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쉽게 쓴 원핵생물(prokaryote)의 종 동정 이야기

가능한 한 쉽게 풀어서 쓰려고 노력해 보겠다. 이러한 글을 블로그에 남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이를 읽어보고 유용하게 활용하라는 뜻보다 나 자신의 공부를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박테리아의 종(species) 개념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천랩 BIOiPLUG help center의 글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Bacterial species concept explained

이에 의하면 가장 최신의 phylo-phenetic species concept는 이러하다.

“A monophyletic and genomically coherent cluster of individual organisms that show a high degree of overall similarity in many independent characteristics, and is diagnosable by a discriminative phenotypic property.”

실제 세계에서는 각 스트레인이 다닥다닥 모여서 하나의 종을 구성하는 이상적인 일이 흔하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각 스트레인 간의 거리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 주로 유전체 서열을 이용하는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상세한 것은 이 글의 뒷부분을 참조하라. 표준 균주, 즉 type strain은 species를 이루는 strain들의 cluster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DNA-DNA hybridization (DDH)

실제로 DDH 실험을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으면서 툭하면 이 실험 기법과 종 구분의 기준 수치(70%)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좀 우습다. 70% DDH라는 표현을 아주 쉽게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는 DNA-DNA relatedness 혹은 percentage reassociation similarity의 수치를 말한다. 이 수치는 1960년대부터 두 미생물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널리 쓰여왔다(왜? 미생물의 형태적 특징은 우리가 늘 접하는 동물이나 식물처럼 변별력이 높지 않으므로...). 그러다가 이것이 종을 구분하는 척도로 쓰이게 된 것은 Report of the Ad Hoc Committee on Reconciliation of Approaches to Bacterial Systematics라는 1987년도 논문(링크)에서 어떤 기준점을 공식적으로 제안하면서 부터이다.
DNA-DNA relatedness가 70%와 같거나 그보다 크면 두 박테리아는 같은 종이다.  비교 균주가 공인된 특정 종의 type strain이라면, 내 샘플이 그 종에 해당한다고 판정할 수 있다. 그러나 70%보다 작으면 서로 다른 종이다.
"with 5°C or less ΔTm of reassociated DNA strands"라는 조항도 있었지만 앞의 기준만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잘 기억해 두자. DDH value ≥ 70%이면 동일 종, DDH value < 70%이면 다른 종이다.

16S rRNA gene sequence의 이용

DDH 실험은 숙달되기가 매우 어려워서 이를 제대로 수행하는 랩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하기 쉬운 PCR을 이용하여 16S rRNA gene의 일부를 PCR로 증폭한 뒤 이를 Sanger sequencing으로 읽어서 sequence similarity(%)를 산출, 이를 두 균주의 유사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하는 방법이 급속하게 대중화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DNA 서열을 비교할 때 similarity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ATGC 오직 4개의 염기로만 구성된 DNA의 서열 정렬에서는 같으면 같은 것이고 다르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두 서열을 가지고 계산하여 나오는 수치는 sequence identity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아미노산처럼 생화학적 특성이 유사한 것끼리 그룹을 지을 수 있는 거대분자의 서열을 정렬할 때에나 identity와 similarity가 각각 다르게 나올 것이고,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70% DDH에 해당하는 기준이 16S rRNA gene 서열의 similarity에도 존재할까? 1994년 Stackebrandt 등은 Taxonomic Note: A Place for DNA-DNA Reassociation and 16S rRNA Sequence Analysis in the Present Species Definition in Bacteriology라는 논문(링크)에서 16S rRNA gene sequence similarity < 97% 이면 두 균주는 서로 다른 종이고, 이 값이 ≥ 97%이면 정확한 구분이 어려우니 DDH 실험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16S rRNA similaity가 97%보다 작으면 두 박테리아는 다른 종이다. 97%보다 같거나 크면 같은 종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많은 미생물학자들은 새로운 종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자연계에서 어떤 세균을 분리하여 16S rRNA gene 서열을 읽은 다음, type strain의 그것과 비교하여 similarity가 97%보다 적으면 새로운 종이 발견될 희망을 안고서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이보다 높으면 제껴둔다고 하였다. 즉, 75% DDH와는 입장이 조금 다른 기준치인 것이다. 

최근에는 97%라는 기준치를 98.7-99%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련 기사(Stackebrandt and Ebers 2006, Microbiology Today 33:152-155)를 찾아보니 2006년에 발표된 것이라서 최근은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예전에는 16S rRNA gene sequence가 98% 같았다면 비교 균주와 동일 종인지의 여부를 판별하기 어려우므로 DDH 실험이 필수적이었지만, 이제는 동일 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수고스런 DDH 실험을 덜 하고도 novel species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 모든 데이터셋에 대하여 분석을 한 것은 아니지만 - 98.7% gene sequence similarity 문턱값에 미치지 못하는 데이터 쌍의 경우 DNA reassociation value는 항상 70% 미만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프라이머를 사용하여 16S rRNA의 어느 영역을 증폭하는지에 대해서는 BIOiPLUG help center의 도움말을 참고하자.

16S rRNA and 16S rRNA gene

Genomics 시대에 걸맞는 종 동정 방법

NGS가 보편화된 요즘, genome sequencing은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되었다. 따라서 type strain과 내 샘플의 유전체 서열을 서로 비교하여 어떤 수치를 내놓으면, 이것을 70% DDH처럼 기준치와 비교하여 같은 종인지의 여부를 판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수치는 바로 ANI(average nucleotide identity)이다. 이를 산출할 때 유전체 서열을 절단하여 그대로 쓰는 방법, 혹은 상동 유전자를 추출하여 사용하는 방법 등 실제 계산 프로그램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 BIOiPLUG help center에서는 OrthoANI를 사용한다. 전체적인 절차는 다음의 튜토리얼을 참고하자.


이 튜토리얼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른다.

  1. 16S rRNA gene sequence를 이용하여 "Identify"를 실행한다. 
  2. 98.7% 이상으로 나타난 것의 type strain으로부터 genome sequence를 얻는다.
  3. OrthoANI를 계산하여 95~96% cutoff를 넘으면 해당되는 종으로 동정한다.

구글 검색창에 ANI calculator를 넣으면 다양한 계산 도구가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JSpecies를 주로 쓰다가 요즘은 많은 다루면서 heatmap까지도 그려주는 pyani를 애용하고 있다. 천랩의 OrthoANI는 유전체 서열을 일정 길이로 잘라서 reciprocal blastn을 먼저 수행하여 orthologous pair를 결정한 다음, 이것들에 대한 ANI를 계산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2015년에 발표된 논문 Microbial species delineation using whole genome sequences(링크)에서는 protein-coding gene을 염기서열 수준에서 비교하여 얻은 genome-wide Average Nucleotide Identity(gANI)와 aligned fraction(AF)을 같이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 방법은 MiSI(Microbial Species Identifier)라는 멋진 이름이 붙어서  Integrated Microbial Genomes(IMG)에 구현되어서 쓰이고 있다(링크).

유전체 서열을 이용하여 디지털화한 DDH 값을 계산하는 도구도 있다. 이는 GGDC(Genome-to-Genome Distance Calculator)라는 것으로, 사용자가 입력한 두 유전체 서열(accession number를 넣어도 됨)에 대하여 DDH 값과 신뢰구간을 예측하여 준다.

또 다른 방법, specI

앞에서 소개한 방법들은 전부 두 개의 strain에서 유래한 서열(16S rRNA gene or genome)을 주었을 때 이들이 동일 종인가 아닌가를 판별해 주는 것이다. 즉, species demarcation tool인 것이다. 내 샘플에 어떤 종의 명칭을 붙일 수 있는가의 문제는 비교 대상이 되는 균주가 type strain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이와 달리 specI(웹서비스 링크, Nature Methods 2013년도 논문)는 1:1로 비교할 균주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단지 내 미생물의 유전체 서열에서 예측한 유전자 정보(cds 및 아미노산 서열 파일이 각각 있어야 함)를 입력하여 40개의 single copy, universal phylogenetic marker gene에 대한 identity를 계산하여 어느 유전체와 가장 가까운지를 표시해 준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2013년에 3,496개의 유전체 서열(이 중에서 type strain은 836개)을 가지고서 개발된 것이라 업데이트가 시급하지만 아직 별다른 변화는 없다. 

specI에서 사용하는 40개 마커 유전자의 목록은 Supplementary Table 3(링크)에 나와 있다. 대부분 ribosomal protein으로서, phyloSift의 마커 유전자(링크)와도 상당히 겹친다. specI의 universal marker gene 목록 작성에 참고가 된 논문은 Toward automatic reconstruction of a highly resolved tree of life(Science 2006, 링크)이다. Phylogenetic marker gene과 minimal gene set은 약간 다른 개념이니 혼동해서는 안된다.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카시오 G-SHOCK DW5600E 설정 중 잊어버리기 쉬운 것

전자식 디스플레이를 갖춘 스포츠·아웃도어용 손목시계로서 현실적인 가격대를 갖춘 것의 대명사는 아마 카시오 G-SHOCK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빅페이스'라고 불리는 모델은 전통적인 둥근 케이스에 시계바늘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갖추고 있어서 더욱 인기를 끄는 것 같다. 나도 지난 여름 방수가 잘 되는 카시오의 시계를 알아보던 중에 바늘로 시간을 가리키는 빅페이스에 잠시 관심을 가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시인성이 좋지 않고 표시되는 정보가 너무 작은데다가 케이스가 너무 커서 포기하였다. 이제는 노안이라서 잔 글씨를 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G-SHOCK의 클래시컬 모델인 DW-5600E이었다.


설정 및 기능용 버튼은 총 4개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이다. 사실 손목시계와 같은 작은 기기에서 화면을 통한 터치 입력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결국 하드웨어 버튼을 통해서 착용자의 지시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버튼을 4개보다 더 많이 장착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은 아닐지라도 방수기능과 내구성 등의 면에서 불리해질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제한된 버튼을 이용하여 기기를 쉽게 제어할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타이맥스 시계 중에서는 전면부쪽에 START/SPLIT 버튼을 따로 두어서 총 5개나 되는 버튼을 장착한 것도 있다.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중에 조작을 하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 시계를 가끔 쓰면서 시각 표시를 24시 모드로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자주 차지를 않으니 종종 그 방법을 잊어버리고는 한다. 이렇게 블로그에 기록을 하는 이유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방법은 간단하다. A(Adjust) 버튼을 눌러서 숫자가 반짝거리는 동안 D(Light) 버튼을 누르면 된다. 반짝거리는 숫자가 시, 분, 초 중에서 어느 것인지는 관계가 없다. 그러면 시 표시 바로 위에 24H라는 표시가 나타난다.

전자시계가 좋은 점은 언제든지 타이머와 스톱워치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두 기능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르다. 타이머는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알람을 울리는 것이고, 스톱워치는 0에서 시작하여 경과한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C(Mode) 버튼을 눌러서 모든 숫자가 0으로 표시된 상태라면 B(Start/Stop) 버튼을 눌러서 바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상태가 타이머 모드(TR로 표시)인지 혹은 스톱워치 모드(ST로 표시)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타이머 모드에서 Start를 누르면 24시간부터 거꾸로 시간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디스플레이가 전부 0으로 된 상태라서 당연히 카운트 업 스톱워치일 것으로 생각하고 시간을 재려다가 낭패를 경험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아예 타이머 모드에 5분을 입력해 두었다. 이제부터는 타이머 모드에서는 0:05'00이 표시되므로 스톱워치 모드(기본 표시는 00"00'00)와 혼동할 염려가 없다.

카시오 전자손목시계의 모듈은 뒷면에 4자리 숫자로 새겨져 있다. 이 시계는 3229 모듈을 사용한다. 카시오 매뉴얼 다운로드 사이트(링크)에 가서 적절한 언어를 선택한 뒤 3229를 넣으면 PDF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한글 매뉴얼은 없어서 영문 매뉴얼을 받아야 한다.



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URL shortener

주말 공연 정보를 찾다가 대전지역에서 열리는 공연 예매를 대행해주는 아르스노바 웹사이트를 오랜만에 방문하였다. 이번 일요일, 그러니까 11월 26일에는 KAIST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는데 무료 공연이지만 이 사이트를 통해서 예약을 해야 된다. 예약을 위한 웹사이트의 주소가 bit.ly로 시작하는 짧은 주소로 표현된 것을 발견하였다.

http://bit.ly/2zWZ0V0 (http://www.arsnova.co.kr/perform/?idx=10000004587)

이와 같이 긴 웹주소를 줄여서 짧게 표현하는 것을 URL shortener라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구글 블로거와 구글 플러스 등의 서비스를 처음 이용하면서 goo.gl(Google URL Shortner)로 시작하는 짧은 웹주소를 만든 적이 있었다. 분명히 이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남겼을 터인데... 검색창에 goo.gl을 넣어서 찾아보았다. 무려 5년 전에 쓴 글이 여기에 있다. 단축 주소를 내가 직접 쓸 일은 거의 없으니 만들어 놓고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었다. gplus.to라는 단축 URL 서비스는 현재 작동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 나도 bit.ly를 이용해 보자. goo.gl은 긴 주소를 하나 넣어서 단축 주소를 얻어내는 방식이지만 bit.ly는 회원으로 가입하여 여러 주소를 관리할 수 있게 하였다. http://bit.ly/2jUqaYJ가 나의 구글 플러스로 연결되는 주소이다. 이렇게 만든 짧은 주소를 BitLink라 부르고, 지역과 국가에 따른 접속 통계도 만들어 준다. 생각보다 제법 쓸모가 많은 서비스이다.

웹사이트 주소는 bit.ly이지만 회사 이름은 Bitly이다. 이 회사는 일반 회원을 대상으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 것일까? 구글처럼 광고를 이용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이 서비스가 생겨난지는 꽤 되었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불편한 이유

나는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MBC 에브리원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TV 프로그램의 요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과연 대본이 없을까?

요즘 너무나 많은 프로그램이 비슷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생활 주변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출연진은 마치 대본이 없는 일상 생활을 하듯이 촬영을 한다. 편집된 화면을 현장에 없었던 다른 여러명의 진행자가 보면서 양념을 더한다. 뉴스 독자들이 이제는 해설 기사에 더 관심을 갖듯이, 이러한 진행자는 마치 촬영된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더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대부분의 출연자는 연예인과 그 가족이다. 사전 기획인지 PPL인지 알 수 없는 소재와 장소, 이벤트가 넘쳐난다. 만들어진 리얼리티 속에서 어디부터가 진실인지를 알 도리가 없다. <어서와...>의 출연자는 일반인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말 제작진의 사전 개입은 없을까? 재미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인 편집은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외국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만큼 외국에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하다.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수준을 이룬 나라가 되면서, 한국을 더 알리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유럽에 수출된 고급 문화인 중국의 도자기가 그러했고 인상파 사조의 시작에 자극을 주었던 일본의 그림이 그러했듯이 문화적인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한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인정을 해야 되겠지만.

진정 이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출연자의 나라에 이 프로그램을 수출해서 방송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그 식당을 평가했다고 하자. 이것을 식당 주인들만 공유하면서 즐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직 이 식당을 찾지 않은 사람들에게 식당 평이 널리 전달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외국인들이 낯선 한국을 처음 찾아서 '한국이 이렇게 역사가 유구한 나라였어?' '한국 음식이 이렇게 맛있었어?' '한국에 이렇게 볼 거리가 많았어?'하며 놀라는 것을 우리가 보고 얕은 만족감 또는 우월감을 느끼며 자부심을 소비하는 것 같아서 나는 이 프로가 영 불편하다. 아마 출연자들의 항공료나 체제비는 제작사 측에서 부담할 것이 당연한데, 그러한 여행에서 어떻게 여행자가 불편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물론 자비로 한국을 올 가능성도 없겠지만 말이다.

오락 프로램이라면 다큐멘터리 흉내를 내지 말고, 다큐멘터리라면 좋은 그림, 재미있는 장면을 위해 제작자가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불필요한 자막은 줄이고 - 자막이 유용할 때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청각 장애인이나 소리를 크게 내기 어려운 공공장소에서 TV를 재생할 때에는 도움이 된다 - 시청자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없애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리고 경제 수준이나 피부 색깔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외국인들을 줄세우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이쯤에서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의 기고를 소개한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국뽕'이라도 괜찮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식 중계에서는 입장하는 국가의 국민소득을 소개하는 어리석은 일이 없었으면 한다.

새 도메인 구입(.xyz)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자 .xyz로 끝나는 새로운 도메인을 등록하였다. 무척 생소한 도메인이지만 gTLD(generic top-level domain)로서 처음 도입된 것은 2014년이다. xyz는 알파벳을 이루는 마지막 문자이니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특히 구글의 지주회사인 Alphabet Inc.가 abc.xyz를 웹사이트로 등록하면서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6년 6월 현재 .xyz는 .com, .net, .org에 이어서 네 번째로 등록이 많이 된 gTDL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등록한 도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여기에 공개할 생각은 없다. 특히 도메인 등록 기관에서 약간의 서비스 요금을 더 내면 ICANN에 등록자 정보를 보내지 않게 만들어 주니 그것도 더욱 흥미롭다. 반사회적인 운동이나 음흉한 비즈니스를 도모하는 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 이를 당장 여기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이랴. 관리하는 도메인과 웹사이트의 갯수가 늘면서 유지 비용도 그에 따라서 약간씩 늘어나는 것은 감수해야 되겠지만. 앞으로 일년 정도 운영해 본 뒤 과감하게 통폐합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보자.

웹사이트를 구성하는 CMS(content management system)으로는 드루팔을 사용해 보기로 하였다. 도메인 등록 대행 기관에서 호스팅 서비스도 제공을 하는데, 자동 설치 기능이 있어서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가장 인기가 있다는 워드프레스를 써 보려고 했는데 작동이 너무 느려서 두어번 깔았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드루팔로 최종 결정하였다.

드루팔은 다른 사람이 만든 사이트를 조금 사용해 본 일은 있지만 관리자 입장에서는 처음이다. Drupal 8 documentation을 보면서 개념을 잡아나가 보련다. 테마는 드루팔 7부터 기본 제공되는 Bartik theme이다. 아래 그림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맨 위의 로고와 제목/표어가 있는 곳은 header, 중간은 사이드바(주황색)와 기본 내용, 맨 아래는 footer이다. 기본적인 각 region(구역)의 색깔은 주소/admin/appearance/settings/bartik에서 설정을 고치면 된다.


구역의 개념은 간단하지만 그 내부에 조성되는 블록은 한층 복잡하다. 다음 그림을 보라! 주소/admin/structure/block/demo/bartik을 선택하면 보이는 block layout의 설명 그림이다. 이 그림과 위 그림의 내부가 각각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아보려면 이것저것 매만지면서 시행착오로 알아보는 수밖에는 없겠다.


<탭>에 해당하는 것은 Primary menu였다. 여기에는 internal path(예: /node/add)나 external URL을 연결할 수 있다. 특정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글 묶음을 연결할 수는 없을까? 블로그처럼 시간 순서대로 단순하게 글을 써 나가는 용도로는 현 상태로도 불편함이 없는데, 이를 메뉴와 연결하는 방법을 아직 잘 모르겠다.

찾기는 기본적으로 3글자 이상만 가능하다. 두 글자로 이루어진 한글 낱말 검색을 위해서 2글자로 설정을 바꾸어 보았다. 인덱싱 작업에 약간의 부담을 줄 가능성도 있겠다. 

에혀~ 내가 왜 이걸 시작했을까.



새 만년필 구입(파커 IM 프리미엄 배큐매틱 핑크)

지난 10월 말, 주력으로 사용하던 워터맨 필레아(Waterman Phileas Green Marble) 만년필을 깨끗이 세척하여 잠시 서랍에 넣은 다음 파커 벡터 스탠다드(Parker Vector Standard)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예전에 쓰다가 남은 파커 잉크 카트리지를 다 써버리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약 한 달 가까이가 지난 지금, 역시 적응에 실패하였다. 파커 벡터 스테인레스 스틸 제품과 레진 몸체의 스탠다드를 전부 써 보았지만 약간 가늘고 굴곡이 없이 완벽한 원기둥 모양의 몸체는 내 손에서 도저히 익숙하게 잡히지를 않는다. 짧게 쥐면 자꾸 미끄러지면서 헛도는 느낌이고, 길게 쥐어서 레진 바디쪽을 잡으면 너무 어색하고...  파커의 최저가 라인인 Jotter의 만년필도 이보다는 나았었다.

벡터보다는 상급의 만년필을 써 보기로 하였다. 카트리지를 소모하기 위해 만년필을 사는 꼴이라니! 집에서 멀지 않은 삼화문구몰의 만년필 매장을 방문하였다. 평소에 눈여겨 보았던 파커 어반은 가격대가 생각보다 높았고 꽤 묵직하였으며, 쥐는 느낌이 좋고 적당이 가벼워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네트는 그보다 더욱 비쌌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IM Premium Vacumatic Pink(링크) 만년필이었다. CT(chrome trims), 즉 크롬으로 마무리를 한 제품이다. 단종이 되었는지 이 제품의 링크는 파커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내기는 어렵다. 닙 규격은 F(fine).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분홍색을 원래대로 재현하기 위해 포토스케이프에서 약간의 후보정을 하였다. 실제에 거의 가까운 색상이 표현되었다.



이 만년필은 선물로 받은 워터맨 필레아를 제외하면(새 것은 아니었음) 내가 직접 구입한 것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이다. 외양도 예쁘고 무게 밸런스도 매우 좋으며, 글씨가 써지는 느낌 또한 좋다. 앞으로는 5만원 미만의 만년필은 사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최저가 라인은 래커칠이 벗겨지거나, 배럴이 부러지거자, 필기감이 좋지 않은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만 내가 이번에 구입한 파커 IM은 손에 쥐는 부분이 금속이라서 약간 미끄러운 것이 아직은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아래 사진에서처럼 타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것이 더 좋았다.

출처: https://global.rakuten.com/en/store/hunnyhunt/item/waterman-phileas-green/

기회가 된다면 파커 소네트 혹은 펠리칸 M200(속칭 '고시용' 만년필)을 언젠가는 써 보고 싶다. 늘 휴대하는 필통 속에는 파커 IM, 그리고 사무실 회의용 테이블 위에는 펠리칸 트위스트가 자리를 잡았다.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독서 기록 - 별맛일기,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 과식의 심리학,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 별맛일기: 심흥아 만화
  • 우리 사우나는 JTBC 안봐요: 박생강
  • 과식의 심리학: 키마 카길 지음 강경아 옮김
  •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폴 김·함돈균 대담집

감성이 너무 메마르는 느낌이 들 때에는 소설을 읽는다. 나는 여간해서는 문학 서적을 읽지 않는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꼼꼼하게 보아야 하는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인내심을 키운다. <별맛일기>는 연필로 공들여 그린 장편 만화로서 요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이 일기의 형식으로 자기의 주변 이야기를 요리와 관련하여 그린 것이다. 미혼모, 동성애, 다문화 가정 등 무거운 주제를 담백하게 담았다. <우리 사우나는...>은 박생강(본명 박진규)가 실제로 회원제 피트니스 클럽의 사우나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 접했던 자칭 상위 1%의 부조리한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나머지 두 책은 본문 요약 위주로 좀 더 상세하게 독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과식의 심리학_현대인은 왜 과식과 씨름하는가


과식(혹은 폭식장애)은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소비주의, 즉 상품 소비의 끊임없는 증가를 건강한 경제의 토대로 옹호하는 원칙, 또는 소비자 상품을 사들이는 것을 지나치가 강조하거나 그런 일에 몰두하는 것에도 큰 책임이 있다. 과거에는 사치품으로 여기던 것을 이제 필수품으로 여기게 되면서 무엇이 자연적인 욕구인지, 혹은 만들어진 욕구인지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상품을 소비해도 상상적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른바 언박싱(unboxing) 영상 - 새로 구입한 물품의 포장을 뜯으면서 내용물을 보여주는 영상 - 은 이러한 상상적 쾌락주의의 퇴행적 판타지를 보여준다. 소비주의의 여러 개념들을 살펴보자.
  1. 도덕 원칙으로서 소비주의: 선진국에서 소비자의 상품 선택과 구매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힘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2.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국민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성향의 보모국가와 반대로 현대 국가는 초국적 기업을 비호하며, 현대 국가에 팽배한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소비자가 화려하고 멋진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할 자유를 찬양한다.
  3.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공산주의의 엄격한 금욕주의와 반대로 소비주의가 자유무역의 동인으로 찬양되며 새로운 소비자를 키우는 일이 경제 발전의 열쇠로 여겨진다.
  4.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는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물질적 상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지위와 위신에 영향을 미친다.
  5. 사회 운동으로서의 소비주의: 소비자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종종 규제를 통해 가치와 품질을 보호하는 운동 형태로 나타난다.
문화에 퍼지는 질병을 개인의 병으로 좁혀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즉 그들만의 잘못으로서  알아서 책임져야 할 일) 잘못된 문화에서 비롯된 최종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 철학자 수전 보르도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나는 한 문화 안에서 발달한 정신병리를 변칙이나 일탈과는 거리가 먼, 그 문화의 전형적 표현으로, 사실상 그 문화에서 잘못된 많은 것의 결정화로 본다. 따라서 문화 관련 증후군을 문화의 자가진단과 성찰의 열쇠로 삼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소개한 '소비의 깔때기'는 소비주의가 어떻게 개인을 압박하는지를 다음의 순서로 표현하였다.

  1. 상품 소비의 끊임없는 증가를 건강한 경제의 토대로 옹호하는 원칙
  2. 소비자 상품 구매의 지나친 강조나 몰두
  3. 상품이나 서비스, 물질, 에너지 구매와 사용
  4. 소모적 지출(시간, 돈, 등)
  5. 고갈(특히 상품이나 자원) 또는 소모
  6.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와 사용(즉 소비자 되기)
  7. 먹거나 마시기, 소화시키기
  8. 지나친 소비(또는 먹기)로 자신을 파멸하기
비만을 고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은 섭취하는 열량이 남아돌지 않도록 이를 소비하는 것이다. 적게 먹든지, 많이 운동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나친 음식 소비에 의해 생긴 문제를 다른 소비(다이어트 산업의 소비자로서)로 해결하는 것에 더욱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음식을 잠재적인 중독성 물질로 연구하는 학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마약 중독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무엇인가를 얻기를 갈망하지만 막상 욕망하는 물질을 얻고 난 뒤에는 기대했던 그만큼 그것을 좋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즉 우리가 기대했던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달리 말해서 '욕망은 만족을 욕망하지 않고 반대로 욕망은 욕망을 욕망한다'.

정신 질환의 경계가 낮아지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약물을 처방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는 많은 제약 산업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tal Disorders 한국어판)의 많은 진단이 그러하다. 흔히 드는 사례로 주의력결핍및과잉행동장애(ADHD), 사회불안장애, 우울증이 있다. 진정한 폭식장애와 가끔 게걸스럽게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사실 폭식과 과식이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가벼운 폭식은 이른바 lifestyle drug로 치료하기에 가장 최적의 조건이다. 이러한 약은 소비자에게 직접 광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DSM이 정신질환의 문턱을 낮추고 새로운 병의 '보급'과 상업화에 기여한 폐해에 대해서는 익히 많이 들었다.

폭식장애는 과소비라는 문화적인 병인에 의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개인과 뇌를 집단에서 개인화·분리시켜서 이를 진단과 치료의 단위로 만들고 말았다. 과체중·폭식의 치료를 위해 거대 제약 산업의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더 많아진다. 과식을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이른바 하향 해결책은 기업에 새로운 이윤을 만들어 줄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의 성장(팽창)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지갑을 열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사들이고 먹는 것이 미덕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률과 함께 고령화 사회로 초고속 진입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양적인 팽창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경제 파라다임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비주의 문화에 의해 생겨난 폭식장애는 줄어들 것이다.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사회참여를 늘 고민하고 행동하는 문학평론가 함돈균이 스탠포드대 교육대학원 부원장이자 최고기술경영자인 폴 김과 만나서 대담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폴 김은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하여 강연을 한 적이 있다(뉴스). 한국에서 초중고 12년을 겪으면서 강압적이고 비인권적인 교육을 경험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하여 전파하고 있다. 

"좋은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스스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최신 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전세계인들, 특히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한국의 교육은 '두려움'을 그 원동력으로 삼는다. 동료와의 협력이나 리더십은 중요하지 않다(리더십은 오로지 대학입시용 자기소개서에 쓰기 위한 입증되지 않은 공허한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세계 시민으로서의 참여의식과 책임감을 배양할 기회는 전혀 없고, 오직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개별적인 생존을 위한 점수따기용 수동적·주입식 교육에 몰두한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자율적 능력의 구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모난 돌' 취급하며 경원시하는 사회,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혁신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대학은 지적 엘리트 집단 전체의 잠재력이 현저히 떨어짐은 물론이고 학문-교육과 삶을 잘 연계하지도 못하며, 그저 제도를 잘 이용하여 어떤 상황만 모면하면 된다는 타성에 젖어있다.
  • 한국 대학: 이 과목 들으면 삼성(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나요?
  • 미국 대학: 제가 삼성같은 기업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될까요?
그러나 그 어떤 묘수를 개발한다 하여도 현지 사정에 맞는 이른바 맥락화(contextualization)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당장 하루 한 끼를 먹는데에도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에게 글을 읽는 것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책을 보내거나, 당장 불쌍하다고 돈을 주거나 한다는 것은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exposure, engage, experiment, empowerment 즉 4E를 통해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사회 디자인을 위한 실험실이 될 수 있다.

모바일 기기를 몇 명에 하나씩 나누어 주었을 때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 되었는가를 알아본 실험에서는 세 명당 기기 하나인 그룹에서 문제 해결 속도가 가장 빨랐으며 그 다음은 일곱 명당 하나,그 다음은 한 명당 하나였다고 한다. 이는 브레인스토밍 등에서 가장 적합한 그룹의 크기를 결정할 때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대학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옳은가? 미래의 대학은 세계적인 영향력(global impact)가 관건이 될 것이다. 세계적 영향력이란 사회적 파급력, 사회적 효율성, 사회 발달에 대한 기여도 같은 것이다. 단지 SCI 논문을 일정 수준 발표하고, 영어 강의를 제공하고, 외국인 학생이 많다고 해서 세계적 영향을 갖추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여기서 폴 김의 말을 인용해 보자.
항상 우리는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깨진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교육자, 코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 완전한 원형의 예쁜 거울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남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남을 베이게 할 수 있는 깨진 거울일 뿐이지만, 이런 거울도 빛을 반사시키는 귀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해요.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VirtualBox "VT-x/AMD-V 하드웨어 가속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류의 해결

지난 11월 9일-10일 양일간 Cho & Kim Genomics/미래BIT융합교육사업단 공동 추최의 Bioinformatics Analysis Workshop에 참석하였다. 장소는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75-1동이었다. 이때 배포한 우분투 가상머신 파일(.ova)을 가지고 복습을 하고자 내 사무용 컴퓨터의 VirtualBox에서 '가상 시스템 가져오기'를 한 뒤 부팅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시스템에서 VT-x/AMD-V 하드웨어 가속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64비트 게스트가 64비트 CPU를 인식할 수 없으며 부팅할 수 없을 것입니다.'란 오류 메시지와 함께 부팅이 되지 않았다.


오류 메시지를 복사하여 구글 검색을 해 보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꽤 많은 글들이 있었다. BIOS의 고급 설정에서 Virtualization 기능을 활성화하라는 것이었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Metagenome으로부터 자가학습을 통해 metagenomic bin을 재구성하는 프로그램인 PhyloPythiaS+(PPSP, 논문 링크)의 가상머신 배포본을 같은 컴퓨터에서 구동하려고 했을때 비슷한 유형의 오류 메시지를 접했었다. 'VT-x is disabled in the BIOS for all CPU models (VERR_VMX_MSR_ALL_VMX_DISABLED).' 그러나 이상의 가상시스템들은 내가 보유한 다른 컴퓨터(데스크탑, 삼성 노트북 및 맥북 프로)에서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사무용 컴퓨터의 BIOS에서 해당 부분을 Enabled로 고치면 이 두 가지 가상 머신을 부팅하는데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만 같다. 오늘따라 Windows 업데이트가 많아서 부팅을 여러 차례 하였는데 BIOS 수정을 위해 위해서 부팅을 한 번만 더 하자.  '다시 시작'을 클릭하고 화면을 노려보다가 Del 키를 눌러서 셋업 화면으로 집입하였다. 셋업 화면이 참으로 화려하다.


Advanced 탭의 Intel Virtualization Technology라는 항목이 불활성화된 상태이다. 이를 활성화로 전환한 뒤 설정을 저장하고 재부팅을 하였다. VirtualBox에서 두 종류의 가상머신을 켜 보았다.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이 부팅이 되어 성공적으로 로그인을 할 수 있었다.

VirtualBox에서 공유 폴더 사용하기

호스트와 게스트 OS 사이에서 파일을 주고받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공유 폴더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 게스트 확상 설치부터 해야 한다. 가상머신이 작동되는 상태에서 '장치->게스트 확장 CD 이미지 삽입'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명령을 실행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관리자 암호를 입력하라고 할 것이다. 이대로 따라서 하면 터미널 창에서 무엇인가가 잔뜩 진행되는 것처럼 나타난다. 여기까지 했으면 일단 가상 머신을 종료한다.

그러고 나서 VirtualBox의 설정->공유 폴더에서 다음 그림과 같이 입력을 하면 된다. 폴더 경로란 호스트 측의 경로이고, 폴더 이름은 가상머신 내의 경로이다. 폴더 이름 'vbox'는 자동으로 이름이 지어진다. '자동 마운트'를 체크하는 것을 잊지 말자.


설정을 저장하고 리눅스 가상머신을 켠다. 이제 df 명령을 치면 /media/sf_vbox 경로가 보일 것이다. 공유 폴더 설정에서 붙인 이름인 vbox 앞에 /media/sf_를 붙인 것이 게스트 내에서의 마운트 위치이다. sf는 shared folder를 의미한다. 여기에 파일을 기록하면 호스트 측에서는 C:\vbox 위치에서 열어볼 수 있다. 단, 게스트에서 여기에 접근하려면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다. 반대로 호스트에서 이곳에 파일을 복사하면 리눅스 게스트에서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의 목표는 워크샵에서 배웠던 것을 차근차근히 복습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스크립트를 정리하여 이곳 블로그나 위키 사이트에 올릴 것이다. 내가 가끔 강사로 참여하는 다른 생명정보학 워크샵에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을 것이다.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독서기록 - 2020 시니어 트렌드


  • 부제: 새로운 어른들이 만드는 거대 시장의 출현
  • 저자: 사카모토 세쓰오
  • 김정환 옮김

출장지의 허름한 숙소 침대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더니 너무 배경이 볼품없이 나와서 흑백으로 만들어 버렸다. 영어로 찍힌 Senior Trend와 그 밑의 부제만 빨강색이고 나머지는 전부 검정색이라서 흑백으로 처리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일본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심각하게 인구 구조가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이후 경제 상황이 점차 좋아지는 데다가 충분한 인구에 기반한 탄탄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나라이다. 과거에는 노년이란 그저 인생의 내리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더 많은 자유(은퇴, 자녀의 독립 등)와 더 많은 경제적 여유(이것은 우리 사회에 일반화하기 참으로 어렵지만)를 가지고서 문화와 소비를 이끄는 큰 힘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를 내다보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은퇴 전에는 급여에만 의존해 살아야 하고 지출이 많은 것이 당연하나, 나이가 들어 자녀들이 독립을 하면 지출도 크게 줄고 금융 자산을 이용한 저축 투자형으로 이행하여(즉 돈이 스스로 돈을 벌게 만들어서) 오히려 예전에는 하지 못한 소비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자녀들이 취직과 결혼을 포기하고 부모와 같이 살게 되면서 계속 이들을 위해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러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고급 자동차, 고가의 카메라가 이들 어른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심지어 고급 기타(악기)에 대한 소비가 늘면서 TV에서도 악기 광고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꿈처럼 바라보던 악기였는데 은퇴 후에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선물로서 이제 구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이게 바로 그 Gibson이란 말이지...?'하면서.

지금 40~60대는 과거의 비슷한 나이 세대와는 다르다고 느낀다. 인생의 내리막이나 황혼이 아니라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의식이 그들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고 지갑을 열게 만든다. 과거에는 젊은이에게 최신의 정보를 습득하던 세대였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으로 갖고 놀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제 손자 세대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고 공유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건강과 경제는 노년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고 과거에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다스리면 오히려 활력의 근원이 된다.

유럽의 고급 식당이나 슈퍼카(2인용)는 원래 돈 많은 시니어를 위한 것이었다. 이 문화가 일본으로 들어오면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서 슈퍼카를 젊은이들이 사는 일이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배우자와 같이라면 외식이나 여행에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가장 좋은 동반자는 부모도 아니고 자녀, 친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을 위한 고급 식당·쇼핑센터·문화시설이 일본의 대도시에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고가의 여행 상품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40~60대를 하나의 세대로 보기는 쉽지 않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할 때 지켜야 할 철칙이 있으니 바로 기존의 고령자 용어로 말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시니어, 정년, 은퇴, 제2의 인생 등이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 나이의 세대는 '새로운 어른'이다. 어쩌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20-30대는 어른 취급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종합하자면 피터 드러커가 생전에 말했듯이 일본의 '단카이'세대(1947~1951년 생)가 경험과 지혜를 살려 은퇴 후에 사회적 활동에 종사한다면 일본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경험을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활용하고
  • 세대간 교류(cross-generation)를 통해 젊은 세대를 더욱 지원한다(사내 커뮤니케이션, 업무 지원, 육아 지원, 기술 전승 등)
책 뒷표지에 인쇄된 문구를 옮겨 적는 것으로 내용 요약을 마친다.
  • 어른이라면 '40대 이상'인 시대가 다녀온다.
  • 젊은이에게서 어른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
  • 시니어 마케팅이 대부분 실패했던 이유
  •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어른'의 출현, 이들은 무엇이 새로운가?
  • 분야별로 세세하게 살펴보는 시장의 진화
  • 새로운 어른과 젊은 세대 간의 크로스 제너레이션이 새로운 미래를 연다
이런 예견이 가능한 일본의 현실이 부러웠다. 사회 변화 중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새 갑자기 다가와서 그 어떤 대책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문제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우리 나라의 인구 구조 변화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우리의 인구 구조 변화는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느린 것이 아니라 정말 가파르다. 이렇게 생산 연령이 급격히 줄어들어서는 올바른 미래 예측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획기적으로 출산률을 늘리든지, 적극적인 이민 대책을 마련하든지(우리처럼 폐쇄적인 문화에서는 외국인 이주 정책에 대하여 누구나 수긍하는 합의안이 도출되기 정말 어렵다), 어떻게 해도 인구를 늘릴 수 없다면 차라리 정년을 연장하여 더욱 나아진 노년기 건강을 바탕으로 계속 일을 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든지...

50대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도 이제 앞으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이제 반 남은 인생,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자.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헤어 드라이어 고치기

지난 1월 중순 이후 오래 지속된 절두(납땜인두를 자른다는 의미, 즉 납땜질을 하지 않음)상태를 청산하고자 딸아이가 망가뜨린 헤어 드라이어를 손수 고치기로 하였다. 전원코드가 반복적으로 꺾이면서 내부에서 단선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전원을 연결한 뒤 왜 작동이 안되나 궁금해하다가 코드에서 불꽃이 튀어서 십년감수하였다. 이러다가 주변의 먼지에 옮겨붙기라도 하면 - 작동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스위치를 넣은 상태로 그냥 팽개쳐 두었다가 집이 빈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불꽃이 튄다면 - 이는 곧바로 화재로 이어질 것이다.

너무 오랜만에 공구함을 열었더니 수족같이 부리던 와이어 스트리퍼가 보이지 않는다. 에휴, 피복을 무엇으로 벗긴담... 투덜대면서 기기를 분해한 뒤 납땜을 마쳤다.

실수를 발견하기 전의 모습.

재조립을 하려는 순간, 머리를 띵~ 하고 울리는 충격을 받았다. 전원부싱을 끼우지 않고 납땜을 한 것이 아닌가. 수축튜브를 끼우지 않고 선을 납땜해 버려서 이를 다시 끊어내는 실수를 어디 한두번 하였나. 극도의 좌절감에 휩싸였다. 실수는 아마추어의 특권이지만, 이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프로의 그것에 못지않다. 으아악, 다시 해야 되잖아!

선을 잘라내고, 다시 피복을 벗긴 뒤 납땜을 하였다. 싸구려 목인두는 용량이 높아서 이런 납땜 작업에 매우 유리하다. 재조립을 하려는데 드라이어 송풍구쪽 부품이 여기저기 금이 간 것을 발견하였다. 순간접착제를 바른 뒤 끈으로 묶어서 붙는 동안 벌어지지 않게 하였다. 요즘 나오는 공산품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아이들이 너무나 물건을 험하게 쓰는 것인지...

그래도 이 제품은 일반적인 스크류 드라이버로 분해할 수 있는 것이라서 자가 수선이 가능하였다. 예전에 사용하던 필립스 헤어 드라이어는 특수 드라이버로만 풀 수 있게 만들어서 고치지를 못했었다.

납땜인두의 열기와 플럭스의 향기(일부러 코를 대고 냄새를 맡지는 않는다)가 요즘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는 에스프레소와 다를 바가 없다. 공작 본능을 일깨울 소소한 프로젝트를 다시 찾아볼까?

학술회의 풍년 유감

구글에서 학술회의, 토론회, 모임 등과 관련한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예전에는 '낱말'이라는 순우리말 표현을 자주 썼었는데 요즘은 한자어인 '단어'가 이를 완전히 대체해 버려서 아쉽다.

  • 세미나(seminar): 1. 대학에서 교수의 지도 아래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학생들이 토론·연구하게 하는 교육 방법. 2. 전문인들이 특정한 과제에 관하여 행하는 연수회나 강습회. 순화어는 '연구회', '발표회', '토론회'.
  • 심포지엄(symposium):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두 사람 이상의 전문가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참석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의 토론회. 순화어는 '학술 토론 회의'
  • 포럼(forum): 1. 고대 로마 시의 중심에 있었던 집회용 광장. 2. 공공의 광장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공공의 문제에 대해 사회자의 진행으로 공개 토의하는 일. 토의를 위한 간략한 주제 발표가 있은 뒤, 청중의 참여로 이뤄짐.
  • 이외에도 colloquium, conference, congress, workshop 등이 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각종 포럼을 안내하는 게시글이 풍성하다. 전문학술단체의 연례학술회의는 말할것도 없고 지자체나 정부부처에서 추최하는 행사도 수두룩하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후자에 속하는 행사이다. 정부부처는 주최, 즉 행사나 모임을 주장하고 기획하여 여는 일을 하고(비용을 댄다는 의미가 강하다), 대개 산하단체에서 주관을 한다. 주관이란 어떤 일을 책임을 지고 맡아 관리함을 뜻한다. 일반인에게는 주최와 주관을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실제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잘못 표기하거나 실수로 순서를 바꾸거나 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단연 돋보이는 위치는 '주최'이기 때문이다. 주최자에 대하여 '을'의 입장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주변에서 청취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연구원 내 전자게시판에 올라온 최근 행사 목록을 나열해 보았다.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은 분명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엇비슷한 성격의 행사가 너무 많고 - 전세계에서 독보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행사가 많을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 이를 개최하는 단체나 조직의 '존재감 부각하기용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너무 많으며, 그 주최 기관의 영향력 하에 있는 하위 기관에서는 참여자 수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주관기관에서는 행사장에 오는 내빈(특히 주최기관 소속의)을 위한 영전에 엄청난 신경을 써야 한다. 소개 순서, 자리 배치, 안내 등.. 잘못하면 '내가 왜 저 사람보다 낮은 취급을 받게 만든거야?'하는 질책성 뒷말을 듣게 되기 떄문이다. 이런 행사를 처음 접하면서 내빈의 축사는 본인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기관에서 작성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내가 느낀 문화적 충격은 정말 상당하였다. 요즘은 이러한 일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만약 초청받은 인사가 직접 축사를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은 행사를 다녀야 한다면, 그런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도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는 사람이 내용을 미리 써서 건네는 관행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어느 정도 급의 인사가 내빈으로 오느냐에 따라서 이 행사의 중요성이 정해지고 만다.

이렇게 고급 호텔에 아침일찍 모여서 참여한 내빈들의 공허한 축사를 듣고, 다음 행사 참여를 위해 자리를 빨리 떠나야 하는 바쁜 내빈들을 위해 미리 기념사진촬영을 하고(제발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연출 사진은 그만!), 비싼 점심을 먹고, 사람들은 발표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마치는 형식적인 패널 토론으로 끝난다. 그래도 기자들은 의미있는 행사였다면서 기사를 찍어내기에 바쁘다. 혹시 건질만한 것이 없는지 청중으로서 열심히 귀기울여 듣고 메모도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은 듣도보도 못한 외국 학술행사에서 나를 강연자로 모시겠다는 이메일을 많이 받는다. 아마도 등록비 납부를 통해서 연명하는 그런 단체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유명한 학자라서 이런 메일을 받을리가 있겠는가?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메일을 추출하여 뿌리는 메일일 것이다. 

이런 '영혼없는' 행사가 늘어나면서 컨벤션 비즈니스가 확장되는 효과는 분명 거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너무 거기에 들이는 수고와 비용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보여주기·예산 소진용 행사는 이제 그만하자. 생기가 넘치고 자발적인 참여로 열기가 가득한 생산성 최고의 진정한 행사에 가고 싶다.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우리는 왜 억울한가(유영근 지음)

부제: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책 뒷표지의 소개글: 한국인들이 유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의 심정과 사회적 틀에서 받아들여지는 억울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늘지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법률적 정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현직 부장판사가 사회학적 상상력과 법적 균형감각으로 풀어낸 억울함의 실체와 해법.


현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는 유영근의 책 <우리는 왜 억울한가>를 읽었다. 저자는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소한 접촉사고와 자신이 활동하는 조기축구회가 주말에 학교 운동장을 빌려쓰는 문제와 관련한 개인적 경험을 예로 들어서 우리에게 억울함이란 어떠한 감정인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였다.

서양에서 시작된 심리학의 견지에서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억울하다'라는 감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한다('섭섭하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서양의 언어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갖게되는 감정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느끼는 억울함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약자여서 당한 일이고, 어쩔 도리가 없었고, 나한테 그 탓을 돌리는 한(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최상진 교수의 <한국인의 심리학>을 인용하면서 한국인 특유의 보편적인 감정인 억울함을 설명하는데 지면을 할애하였다. 이 부분은 나에게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이에 대해 분연히 저항하거나 일어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그것이 약자인 내 탓, 내 잘못이라고 자책을 하는 정서가 이렇게 우리에게 뿌리깊은 것이었나? 결국 그것이 홧병의 원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를 부정하고 극복해야 하지 않는가? 이는 나의 가족사와도 얽힌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와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이 숙제로 남아있다.

이 책은 심리학에 대한 책은 아니다.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소개하면서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억울함의 원인과 타당성 여부를 같이 고민해 보면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자는 취지에서 쓰여진 것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충돌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심화되었을 때 우리는 법원을 찾게 된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에는 딱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판사로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서로간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원만한 해법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분쟁 당사자 모두가 만족하는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였지만, 현행법과 사회정의 구현의 측면에서 판단하자면 옳음과 그름 사이의 경계에 걸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된 사례도 있음을 실토하였다.
재판을 하다 보면 명백히 거짓말하는 피고인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당사자나 증인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도 법관들은 일단 끝까지 듣고 담담하게 판결로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통상 법정에서 소리를 높일 때보다 조용히 판결로써 말할 때 결론은 훨씬 가혹하게 나온다. 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논쟁을 유도해 반박과 변명의 유지를 주는 것이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경우는 더 이상 반박과 변명이 무의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54쪽).
끊임없는 고뇌 속에서 묵묵하게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률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민주주의, 국민주권, 권력분립, 그리고 사상과 의견에 대한 표현이 자유, 평등의 원칙, 인권의 보장 같은 정치적·사회적 권리 - 275쪽]는 얼마나 많은 투쟁과 희생을 딛고서 얻어진 것인가? 물론 여기에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로 와서 싸운 미군(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떠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겠지만.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 하기(The Art of Dissonance)

늦은 가을 분위기가 가득하던 지난 토요일(2017/11/04), 가족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SeMA) 서소문본관을 찾았다. 지난번 방문에서는 전시 준비 중이라서 올라가보지 못했던 2층과 3층에서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하기>(링크)가 진행 중이었다. 관람 스케치는 구글포토 공유앨범에 남겼다.


이번 전시는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UK/Korea 2017-18 Creative Futures)를 맞이하여 준비한 기획 전시로서 영국문화원의 소장 품 중 16명 작가의 작품 약 26점으로 구성되었다. 1980뇬댜부터 현재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 정치, 문화적 주요 사건과 활동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들은 영사적 사실보다는 여러 사회 현상과 정치적 분역 문화 등 그 경계에 대하여 자신만의 언어와 목소리로 개입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살피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레이슨 페리 <포근한 담요(2014)>의 일부분, 290x800 cm

위 사진은 오늘날 영국인이라고 칭한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하는 그레이슨 페리의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서 찍은 것이다. 서구 주류 역사(정치사, 자본주의 역사...) 그리고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영국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다. 관습화된 계급 문화에 대한 비판을 담은 비디오 작품(마크 윌린저)은 영국 사회의 오래된 분열상을 엿보게 해 준다.



3층 전시장에 걸린 걸개 그림. 성 노동자의 연대를 촉구하는 구호가 이채롭다. 나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완벽하게) 단일한 민족 구성과 문화 및 언어를 유지해 온 우리의 모습이 과연 현재에도 장점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요즘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비록 나와 다른 너의 모습이 조화로운 화음이 아니라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이를 다양성의 하나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며 시위를 하는 저 어르신들도 다 우리의 부모들 아니던가. 촛불로 이룬 시민 혁명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길래 왜 아직까지도 거리에서 세상을 다시 거꾸로 돌리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일까?

2017년 11월 3일 금요일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께 - 정해영에게 이메일을 보내시려면

정해영의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구글 블로그는 댓들이 달렸음을 적극적으로 표시해 주지를 않습니다(설정을 바꿀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댓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댓글에 대한 댓글을 달 수 있는지, 아니면 원본 글에 작성자인 제가 댓글을 달면 앞서 댓글을 달았던 분들께 자동으로 알림이 가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리고 간혹 이메일을 문의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제 프로필에 어딘가에 당연히 이메일 주소가 공개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는게 그게 아니었네요^^

이메일 주소를 그냥 공개하면 이를 다른 용도로 악용하려는 사람 혹은 로봇이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약간은 다른 방법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제 구글 프로필로 가서 [정보]를 클릭하시면 맨 위의 소개란에 [정해영에게 이메일 보내기]라는 링크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 보일 것입니다. 여기에 회신 주소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시면 됩니다. 이 email 보내기 폼은 다음의 두번째 주소의 서브도메인으로 존재합니다.

(1) 이 블로그는 http://blog.genoblog.com/
(2) 저의 다른 주소는 http://genoglobe.com/ 또는 http://www.genoglobe.com/

(2)번 주소로 들어오시면... 사실 아래쪽에 제 이메일 주소가 있습니다.


독서 기록 - 플루언트, 인간증발, 솔직한 식품,


플루언트 | 조승연

부제: 영어 유창성의 비밀. 

영어는 국어(한국어)와 다르다. 언어의 발생 배경, 각 어휘의 의미 범주... 모든 것이 다르다. 문법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규제'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 한국 사회 내에서 영어는 외국의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계급화를 위한 평가 도구라는 것이다. 의사 소통의 도구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솔직한 식품 | 이한승

부제: 식품학자가 말하는 과학적으로 먹고 살기

가끔 학회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신라대학교 이한승 교수님의 책이다. 티스토리에서 All about Biotechnology, 바이오텍의 모든 것이라는 블로그(링크)로 이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취미와 신상에 관한 글로 범벅이 된 내 블로그와 비교를 하니 절로 반성이 된다. 212 쪽부터 나오는 '식품 역학 연구의 방법과 한계'는 나에게도 꽤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식품의 예방 효과를 역학적으로 입증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증례-대조균 연구(case-control study)
  2. 코호트 연구(cohort study)
  3. 무작위 대조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4. 메타분석(meta analysis)
어제부터 들춰보기 시작한 보건역학입문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다루어진다. 실험설계론을 제대로 배우거나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증발 | 레나모제 글·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부제: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매년 10만 명의 일본인이 자발적으로 사라진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사정을 품은 노숙자들이 있지만 '증발'되는 일본인처럼 철저하게 신분을 세탁하거나 속이는 일은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이들은 그래야 할까? 심지어 야반도주를 도와주는 이삿짐 업체도 있다 하니 말이다. 177 쪽에서는 2008년부터 침체기를 맞은 도요타시에서는 사람들이 떠나거나 병들고 있다. 원래 소도시였던 코로모는 이곳을 1959년에 도요타의 방식을 실현하는 특별한 곳으로 만들고자 이름까지 바꾸었다. 미국의 헨리 포드의 경영 방식을 극도로 심화하여 적용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신념이요, 나쁘게 말하면 세뇌 작업이었다. 오늘 오전에 참석했던 지역과학기술 혁신토론회에서 받은 자료집에서는 도요타의 고유한 조직 문화(정신상태에 임베드되었다고 표현)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었다. 말하자면 도요타 공장을 견학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증발 책에 따르면 찬사만 늘어놓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본 사회에 대한 다른 소개서를 읽어 볼 흥미를 유발하는 책이었다.

음악회의 즐거움

대전시립교향악단의 공연을 최근에 꽤 많이 보러 다니고 있다. 이제는 법인회원용 입장권을 나누어주는 직원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인사를 나누는 수준이 되었다.

공연 전에 근처 카페에서 단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던 첼리스트 이송희씨를 만나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링크),

어제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씨를 공연 후 만나서 CD에 직접 사인을 받기도 하고(링크).

무엇보다 좋은 것은 아내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같이 공연을 감상한다는 것이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주변의 아름다운 정경이 변하는 모습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휴대폰 카메라의 화질이 별로 좋지 못한 것이 아쉽다.


구글플러스에서 작성한 내 포스트는 어떻게 검색해야 하나?

구글플러스에서 예전에 사진과 함께 올린 나의 포스트를 본 블로그에서 링크하고자 한다. 그런데 검색을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겠다. 구글플러스의 내 프로필로 가서 스크롤바를 줄줄 내려서 원하는 글을 수작업으로 찾고 말았다. 구글플러스의 검색창에 키워드를 넣는 것으로는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니...

지역과학기술 혁신토론회 참석 후기

"4차산업혁명, 이제는 생존이다(과학기술 핵심전략을 중심으로)"
현장 스케치 사진

오늘(2017.11.3.)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대전광역시가 공동으로 주최한 지역과학기술 혁신토론회에 참석하였다. 장소는 대전 유성의 라온컨벤션호텔(구 유진호텔)이었다. 유성지역의 국회의원도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고 대전광역시 4차산업혁명특별보좌관도 참석하여 대전시의 정책에 대해서도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 애를 써서 준비한 모습이었다.

특히 두 사람의 주제발표를 매우 인상깊게 들었다. 첫 순서에는 심진보 ETRI 기술경제연구 그룹장이 "제4차산업혁명 시대의 본질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두번째에는 안오성 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 "R&D 거버넌스 이슈와 의문요인, 자율성 확보는 시작일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였다.

경영학 박사인 심진보 그룹장은 제4차 산업혁명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실재(實在)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변혁에 대한 이해와 대응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민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논하는 곳이 한국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 정부가 혁신, 저탄소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을 내세웠지만 별반 효과를 보지 못하였듯이, 성장 동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에 의한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것에서 기안하는 것으로 진단하였다.

1차부터 3차 산업혁명까지는 인간의 손발(노동력)을 대신하는, 즉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혁신인 반면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두뇌를 보완하는 혁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각 선진국마다 조금씩 이를 대비하는 모습은 다르게 나타난다. 클라우드 생태계를 선점한 미국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전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데이터가 모인다. 반면 유럽(특히 독일)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제조업 혁신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을 이루고자 한다. ETRI에서는 DX(Digital Transformation)을 더욱 진화시켜 디지털 기술의 통합화 및 인공지능 기반으로 구현되는 IDX(Intelligent Digital Transformation)를 제시하고 민간에서 공공에 이르는 14개 분야를 아우를 IDX 플랫폼 개발을 계획 중이라고 하였다.

안오성 박사는 제한된 시간 관계상 슬라이드를 편집하여 앞쪽에서 주제를 발표하였다. 미처 발표하지 못한 뒷부분의 슬라이드는 자료집에서 참고해야 했는데, 묵직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많았다. 어찌보면 바이오 분야의 연구자들은 '우리에게(혹은 우리 분야에) 연구비를 더 달라'는 논리를 펴기에 바쁜데, 국가 전체의 R&D 틀에 대해서 큰 시각에서 바라본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몇 가지 슬라이드 제목과 내가 메모한 것을 정리해 보겠다.

  • 낮은 열매 따먹기의 또 다른 사례: 정책 포럼. 토론을 위한 포럼 vs 존재감 홍보를 위한 행사인가?
  • 출연연은 왜 이런 문제의 구조적 원인/재발방지를 요구하지 않는가? 이명박 정부 당시 로봇물고기 해프닝... 출연연/연구회는 국가 R&D 정책관련 여러 문제/적폐에 대해 보도자료를 낼 수 있는가?
  • 국가가 R&D를 지원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 대학과 대기업의 약진 속에 출연연의 역할은 무엇인가?
  • 연구생산성의 부실은 누구 책임이며,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 충분한 시간(축적의 시간? 이제 그런 거 요구하지 말자), 예산, 자원이 주어지면 연구생산성이 좋아질 것인가?
  •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국회의원에게 우리 요구를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우리 존재를 스스로 작게 만드는 일이다. 정치인을 찾아가는 것으로 우리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 미래 예측, 외국 벤치마킹에 매몰되어 우리만의 현실을 보지 못하였다. 우리만의 컨텍스트에서 전략을 재정의하자. <= 오늘 패널토론의 맺음말. 내가 생각한 하이라이트!
아하, 안오성 박사는 대덕넷에서 <안오성의 과학 정책>이라는 연속 기고문을 게재한 바 있었다. 나도 얼핏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달린 덧글도 매우 긍정적이다. 나 하나 혹은 내가 속한 조직(혹은 연구소라 해도 좋다)의 존립(솔직하게 '생존'이라 말하자)만을 생각하다가 조직의 입장을 떠나 국가적인 시각에서 고민한 흔적을 보니 한편으로는 부끄러우면서도 속이 다 시원하였다. 항우연 내에서도 옳은 목소리를 내는 연구자 및 오피니언 리더로서 인정받는 분이기를 기원해 본다. 물론 오늘 처음으로 접한 발표를 듣고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옳지 않은지도 모른다. 대덕넷에서는 혁신을 주도하는 기관장으로 소개가 되었지만 덧글을 보면 무엇이 진정한 올바른 시각인지 판단이 잘 안서는 기사도 있기 때문이다(링크).

선도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아니, 좀 더 심각하게 바꾸어 보자. '선도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한다!' 절박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나는 좀 달리 생각해 보고 싶다. 의무감이나 절박함으로 일을 한다면(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한국은 S사도 이러한 식을 업무를 추진하는지 모르겠다) 당장은 마지못해 결과가 나올지 몰라도, 즐거움에 일을 하는 사람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즐겁게 일을 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생존도 하게 되고, 또 몰입하는 즐거움 속에 세상을 선도하게 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 것인지? 내가 너무 순진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