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법 제2조 제11호 및 제12호에서 정의한 인체유래물연구를 수행하려는 연구자는 인체유래물 제공자(연구참여자)로부터 인체유래물등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를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지 제34호 서식)라 하며, 구글에서 검색하면 원문을 쉽게 입수할 수 있다. 다음은 제34호 서식 뒷부분에 나오는 동의 내용으로,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기재해야 하는 빈 표를 보이고 있다.
인체유래물은행에서 받는 동의서는 다른 서식(인체유래물등의 기증 동의서, 동법 시행규칙 별지 제41호 서식)을 써야 한다. 제41호 서식에는 제공자가 샘플의 활용 목적을 제한할 수 있는 체크박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체유래물은행의 설립 취지를 생각한다면 이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은행에 기증된 인체유래물의 구체적인 활용 목적은 나중에 연구자가 이를 은행으로부터 분양을 받을 시점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내법에서 인체유래물등의 활용에 대한 포괄적 동의(broad consent)가 적용된 거의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포괄동의는 금지하고 있다.
포괄동의는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 또는 구체적 동의(specific consent)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본인의 정보로 수행할 수 있는 가능한 범위에 동의하는 것(의학신문 2018년 1월 3일자 '인간중심의 지능 정보화 의료시대 핵심은?' 링크 - 개정 커먼룰의 의미를 쉽게 잘 설명한 자료이므로 일독을 권함. 단, 클릭하면 유소영 교수의 얼굴 사진이 크게 나타나니 놀라지는 마시길^^ 개정 커먼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포괄동의의 도입임).
제34호 서식 동의서는 실물 샘플(혈액, 소변, 조직...)을 연구자에게 제공할 때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제공된 인체유래물로부터 유전체 해독을 한다면 작성하기가 조금 불편해진다. 사실 현행법은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 인체유래물을 보관하려면 전용 시설이 필요하니(최소한 냉장고), 보존 기간이라는 것을 설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생산된 유전체 정보는 연구자가 보관하는데 별로 부담이 없다. 구글이나 네이버의 데이터 센터 수준으로 엄청난 용량의 자료를 수집하지 않는 이상.
이 동의서는 현실적으로 연구참여자가 제공한 인체유래물 중 (1)연구에 쓰고 남은 것(잔여 인체유래물), 그리고 그로부터 연구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결과물인 (2)유전체·전사체 등의 정보 등에 대한 활용 조건까지 전부 담고 있다. 나는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동의내용 표의 네 번째 칸인 '보존 기간 내 2차적 사용을 위한 제공 여부'를 보자.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대상은 (1)잔여 인체유래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혹은 (2)유전체 정보 등 연구결과물까지를 포함하는 것인가? 아마도 (1)과 (2)를 전부 가리킬 것이다. 동의 선택사항 중에서 1이나 3에 동의를 했다면, 보존 기간 내 갖고 있던 인체유래물은 물론이고 연구 결과물(유전체·전사체 정보)을 아직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2차적 사용을 위해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2번에 체크하지 않은 상태라면, 연구성과물의 등록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개인정보와 다를 바가 없는 유전체 정보의 비식별화 문제는 별도로 하고서 말이다.
활용 목적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제공자가 이에 대해 동의해야만 쓸 수 있다는 원칙은 매우 아름답고 순수하다. 그러나 2차적 활용 목적을 연구자가 처음부터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인체유래물은행이 수집하는 실물 샘플이라면, 기증자가 사용 목적을 특정해서는 그 은행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수집 당시에는 이 샘플이 앞으로 어떤 용도로 분양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체유래물은행이 받는 인체유래물등의 기증 동의서(제41호 서식)에는 기증 행위가 그 활용 목적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동의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제34호 서식은 최신 연구기법을 반영하여 바뀌어야 함이 옳다. '귀하가 제공한 인체유래물로부터 유전체 정보가 해독될 것입니다(혹은 '해독될 수 있습니다'라고 표시해야 함. '해독되지 않을 것임'이라는 약속은 별로 의미가 없음)'라는 내용이 있어야 하고, 2차적 사용에 관한 동의는 인체유래물 실물과 이로부터 생성된 결과물에 대한 것으로 나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생명윤리법 제37조 1항에서는 인체유래물 기증자로부터 다음 각 호(1~5)의 사항이 포함된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였고, 4호에서 '인체유래물과 그로부터 얻은 유전정보(이하 "인체유래물등"이라 한다)의 제공에 관한 사항'이라고 명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34호 서식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듯하다.
제34호 서식으로는 인체유래물 기증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려우니, 별도의 연구참여 동의서 양식을 만들어서 연구의 목적, 연구 방법, 제공자가 겪을 수 있는 위험성(불편함) 및 혜택, 결과물 처리 및 유전체정보은행(데이터베이스든 데이터팜이든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음)에 등록하는 과정까지를 상세히 기술하여 별도로 동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의 최종판 커먼룰에서도 동의서에 whole genome sequencing이 진행될 것인지 혹은 아닌지에 대한 사항을 밝히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 가령 Ochsner Journal 20:62(2020)에 실린 Revised common rule changes to the consent process and consent form의 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동의서에 새로 넣어야 할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이 논문에서 보여준 동의서 예시에서는 Future Research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연구 결과물 및 잔여 시료가 비식별조치를 거쳐서 쓰일 수 있음을 명시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체유래물 제공자에게 다시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이탤릭체). 2018년도 개정 커먼룰에 따라서 포괄동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포괄동의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동 저널에 실린 글 'Understanding Broad Consent'(PMC7122261) 또는 미국 보건복지부(U.S. Department of Health & Human Services) 인간보호연구국(Office for Human Research Protections)의 가이드라인(Attachment C - Recommendations for Broad Consent Guidance)이나 동의서 템플럿(Attachment D - Recommendations for a Broad Consent Template)을 참조하라. 다음은 두 건의 동의서 사례이다. 이탤릭체로 쓴 부분을 눈여겨 보자. 빨간색 텍스트는 두 사례에서 서로 다른 입장인 것 같아서 아직 이 문제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FUTURE RESEARCH We may use or share your research information and/or biospecimen for future research studies, but it will be deidentified, which means that it will not contain your name or other information that can directly identify you. This research may be similar to this study or completely different. We will not ask for your additional informed consent for these studies. We may also share your deidentified information and/or biospeciemen with with other researchers at Ochsner or at other institutions. 출처: Ochsner Journal 링크
When your information and biospecimens can still be linked to you, we say they are “identified” or “identifiable.” Research with identifiable information and identifiable biospecimens can be even more helpful to science and medicine, because it allows researchers to put together a lot of information about a person and understand even more about medical conditions and if and how treatments work. However, research with identifiable information and identifiable biospecimens bears more risk to people’s privacy, and therefore, there are strict rules for this kind of research. When researchers ask you to say “yes” to allow your identifiable information and identifiable biospecimens to be used in a wide range of different types of research studies in the future, this is called “broad consent,” and it is what we are asking you to agree to in this form. If you say “yes,” researchers in the future may use your identifiable information or identifiable biospecimens in many different research studies, over a long period of time, without asking your permission again for any specific study covered by this form. This could help science. 출처: 인간보호연구국(Attachment D) 링크
그러면 chip-based analysis나 whole exome sequencing은 어떻게 하나? 이에 대한 설명까지 동의서에 담아야 하나?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질병관리청에서 주관하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A)사업 참여자 동의서와 (B)인체유래물 기증 등의 동의서(제41호 서식)를 전부 작성해야 한다(링크). 연구자가 인체유래물은행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제41호 서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다. 첫 번째 동의서는 제34호 서식과는 다르다. 그런데 생명윤리법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4조제3항에는 '인체유래물연구자가 인체유래물 기증자나 그의 법정대리인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서면동의의 서식은 별지 제34호 서식과 같다'고 하였다. 제34호 서식을 준용하여 다른 형태의 동의서(예를 들어 A)를 만들어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제34호 서식을 그대로 쓰고, 이에 대한 상세 내용을 수록한 별도의 설명문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에 대하여 한국법제연구원의 전문가에게 문의해 보니 필수 기재사항을 담고 있다면 행정규칙에서 제시한 별지 서식을 따르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쨌든 이는 연구자의 입장인 것이고... 제34호 서식 6번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귀하의 인체유래물들을 이용한 연구결과에 따른 새로운 약품이나 진단도구 등 상품개발 및 특허출원 등에 대해서는 귀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귀하가 제공한 인체유래물등을 이용한 연구는 학회와 학술지에 연구자의 이름으로 발표되고 귀하의 개인정보는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딘가 불편한 '동의'가 아니겠는가? 이 서식이 서둘러 국내에서 만들어질 때, 연구참여자 집단에 해당하는 시민사회로부터는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접근해 보려면 생명윤리정책연구 제9권 제3호에 실린 인체유래물 거버넌스: 바이오뱅크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제공자의 권리포기 문제와 같은 논문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가 연구비가 들어간 유전체 정보는 공공재인가?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매우 많다. 실물로서 주어진 인체유래물, 이로부터 생성된 연구결과물... 여기에 제공자의 인격권과 연구자의 권리(논문이라면 지적재산권) 등이 더해지면 이 문제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흠.. 요즘 글을 너무 많이 쓰는구나!
2022년 9월 8일 업데이트(완벽하지 않음)
생명윤리법 제38조제1항에서는 서면동의를 받은 경우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체유래물등을 인체유래물은행이나 다른 연구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하였고, 제2항에서는 그러한 경우 익명화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단, 기증자가 개인식별정보를 포함하는 것에 동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였다.
동법 제2조 19호에서 익명화란 개인식별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식별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기관의 고유식별기호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데이터 내부에 변형을 가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전체 정보의 경우, 이런 식으로 진정한 익명화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획득한 유전체 정보라면, 개인식별정보가 아예 없더라도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개인을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제3자 제공 시 생명윤리법에서 처리하는 방식의 익명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그 대상은 실물 자원일 때나 가능하다. 개인식별정보 포함/불포함으로 동의를 끝낼 것이 아니라, 제공 대상물이 유전체 정보라면 최신 생명정보 기법을 사용한 비식별화를 할 것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34호 서식을 유일한 동의서로 사용할 것이라면, 맨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야 할 것이다.
2차적 사용을 위한 제공 시 비식별 조치 여부
- 개인식별정보 [ 포함/불포함 ]
- 유전체 정보 제공 시 비식별화 [ 실시 / 미실시 ]
이 항목에서 동의를 받을 때에는 설명을 매우 잘 해야 한다. 비식별화는 가명화와 익명화 등을 아우르는 가장 상위 카테고리에 해당하니, 이렇게 제목을 잡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022년 8월 25일에 작성한
개인정보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에 약간의 설명을 달아 놓았다.
2022년 12월 2일 업데이트
국내법에서 적용하는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에 대한 글로 시작하여 포괄적 동의에 대한 글로 조금씩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 글은 앞으로도 계속 수정될 것 같다.
2024년 6월 25일 업데이트
마지막 업데이트 후 1년 반이 지났다. 인체유래물을 수집하여 연구를 하되, 잔여 유래물을 수집 시점에는 특정하기 어려운 다른 연구 목적으로 제공하려면 이를 인체유래물은행에 동시에 기탁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려면 이 글에서 소개한 제34호 서식이 아니라 <인체유래물등의 기증 동의서>(시행규칙 제4호)를 받아야 한다. 인체유래물에서 획득한 결과물인 유전체 정보는 '인체유래물등'이라는 용어의 범주에 들어간다. 정보라는 특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규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