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9일 일요일

[달리기] 심박수에 유의하여 천천히 달려 보았지만...

어제 런데이 앱에 맞추어 정상적인 달리기를 했으니 오늘은 쉬는 것이 바함직하다. 하지만 호기심이 오늘도 신발끈을 매게 만들었다. 심박수가 경고 수준(165 bpm)을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천천히 달리면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였다. 손목형 심박계(Redmi Watch 3 Active DAD6)의 밴드를 헐겁지 않게 꽉 조여야 더 정확히 측정된다고 하기에 이것도 철저히 지켰다.

휴대폰도 소지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스트레칭을 하고 5분 준비 걷기를 한 뒤 1.5 km를 목표로 설정하고 갑천변을 달렸다. 아마 12분 정도면 목표 거리에 다다를 것이다. 심박수가 150 bpm을 넘기지 않아 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심박수를 충분히 낮추려면 조금 빨리 걷는 수준까지 천천히 뛰어야 한다. 그래서는 뛴다고 할 수가 없다. 걷다시피 느리게 달리는 것에 대한 주저함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뛰는 동안 경고 울림이 다섯 번 정도 울렸다.

천천히 달리니 30분까지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초 목표와는 달리 25분 동안 지속적으로 뛰기로 했다. 별로 힘은 들지 않았다. 뛴 거리는 당초에 목표로 설정한 1.5 km를 훌쩍 넘어서 2.96 km였다.

집에 돌아오니 휴대폰으로 데이터가 자동 전송되었다. 단, 달릴 때 휴대폰과 블루투스 페어링을 하지 않으면 경로 정보는 표시되지 않는다. 오늘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평균 페이스 8분 27초(시속 7.1 km)
  • 평균 심박수 157 bpm(최대 166 bpm)
  • 케이던스: 평균 159, 최대 166

2분 10초가 되면 심박수가 150 bpm을 넘어간다. 

'827'에 불과한 낮은 페이스로 심박수가 160 bpm에 오른다면 요즘 중요하게 여겨지는 zone 2(low intensity) 달리기를 하려면 걷는 수준으로 뛰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유튜브 러닝비하인드의 동영상('난 걸어야 되던데... 진짜 zone 2 러닝 하는 법')에 의하면 심박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숨은 조금 차지만 대화가 가능한 정도, 그리고 30~40분 운동을 끝냈을 때 아주 힘들지 않고 조금 더 할 수 있겠다는 정도의 강도로 하면 유산소 능력을 늘리는 존2 운동(~조깅)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몸이 달리기에 아직 적응되지 않은 초보자 상태에서는 심장의 stroke volume(일회박출량)이 낮으므로 조금만 뛰어도 심박수가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높은 심박수에도 힘들지 않네?' 이것은 바람직한 평가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운동을 하는 것 같지 않은 정도로 더 느리게 달려서 유산소운동 능력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키고, 페이스를 올리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단, 기록이 나아지는 것을 원한다면 훈련의 10~30%에서는 능력의 최대치를 이끌어 내는 포인트 훈련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 몇 분간 힘껏 달리다가 걷는 것을 반복하는 인터벌 훈련이 좋은 사례이다.

에휴... 뭘 이렇게 공부까지 하면서 뛰어야 되나. 더 느리게 달리자. 달리면서 편안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릴 수 있을 수준으로. 오늘 실험의 성과는 '나도 페이스를 적절히 낮추면 20분은 무난하게 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30분으로 늘어날 것이다. 단, 30분 동안 달릴 목표 거리에는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도록 하자.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염곡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제이앨범 한병혁 님을 만나다

대전에서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를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차를 몰고 가면 근처에서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하고, 대중교통으로 가려고 해도 몇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어제(9월 27일)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에서 있었던 오전 회의와 오후 성과교류회에 참석하기 위해 어떤 교통수단을 써야 할지 당일 새벽까지 고민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택한 코스는 이러하다. KTX를 타고 광명역까지 가서 6번 출구에서 G9633 버스로 갈아탄 다음, 양곡도매시장에서 내려서 1.2 km를 걷는 것이다. SRT를 타고 수서에서 내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최종 목적지로 가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만, 원하는 시간에 탑승할 수 있는 SRT 승차권을 예매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광명역에서 G9633을 타면 자리에 앉지 못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고속도로를 잠깐 이용하기 때문에 좌석이 없으면 타지 못한다.

서울로 접어들면서 밀려드는 차량으로 인해 도로가 점점 번잡해지기 시작하였다. 버스는 길게 늘어선 자동차 사이로 용케 머리를 들이밀면서 길을 헤쳐 나갔다. 양곡도매시장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별로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았다. 인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마치 고속도로 갓길을 무단으로 걷다가 인터체인지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걷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현재자동차-기아자동차 본사 건물

염곡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낯익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엇, 여기 웬일이세요?"

바로 제이앨범의 주인이지 관리자인 한병혁 님. 나는 출장길, 인근에 직장이 위치한 한병혁 님은 출근길. 제이앨범은 내 블로그에서 '즐겨찾는 곳'으로 유일하게 링크를 걸어 둔 곳이기도 하며, 국내에서 진공관 앰프 자작 문화를 보급하는데 오랫동안 힘쓰고 있다. 나도 이 웹사이트를 통해 진공관 앰프 자작에 입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내 공식 블로그의 audio amplifier DIY). 특히 한병혁 님은 오디오 용으로는 쓰지 않던 구관을 발굴하여 회로를 설계하고 따라하기 쉬운 자작 가이드 및 회로와 PCB, 부품 등을 공급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미 공학자인 강기동 박사님(웹사이트)와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제이앨범의 친절하 설명과 풍부한 자료에 힘입어 나도 서툴게 납땜을 하고 직접 출력 트랜스포머를 감기도 하였다. 

진공관 앰프 자작 문화를 선도한 것 외에도 6LQ8, 11LQ8과 같은 새로운 관을 발견하여 오디오 앰프용으로 회로를 설계·실증하고 R코어 출력트랜스포머를 개발한 것이 두 분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값지다. 기회만 된다면 두 분에게 감사패를 만들어 전달하고 싶다.

제이앨범 한병혁 님(왼쪽)과 나. 이렇게 반가운 일이 벌어지다니.

출장지에 가는 여러 방법 중 나는 그 어떤 것도 고를 수 있었다. 만약 광명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걷는 이 경로를 택하지 않았다면 한병혁 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즐거운 우연의 연속이다. 살다 보면 힘든 상황을 종종 겪기도 하는데, 요즘은 '마음의 굳은살'이 단단하게 생겨서 어지간한 공격에도 별로 흔들리지 않게 된 것 같다. 스트레스 극복을 위해 운명에도 없던 운동(달리기)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올해 초부터 급격히 달라진 나의 인생이 그렇게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달리기] 심박수에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할까

다음은 9월 26일의 운동 기록(Mi Fitness 이용)이다. 런데이 '30분 달리기 도전'의 6주차 세 번째 것을 따랐다. 7분 달리기를 3회 반복하였고(중간의 걷기는 3분), 페이스는 평균 6분 32초였다. 페이스가 6분 30초라면 속도는 9.23 km/h 정도가 된다. 거리, 시간, 페이스, 속도 상호환산기 웹사이트가 계산에 도움이 된다.

  • 페이스 6분 -> 시속 10 km
  • 페이스 6.5분 -> 시속 9.23 km
  • 페이스 7분 -> 시속 8.57 km
  • 페이스 7.5분 -> 시속 8 km [여기가 조깅과 러닝의 경계라고 한다]
  • 페이스 8분 -> 시속 7.5 km
  • 페이스 8.5분 -> 시속 7.06 km
  • 페이스 9분 -> 시속 6.67 km



최대 심박수는 178 bpm이었다. 반복적인 1분 달리기를 겨우 하는 수준에서 이제는 7~10분 동안 지속적으로 달리기를 하게 되었으니 분명히 체력은 향상되었다. 그러나 운동 중 측정한 최대 심박수는 별로 낮아지지 않았다. 안정기 심박수가 지난 두 달 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점검해 보지 않은 상태이다. '낮아야 좋은 것'은 안정기 심박수이고, 운동에 의해서 이것이 낮아진다고 하였다.

고강도 운동이 지속되면 심장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올해 종합건강검진의 심전도 측정에서는 이런 판정이 나왔다. 

우심방이상은 심전도상 P파의 이상 소견이 보이는 경우를 말합니다. 우심방이상은 비대, 확장, 전도장애 등과 연관되어 나타날 수 있어서 심전도 내 관련 파형을 참고하여야 하며, 흉부 불편감,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닙니다.

건강검진을 받은 뒤에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이러한 판정은 운동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유산소 운동을 목표로 한다면, (180 - 나이)에 해당하는 심박수를 넘지 않는 운동을 하라고 한다. 이는 Phil Maffetone의 '180 공식'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에 따라서 유산소 운동을 하려면 125 bpm을 넘어서는 안 된다. 팔을 크게 움직이며 조금 빨리 걷기만 해도 이 수치에 다다르며, 가장 최근의 기록에 의하면 7분을 달리면서 급격히 올라간 심박수가 3분 동안 걸었을 때 최대로 낮아진 상태이기도 하다.

유산소 운동을 목표로 한다면, 나는 달려서는 안 되는 것인가? 페이스를 7분 이내로 유지하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8분 이내로 약간 여유를 두는 것이 좋겠다. 이 상태로 달리는 시간을 늘려 나가고 운동 시 최대 심박수가 조금이라도 낮아지게 되면 그때 페이스를 올리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래서 의사와 트레이너가 필요한 것이다.


2024년 9월 28일 업데이트

런데이 '30분 달리기 도전' 7주 1회차 훈련 기록. 최대 심박수 178 bpm... 조금 늦추어 달리려고 의식을 했지만 페이스는 6분 35초로 기존과 같으니 실제로는 심박수를 낮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디시인사이드에 달리기 심박수에 대한 많은 글이 있었다. 구글에서 '달리기 심박수 디시'를 입력해서 나오는 글을 한번 보라(검색 결과). 존5니 530이니 하는 전문적인 용어도 보이고... 그냥 근처 보건소에 예약을 하고 운동부하검사를 받는 것이 낫겠다. 손목 밴드형 심박수 측정기는 느슨하게 차면 실제보다 높게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는 게 병인가? 수치보다 몸의 느낌이 더 중요한 것인지? 운동을 한 뒤 혈압이 낮아진 것은 맞는데, 오히려 높은 심박수로 운동을 함으로써 심장에는 무리가 간다면 소용이 없지 않을까? 도움이 될 만한 인천백병원 재활의학과 박대권 교수의 유튜브 동영상('심박수가 너무 높은데? | 심박수가 높은 이유 | 심박수 측정의 비밀 | 러닝 스마트워치) 하나를 소개한다. 


60세! 달리기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30분 운동루틴]이라는 동영상도 참고해 보도록 하자. 나에게 맞는 유산소 운동 강도는?이라는 글에도 좋은 정보가 많다.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다시 런데이 달리기 시작

출장과 뉴욕 여행으로 꼭 2주 동안 런데이 훈련을 하지 못하였다. 마지막 달리기는 9월 9일로서 6주차의 세 번째 달리기(7분 달리기 3회)까지 한 상태였다. 런데이의 '30분 달리기 도전' 프로그램은 주 3회, 총 8주로 짜여져 있다. 어제 오후에 귀국하느라 아직 시차에서 완벽하게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눈이 무겁고 조금 피곤하지만 한참을 쉬었던 달리기를 하고 나서 푹 자면 시차 극복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밤 9시가 넘어서 집을 막 나서려고 하는데 불청객과 같은 업무 전화가 울린다. 밤 늦은 시간에 좋은 일로 전화가 올 이유는 전혀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니 더욱 더 달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이 대규모 연구 과제는 나에게 운동을 할 기회를 주니 감사하다고 여겨야 하는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달리기만 한 것이 없다. 뛰는 동안 머릿속을 텅 비울 수 있으니. 

런데이 달리기를 쉬었다가 재개하는 경우 따라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1주를 쉬었으면 1주 전의 프로그램부터 다시 하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규칙을 다시 찾을 수가 없다. 앱 어디엔가 숨어 있었나? 아니면 초기 달리기를 할 때 음성 안내에서 그렇게 말을 했었나?

9월 10일부터 23일까지 꼭 2주 동안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6주 훈련을 다 마치고 2주를 쉬었으니 도대체 몇 주차 훈련으로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너무 앞으로 되돌리기는 싫어서 5분 달리기를 4회 반복하는 6주차의 두 번째 운동을 택했다. 혹시 5분도 못 달리는 수준으로 퇴화한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다. 6분대의 페이스로 5분 달리기를 무난히 할 수 있었다. 마지막 5분을 달린 뒤에는 이어지는 5분 마무리 걷기 대신 계속 뛰어서 총 10분을 채워 보았다. 페이스는 좀 떨어졌지만 달릴 수 있었다. 

초보 러너에게 '5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2~3주쯤 지나면, 30분을 계속 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24년 9월 25일 업데이트

어젯밤 달리기를 마친 후 아주 달게 잠을 잤다. 시차 극복을 완료하였으며 기분도 매우 상쾌하다. 운동을 시작할 때 겨우 1분 달리기를 한 뒤 근육통으로 며칠 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해 보라. 12일 운동을 쉰 뒤 5분 달리기 4회 반복을 하였으나 몸에서 아무런 무리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근력 및 심폐 기능이 지속적인 운동으로 통해 나아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뉴욕 여행기 10] 돌아오는 날

9월 22일 일요일.  낮 1시 10분에 뉴욕 JFK 공항 터미널 1에서 출발하는 대항항공 비행기를 타기 위해 딸이 불러준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바로 근처에 우버 택시가 있어서 앱으로 부르자마자 1분 만에 집 앞으로 달려왔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머물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공항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체크인과 보안검색에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친 뒤에 만나게 되는 상점에서는 물건을 싸게 사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면세라 해도 기본 가격이 싸지 않으니, 여행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념품은 차라리 외부에서 사는 것이 나을 뻔하였다. 예를 들어 'I♥NY'라고 새겨진 컵이나 티셔츠, 냉장고용 자석 같은 기념품은 차이나타운 근처에서 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면세점의 한국인 직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공항 면세점은 이곳에서만 파는 특별한 물건을 살 때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물론 그런 물건은 고가 제품이 많다.


JFK 공항으로 향하는 길.

공항에서 아내와 함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15시간이 조금 넘는 긴 비행을 해야 된다.

돌아오는 비행기의 기내식은 별로 맛이 없었다. 쇠고기 종류는 상당히 질겨서 먹기에 좋지 않았다. 게다가 몇 시간 동안 줄기차게 칭얼대는 어떤 아이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했다. 아기가 아니고 멀쩡히 걸어다니는 아이였다. 부모가 안거나 업어서 달래 주겠거니 생각했는데, 아이는 복도를 걸어다니면서 악을 쓰며 칭얼대고, 그 아빠는 뒤에서 손 놓고 그냥 따라 다니고 있고.

짐을 찾고 장기주차장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다시 차를 운전하여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여 총 11일에 걸친 뉴욕 여행이 끝났다. 


2024년 9월 23일 월요일

[뉴욕 여행기 9] 떠나기 전날, 또다시 박물관을 찾았다

9월 21일 토요일. 내일 낮에 뉴욕 JFK 공항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이번 여행의 실질적인 일정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H 마트에서 구입한 한국 식재료로 두 번째 김밥을 말았다. 나는 냄비에 다시 밥을 하였고. 여기에 와서 냄비에 밥을 하는 실력이 꽤 많이 늘었다. 밥이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밥을 짓는 것은 아주 쉽지는 않다. 뉴욕에 와서 첫 김밥을 말기 위해 밥을 지을 때는 물이 급격히 줄면서 약간 설익은 상태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뜸을 다시 들여야 했다. 아마도 물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요리라는 것이 생각보다 변수가 많으니 어쩌다 결과가 잘 나왔다고 해서 방심할 것은 아니다.

아무리 H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한다 해도 한국에서 김밥을 만들 때처럼 풍성한 재료를 준비하기는 어렵다. 조리기구가 잘 갖추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의 체형에는 너무 높은 조리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최선을 다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쇼핑을 위해 맨해튼 해럴드 스퀘어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에 나왔다. 매일 타던 7호선이 아니라 조금 걸어 나가서 F호선을 타고 시내로 나왔다.


미세먼지 없는 청정한 뉴욕의 날씨는 정말 부럽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중심가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메이시스 백화점에 들러서 필요한 옷가지를 구입하였다.




점심은 딸아이가 추천한 순두부 요리집에 가려고 했었으나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바로 근처의 한국식 중국음식점인 효동각을 택했다.



딸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고 나와 아내는 맨해튼에서 마지막 오후를 즐기기로 하였다. 이번 방문지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센트럴파크를 중심에 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정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 3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하였는데 폐장 시간이 5시 반이라서 어차피 모든 시설을 다 둘러볼 엄두를 내지는 못하였다.

81 St-Museum of Natural History역에서 내린 뒤 계단을 통해 들어간 층이 2층임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박물관에 입장하여 처음 접한 전시관은 지구 환경이나 우주가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의 고유 역사와 문화에 관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이곳이 더 흥미롭고 유익하게 느껴졌다.





뒤에 보이는 큰 인물상의 입술 양 옆에는 마치 '川'자처럼 세로로 살을 잘라서 뚫은 흔적이 있다. 앞의 조형물은 이를 위해 피부를 자르는 방법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악어에게 먹힘으로써 영원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되었을까? 무슨 의미의 조형물인지는 미지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여기에서도 한국 문화는 중국이나 일본의 것에 비하여 소외된 분위기이다. 1980년에 최초 설치된 디오라마가 정확하지 않다는 항의에 따라 - 실제 기록 사진을 보면 매우 초라함 - 한국인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The Uniqueness'라는 타이틀로는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 관련 기록은 여기에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연상되는 참모습은 바로 이런 것.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자연사 박물관의 모습.


우드사이드로 돌아오는 마지막 지하철 탑승도 순탄하지 않았다. C번 노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42 St-Port Authority Bus Terminal역에서 내린 뒤 Times Sq-42 St역까지 이동하여 서쪽으로 가는 7번을 타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박물관 역에서 서 있는 열차에 황급히 뛰어들었는데 과연 이것이 C가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앞의 승객에게 이게 C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I guess so...'였다. 

환승을 위해 서 있는 열차에 황급히 뛰어들었는데 원래 목적한 노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원하는 환승역이라고 짐작하고 내린 곳은 전혀 엉뚱한 역이었다(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음). 다시 검색을 해서 E인지 F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잡아 타고 Jackson Hts-Roosevelt Av역까지 간 다음 맨해튼으로 가는 7번을 갈아타고 집으로 겨우 올 수 있었다. 


2024년 뉴욕시에서의 지하철 탑승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숱한 실수와 좌절로 범벅이 된 지하철 탑승 경험이란!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고 생각의 폭도 넓힐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마무리 글을 쓸 예정이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딸아이의 노력을 직접 눈으로 본 것도 큰 성과라고 하겠다.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이번 여행을 위해 내가 실제로 쓴 휴일은 4일이다. 여름 휴가를 이틀 밖에 쓰지 않아서 장기(?) 여행을 위해 이번에 몰아서 쓴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맡은 책임이 있어서 추석 연휴 앞뒤로 많은 시간을 쉬는 것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꼈다. 과연 사무실이 잘 돌아가고 있을지 적지 않게 걱정도 했었다. 지나고 보니 다행스럽게도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실은 목요일 밤과 금요일 새벽에 걸쳐서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류를 처리하느라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하였다. 긴급한 상황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매월 한 번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여유와 자신감을 갖자.

[뉴욕 여행기 8] 두 번째 찾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9월 20일 금요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다시 찾아서 지난 화요일에 다 보지 못한 전시물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사실 이 미술관의 소장품 규모를 생각하면 이틀도 부족하다. 최소 사흘, 학술적인 목적으로 진지하게 둘러본다면 넉넉히 일주일은 잡아야 할 것이다.

오늘은 지하철만 두 번 갈아타고 86 Street역에 내려서 서남쪽으로 0.5 마일을 걸었다. 

Methodist church는 어떤 교회인가... 감리교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18세기 성공회 사제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이끈 복음주의적 성공회 쇄신 운동이었던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을 따르던 사람들이 성공회에서 분리되어 만들어진 개신교의 한 교단'이다.

스와롭스키 매자 앞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미술품을 주로 전시하는 노이에 갤러리.

Met에 도착하였다. 오늘 점심은 이 앞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어 보리라.

오늘은 1층으로 입장하여 왼쪽에 위치한 그리스 및 로마 유물을 먼저 보기로 했다. 인쇄본 지도를 들고 다니면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확대 가능한 진도를 제공한다(링크). 



우리를 가장 먼저 맞는 것은 신석기 및 키클라데스 시대의 예술품. 기원전 3300~1100년 사이에 지중해 에게해에 위치한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번성한 문영이라고 한다.


단순화한 인물상이 매우 많다. 주로 무덤에서 발견되었고, 20세기 들어서 도굴되어 시장에 돌아다니는 것이 많아서 정확히 어디에서 출토되었는지 알기 어려운 것이 많다고 한다.




하프를 켜는 사람. 현대 조각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보다 문명화된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유물을 만나보도록 하자. 

사이렌(Siren,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세이렌'이라고 함)은 이와 같이 여자의 얼굴, 몸은 새의 형상을 한 것이 원형이다. 사실상 인면조이다. 7~9세기부터 인어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






아니... 이런 19금스러운 조형물이! 실제 크기는 가운뎃손가락 길이 정도.

손잡이가 두 개 있고 목이 긴 고대 그리스의 물병을 암포라(Amphora)라고 한다.



새와 교감하는 소녀상. 너무나 인상이 깊어서 한참을 구경하였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러한 '얼짱 각도'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으걀걀걀....' 숨이 넘어가도록 즐거운 표범.







Tiffany & Co.의 Edward C. Moore에 의한 눈부신 컬렉션(링크). 은세공품의 화려함과 크기는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유리 제품 컬렉션도 정말 아름다웠다.





은으로 만든 리볼버.

1층의 American Wing에서 구경을 하다가 2층으로 올라갔더니 수많은 가구와 생활용품, 조각, 그림 등 엄청난 수의 작품을 개방형 수장고처럼 전시해 놓은 The Henry R. Luce Center for the study of American Art를 만나게 되었다.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것인지 몇 명의 사람들이 전시품을 그리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발견이었다.








일부러 전시실을 찾아가서 관람한 미국 원주민의 작품. 아주 작은 구슬을 꿰어서 옷이나 생활용품의 겉을 장식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시아 관련 전시관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압도적으로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고, 한국과 관련된 것은 너무 빈약하였다. 남아시아의 것도 볼 것이 아주 많았다.






상업과 학문의 신으로 알려진 가네샤.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하고 성공을 꿈꾼는 과학자라면 가네샤를 모시는 것도 좋으리라.



고둥 껍데기에 새긴 조각.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만난 파격적인 모습의 도자기.




다음의 2층 난간은 사진을 찍는 명소인 듯하다.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 가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럽 명화를 보면서 오늘의 관람을 마무리하였다. 여기를 보면 피카소, 저기를 보면 고야, 뒤로 돌면 페르메이르...

성녀 바르바라의 순교(16세기 초). 바르바라의 목을 벤 사람은 바로 아버지!

살로메와 세례자 요한.

맹인의 식사(1903), 피카소. 추상적인 작품으로 넘어가기 전, 이른바 '청색 시대(Periodo Azul, 1901~1904)'의 것이다.

자화상(1906), 피카소.

비누 방울(ca. 1733), Jean Siméon Chardin.

입장권은 당일에 한해 계속 유효하므로 건물 밖으로 나가서 푸드트럭에서 점심을 사 먹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 가능하였다. 대부분의 푸드트럭이 가격표를 붙여 놓지 않아서 손님에 따라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예를 들어 뉴욕커에게는 10달러, 동양인 관광객에게는 15달러? 그것이 관광객의 숙명이라면 여행 중 한 번 정도는 받아들여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나는 맛있게 먹었고 양도 많았으니까.

중세 예술을 대표하는 저 문은 어디에서 떼어 왔을까?

'5,000 years of art from around the world'라는 말에 걸맞는 방대한 유물의 숲에서 길을 몇 번이나 잃을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눈호강을 하였다. 다음날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들의 관심은 모든 세계와 역사를 아우르는 것 같다. 그것이 정복이나 약탈을 통한 소유 욕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심은 너무 국내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 이미지는 저작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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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의 검색 링크: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showOnly=openAcc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