉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단 세 곡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도 정말 준비할 것이 많다.


2024년 4월 23일 업데이트

하루가 지나서 컴퓨터를 켜 보았다. 부팅에 걸리는 시간은 예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여전히 느렸다. 하지만 일단 부팅이 된 다음에는 그런대로 참고 쓸 만한 속도가 나온다.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생활 주변에 스며든 인공지능 서비스 - 이제는 피하기 어렵다

우연한 기회에 (주)켈라웨이브의 김은연 이사가 진행하는 온라인 워크숍 "ChatGPT를 활용한 언어 생성 기술의 이해 및 실제 적용 사례 분석"에 참여하게 되었다. 개최 시각은 토요일 아침이라서 집에서 Zoom 미팅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Wi-Fi 접속이 너무 불량하여 오디오 전송 상태가 나빠지다가 접속이 끊어지는 현상이 반복되어 전달되는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집 인터넷의 문제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노트북 컴퓨터를 공유기에 유선으로 접속하여 작성하는 중이다. 앞으로 집에서는 이더넷 케이블을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전부 치워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OpenAI가 개발한 ChatGPT 무료 버전을 크롬 익스텐션(확장 프로그램)으로 설치하여 잠시 써 본 일은 있었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정리된 답을 얻는 정도로 체험을 하면서 꽤 흥미롭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미 유료 버전을 쓰는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영문을 작성하거나 이를 국문으로 번역하는 성능에서는 구글 번역보다 훨씬 낫다고 하였다. 

지금은 크롬 웹 스토어 검색창에 'ChatGPT'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너무나 많은 확장 프로그램이 나와서 도대체 뭘 설치해야 좋을지 어리둥절할 정도가 되었다. 오랜만에 OpenAI 웹사이트에 직접 로그인해 보니 텍스트로부터 비디오를 생성하는 Sora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광고하고 있었다. 이것이 더욱 발전하면 상세한 시나리오를 입력하여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강좌를 통해서 AIPRM, Google Gemini, Google Colab 등의 서비스를 접하면서 내가 잠깐 체험했었던 간단한 대화식 인공지능을 이제는 훨씬 뛰어넘는 기술이 주변에 즐비함을 깨닫게 되었다. 파워포인트 요약본(명령을 내리면 보다 상세한 내용을 써 내려갈 수도 있다), 시험문제 제출(모범답안 및 배점 가이드까지), 이미지 생성은 물론, 예전 '심심이'와 같은 기계와의 대화를 직접 구현할 수 있었다. 이는 Google Colab(hosted Jupyter Notebook)으로서 기계학습 관련 라이브러리를 설치하여 코딩을 하듯이 구현하면 된다. 선생님 혹은 교수님들의 숙제 검사가 한층 힘들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내 크롬 브라우저에서 설치된 확장 프로그램을 내려 보니 '구글의 채팅GPT 플러스'가 아직 남아 있었다. 오늘은 'AIPRM for ChatGPT'를 추가 설치하였다. 이 확장 프로그램은 선별된 프롬프트 템플릿 및 고급 기능을 추가해 준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컴퓨터 화면 한쪽 끝 트레이에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Copilot 아이콘이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PRE'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아직 안정화가 되지 않은 서비스를 소개하는 것 같았다. 저 아이콘을 본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원래 'Bing' 어쩌고 하는 대화형 서비스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 아니었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Copilot이 무엇인지 검색을 해 보니 Bing 채팅이 2023년 12월 1일에 리브랜딩된 것이라고 한다. 이를 클릭하여 창을 열고 ChatGPT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흠, 제법인걸. 사실 구글 검색창에 뭔가를 입력하여 관련 웹문서를 찾아내는 방식으로는 내가 궁금해하는 낱말의 정확한 설명을 찾기가 어렵다.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하여 대답하는 대형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 Copilot의 설명에 의하면 수많은 파라미터를 가진 인공 신경망으로 구성된 언어 모델) 서비스가 전통적인 키워드 검색보다 만족스런 대답을 제공하고 있으며,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웹브라우저와 OS라는 자신의 제품 영역 내에서 소비자를 더 오랫동안 붙들어 두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Copilot에게 직접 정체를 물어 보았다.

Microsoft Copilot은 기존의 빙 챗 (Bing Chat) AI 챗봇을 기반으로 하는 챗봇, 가상 비서 및 생산성 도구입니다. AI를 사용하여 질문에 답변하고, 이메일 요약하거나 프레젠테이션 초안 작성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Microsoft 365 앱에서도 Copilot을 활용할 수 있으며, 비즈니스용과 개인용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인공지능 기반 챗봇 서비스를 이용할 때 주의할 점이 몇 가지 있다. ChatGPT의 경우 2022년까지의 데이터로 학습을 했다는 것, 가끔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 등.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주는 결과물의 저작권에 관해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물론 이들이 데이터를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무료로(무단으로?) 가져다가 학습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실존 인물에 대한 가짜 뉴스 또는 가짜 이미지는 이미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Copilot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멋진 여자 기타리스트를 그려 줘'라고 주문을 하였더니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음과 같이 1024 x 1024 픽셀의 이미지를 뚝딱 만들어 내었다.

프렛 포지션 마크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

피크가 없네? 손가락으로 뜯을 수도 있는 거니까...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꾸어 보았다. '피크를 쥐고 검정색 깁슨 레스폴 커스텀 스타일의 전기 기타를 연주하는 멋진 흑인 여성 기타리스트의 그림을 그려 줘'라고... 생성된 이미지 중 내가 의도한 것과 가장 가까운 것을 골랐다.

그러나 이런 왼손 손톱으로는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왼손 손가락의 모습도 부정확하다.

정상적인 기타 연주자의 손톱 모양이 나오도록 몇 차례 질문을 구체적으로 바꾸어서 올려 보았지만 100% 만족할 수준의 이미지는 나오지 않았다. 생성형 AI가 사람의 손을 정확하게 그려내지 못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내가 시도하여 그린 기타리스트 이미지 중에서는 엄지손가락의 안쪽에 손톱이 붙어 있는 것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 요청 사항은 '멋진 한국인 남자 기타리스트'이다.

훌륭한데? 앨범 자켓으로 써도 충분할 수준이다. 왼쪽 뒤에 세워진 악기는 첼로 같은데 줄감개가 5개! 드물지만 5현 첼로도 있다고 한다.


이런 요청을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GPU는 돌고 있을 것이며, 전력도 소모할 것이다. 인터넷 저편으로 날리는 엔터 한 번이라는 행위가 A4 용지 서너 장에 연필로 줄만 죽 긋고 구겨서 버리는 행위와 같은 수준으로 자원을 소모한다면(실제로 계산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자제하게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림을 그려주는 DALL E-3은 역시 OpenAI의 생성형 AI 서비스이다. 원래 유료 버전($20/월)인 ChatGPT-4에서 사용 가능한데,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따라서 지금은 Copilot)에서 사용 가능한 것이다. 약간의 기능 제한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Copilot이 ChatGPT보다 편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적으로 찾은 장점이 하나 더 있다. Copilot은 검색을 통해서 최신 정보를 찾아주는 것까지 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Copilot에게 보스톤의 현재 기온을 섭씨로 알려달라고 물으면 충실하게 답변을 제공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ChatGPT(3.5)는 그렇지 못하다.

Sure! To find out today's weather in New York City in Celsius, you can check a reliable weather website or app. As of now, I don't have real-time access to current weather data. You might want to try checking websites like Weather.com, AccuWeather, or the National Weather Service for the most accurate and up-to-date information.

앞으로 '인간의 힘으로 공들여' 만든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은 이렇게 AI가 만든 논리정연한 내용과 화려한 그림에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 아직도 스마트폰/스마트워치를 안 쓰세요?
  • 아직도 카카오톡을 안 쓰신다구요?
  • 아직도 종이 통장을 쓰세요?
  • 아직도 파워포인트에서 도형을 그리세요?
  • 아직도 손으로 글씨를 쓰세요?
  • 아직도 손으로 타이핑을 하신다구요?
  • 아직도 AI 서비스 구독을 안 하신다구요?
  • ...
  • 아직도 직접 요리를 하세요?

이러다가 '아직도 직접 숨을 쉬세요?'라고 묻는 시대가 오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미처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미래는 이미 우리 주변에 와 있다. 그저 재미있고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던 기술을 이제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시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나 눈 앞의 이득에 대해서는 늘 철학적 고민이나 판단이 필요하다.

2024년 4월 18일 목요일

연습실 또는 노래방 만들기

하나 둘 사서 모은 음향장비를 차에 싣고 출근하여 내가 근무하는 건물 지하 1층에 설치하였다. 가장 마지막에 구입한 것은 오늘 아침 배송된 카날스의 T자형 마이크 스탠드. 따져보니 두 종류의 스탠드(마이크와 스피커)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고품을 구입한 것이다.


블루투스 수신기를 믹서에 연결해 놓았기에 누구든 휴대폰을 연결하여 음악을 재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이크만 잡으면 바로 노래방이 된다. 누구든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같이 인쇄해 놓은 QR 코드를 찍으면 별도의 위키 문서로 작성한 상세한 기기 사용법(링크)으로 연결된다.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찾아온 동료들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문어발처럼 케이블이 복잡하게 연결된 믹서를 일반인이 접할 일은 별로 없다. 나도 익숙해 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을 잘 알기에, 되도록 간단하게 사용법을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날로그 믹서 + 파워앰프의 조합보다 더 단순한 장비가 많다. 휴대용 앰프가 그렇고, 오디오 인터페이스 역시 그렇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이런 고전적인 장비를 통해 정말 배우는 것이 많다.

욕심을 부리자면 지금 보유한 장비에 대해서 아쉬운 점도 많다. 특히 믹서의 경우 채널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balanced output을 지원했으면 좋겠고(파워앰프에서 balanced input을 지원하므로), PFL(pre-fader listen) 버튼이나 이펙터가 내장되어 있으면 좋겠고... 그런 믹서는 아마 Behringer의 10채널 미만 믹서에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쓰는 장비는 아마추어를 위한 것이니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하도록 하자.

5월 중순에 간단한 공연을 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선정된 곡을 분석하고 개인 연습을 좀 해야 되겠다. 악기는 2-3인이 연주하고 나머지는 backing track으로 채우는 방식의 공연을 생각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공연할 곡을 찾아서 녹음한 다음 각 악기별로 분리하는 작업을 시도해 보는 중인데, 의외로 AI 기반의 무료 서비스가 놀라운 수준의 결과물을 제공해 주고 있다. 내가 요즘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내에서 개발한 GAUDIO STUDIO라는 것이다. 처리 품질도 매우 만족스럽고, 다른 사람에게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는 링크도 제공한다. 웹 인터페이스에서 각 악기 기준으로 솔로 및 뮤트를 설정하여 재생도 할 수 있다.

Gaudio Studio가 음악을 처리한 뒤의 화면. 그 자체가 플레이어이다.


이런 작업을 최근 며칠 동안 하면서 스템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알게 되었다. DAW에서 말하는 트랙과 유사하지만 유사한 악기 단위로 묶었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스템은 이러한 방식으로 제공되는 음악 파일의 포맷이기도 하다. Native Instruments의 설명(링크)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이를 다루기 위한 전용 컨트롤러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A Stem file is an open, multi-channel audio file that contains a track split into four musical elements – bass, drums, vocals, and melody for example. With each element available independently, you can mix in ways that just weren’t possible until now.

참 놀라운 세상이다. 음악을 만들기에 정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였다. 그만큼 창작은 더 쉬워진 것일까, 혹은 어려워진 것일까?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4·10 총선 이후 - 다시 안보(安保, security)를 생각하다

22대 총선이 끝나고 개표도 완결되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출구조사 결과가 실제 결과와 매우 다르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전투표에 대해서는 조사를 금지하기 때문에 차이가 난 것이라면 그건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투표소를 나서면서 조사원에게는 일부러 자신이 기표한 결과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아마도 출구조사를 바탕으로 예측한 결과가 실제로 뒤집어졌을 때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회는 대단히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침 출근길에는 교차로에 서서 당선 인사를 올리는 특정 당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국내 정치는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까? 그 결과는 바람직한 곳으로 흘러가게 될까?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일이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국외 상황은 더욱 불투명하다. 장벽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서로 자유롭게 교역(물자와 정보를 전부 포함)을 하는 세상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바이오안보 이슈와 관련해서 보다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싶다면 국가안보전략연구원(미 생물보안법(Biosecure Act))과 한국바이오협회(민감정보 해외이전 규제)에서 상세한 분석 자료를 공개하였으니 이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납땜질이나 하고 공연용 스피커를 구입하겠다고 그렇게 검색을 해 대면서도 정작 바깥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는 너무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적절한 세계관과 철학을 지닐 나이가 이미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순진한 것 같다. '안보'는 한물 간 이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실질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항상 '적'이 있다고 믿는 것(혹은 믿게 만드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촌충을 일부러 자기 장 속에서 3년 동안 기르면서 더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했다는 일본 과학자의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실제의 문제였다.  

얼마든지 길게 쓸 수 있는 무거운 주제이나, 오늘은 논문을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겠다. 

시큐리티(security)는 어떻게 '안보'가 되었을까? '안전', '안전보장', '안보'로의 전환 과정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60집  4호  (2020),  41-77. 원문 링크, doi: 10.14731/kjir.2020.12.60.4.41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소규모 공연에 사용할 스피커(FdB CX8)를 구입하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면서 문득 마음에 맞는 사람을 한두 명 모아서 건물 앞에서 '벚꽃 엔딩'을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실행에 옮기려면 이미 벚꽃은 다 진 다음에나 가능할 것 같고, 어쩌면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5월 중순에 뭔가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멤버를 섭외하기 시작하였고, 아직 참여에 대한 아직 확답은 듣지 못한 상태이다. 잘 성사된다 하더라도 나를 포함하여 2명에서 3명 정의 미니 팀이 될 것이고, 각자 악기를 하나씩 연주한다고 하여도 backing track은 반드시 별도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행사 주최측에서 장비 대여 등 비용을 지원할 가능성은 전혀 알 수 없으니 일단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220V 전원이 있는 곳에 장소를 마련하기로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에 상황은 나쁘지 않다. 마이크로폰, 믹서, 파워 앰프는 전부 개인적으로 갖고 있지만 문제는 적당한 라우드스피커가 없다는 것.

아예 앞으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질 것을 감안하여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앰프 + 스피커 일체형 앰프를 구입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하였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적지 않았다. 케이블 연결 등 세팅의 불편함이 따르지만 내가 보유한 인터엠 R150 Plus에 직접 물리도록 적당한 패시브 중고 스피커를 알아 보기로 하였다.

우퍼 직경은 얼마나 큰 것을 고를 것인가? 하나만 살 것인가, 또는 한 쌍을 살 것인가? 브랜드는? 신품과 중고 사이에서 어느 것이 좋을까? 예산이 많지 않으니 며칠에 걸쳐 고통스런 검색을 피할 수 없었다.

Behringer의 8인치 액티브 스피커인 PK108A를 거의 마지막까지 고려 대상에 놓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선택한 것은 중국 브랜드인 FDB의 CX8(중고)를 개인 거래로 주문하였다. 

사진 출처: 사운드파워(FDB Audio 공식 대리점)


제품 카테고리는 live portable speaker이다. 실은 같은 회사의 12인치 우퍼 채용 제품인 중고 CX12를 구입할 생각도 했었다. 8인치를 넘는 우퍼를 써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대구경 스피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렉트릭 베이스를 가끔 연결하여 연주할 것을 생각하면 저음을 더 잘 내어 줄 12인치급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CX12 무게가 15.3 kg이나 되어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겁고 크다. 반면에 CX8은 6.6 kg에 불과하여 휴대하기에 적당하다. 휴대 편의성을 고려하여 이와 같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기로 했다. 흥미롭게도 FDB 공식 웹사이트의 CX 시리즈 정보에서는 CX8이 보이지 않고, 10/12/15인치 모델에 관한 정보만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CX8이 널리 판매되고 있다. CX8/10/12/15의 사양 비교표(국문)는 여기에 있다.

CX8의 사양은 다음과 같다.

"선스크린 하우징 및 방수가 가능한 플라스틱 재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Frequency resonse: 55~18 KBz
  • Drivers: 8인치 및 1인치(컴프레션 드라이버) 각 하나씩
  • Rated power: 100와트(RMS), 400와트(피크)
  • Sensitivity: 92 dB(1W/1m)
  • Maximum SPL: 112 dB continuous, 118 dB peak
  • Impedance: 8옴
  • Dispersion(-6 dB): 90 x 60도
  • Crossover: 2.8 kHz passive
  • ConnectorsL 2 x Speakon NL4
  • 6.6 kg, 296(W) x 415(H) x 230(D) mm

Maximum rating은 인터엠 R150 Plus를 bridged mono로 설정했을 때 잘 어울린다. 이를 적당한 스탠드에 올려도 좋을 것 같다. 

국내 브랜드인 Leem(임산업)에서도 정확히 같은 모델명인 CX8/CX-8(다나와)이라는 8인치 우퍼 채용 패시브 스피커를 판매하는데, 인클로저의 재질은 나무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동일 회사의 유사 제품은 SR8/SR-8(다나와)이다. 인터엠의 오래된 모델 SC-28(월드음향)도 Leem CX8과 유사하게 나무로 짜여져 있다. 그런데 유독 FDB의 CX8는 다른 회사의 동등한 제품보다 유난히 국내 판매 가격이 높은데 왜 그러한지 자세한 사연은 알 수가 없다. 

만약 한 곳에 설치해 두고 쓸 용도라면 목재 인클로저가 더 나은 소리를 들려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에서 소개한 Leem 및 인터엠의 스피커는 오래전에 나온 것이라서 제품 카탈로그 최신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 소규모 야외 공연에서 쓰이는 스피커의 대세는 별도의 서브우퍼를 채용한 다음과 같은 스타일의 것이 아닐까? 앰프는 서브우퍼에 내장되어 있다.

그림 출처: 임산업


파워앰프와 스피커의 연결은 스피콘 커넥터를 구입하여 직접 선을 연결한 뒤 사용하기로 하였다. TPA3116D2 앰프 보드(링크)는 비상시에 사용하면 될 것이다.

보컬 2(메인과 보조), Hi-Z 악기 2대, 백킹 트랙(또는 건반)을 포함하는 것으로 하여 5~6 채널로 구성한다면 내가 갖고 있는 Behringer Xenyx 802 믹서를 꽉 채워야 한다. 어쩌면 기타 두 대는 마이크로 믹서로 묶은 뒤 DI 박스를 거쳐서 802 믹서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듀엣이나 트리오에 불과하지만 - 악기 연주는 2인이 도맡아서 함 -  공연은 실전이다. 많은 것을 경험하며 배우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2024년 4월 14일 업데이트

스피커를 받은 뒤 프로 오디오 영역에서나 쓰이는 스피콘 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한 다음 들어 보았다. 스테레오 2 채널이 필수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스피커 뒷편에는 다른 명판이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스피콘 단자는 처음 사용해 본다. Bridged mono 모드를 사용하려면 스피콘 단자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일반적인 스테레오 모드에서는 +1과 -1 단자만 이용하면 된다.

InterM R150PLUS 매뉴얼에서 작동 모드에 따른 스피콘 단자 연결 방법을 살펴보았다. 앰프 뒷편의 모드 셀렉터 스위치를 채널 1쪽, 즉 'bridged'로 전환하면 1번 채널에 들어온 신호가 크게 증폭되어 1번 및 2번 채널의 (+)핀 사이에 걸린다. 스피콘 단자에서는 2+/2- 단자를 쓰면 되며, 내부적으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이 경우에는 어느 채널에 스피커를 연결해도 상관이 없다.

Stereo(위) 및 bridged mono(아래) 작동 모드의 출력 연결 방법.

회로도를 보면 bridged mono 모드에서 스피콘 단자를 사용할 경우 어느 출력 채널에 연결을 해도 상관이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엠 R150PLUS 앰프를 bridged mono 모드로 사용할 경우 8옴 부하에서 150와트(THD 0.05%)가 나온다. 집에서 스테레오 모드(8옴 부하, 50W + 50W)로 음악감상을 하든, bridged mono 모드로 전환하여 바깥에서 소규모 공연을 하든 충분한 출력이다. 전원 트랜스포머를 사용한 고전적인 앰프라서 요즘의 class D 앰프와 비교하면 덩치가 크고 무겁다는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2024년 4월 15일 업데이트

이것도 일종의 믹서다! 라인 레벨의 스테레오 신호를 하나로 합쳐서 bridged mono 모드로 작동하는 R150PLUS 앰프의 1번 채널에 입력하기 위한 목적으로 직접 만들었다. 케이블이 너무 두꺼워서 6.35 mm TS 플러그에 넣기 위해 외피를 칼로 깎아내야 했다.



2024년 4월 8일 월요일

바쁜 4월 초순을 보내며

벌써 4월 9일이다. 

봄이 더디게 오면서 예년보다 매우 늦게 벚꽃이 피었다. 아내와 함께 주말에 들른 KAIST는 벚꽃을 즐기러 온 인파로 유원지를 방불케 하였다. 태울관 퀴즈노스에서 주문한 간식거리가 나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리면서, 외부인으로서 무분별한 방문을 하여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졸업생에게는 출입을 조금 자유롭게 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 시절에는 정문에서 출입 자체를 차단당했었으니 말이다. 약간의 연간 회비를 지불하면서 출입 제한을 조금 풀어주는 졸업생용 신용카드 겸용 멤버십 카드 같은 것을 만들어 주면 안될까?

고 이정오 학장(1932~2007)께서 수백 그루의 벚나무를 황량한 KAIST에 심도록 하신 것이 벌써 30년도 훨씬 넘은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원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학장(현재는 총장)으로 일하시던 당시에 심은 것인지, 혹은 물러나신 뒤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4년 2월 25일 KAIST 신문에 실린 기사를 캡쳐해 보았다.

자료 출처: 링크


이 기사가 실린 꼭 20년 전에 나는 순수하고 철없는(?) 계약직 선임연구원으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입사 2년차의 봄을 맞고 있을 때이다. 아마도 Hahella chejuensis의 유전체 해독을 하느라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2024년 4월의 첫 며칠은 PacBio 아시아-태평양 지사에서 개최한 학술행사인 Population Genetic Forum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 방콕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권을 살펴보니 마지막으로 다녀온 국외 여행 - 공무 및 사적인 것을 전부 포함하여 - 은 2018년이었다.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22차 Lake Arrowhead Microbial Genomics Conference(LAMG)에 포스터 발표를 위해 다녀왔었다.

최근 수년 동안은 외부 파견 근무를 많이 다녀오는 바람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학술대회를 다니지 못하여 많은 목마름이 있었다. 국외 출장지에서 모처럼 공부도 많이 하였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던 태국(첫 방문)에 대해서 좋은 인상도 많이 남겼다.



이것은 가네샤?



이것이 SMRT cell이다!

PacBio의 Revio.


PacBio 공동 설립자인 Jonas Korlach와 전산생물학 분야 부사장 Michael Eberle. 




평생 먹어 본 과일 주스 중 이보다 달고 시원한 것은 없었다. 너무나 더웠기 때문이리라.



2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나는 어떻게 변했나? 주름도 많이 늘고 노안이 심해졌으며, 머리에도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어깨에 지워지는 책임과 부담감은 점점 늘어나는데 머릿속 총명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사람은 이렇게 익어 가는 것이다.

2024년 3월 31일 일요일

단일 채널 앰프 보드(TPA3116D2)를 활용할 길이 없을까?

2년 전에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헤드폰 앰프 보드를 사면서 TPA3116D2칩을 사용한 class D 앰프 보드를 산 일이 있다. 당연히 스테레오 입출력을 지원한다고 생각했는데 단일 채널용 앰프였다.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오늘 문득 야외 공연용 앰프로 사용하면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20V 상용 전원을 끌어올 수 없는 환경이라면, 배터리를 사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스테레오 입력은 470R을 직렬로 연결한 뒤 하나로 합쳤고, 전원은 일단 노트북용 어댑터를 사용하였다. 어제 주방 조명을 LED 모듈로 바꾸면서 떼어낸 안정기(고장)에서 전선을 잘라내어 악어클립을 납땜하였다.



일렉트릭 기타 연습용 앰프의 스피커 단자에 물린 뒤 소리를 들어 보았다. 와, 이건 영 아니다. 중음만 너무 강조되어 마치 AM 라디오를 듣는 것 같았다. 기타용 앰프라서 목적에 가장 잘 맞는 스피커를 사용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외부 소스 기기 또는 마이크로폰을 연결하도록 만든 기타 앰프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겠다. 

마침 야외에서 굴려도 문제가 없을 스피커가 한 조 있다. 꽤 오래전에 체리사운드에서 인클로저를 주문 제작한 뒤 풀레인지 유닛을 넣었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방치해 둔 것을 연결해 보기로 했다(링크). 여기에 들어간 유닛은 삼미스피커의 HA-165B60(6.5인치).

2016년 10월에 촬영한 HA-165B60(링크).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는 동영상을 업로드해 보았으나 용량 제한 때문인지 블로그에서 보일 수가 없어서 매우 안타깝다.

전문 음악 감상용 스피커는 아니지만 기타 앰프보다는 훨씬 좋은 소리를 내 주었다. 동영상 촬영에 동원된 스피커는 콘지가 찢어져서 목공용 본드로 대충 수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소리에는 별 문제가 없다. 인터넷 최저가는 5천원 정도에 불과하니 보기 싫으면 새로 사다가 교체하면 된다.

자, 야외에서 220V 상용 전원 없이 사용 가능한 앰프와 스피커는 이렇게 만들었다고 치자. 만약 보컬이나 다른 악기를 추가하려면 믹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배터리로 구동되는 Leem 마이크로 믹서로 어떻게든 해 볼 수 있겠지만, 마이크 프리앰프는 또 어떻게 하고?

일단 여기에서 중단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내일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CD 플레이어 되살리기 - 쉽게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제 택트 스위치 교체 작업을 어설프게 마무리하다가 전기 충격으로 완전히 전원이 들어오지 않게 된 롯데 CD 플레이어(LCD-7500)를 내다 버릴 요량으로 발코니에 내다 놓고는 쓰린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앞으로 어쭙잖게 오디오 기기 DIY나 수리를 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왔다. 다시 CD 플레이어를 들고 거실로 들어와서 바닥쪽 뚜껑을 열었다. 전원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면 전원 트랜스포머부터 멀티미터로 짚어 나가면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퓨즈나 전원 트랜스포머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것을 어제 확인한 상태였다.

PCB 패턴에서 그라운드를 확인한 뒤 정류 다이오드부터 프로브를 짚어 나갔다. 11볼트 정도가 나오다가 어제 교체한 7805 레귤레이터의 입력 핀이 연결된 패턴에서는 전압이 잡히지 않았다. 새로 바꾼 레귤레이터가 이렇게 허망하게 망가진 상태일 수는 없다. 기판 패턴을 다시 살펴보니...

7805 레귤레이터의 IN 핀을 위아래로 관통하는 패턴이 끊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랬구나! 어제 납이 완전히 녹지 않은 상태로 부품을 탈거하기 위해 무리하게 잡아당기다가 입력 핀의 패턴이 끊어진 것이었다. 위에 보인 사진에서 'I'라고 인쇄된 것이 입력 핀이다. 다이오드로부터 연결되는 패턴이 끊어졌으니 전압이 걸릴 수가 없다. 아웃 핀은 동박이 벗겨진 곳(사진에서 위쪽)에는 연결할 필요가 없고, 그라운드 핀은 납을 많이 녹여서 패턴이 약간 떨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위 아래가 잘 연결된 상태였다.

저항 다리를 이용하여 복구에 나섰다. 칼을 이용하여 패턴 위의 녹색 코팅을 벗겨낸 뒤 수선을 하였다.

모습은 흉하지만 작동만 잘 된다면 아무래도 좋다.


조심스레 전원을 넣어 보았다. 전면 디스플레이에도 불이 잘 들어오고, 트레이도 정상 작동한다. CD를 넣고 헤드폰으로 소리를 들어 보았다. 어제 전기 충격 직후 들렸던 잡음도 사라졌다. 하루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였다. 이렇게 멀쩡한 것을 내다 버렸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거의 포기하려 했던 CD 플레이어를 살려 놓고 나니 기왕 이렇게 된 것, '40년 쓰기'에 도전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기기의 작동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음질은 맘에 들지만, 첫 트랙을 시작할 때 몇 초, 길게는 20초 정도를 건너뛰는 일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회로가 노후하여 - 기판에 녹이 슨 상태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 제어가 잘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단지 메커니즘이 노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일단 후자라고 믿는 편이다. 워낙 오래 된 기계이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요즘 알리익스프레스에서 CD player용 픽업과 메커니즘을 쉽게 찾을 수 있으므로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LCD-7500의 픽업(KSS-210A)과 메커니즘. 출처: 알리익스프레스.


픽업 교체는 이미 2015년에 해 본 적이 있고, 그 난이도는 택트 스위치 교체와 그 직후 벌어진 사고의 수습 과정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롯데전자 LCD-7500과 짝을 이루었던 앰프 및 기타 소스 기기에 관한 사진 정보는 오디오퍼브에 있다. 이 제품도 이제 빈티지 오디오의 반열에 들어가는가?

본격적으로 오디오 제품이 생산되고 판매된 1930년대부터 디지털화된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의 생산품을 흔히 '빈티지 오디오'로 지칭한다. [출처: 김상도 지음 빈티지 오디오 가이드]

이 정의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이 포함된 CD 플레이어는 빈티지 오디오에 영원히 포함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만간 그 정의는 바뀔 것이다.

다시 평온함을 찾은 LCD-7500. 코다이 졸탄의 첼로 음악을 재생하고 있다.



2024년 3월 24일 일요일

CD 플레이어의 뚜껑을 다시 열지 말았어야 했다

진공관 앰프를 처음으로 들이던 2014년, 그러니까 꼭 10년 전의 봄날에 소리전자 판매장터를 통해서 중고 CD 플레이어(롯데 LCD-7500)를 구입하게 되었다. 뒷면에 붙어 있는 제조년월은 무려 1991년 4월. 30년이 훨씬 넘도록 지금까지 작동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레이저 픽업은 2015년쯤에 직접 교체한 일이 있다(관련 글 링크).




1년 반 동안 외지에 나가 있는 동안 대전 집에 방치해 두었다가 작동을 시켜 보니 전면 버튼이 잘 눌리지 않았다. 택트 스위치가 노후하여 접점 상태가 불량해졌을 것으로 여기고 이를 올해 안에는 교체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다가 오늘 마침 여유가 생겨서 작업에 착수하였다.

분해 시작.

아래의 것은 교체용 스위치. 아두이노 키트를 살 때 들어있던 것이다. 갖고 있는 것은 6개가 전부라서 가장 빈번하게 쓰는 버튼만 교체하기로 하였다.

교체 후 테스트.


기판 패턴쪽에 납을 약간씩 더 먹인 다음 흡입기로 빨아낸 뒤 어렵지 않게 낡은 스위치를 빼내고 새것을 장착하였다. 교체한 스위치는 아주 잘 작동하였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몇 년이고 더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재조립을 하였다.

재조립 후 작동 테스트.


수리 후 음악을 듣다가 문득 CD 플레이어 내부의 헤드폰잭 연결용 기판 커넥터를 미처 끼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마무리하기 위해 작동 상태에서 뚜껑을 연 것이 화근이었다. 뚜껑을 빼면서 철판 안쪽이 전원 스위치의 노출된 단자부에 닿은 것이 아닌가! 퍽!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났고 누전 차단기가 작동하였다.

교과서적인 와이어래핑의 결과. 그러나 노출된 단자에는 매우 위험하게도 220볼트가 직접 흐른다. 왼쪽 단자에 탄 흔적이 보인다. 무척 위험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더 큰 잘못은 전원을 넣고 작동하는 중에 뚜껑을 연 나에게 있지만. 안전을 위하여 나중에 절연 테이프를 감아 두어야 되겠다. 


차단기를 올리고 CD 플레이어를 다시 켜 보았다. 뚜껑 안쪽의 전원 스위치 단자가 닿은 쪽에는 까맣게 탄 자국이 남았다. 겉으로 보기에 전해 캐패시터가 터져 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디스플레이나 모터 구동 상태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출력에는 엄청난 잡음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평활회로를 적용하지 않은 미숙한 자작 앰프가 내는 소리처럼.

내 실력으로 전기적 충격을 받은 부품을 찾을 방법은 없다. 고민 끝에 전원쪽 레귤레이터(7805)를 교체해 보았다. 마침 갖고 있는 부품이 있었기에 이런 시도를 해 보게 되었던 것인데, 그러는 도중에 PCB의 패턴이 일부 떨어져 나갔고, 설상가상으로 아예 작동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디스플레이도 켜지지 않고, 구동 부위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허, 이런.... 헤드폰잭 연결을 마무리한다고 뚜껑을 여는 것이 아니었는데...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직류 전원을 공급에 완전히 문제가 생긴 것 같지만, 저 복잡한 회로를 놓고 내가 무슨 수로 문제를 해결한단 말인가.

기판의 상태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하다. 분해해서 세척을 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른다. 이대로 그냥 둔다면 어차피 좋은 상태로 오래 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위로를 해 본다.


2014년 언저리에는 별로 상태가 좋지 않은 중고 튜너를 두 대나 구입하여 직접 수리를 한다고 잘못 건드렸다가 역시 완전히 망가뜨린 일이 있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섣부른 자신감이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말았다.

앞으로는 진공관 싱글 앰프와 같이 내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면 주요 부위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 어차피 낡은 중고품이라서 금전적으로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내 손으로 수리에 성공했다고 잠깐 자신감에 들떠 있다가 급격히 자괴감에 빠지는 '정신적 롤러코스터'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유한 CD가 아주 많다고 할 수는 없고, 대부분은 USB 매체에 리핑을 해 둔 상태이니 앞으로는 오디오 CD를 사더라도 CD 플레이어를 쓰지 않는 음악 생활로 완전히 전환할 수도 있다.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던 USB ODD와 SATA DVD-ROM 드라이브를 꺼내어 점검을 해 보았다. 이런! 두 녀석 모두 트레이가 작동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구동하는 물건은 역시 세월 앞에 장사가 없구나...어차피 요즘은 장난감 같은 CD 플레이어 또는 일체형 오디오 말고는 구하기도 어렵다. 인켈의 거치형 CD 플레이어는 이미 자취를 감춘 것 같고(간혹 재고를 파는 곳은 있지만 찾기가 어렵다 - 예: 오디오마을, 코리아사운드), 마란츠나 데논, 로텔, 나드 등 외산 브랜드의 제품은 너무 비싸다. 카날스, LEEM, 소비코 등 국내 브랜드에서 만드는 소위 프로용 CD 플레이어(대부분 balanced output 단자 장착) 역시 가격이 매우 높다.

다른 방법을 찾아 보아야 되겠다. 음질을 확신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DVD 플레이어를 구입하는 것도 해결방법이 될 수 있겠다.

2024년 3월 20일 수요일

딸아이의 출국날

자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겪게 되지만, 오늘과 같이 복잡하고도 서글픈 느낌은 처음이다.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났을 때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준다는 핑계로 별로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주말에 두 시간 정도 운전을 하여 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난 2022년 8월부터 매우 최근인 1월말까지 서울 소재의 정부 조직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되어 광화문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수시로 왕래가 가능하였다. 

그랬던 딸아이가 오늘 아침 뉴욕으로 떠났다. 연말부터 열심히 해외 취업 기회를 알아보더니 무난히 면접을 통과하고, 비자를 받아서 맨해튼에 위치한 작은 회사의 보조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자 신청을 위한 서류 작업이 지연되는 바람에 졸업식을 할 때까지도 출국을 정말 할 수 있는 것인지 불확실한 상태로 애를 태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자 인터뷰 날짜가 잡히고 그 후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딸이나 나나 살갑게 마음을 표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명절이 되어도 부모를 보러 대전 집에 오기보다는 자취방에서 있는 것을 더 좋아했고 때로는 전화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애를 태우기도 했다. 그만큼 독립심이 강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혼자 감내하면서 해결책을 찾는 아이였다. 아내는 딸아이가 출국을 준비하는 동안 아버지로서 자식을 걱정하면서 안전하게 잘 지내라는 당부의 말도 별로(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같이 지내는 지난 삼주일 동안 아내는 가져갈 짐을 챙기고 미국에 가면 맛보지 못할 음식을 해 주느라 불편한 몸으로 애를 썼지만, 정작 나는 그 과정을 별로 도와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왜 몸도 아프면서 그렇게까지 해 주어야 하느냐고 핀잔을 주고는 하였다. 아내도 작년부터 회전근개에 손상이 오면서 염증까지 생겨서 매우 심한 통증으로 팔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출국날이 되어 딸아이의 배웅을 위하 가족과 함께 공항으로 가니 덤덤했던 마음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조심하라는 짧은 당부의 말을 하고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출국장으로 가라는 말을 하면서 딸을 한번 안아주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 직장인이 되어 휴가를 내고 배웅을 나온 아들도 눈시울이 벌겋게 되었다. 아는 사람도, 마중 나올 사람도 하나 없는 낯선 뉴욕으로 가기 위하여 혼자 출국장으로 나서는 모습이 왜 이렇게 안쓰럽던지... 작은 몸집에 감당하기 버겁도록 무거운 가방을 몇 개나 끌고 숙소까지는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위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곳에서 미래를 만들어 나가 보겠다고 당차게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해 왔겠지만 막상 출국날이 되니 긴장과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지 딸아이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딸아이를 보내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딸의 앞에는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까?

비행기 탑승 전 연락을 해 보니 보안검색대에 기내 휴대용 가방을 밀어 넣고는 그대로 출국심사를 통과하는 바람에 다시 가방을 찾아 오느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한다. 혼자 출국하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도 했을 것이고 면세구역에서 미리 예약한 USIM 칩을 수령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가 그렇게 된 것이리라. 혼자 나가는 것이 슬프다면서 딸아이 역시 울고 있었다.

대전으로 돌아와서 딸아이가 두고 간 물건을 보니 또 다시 감정이 차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한동안은 다음을 추스리기 위해 애를 써야 될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성장의 과정이요 당연히 치러야 하는 아픔이다. 자식에게도, 그리고 부모에게도. 당장은 서운하지만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될 아픔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딸이 어느새 자기의 앞날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세상을 향해 첫 발자국을 내딛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앞으로 잘 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6П6С|6P6S/6P6P/6V6GT SE amplifier] 잡음의 원인은 MOSFET 리플 필터인가? 어쨌든 문제를 해결하고...

(출력관) ⮕ (초단회로) ⮕ (전원회로)로 이어지는 6P6P SE 앰프의 잡음의 원인 찾기가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6V6GT SE 앰프라고 쓰고 싶지만 현재 장착된 것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6P6P 빔관이므로 사실에 입각하여 써야 할 것이다.

험(hum) 잡음을 없애기 위해 사용한 리플 필터가 오히려 잡음을 유발한다?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는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면 알게 될 것이다. MOSFET를 이용한 리플 필터는 워낙 잘 알려진 것이므로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내가 겪는 잡음은 약 1초가 조금 안되는 간격으로 발생하는 작은 '꾸르륵...꾸르륵...' 소리이다.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대야 확인이 가능한 수준이므로 참고 살 수도 있지만 앰프 자작인의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현재 사용 중인 (정류 +) 리플 필터 보드. FQPF2N60C(600 V, 2 A, 4.7 Ω)가 쓰였다. 옆에 놓인 반도체 소자는 여분으로 보유 중인 IRF740.

콘골트 님이 제공한 리플 필터 회로도. 빨간 사각형 부분을 적당히 개조하면 단순한 CR 평활회로가 된다. 자료 출처: 네이버 미니진공관 앰프 제작 카페.


이 리플 필터 키트를 콘골트 님(네이버 블로그, 키트/PCB 소개)으로부터 구입하여 조립 직후 MOSFET을 망가뜨린 일이 있다. 아마 배선 실수였을 것이다. 필요한 소자가 없어서 대충 시멘트 저항을 연결하여 험이 잔뜩 발생하는 상태로 잠시 쓰다가(편의상 이를 'board-B'라 하자), 나중에 MOSFET을 구입하여 새 보드('board-A')에 다시 조립한 다음부터 꾸르륵거리는 잡음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어제 저녁, MOSFET 없이 저항 등으로 완성한 board-B를 다시 6P6P 앰프에 연결한 뒤 전원을 넣고 스피커에 귀를 대 보았다. 험은 들리지만 꾸르륵거림은 없다. board-A가 잡음의 원인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납땜이 불량하거나 평활용 캐패시터가 불량하여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FQPF2N60C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량품일 수도 있고...

만약 MOSFET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예전에 SMPS를 만들어 실험을 할 때 사 두었던 IRF740이 몇 개 남아 있다. 이것 말고는 달리 해 볼 수 있는 일이 없다. 당장 교체 실험을 해 봐야 되겠다.

IRF740. Infineon의 제품으로 400 V, 10 A. 


이렇게 해도 잡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예 진공관 앰프 전용의 SMPS를 구입하거나 또는 초크코일을 이용한 고전적인 전원회로를 써 볼 수도 있다. PCB-B에서 패턴을 끊은 뒤 5 H 200 mA 급의 초크코일을 구입하여 연결해 보면 된다. 

일반 전원 트랜스포머의 EI 코어를 전부 빼서 재배열하고 갭을 준 뒤 소출력 진공관 싱글 앰프의 출력 트랜스포머로 쓴 일이 있다. 나중에 제대로 만들어진 출력 트랜스포머로 대체한 뒤(관련 글 링크), 개조한 전원 트랜스포머는 6LQ8 SE 앰프의 초크코일 대용으로 쓰게 되었다. 험 제거 성능은 만족할 수준이었다. 따라서 마지막 선택으로서 저항-캐패시터-초크코일을 사용한 고전적인 전원회로를 택하게 되더라도 실망을 안기지는 않을 것이다.  

MOSFET 교체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매우 흥미롭다. 


2024년 3월 16일 업데이트

MOSFET를 IRF740으로 바꾸었지만(board-A') 잡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board-A'의 직류 출력단에 board-B를 추가로 연결하였더니 잡음이 없어졌다. 

MOSFET을 교체한 Board-A에 board-B를 얹었다.

브리지 정류회로와 2단 RC 평활회로(200 OHM + 270 OHM)로 구성된 Board-B를 그대로 사용하면 약 38 V의 전압 강하가 이루어진다. 이는 낭비이므로, 다이오드 브리지와 270 OHM을 건너 뛰도록 회로를 수정하였다. 최종적으로 얻어진 직류 전압은 약 238 V. 단순한 형태의 π-type RC filter를 board-A'에 추가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단지 이렇게 함으로써 꾸르륵거리는 잡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림 출처:  What is the π-type RC and LC filter circuit identification method?

위 회로도에서 R1 양단의 전압 강하분을 통해 계산하면 77 mA 정도의 전류가 흐른다.

잡음이 발생한 이유도, 사라진 이유도 정확히 모르겠다. 배선을 마무리하고 뚜껑을 닫았다. 12DT8 기판에 연결된 신호 입력용 케이블을 납땜으로 마무리해야 하는데 너무 성가셔서 나중에 끝내기로 한다. 현재는 테스트를 하느라 꼬아서 연결한 뒤 매우 성의 없게 테이프를 감아 둔 상태이다.

어지럽다... 빨리 뚜껑을 닫자.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나름대로 탐색하고 실험을 통해서 잡음 제거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달성했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참다운 배움이 아니다. 물론 생화학이나 생리학을 모른다고 하여 - 음식을 소화하고 에너지를 얻으며 움직이는 근본 원리를 모르는 - 먹고 살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경험만 축적하면 무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