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에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열리는 워크숍에 참석하는 길에 전주 한옥마을과 영화의 거리를 스쳐 지나갔고, 5월 5일에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5/1-5/10, 공식 웹사이트는 폐막 후 아카이브로 옮겨갈 것임; 2023년도 행사 링크) 출품 영화를 보러 다시 한번 전주를 방문하였다. 간혹 연휴 때에는 연달아 이틀 전주에 온 일도 있으니 명예 전주 시민 자격이 주어져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원래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을 보고 싶었으나 마지막 회차(5월 5일 오전 10:30)는 이미 매진이 된 후였다. 공식 웹사이트에서 5월 5일 상영 예정작을 일일이 눌러서 잔여 좌석이 있는지 어렵게 확인을 하여 겨우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상영하는 <콘도르 작전>의 표 두 장을 구입하였다. 영화의 거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데다가 매우 규모가 큰 공연장이라서 표가 몇 장 많이 남아 있었다. 각 작품의 상영 시각을 일일이 클릭하지 않고도 잔여 좌석 현황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다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표를 싹쓸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지, 혹은 특별한 이유 없이 현 상태대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로그인 후 한 회차의 작품에 대해서 관람권은 최대 2장까지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몰고 아내와 함께 점심 시간 조금 전에 전북대학교에 도착하였다. 삼성문화회관에 차를 세우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대학교 주변이라서 식당이 꽤 많이 있었다. 항상 사람이 붐비는 객사길-영화의 거리와는 또 다른 산뜻한 분위기였다. 늘 대성동 주차장 - 한옥마을 - 영화의 거리와 그 주변만 맴돌던 '전주를 즐기는 방법'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다음에는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아중호수와 전북혁신도시의 기지제까지 확장을 해 봐야 되겠다.
삼성문회화관에는 오스스퀘어(O's Square, 인스타그램)라는 카페가 있었다. 근처에는 인공연못과 조각 등 볼거리가 많았고, 큰 창을 통해서 바깥에 조성된 정원을 내다보는 전망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2층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영화가 상영되기 전까지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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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바라본 오스스퀘어. |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오디오 시스템으로 향했다. 이것도 직업병, 아니 '취미병'이다. 창가에는 맥컬리 앰프로 구동되는 4대의 JBL 스피커가 높게 위치해 있었고, 입구에는 클립쉬의 대형 스피커와 EV 혼 스피커, 그리고 알지 못할 트위터 1쌍이 피베이 앰프(나중에 찾아보니 진공관 앰프였음)에 연결되어 있었다. 큰 공간의 영업장을 울리는 음악은 부족함도, 과함도 없었다. 눈과 귀가 전부 즐거운 경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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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ipsch KPT-904(데이터 시트)는 극장의 스크린 뒤에 설치하는 스피커 시스템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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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 HP9040(데이터 시트). 나는 혼 스피커는 잘 알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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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내 흥미를 끌고 있는 오디오 기기는 가정용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다. 공연장이나 시설 등에 설치하는 그런 종류의 것. Peavey Classic Series 120 앰프의 전면에는 'Tube Power Amplifier'라는 글귀가 보인다. 후면에 팬이 달려 있다고는 하는데 위에 놓인 믹서가 진공관 때문에 열을 받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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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마샬 기타 앰프가?? |
이런 대형 스피커 시스템을 갖추고 이웃 눈치를 볼 것 없이 큰 음량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에서는 겨우 8인치 우퍼를 갖춘 스피커 시스템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큰 것은 작은 것을 대신할 수 있지만, 작은 것은 큰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이 오디오에서도 적용된다. 큰 구경의 스피커를 갖추어 놓으면 음량을 낮춘 상태에서도 그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큰 소리가 아쉽다면 근무지 지하에 만들어 놓은 밴드 연습시설을 찾아서 음악을 틀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미셀 고메즈 감독의 2022년작 <콘도르 작전>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열기에 빠져 있던 페루 리마를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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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이내 모여들어 상영 직전에는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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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 작전>의 공식 포스터. |
사법부 기록실에서 일하는 청년 펠릭스는 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지만 어머니와 여자친구 세실리아 앞에서는 늘 자신이 없다. 어떤 경로로 전달되었는지 알 길이 없는 불법 이민 관련 신고 서류를 놓고 펠릭스는 고민하지만 상사는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어차피 총선 직전이라 또 세상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노천 체스장에서 친구 호아킨을 만나기로 했는데 - 세실리아에게 줄 청혼 반지를 같이 고르기 위해 -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고, 며칠 뒤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호아킨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던 것인가? 홰 호아킨과 아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잡혀갔다가 고문을 당한 상태로 풀려나는가?
콘도르 작전(일명 '더러운 전쟁')은 20세기 중후반 중남미에서 있었던 우익 독재 정권의 좌익 탄압 정책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10만명이 사망하고 40만여명이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소심한 주인공 펠릭스와 그 주변의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약간의 로맨스, 그리고 여기에 월드컵의 열기 및 총선 분위기까지 잘 섞어서 배치함으로써 끔찍한 당시의 상황을 주제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과 더불어 약간의 유머러스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호아킨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을 살해한 사람은 나중에 밝혀지게 되는데 너무 상상을 초월하는 결말이라 차마 여기에 쓸 수는 없다. 군사 독재 시대이므로 당연히 시민을 탄압하는데 앞장설 것으로 여겨지는 군 정치인이 당연히 그 배후라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그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 부부는 이 영화를 꽤 재미있게 보았으나 왓챠피디아의 평점은 2.1에 지나지 않는다.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중 납치, 실종, 고문이 연루된 국제적인 음모를 밝혀낸다'는 영화 소개 문구가 오히려 '이 영화는 이런 영화일 것이다' 또는 '이 영화는 이런 영화여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일단 무거운 느낌을 주는 영화 제목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되겠다.
그냥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보면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5월의 어느 일요일, 어린이날을 이렇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