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을 응급실에서 보내다

미술학원을 가야 하는 딸아이가 갑자기 목이 아프다며 제대로 몸을 가누기 어려워한다. 미대 입시를 위한 실기시험을 앞두고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드디어 몸에 탈이 난 모양이다. 학원에서 하루에 14시간 가깝도록 불편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니 늘 목, 어깨, 허리의 통증을 호소해 왔었다. 게다가 유일한 휴식과 소통의 수단인 휴대폰은 또 얼마나 나쁜 자세를 유발하기 쉬운가. 차를 몰고 근처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올해 초 음력설 연휴가 시작될 즈음 딸아이는 깨진 향수병을 버리려고 넣어 둔 비닐봉지를 잘못 밟아서 발바닥 바깥쪽의 두터운 피부가 꽤 깊게 파여나가는 작은 부상을 입은 일이 있다. 서둘러 을지대학병 응급실을 찾아 피부를 꿰매는 작은 시술을 받았었다. 마취도 없이! 엄지손톱만하게 떨어져 나간 살 조각을 가지고 갔지만 이를 제자리에 붙일 수는 없다고 하였다. 아이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바느질(?)을 잘 견뎠다.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응급실 체계가 예전보다 많이 선진화되었다. 보호자는 한 사람씩만 입장이 허용되고,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증세에 따라 분류하고 진행 상황을 대기실에 있는 동반인에게 알리는 등 시장바닥같이 법석대는 모습은 거의 줄었다. 몇 차례의 국가적 outbreak를 겪으면서 감염 관리도 철저하다. 하지만 어제 저녁 외출을 했다가 사람이 꽉 찬 신분당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서 이동을 하니 감염병이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목과 어깨가 아픈 딸아이는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진통제와 수액을 맞고 있다고 아내가 대기실에 있는 나에게 전화로 알려왔다. 통증은 한층 가라앉았다고 했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비슷한 일을 겪은 일이 있다. 당시에 나쁜 자세로 이러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겠지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는 금세 회복이 되었었다. 

중년인 나나 성년이 된 딸이나 경추의 상태는 통증을 유발하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루 종일 목을 빼고 컴퓨터를 보거나 두 팔을 앞으로 빼고 휴대폰을 매만지는 자세가 결국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시선과 관심을 화면 바깥의 세상과 바로 곁의 사람에게 돌려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디자인 전공을 위한 대학 입시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 외형적으로는 일반 미대 입시와 비슷해 보이지만 문제의 형식도 많이 다르고 이를 전공으로 택하려는 수험생도 이전보다는 훨씬 많다. 이미 한 차례의 실패를 겪었는데 이번 기회는 어떤 결말을 가져다 줄지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어린 수험생들이 건강을 해치지 않고, 또한 좌절에 빠지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모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에는 개선된다고는 하지만, 2천명 가까운 수험생이 킨텍스에 모여 시장바딕같은 분위기에서 수시 실기시험을 치르게 하는 서울대학교 미대의 정책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119 구급대가 한 차례 왔다 가고,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환자들이 계속 휴일의 응급실을 찾는다. 모두 쾌차하시길.

2019년 12월 22일 일요일

린지 폴락(Linsey Pollak)의 DIY 관악기

색소폰용 마우스피스에 구멍을 뚫은 파이프를 연결하면 클라리넷류의 목관악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라이온 향기따라' 블로그에서 린지 폴락이라는 사람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클라리니Clarini 링크). 린지 폴락은 호주 출신의 음악가이자 악기 제조가이며 발명가로서 2003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KBS 뉴스 링크). 색소폰 마우스피스를 쓰면서 왜 클라리넷이라고 부르는 것이냐고 따지지는 말자.

당근 클라리넷 만드는 법. 출처: https://www.linseypollak.com/instruments/

그의 웹사이트에 소개된 DIY 관악기 중에서는 Clarini(제작도면 PDF 파일)가 가장 현실성이 있다. 본체의 주료 재료인 irrigation riser pipe는 1/2 인치 ID(아마도 내경internal diameter) 15 mm라 하였는데, 아마 농자재를 취급하는 곳에서 농수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린지 폴락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Making a Paper Clarinet' 링크) 중에는 포장지를 말아서 만든 클라리넷도 있다.


동영상이 끝나는 부분에 설계도가 나오는데 위에서 소개한 Clarini의 치수와는 약간 다르다. 대단히 간단하다. eBook 'Make your own Mr. Curly & other Clarinets'(링크)를 구입하면 그가 개발한 악기의 더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Ammoon Pocket Sax의 알토 색소폰 마우스피스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출처: 'Making a Paper Clarinet' 링크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Ammoon의 8-hole LittleSax(B♭) 좀 더 알아보기 - 치명적 단점 발견!

악기에 딸려온 합성 리드를 케인 리드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은 소리를 나게 하는 방법임을 베노바를 통해 깨달았다. Ammoon LittleSax는 어떠한가? 리드가 무려 10개나 들어있지만 설명서를 보면 하나씩 테스트를 해 보고 가장 소리가 잘 나는 것을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하나씩을 번갈아 끼워서 불어 보았더니 두세개 정도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고, 소리가 매우 잘 나는 것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리드가 매우 단단하고 그 정도 역시 고르지 않아서 단번에 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동봉된 리드의 품질이 이렇게 좋지 않으니 리드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베노바를 위해 구입했던 것과 동일한 회사(AW-Reed GbR)의 알토 색소폰용 리드(2.5호)를 구입해 보았다. 구글에서 이 회사를 찾으니 폐업을 했다는 정보가 나온다. 그래서 비교적 싸게 리드가 팔리는 것일까? 회사 홈페이지(링크)에서는 폐업 여부를 알 수 없다.


Ammoon LittleSax에 포함된 순정 리드는 그야말로 복불복이었지만, AW의 것은 단번에 좋은 소리가 났다. 5개 들이 AW 리드의 가격은 할인된 가격으로 산 LittleSax의 그것에 거의 접근한다. 리드를 바꾸는 것 이상의 투자는 할 필요가 없다.

AL, AW의 알토 색소폰용 리드. AL', Ammoon에 기본 포함된 리드. SL, AW의 소프라노 색소폰용 리드. SL', 베노바에 기본 포함된 리드.

Ammoon 8-hole LittleSax(key B♭)의 미스테리는 공식 운지표에는 높은 E음을 어떻게 불어야 하는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의 사진을 보라. 위의 것은 key B♭, 아래 것은 key C 제품의 운지표이다. 오버톤으로 불어야 하는 높은 음(분홍색 배경)은 제품에 따라 운지가 다르다고는 하는데, 어째서 B♭ LittleSax 운지표에는 높은 D#(E♭)과 E를 부는 방법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비디오 튜토리얼에 혹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국어로 된 동영상 31개 중 어느 것에 그 방법이 소개되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몇 개를 클릭하여 열어보니 중요한 곳에는 영문 자막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첫 소리를 내는 단원에서는 아랫입술로 아랫니를 살짝 말아서 마우스피스를 무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다. C조 LittleSax 운지표에는 높은 E를 연주하는 운지법은 나오지만 희한하게도 D#(E♭)은 없다.


높은 E를 어떻게 부는가... 왼손 엄지로 막은 구멍을 살짝 열고 불었을 때 나는 소리는 E인가 F인가? 비디오 튜토리얼(31강 overtone skill) 및 C조 LittleSax의 운지법에는 이것이 E라고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F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지?

2019년 12월 22일 업데이트: 높은 D#(E♭)과 E는 연주 불능!(B♭ key 제품)

몇 음을 부는 방법이 운지표에 나오지 않는 문제를 LittlsSax 개발자인 He Linxian에게 이메일로 문의하였다. 그랬더니 즉시 답장이 왔는데,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이후에 개발된 C 키 버전에서는 이 문제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D#(E♭) 한 음을 불 수 없다고 한다, 두 음을 불 수 없는 것에 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음역대 거의 중간에 위치한 음 자체를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결함이 아니겠는가? 매뉴얼과 광고 어디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밝힌 곳은 없다. 불량품이 아니라 설계상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서른개가 넘는 실습용 동영상을 올릴 정도로 LittleSax의 저변 확대를 위해 들이는 He Linxian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높은 위치의 '미♭'와 '미'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가? 초등학생 교재용 소프라노 리코더도 이렇지는 않다.

할인된 가격에 산 것은 다행이지만, 추가로 비용을 들여서 AW 리드를 산 것은 과한 일이 아니었을까? 동봉된 10개 리드 중에 쓸만한 것이 두세개는 있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PVC 파이프를 자르고 구멍을 뚫어서 나만의 악기를 만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알토 색소폰 마우스피스는 하나 챙겼으니 말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흥미로운 정보가 많다. 라이혼 향기따라 티스토리 블로그의 '악기' 카테고리에 참고할만한 정보가 많음을 발견하였다.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The Clumsy Venovist] Ammoon B♭ Mini Saxophone(8-Hole 'LittleSax') 도착

알리익스프레스에서 12월 3일에 주문하여 12월 18일에 받았으니 배송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동수원 우체국에 도착한 것은 17일 새벽이었지만 바로 그날 배달이 되지는 못하였다. 마우스피스(색소폰용 알토 마우스피스)를 결합하기 전에 코르크 그리스를 발라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바셀린을 조금 발랐다. 리드는 무려 10개가 들어 있는데, 동봉된 설명서에는 전부 특성이 다르니 소리가 잘 나는 것을 택해서 쓰라고 하였다.

야마하 베노바(위)와 비교한 사진. 

리가춰는 저가품 느낌이 난다. 이 가격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ammoon'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마우스 피스를 이렇게 끝까지 밀어넣으면 안된다.
B♭ 제품은 마우스피스를 파이프에 끝까지 밀어넣어 끼우면 안된다. 10 mm 정도 떨어지게 유지해야 한다. 원본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aTCLEvjvVes이다(비디오 튜토리얼 2번 'Assembly and maintenace).

베노바의 마우스피스를 물던 방식 그대로 입에 물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 어라? 쉭쉭거리기만 할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암부슈어를 바꾸어 보면서 애를 쓰니 대단히 높은 소리가 가끔 새어 나오기만 한다. 입술 밖으로 나온 부분을 손가락으로 지지하여 마우스피스에 밀착한 뒤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제 음높이의 소리가 나온다. 물론 이렇게 악기를 연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암부슈어를 계속 바꾸어 보다가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마우스피스를 좀 더 짧게 물었더니 어렵사리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랫니를 입술로 덮고, 윗니로는 마우스피스를 누르는 정석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고 그저 초등학교 때 리코더를 불듯이 입술로만 마우스피스 끝을 물고 바람을 넣어도 소리는 잘 난다. 그러나 음량은 베노바보다 훨씬 작고 음색은 두툼하고도 부드럽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불기에는 매우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색소폰'을 연주하게 되면 지금과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까? 베노바와 암문 미니 색소폰이 이렇게 다를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음색과 음역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떠한 관이 붙어있든 소리 자체를 내는 요령은 순전히 마우스피스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소프라노와 알토가 이렇게 다르다니 정말 놀랍다.

베노바는 독일식 리코더의 운지법과 거의 같다. Xaphoon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어서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구입한 관악기의 운지법은 리코더 또는 Xaphoon과 완전히 다르다. 특히 중간 '시'를 짚는 방법을 보니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관의 뒷쪽 중간쯤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개폐하는 구멍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제품에 딸려온 운지표를 아래 사진에 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높은 '미'를 짚는 법이 아예 나오질 않는다. 악기 제조사 웹사이트에 있는 매뉴얼 파일을 찾아보니 편집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운지법이 서로 다른 관악기를 불다보면 치매 예방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품에 포함된 운지표. 분홍 배경으로 칠해진 높은 음역의 운지법이 잘못되었다.

2019년 12월 12일판 웹사이트에 게시된 매뉴얼(2019년 10월판) 42쪽의 수정된 운지표.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악기 판매처는 Ammoon이지만 실제 개발과 제작을 한 곳의 웹사이트가 존재한다. 상세한 설명서와 동영상 등이 여기에 있다. 중국어 위주라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2014년에 11홀 버전이 먼저 나왔고 더욱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지금의 8홀 버전이 나왔다고 한다.

매뉴얼 맨 뒤를 보면 정식 품명은 LittleSax Simple Saxophone이고 Fuzhou LittleSax Musical Instrument Co., Ltd.에서 제조하였음을 밝혔다.


이 악기는 '8孔小萨' 또는 8-Hole LittleSax라고 불러주는 것이 개발자 He Linxian의 뜻에 더욱 가까운 것 같다. 참고로 '萨'는 색소폰을 중국어로 부르는 명칭인 '萨克斯风'의 첫글자를 딴 것이다. 발음은 유튜브를 참조하라. '싸커쓰꾸안(sà kè sī guǎn)' 정도로 들린다.

이러다가 Xaphoon, Saxmonica, MiniSax를 전부 섭렵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음은 유튜브에서 찾은 Elle Jimmy Tan의 Ammoon Mini Pocket Saxophone 개봉기이다.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The Clumsy Venovist] 리드(reed)의 맛

일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더니 AW의 케인 리드가 드디어 수명을 다하였다. 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가 나가듯 끝부분이 망가졌다. 마우스피스에 끼운 상태에서 칼로 살짝 도려내는데 엉뚱하게 칼날이 마우스피스 위로 지나가고 말았다. 으이그... 집에서 쓰는 돋보기 안경의 도수를 더 올릴 때가 되었다.

리드 트리머를 쓰지 않고 대충 잘라서 그런지, 혹은 너무 많이 잘라내서 그런지 소리를 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 이제는 교체를 해야지.. 아침에는 순정 합성 리드를 꽂아서 힘겹게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두번째 케인 리드를 끼워서 수월하게 소리를 내었다. 입술 근육과 부는 힘을 키우려면 뻣뻣한 합성 리드가 도움이 된다. 더디지만 소리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두번째 케인 리드는 맛이 좀 이상하다. 원래 이랬었던가? 마치 땀에 전 속옷에 혀를 댄 느낌이랄까, 찝찔하게 느껴지는 것이 영 개운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물에 몇 시간 담가서 맛이 나는 미지(?)의 성분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장 내기 어려운 소리는 F#이다. 매뉴얼에도 이 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했으니 받아 들여야 하겠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시-도를 빠르게 연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왼손 검지와 중지를 매끄럽게 교차시키며 운지하는 것이 어렵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한 Ammoon의 포켓 색소폰은 오늘 항공편으로 드디어 국내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늦어도 모레까지는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어떤 묵직한 소리를 내어 줄지 기대가 된다.

자체 검열을 많이 한다는 것

<르몽드 비판 경제학>을 읽으며. 종로 영풍문고에서 아내가 정해영을 촬영하다.
대형 서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는 그 책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만약 표지를 꽉꽉 눌러 접어서 넘겨가며 손에 침을 발라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나의 모습이 누군가의 휴대폰에 찍혀서 그날 저녁 '몰지각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올지도 모른다.

누구나 휴대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의 바람직한 고발·자정 작용이라 해야 할까?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일반인,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지정된 구획을 넘어서 세운 자동차, 식당의 '진상'손님... 별별 상황의 사진을 찍어서 '(극혐)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비난조의 글이 함께 올라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바로 그 상황에서 지적을 하여 바로잡거나, 문제가 발생한 커뮤니티 안에서 해결하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공론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글을 올리는 동기은 십중팔구 댓글이 달리는 것으로부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게다. 건전한 고발의 목적이라면 사회적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만한 것만 걸러서 올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에 대한 실천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읽으나 마나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더 이상 들락거리지 않는 것이다.

나도 내 블로그를 통해 이런 사소하고 소심한 복수를 가끔 한 일이 있다. 그러나 블로그와 공개 커뮤니티 사이트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의 나는 <르 몽드 비판 경제학>책을 구입한 뒤 읽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에 구입한 나의 소유물이니 펜을 꺼내 밑줄을 치든, 책장을 넘기면서 접거나 살짝 찢든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점 안에 마련된 자리에서 책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판매용 책을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조심스럽게 책을 읽었다. 아! 차라리 구입 영수증을 책갈피 삼아 끼운 상태로 읽었더라면 좀 더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잘 팔리는(혹은 잘 팔리기를 기대하며 밀어주는) 책은 이렇게 평서가에 놓여있다. 가운데에는 <르몽드 비판경제학>은 내가 올려놓은 것으로, 그 아래에는 다른 책이 놓여 있었다. 맨 오른쪽 <금융의 역사>는 아마도 나머지 경제학 비판서와는 다른 분위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The Clumsy Venovist] 연습, 또 연습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에 2-3회 열심히 베노바를 연습하고 있다. 하루에 연주하는 총 시간은 아마 2시간을 조금 넘을 것이다. 케인 리드로 바꾼 이후 소리를 내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최근 이삼일은 열심히 텅잉('tonguing')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물듯이 한 상태로 마우스피스를 문 다음 혀를 놀려서 음을 끊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암부슈어 - 여기에는 혀를 잘 놀리는 것도 포함한다 - 를 완성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린다고 하니 조급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악기 연습을 마치면 바닥에 떨어진 침을 닦아서 뒷정리를 해야 한다. 평소에 내가 침이 좀 많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관악기 연습을 하니 약간 과장을 보태어 모든 구멍에서 침이 흘러나옴은 물론이요, 바닥에도 뚝뚝 떨어져서 그 흔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남는다. 별도로 수건을 갖고 다니면서 바닥에 깔고 연습을 해야 될 것 같다. 베노바는 악기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관을 구불구불하게 만든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막는 뒷편 구멍(아래 사진에서 빨강 화살표로 표시한 곳)이 구부러진 돌출부에 위치해 있어서 이쪽으로 침이 흘러나오기 쉽다. 그러면 높은 음을 불기 위해 이쪽 구멍을 열었을 때 소리가 예쁘게 나오질 않는다.



어차피 캐주얼 관악기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이런 사소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재설계를 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베노바로 연주한 정식 음반이 나올 정도로 이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또 모를까. 요즘에는 음반을 내는 것이나 유튜브에 연주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기는 하다. 유튜브에 베노바 연주 동영상은 꽤 많으니 말이다. 이것이 연주자에게 얼마나 수익을 가져다 주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아직 피치도 불안하고 음이탈('삑사리')이 자주 일어나 고전하고 있지만 간단한 곡은 연주할 수준이 되었다. 케인 리드의 탄력이 처음보다는 조금 줄어든 것 같다. 기타줄을 갈듯, 관악기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2019년 12월 11일 수요일

yes라는 기괴한 명령어

업무를 위해 VPN을 통해서 종종 외부 - 내가 원래 소속된 기관 - 에 있는 리눅스 서버에 접속을 한다. CLC Genomics Workbench를 쓰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VPN 접속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일정 시간 동안 키 입력이 없으면 끊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정확히 몇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20-30분 정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Command line interface에서 돌아가는 응용 프로그램이라면 nohup으로 돌려놓고 로그아웃을 해도 되지만, CLC Genomics Workbench와 같은 GUI 프로그램은 그렇게 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disown 명령어를 쓰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좀 더 나중에 알아보자.

작업을 돌려놓고 기다리는 상태에서 VPN 접속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일부러 키 입력을 하거나 마우스를 건드리기는 매우 귀찮다. 키 입력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물어보지를 못했다.

구글에 물어보자. CLI에서 저절로 키 입력을 생성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yes라는 명령어가 바로 그것이다. yes라고 치면 화면에 y가 줄줄 출력된다. 마치 y와 엔터를 계속 입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yes why라고 입력하면 이번에는 why가 계속 출력된다. 언제까지? Control+C를 눌러서 멈추기 전까지 영원히!

yes는 계속 'y'를 입력해야 하는 명령어 또는 스크립트의 실행을 위해 쓰인다. 다음과 같이 약간 장식을 하면 1부터 20까지의 숫자가 1초 간격으로 반복하여 화면에 표시된다. $(seq 1 20)을 적당한 문자열로 바꾸어도 된다. 그저 yes라고만 쳐도 되지만, 화면에 한 줄로 비가 내리듯 y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면 마치 컴퓨터를 혹사하는 것 같아서 때로는 1초 간격으로 느긋하게 뿌려대고 싶다.

$ yes "$(seq 1 20)" | while read digit; do echo $digit; sleep 1; done
1
2
3
4
5
...

이 트릭은 How to use the yes command on Linux에서 얻었다. 원본 one-liner는 echo $digit라고 써야 할 곳에 echo digit라고 잘못 기재하였다.

2019년 12월 13일 업데이트

터미널 창을 하나 더 열어서 yes 명령으로 아무리 키 입력을 위조(?)해 넣어도 소용이 없었다. 화장실에 좀 오래 다녀온 다음 책상 앞에 돌아와 앉으니 한창 작업을 하던 CLC 화면이 날아가고 접속이 끊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으으... 이것 때문에 편의점에 달려가서 사 온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모니터 앞에 앉아서 지켜보던 날이 몇 날이었는데! VPN 접속 프로그램은 자기 기분대로 접속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모양이다.

2019년 12월 7일 토요일

[The Clumsy Venovist] 새로운 세계를 연 케인 리드

원래 계획으로는 새로 주문한 Ammoon의 B♭ mini saxophone이 도착하면 케인 리드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니, 그 이후에 베노바의 리드를 바꾸는 문제를 고민해 보려 했었다. 그러나 케인 리드는 그렇게 비싼 물건도 아니고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하루만에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것이라서 다소 성급하지만 베노바에 호환되는 케인 리드를 쿠팡에서 주문하고 말았다. 보통 반도린(Vandoren)이라는 회사의 것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이번의 선택 기준은 오로지 가격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소프라노 색소폰 리드 중에서는 가장 가격이 싼 AW(회사 홈페이지 링크)의 2.5호 제품을 구입한 것이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고, 베노바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나는 이렇게 리드를 바꾸는 실험에 돌입하였다. Ammoon의 관악기는 12월 7일 비행기에 실려서 생산국인 중국을 막 떠난 상태이다. 이러다가 MiniSax, Saxmonica 및 Xaphoon을 하나씩 다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최종적으로 클라리넷과 '진짜' 색소폰 중 어느 것에 정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왼쪽이 베노바의 순정 합성수지 리드. 오른쪽이 이번에 구입한 AW의 케인 리드이다.



앗, 세상에 이런 일이! 베노바에 원래 포함된 합성 리드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피치를 맞추기 위해서 입술에 힘을 더 주고 마우스피스 각도를 조절하는 등 이전처럼 애를 쓸 필요도 없었다. 적은 힘으로 소리가 잘 나니 숨 조절을 하면 방음이 잘 안되는 곳에서 평소보다 작은 소리로 연습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합성 리드는 아직까지의 내 실력으로는 소리 크기 조절이 잘 안되어서 늘 귀가 쩌렁쩌렁하도록 큰 소리가 났다.

베노바에 합성 리드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것은 되도록 되도록 오래 쓰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한 개의 가격을 비교하면 합성 리드가 더 비싸다. 만약 케인 리드가 베노바에 기본 제공되었다면 초보 연주자가 제때에 교체를 하게 될 것 같지 않다. 합성 리드를 사용해서 초보자가 소리를 수월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오히려 이것으로 일주일 정도 하드 트레이닝을 한 결과 케인 리드를 갈아 끼웠을 때 훨씬 편안하게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리드의 호수가 클수록 더 단단하고 불기가 어렵지만 고음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두께 자체는 차이가 없다는 글도 있고 호수가 크면 더 두껍다는 글도 있다. 외형 치수는 거의 동일하되 리드의 제작에 사용된 케인의 밀도가 다른 것이 맞을 것이다.

'순정' 합성수지 리드를 치워버릴 생각은 없다. 연습을 할 때 항상 휴대하면서 어렵게 불던 당시의 입술의 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The Clumsy Venovist] 바른 소리를 내기 위한 '암부슈어'

Embouchure는 관악기를 불기 위해 입술, 얼굴 근육, 혀, 그리고 이(치아)를 쓰는 방법을 말하는 음악 용어이다. 앙부쉬르, 앙부셰, 앙부셔, 앙부쉬어 등 여러 한글 표기를 볼 수 있는데 나는 고집스럽게 '암부슈어'라고 쓰겠다. 구글에서 찾을 수 있는 영어식 발음은 암부슈어에 가깝고, 베노바 소개 책자에도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관악기가 그렇지만 베노바는 암부슈어에 무척 민감한 악기라는 평이 많다. 동일한 암부슈어(내 생각에)를 한 상태에서 낮은 C, 중간 G, 높은 C를 불면서 튜너를 작동시키면 기준음에서 벗아나는 정도가 모두 다르다. 낮은 C를 튜너에 맞추어 불면서 손가락만 바꾸어 G를 불면 반음 정도 낮고, 이어서 높은 C로 바꾸면 B♭로 측정된다. 정말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게다가 낮은 C와 D는 걸핏하면 '퍼더더덕' 소리가 나기 일쑤이다. 중간 G를 불다가 손가락을 다 덮어서 낮은 C로 바꾸어 보라. 도대체 깨끗한 소리가 나질 않는다. 입술의 조이는 힘과 악기의 각도, 그리고 마우스피스를 무는 깊이를 조절하여 피치를 맞출 수는 있다. 현재는 이것을 연습하고 있는데 음 높이마다 조절하는 정도를 조금씩 달리해야 하니 정말 힘들다.

영어쪽 표현을 보면 베노바를 불다가 'squeak'하거나 'honk'를 하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 다른 종류의 관악기를 불어 본 일이 없으니 클라리넷이나 색소폰을 부는 초보자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겪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터넷에 워낙 색소폰을 위한 자료가 많아서 여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물론 베노바는 완전히 새로운 악기이고,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쓴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많지 않다. 베노바 설계에 대한 학술 자료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Research and development of a casual wind instrument: Venova(TM)').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악기에서 분리하여 불면 D음이 난다고 한다(Mouthpiece exercise - Taming the saxophone 웹사이트). 튜너로 이 소리를 측정해면 내가 제대로 된 암뷰슈어를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노바는 베노바대로의 문제가 있으니 위에서 언급했듯이 높은 음으로 갈수록 음이 처지는 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암부슈어를 계속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내 짧은 경험으로는 그러하다.

반음을 깨끗하게 연주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베노바 안내 책자에도 잘 나와있다.

  • F♯, G♯, B♭ 등의 반음은 날카롭게 연주하기 쉬우며 공명시키기 어렵습니다(hard to resonate).
  • 운지와 공기흐름, 암부슈어 제어를 사용하여 음조를 조절하십시오.
이런 고민을 나만 한 것은 아니다. 외국의 색소폰 관련 포럼에도 이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있다. 

[Sax on the web] ...For those of you who have played a Venova, have you had success playing the low F#, G#, B♭? Any tips? Thanks! 링크

Andy A1S의 답변이 너무 길어서 여기에 다 옮기기는 어렵다. 운지표로 나타내면 좋을 것을 전부 말로 설명해 놓아서 언뜻 이해가 잘 가지는 않지만 글쓴이는 베노바의 운지법 개량을 위해 무척 많은 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한 베노바 개발에 관한 학술 자료 중 "3.3.2 Adjustment of cross fingering" 항목을 보면 피치와 연주 편의성 사이의 균형을 위하여 cross fingering(개방한 구멍 위 아래를 막는 것)을 조정('adjust')했다고 한다. 그러나 Andy A1S가 cross fingering을 통해서 소리내기 까다로운 음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것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정도 베노바를 불면서 겨우 소리나 내는 주제에 너무 연구를 하려 드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을 조사할 시간에 차라리 연습을 더 하는 것이 나을지도...

2019년 12월 4일 수요일

[The Clumsy Venovist] 좌절...

튜너를 작동시키고 베노바 연습을 하는 것은 분명히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제 위치에 이르지 못하는 바늘을 보면 속이 상하지만.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전반적으로 소리가 낮다. 낮은 음에서는 비교적 덜하지만 G를 넘어가면 매우 심해진다. 낮은 음이라고 해도 만만하지는 않다. 깨끗한 소리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 + 합성수지 리드가 빚은 문제일까? 나의 구강 구조와 베노바에 최적화된 암부슈어를 찾는 지난한 과정은 아직 첫 발자국도 떼지 못한 상태와 다름이 없다.  "Venova를 연주해봅시다!" 책자의 88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초보자가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리드(정말?)가 기본으로 제공되지만 높은 피치를 표현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악기에 충분한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되면 더욱 단단한 리드로 바꾸어서 높은 피치를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 단단한 리드는 다소 날카로운 피치로 연주됩니다.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첫 관악기를 입문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내가 겪고 있는 것인지? 이런 문제 때문에 야마하에서도 2019년 알토 베노바 YVS-120을 출시하게 된 것은 아닐까? 레슨 동영상은 YVS-100이 8개, YVS-120이 12개이다. 혹시 YVS-100을 단종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겨우 일주일 정도 연습을 한 상태에서 어떤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 이르다. 아마존에 올라온 베노바의 리뷰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베노바에 대한 사용기를 가장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이 아마존의 리뷰였다. 리드 악기에 숙련된 사람도 정확한 피치의 좋은 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다. 베노바의 가장 큰 의미는 새롭게 만들어진 악기라는 점이다. 리드 악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편하게 독학하여 들을만한 소리를 내는 악기는 절대 아닌듯하다.
  • I've played clarinets with reeds more than 50 years. This thing is next to impossible to play.
  • When we got this, my wife who has been a music teacher for 30 years, has a master's degree, and is the principal oboist of a symphony could not produce consistent tones with this.
  • So far terrible. Ive played sax for 10 years and all I can do is honk on this instrument.
알토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쓰는 플라스틱 관악기는 좀 다를까? 알리익스프레스의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끝자락에 Ammoon(링크)의 악기를 주문하고 말았다. 리드가 열 개나 들어있는데 저 가격이라면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 두 악기를 비교해 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아마존의 리뷰를 보면 불기 어렵다는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 색소폰 리드의 크기 차이는 다음 사진과 같으므로 Ammoon 악기에 딸려온 알토 색소폰용 리드를 대충 자르고 갈아서 베노바 마우스피스에 끼워보면 뭔가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출처: reedstore.com

2019년 12월 2일 월요일

[The Clumsy Venovist] 왜 이렇게 음이 낮을까?

비올라를 연주하는 사람을 비올리스트라고 하니까 베노바를 연주하는 사람은 베노비스트(Venovist)라고 부르면 될 것이다. 구글을 아무리 뒤져도 Venovist라는 낱말은 보이지 않으니 내가 처음 만든 것이라고 선언한다!

어제부터는 휴대폰으로 튜너 앱을 켜 놓고 제대로 피치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G음, 그러니까 왼손으로 모든 구멍을 막고 마우스피스로 숨을 불어 넣으면 튜너에서는 F# 정도를 가리킨다. 아랫입술로 리드를 단단하게 받치라는 설명을 따라서 가까스로 G에 근접하게 되지만 입술도 힘이 들고 소리도 불안정하다. 나는 치열이 엉망이라서 밥을 먹다가 아랫입술을 잘 씹는 편이라 상처가 자주 난다. 그런 상태에서 아랫입술로 리드와 마우스피스를 밀어 올리려니 입술이 아프다. 약간 웃는 듯한 입술 모양을 하고 마우스피스를 단단히 감싸 조이되 볼을 불룩하게 하지는 말고... 어렵다!

리드를 아랫입술로 단단히 죄면 분명히 리드가 더 높은 소리로 떠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다 너무 신경을 쓰면 윗니가 마우스피스를 누르는 것을 잊게 된다. 손으로 악기를 내리 누르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내 위 앞니도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서 왼쪽이 더 앞으로 튀어나온 상태이다. 그러니 오른쪽 위 앞니만 마우스피스를 무는 꼴이 되어서 이쪽에만 흠집이 많다.

사람마다 신체 조건이 다 다르니 연습을 통해서 최적화를 이뤄야만 한다. 내가 아무리 치열이 좋지 않다 해도 캐쥬얼 관악기인 베노바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다.

베노바 자체가 새로 개발된 악기이다보니 인터넷에 널린 색소폰 교습 자료를 보게 된다. 소프라노 색소폰은 마우스피스와 리드가 작아서 정확한 음정을 잡기가 어려우니 색소폰을 처음 배우는 사람은 알토나 테너 색소폰으로 시작하란다. 베노바는 소프라노 색소폰용 마우스피스를 쓴다. 게다가 단단한 합성수지 리드를 채용하고 있다. 리드 관악기에 입문하는 사람이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베노바는 독학용 악기다! 개발 취지가 그러하니 어떻게든 불어 보는 것이다. 베노바를 잘 불기 위하여 클라리넷이나 색소폰을 미리 배울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다음 이미지는 내가 사용하는 Soundcorset 튜너 & 메트로놈(링크)의 화면이다.


기준음과 측정음의 차이를 센트 단위로 보이는 것이 생소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위키피디아의 설명(링크)에 따르면, 평균율(equal temperament)에서 반음 간격에 해당하는 진동수 차이를 100 센트로 나타낸다고 한다. 따라서 12 반음 위(1 옥타브)는 1200 센트에 해당한다. 저 튜너 화면에 '솔'이 표시되게 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도 어렵다. 

색소폰에 관한 영문 사이트를 검색하면 intonation이라는 용어도 많이 보인다. 이건 중학교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울때 문장 내 발음에서 높낮이(단어 안에서의 강세는 accent)라는 뜻으로 배웠고 '억양'이라고도 불렀다. 악기 연주에서의 인토네이션은 무엇일까?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이러하다.
In musicintonation is the pitch accuracy of a musician or musical instrument.
아, 그렇구나! 그러나 이것은 인토네이션이라는 단어 쓰임새의 어느 한가지 측면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평균율(equal temperament)와 순정률(just intonation or pure intonation)에서 말하는 인토네이션은 좀 더 길고 복잡한 음악의 역사를 품고 있으니 별도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피치(음높이)와 음정은 다르다. 음정은 정확하게 풀이하자면 두 음의 높이 차이, 즉 피치의 차이를 말한다. G를 연주해야 하는데 약간 틀어진 소리를 내고 있을 때, '음정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내 음악 이론은 기타와 피아노를 혼자 익히던 10대~20대 이후로 정체 상태였다가 '캐쥬얼 관악기'인 베노바를 만나면서 다시 발전할 것만 같다.

2019년 12월 5일 업데이트

튜너 앱을 바꾸었다. 유료 앱으로서 이름은 TonalEnergy(TE) tuner and metronome(링크). 오차 이내의 음을 계속 불면 초록색 스마일이 나타나 점점 커지면서 입을 벌린다. 색소폰 입문자에게 중요한 '롱 톤' 연습을 하기에 아주 좋다. 천편일률적으로 롱톤을 고집하는 교습 방법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은 중요한 연습 방법이라 생각한다.



2019년 12월 1일 일요일

2019년 12월에 만난 네이버의 인공지능 스피커 WAVE(2017년 출시)

공동주택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재미난 물건들을 입수하게 된다. 단지 블루투스 스피커일 것이라고 생각한 시커먼 원뿔대가 전원을 연결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네이버에서 2017년에 첫 출시한 WAVE라는 '스마트 스피커'였다(링크). 매뉴얼은 이곳에 있다(PDF 파일). 클로바(Clova)인가, 혹은 웨이브인가? 네이버 클로바는 네이버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휴대폰에 깔리는 앱(구글 플레이 링크) 이름도 같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왜곡이 심해서 마치 원기둥처럼 보이지만 실제 모습은 아래의 사진에서 더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입체를 수학에서는 원뿔대(truncated cone)이라 부른다.

진공관 앰프와 음성인식 인공지능 스피커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전원을 연결한 다음 휴대폰에 네이버 클로바 앱을 설치하였다. 블루투스로 연결을 하면 WAVE-B9A라는 기기명이 뜬다.




기기의 바닥면에 있는 정보에 따르면 모델명은 NL-S500이고 2017년에 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음성 인식을 위한 약간의 테스트를 거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최신 인기곡을 재생하는 것.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입하지 않으면 1분씩의 미리듣기만 가능하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돈이 아까워서 몇 달 듣다가 해지하였는데, WAVE를 갖고 놀기 위하여 다시 유료 가입을 해야 하는가? 그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네이버의 VIBE에 일단 가입을 하였다. 첫달은 무료, 2-5달까지는 매달 천원, 그 이후로는 월 7,500원씩의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클로바, 지금 몇 시지?"
"클로바, 뉴스 읽어 줘."
"클로바, 최신곡 틀어 줘."
"클로바, 지금 나오는 노래 제목이 뭐지?"

WAVE는 2년 전 네이버 뮤직 1년 구독자에게 무료로 주는 제품으로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기능이 무척 신기했었을 것이고, 요즘은 초고속 인터넷 회사에서 셋톱박스 등과 같이 끼워주는 물건으로 꽤나 흔해진 것 같다. 예를 들어 KT의 '기가지니'같은 것. 가전제품 콘트롤 등의 기능까지 포함하는 것도 많아졌다. 그 사이에 제품 또는 서비스의 이름은 조금씩 바뀌거나 대체되어 나갔다. 예를 들어 네이버 뮤직은 VIBE로. 2019년의 마지막 달에 접어든 지금, 이러한 음성인식 비서 시스템(아니면 그저 간단히 음성인식 스마트 스피커 정도라고 하자)이 소비자에게 기대할만한 인기를 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구글을 검색해 보면 2019년에는 이 주제로 국내 사이트에 새로 올라온 글이 그다지 많지 않다.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인지, 혹은 시장에서 외면받은 기기인지... 다음과 같은 기사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내가 검색어를 잘 고르지 못한 모양이다.


네이버 클로바의 현재 제품군(링크).
AI 이름에 새겨진 공식(세계일보 2017년 4월 10일 링크). 네이버의 제품이 출시되기 직전이다. 

출시 이후 꽤 시간이 지난 물건이라 펌웨어 업데이트가 필요할 것 같았다. 다음의 안내에 따라서 업데이트를 할까 생각했었는데 앱을 통해서 현재 펌웨어 버전을 찾아보니 2.1925.21으로 이미 최신 버전에 해당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로서(유튜브를 연결해 들어 보았음), 그리고 VIBE를 재생하는 기기로는 꽤 괜찮다. 올레TV 셋톱박스를 음성으로 제어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직 그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2019년 12월 2일 업데이트

올레 TV 셋톱박스의 제어는 되는데, 인켈 저가 제품인 TV는 안된다. 주말이라 그런지 뉴스 업데이트 주기가 늦다. 외국 가수나 음악 제목을 요청할 경우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과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은지를 잘 모르겠다. 몇 시간 동안 경험한 것으로는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더 잘 알아듣는 것 같다. IPTV를 제대로 제어하려면 서비스 공급자가 제공하는 음성인식 스피커를 써야 한다는 것이 불편한 점이라 여겨진다. 네이버의 클로바 제품군은 LG U+의 것과 제휴를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베노바, 제대로 소리내기 참 어렵다

이삼일 정도 조석으로 삑삑거리면서 일단 '헛발질'을 하지 않고 소리를 내는 수준에는 이르렀다. 운지를 하면서 가락을 만드는 것은 나중 문제이고. 약간 큰 풍선을 불듯이 배에 힘을 주면서 불어야 된다는 것도 터득하는 중이다.

내가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지 궁금하여 야마하 홈페이지의 레슨 동영상과 튜너 앱을 틀어놓고 비교를 해 보았다. 나는 분명히 G음을 불고 있는데 반음 정도가 낮다. 마우스피스가 좀 덜 끼워졌나? 마우스피스를 조금 빼면 소리가 약간 낮아지므로 이것을 이용하여 피치를 조정한다는 설명을 매뉴얼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매뉴얼에서 <문제 해결> 항목을 찾아보았다.

  • 상태: 전체적인 피치가 낮습니다.*
  • 원인: 입이 너무 느슨하거나 열려 있습니다(아랫입술이 리드를 잘 받치지 못합니다).
  • 해결 방법: 입술로 리드를 세게 감싸서 아랫입술로 리드를 단단히 받치십시오('끽' 소리가 날 정도 조이면 안 됩니다).
* 암부슈어가 나빠서 피치가 잘 표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음을 참조하여 피치를 개선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보십시오.



만약 내가 리코더를 불고 있다면 입술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리드를 이용한 관악기를 불 때에는 입술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우스피스를 무는 입술에 조금 더 힘을 준다는 느낌으로 교정해 나가야 되겠다.

2019년 12월 1일 업데이트

글을 작성해 놓고 '게시'를 클릭하지 않은 상태로 노트북 컴퓨터의 화면을 닫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12월 1일에 작성한 글이 되었고, 11월에 올린 글 수는 목표치인 12개에 하나 모자란 상태가  되었다.

2019년 12월 5일 업데이트

Pianosnake의 블로그에서 베노바 운지표를 친절하게 PDF 파일(드롭박스 링크)로 떠서 올려놓아 주었다. 
The Venova is the latest noise maker from Yamaha... It's loud, it's pitchy, it's fun.
Venova fingering chart(링크). 여기에서는 독일식 운지법만 보였다.
여기에서 'pitchy'란 어떤 뜻일까? 악기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나도 베노바가 pitchy하다는 데에는 매우 크게 동감한다.
Pitchy is used when someone is singing a song but they are out of tune, often sounding sharp or flat.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