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9일 목요일

AliExpress에서 주문한 물건의 뒤늦은 배송

이 부품의 이름은 직경 6 mm의 축을 끼울 수 있는 Rigid Flange Coupling이다. 발음은 '커플링'이지만 커플이 나누어 끼는 반지를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두 축을 연결하여 회전 동력을 전달하는 용도의 기계 요소이다. 원래는 출력 트랜스 권선기를 만들기 위해 주문한 것인데 너무 오랫동안 오질 않아서 다른 방법으로 회전판을 고정하고 말았다. 5월 23일에 주문을 한 것이 7월 19일에 왔으니 거의 두 달이 걸렸다. 총 17 차례의 AliExpress 구매 이력(최초는 2014년) 중에서 가장 늦은 배송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단 한 번도 물품이 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전부 DIY를 위한 전자 혹은 기계쪽 부품이었다.


역시 AliExpress에서 지난 3월 무작정 진공관 앰프 보드를 구입하면서 즐겁고도 고단한 자작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 공구에 손을 다치거나 고압에 감전이 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R-코어를 사용하여 출력트랜스(싱글)를 직접 감았다는 것도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었다. 이렇게 완성한 앰프는 실제 음악감상을 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음질을 제공하지만 문제는 컴퓨터 케이스를 개조하여 만든 섀시가 너무 허름하고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R-코어를 고정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아울러서 좀 더 아름다운 섀시를 가공하여 재조립을 하는 것을 올 하반기의 목표로 잡았다. 강기동 박사님의 웹사이트(My Audio Lab)에서 본 사진이 힌트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배관용 새들과 긴 볼트를 이용하면 갭을 사이에 둔 코어 반쪽씩을 고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조립한 트랜스를 섀시에 움직이지 않고 고정하는 방법은 그 다음 숙제이다. 가능하다면 신호 발생기와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하여 주파수 특성과 출력을 측정하는 방법까지 익히고 싶다.

출처 http://www.my-audiolab.com/KDK_Column/63164




2018년 7월 18일 수요일

[하루에 한 R] 텍스트에 색깔 입히기

R에서 colors() 함수를 실행시키면 총 657 개의 색깔 단어가 나타난다. "black", "yellowgreen"과 같이 영단어로 표현 가능한 색상이 657 가지라는 뜻이다. RGB 또는 hex code를 사용하면 더 많은 종류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다. 다음 PDF 파일을 컬러프린터로 인쇄하여 책상 옆에 붙여두면 쓸모가 많을 것이다. 우리식 콩글리시 표현으로는 '컨닝페이퍼'에 해당한다.

R colors cheatsheet (PDF 파일)
R Colors by Name (PDF 파일)
R Color Tables 색상표를 만드는 R 코드 소개(일단 실행해 보는 것을 추천!)
[참고용] 256 Colors - Cheat sheet

수만 가지의 색을 모니터 혹은 이미지 파일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텍스트에 입힐 수 있는 색은 한정적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노랑 글씨  노랑 바탕 위의 검정 글씨

왼쪽은 글자 자체를 노란색으로 쓴 것이다. 뭐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마우스로 긁어서 반전을 시키지 전에는 무슨 정보를 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실제 텍스트에 색을 입혀서 미리 확인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적당한 함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textplot()이다.

R colors 자료에서 스무 개 정도의 색상 단어를 뽑은 뒤 다음의 코드를 실행하여 실제로 표현해 보았다. 실제로 바꿀 것은 cols 벡터와 ncol 파라미터뿐이다.

cols = c("red","aquamarine3","blue","brown","cadetblue",
         "chartreuse","chocolate","darkgoldenrod","darkmagenta","darkgreen",
"khaki4","grey","black","cyan","purple",
"yellowgreen","firebrick","hotpink4","limegreen","salmon3")
mat = cbind(name=cols, t(col2rgb(cols)), hex=col2hex(cols))
textplot(mat,col.data=matrix(cols, nrow=length(cols), byrow=FALSE, ncol=5))

결과를 보자.

왠지 탁하고 칙칙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나의 색상 선택 센스가 영 꽝이라는 것을 알겠다. 미적 감각이라는 것은 타고 나야 하는 것이라서 훈련으로 나아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My analog life - 기계식 손목시계, 만년필, 진공관 앰프

오늘 아침에 찍은 사무실 책상위의 모습이다.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까지 곁들이면 더욱 완벽한 조합일 것이다. 장식장 안에 몇 대의 카메라와 교환용 렌즈가 있지만 마지막으로 필름을 넣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사진과 관련한 생태계가 너무나 크게 변해서 이제는 필름을 구하기도, 현상하기도 어려워졌다. 반면 진공관은 아직도 NOS(new old stock) 상태의 것을 구할 수 있고 심지어 인기있는 관은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다.

아이패드를 처음 갖게 되던 시절, 이를 늘 들고다니면서 업무 및 일상에 관련한 기록을 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에버노트와 드롭박스를 깔아서 사무실에서 아주 쉽게 파일을 공유하여 어디를 가든 쉽게 열어보고 작업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그러나 보안 이슈가 불거지면서 공공기관에서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쓰는 것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기기를 일상적으로 쓰는 생활이 몸에 잘 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메일 확인이나 잠깐씩 필요한 검색은 스마트폰으로 충분하고, 출장을 갈 때에는 아예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가게 되니 말이다. 아이패드는 집에서 유튜브를 들을 때에만 가끔 사용하며, 평소에는 다이어리에 손으로 쓰는 글씨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아직도 만년필을 쓰고 있다.

지금 쓰는 파커 벡터 스탠다드는 서랍에 남은 잉크 카트리지를 다 소모할 때까지만 쓰려고 생각 중인데 하루에 글씨를 쓰는 양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그 날이 언제 올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내 손에는 참 맞지 앉는 만년필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오래 쓰다보니 이젠 그런대로 익숙해졌다.

작년 11월에 구입한 파커 IM 프리미엄 배큐매틱 핑크(블로그 링크)는 너무나 쉽게 잉크가 말라서 며칠간 쓰다가 포기하고 세척하여 책상 서랍 속에 잘 넣어두었다. 서울 을지로에 있다는 만년필 연구소에 한번 보내볼까?

요즘 관심을 갖는 만년필은 모나미의 153 네오 만년필이다. 소비자가격은 25,000원 정도? 화사하고 가벼운 본체의 색깔과 잉크 카트리지의 다양함이 큰 무기인 것으로 보인다. 모나미의 베스트셀러 필기구인 153 볼펜의 정신을 계승했다고나 할까. 입문용 만년필의 최강자인 라미 사파리와 경쟁해서 이겼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가격과 품질면에서 3천원 정도에 팔리는 '프레피'와 경쟁할 위치는 절대로 아니다. 프레피와 경쟁해야 할 제품은 '올리카'. 실제 구입하여 사용한 경험으로는 닙이 약간 거칠다.

모나미 153 네오 만년필

오늘 언급한 아날로그 라이프용 아이템 중에서 가장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것은 기계식 손목시계(주로 오토매틱 와인딩)이다. 가격의 상한선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의외로 싼 오토매틱 시계도 많다. 스마트폰 때문에 시계를 한번도 찬 적이 없는 사람을 간혹 보게 된다. 이와 반대로 최첨단 전자기기인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는 사람도 주변에 적지 않다. 이삼일 차지 않으면 시간을 다시 맞추어야 하고 시각을 알려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불편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고급 시계 시장은 해마다 성장하기만 한다. 내가 즐겨서 차는 기계식(오토매틱 와인딩) 시계는 일제 오리엔트의 저가 라인인 three star(혹은 tristar, 삼성이네...)의 모델이다. 순전히 인체의 움직임을 동력으로 하여 태엽이 저절로 감긴다는 것이 묘한 일체감을 준다. 손목을 흔들 때 로터가 가볍게 돌아가는 느낌이 좋다. 남자라면 당연히 강렬한 인상의 다이버 시계에 끌리지만 손목이 굵지 않아서 요즘 추세의 큰 시계를 어울리게 차는 것은 어렵다.

진공관 앰프에 입문한 것은 2014년 설 무렵이었다. 올해 봄부터 약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남이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드는 진공관 앰프에 푹 빠져있었다. 그 덕분에 집과 사무실 모두 몇 개의 앰프를 놓고서 골라서 들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자동화된 장치(혹은 서비스)에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아날로그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2018년 7월 16일 월요일

독서 기록 - <너는 검정> 외 다섯 권


주말에 바쁜 일이 있어서 독후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연체까지 되고 말았다. 제목과 저자만 간단하게 기록한다.


  • 너는 검정: 김성희 만화.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실화에 가까운 만화.
  •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부제: 하종강의 노동 인권 교과서): 하종강 지음.
  •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부제: 그림을 어렵게 느끼는 입문자를 위한 5분 교양 미술): 박혜성 지음.
  • 거짓말 상회(부제: 거짓말 파는 한국사회를 읽어드립니다):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김미선 김현호 고영 공저. 자기계발, 사진, 그리고 음식의 거짓말 3부로 이루어진 책이다.
  • 공유경제: 마화텅, 장샤오롱, 쑨이, 차이슝산 공저, 양성희 옮김. 우리나라의 공유경제 현황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매우 빈약한 수준이다. 인터넷을 통한 중고 거래를 공유 경제의 하나로 소개하였는데, 네이버 <중고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면 과연 바람직한 사례인지 모르겠다.
  • 징기스 콘의 춤: 로맹 가리 지음, 김병욱 옮김.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처음 번역된 소설이다. 나치 에 의해 이미 사살된 유태인 희극배우 콘은 자기를 죽인 SS 대원 샤츠 주변을 맴도는 유령이 된다. 충격적이고 난해한 소설. 

2018년 7월 12일 목요일

A newly coined word, vesiculomics

세포막이 어떠한 이유로 소포 형태로 떨어져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을 extracellular vesicle(EV)이라 한다. 요즘 진단 마커로 관심을 끌고 있는 exosome도 EV의 한 형태이다. EV에는 RNA와 단백질 등 다양한 물질이 들어 있으며, 이를 다른 세포에 보내어 신호를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여겨진다.

그람음성 세균 역시 outer membrane으로부터 vesicle을 만들어 낸다. 이를 OMV(outer membrane vesicle)이라 한다. 세균은 여기의 자기 단백질을 아무렇게나 넣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선별된 단백질을 넣는다고 한다. 즉 virulence 혹은 immunomodulatory role을 할 수 있도록 OMV를 잘 설계하여 만든다는 뜻이 되겠다. 감염성 세균은 virulence factor를 여기에 넣어서 host cell로 전달하기도 한다.

Extracellular vesicle에 포함된 단백질 혹은 핵산 전체, 즉 기존의 omics 분석법으로 다룰 수 있는 물질 전체를 vesiculome이라 한다면, 이를 연구하는 기법은 vesiculomics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Exosomics라는 용어도 있지만 여기에서의 '-ome'은 흔히 이야기하는 genome, transcriptome, proteome의 ome과는 다르다. 물론 어원적으로는 같지만 말이다.

그러나 vesiculomics의 '-omic'는 여타 오믹스란 용어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말이다. 오늘 구글을 검색해 보니 vesiculomics라는 용어는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Vesiculome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학술자료는 간혹 보이지만 정작 vesiculomics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용어는 내가 세계 최초로 쓴 것이 된다. vesicuome, 즉 vesicle에 들어있는 모든 정보물질의 총합을 연구하는 것이 vesiculomics다. 새로운 '-ome'이 정의되었다면 그에 따르는 '-omics'도 당연히 정의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genome과 genomics는 엄연히 수십 년의 시간 차를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Vesiculomics는 내가 2018년 7월 12일 세계 최초로 만든 신조어임을 선포한다!

2018년 7월 11일 수요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 2악장





어제(2018년 7월 10일) 대전시립교향악단의 <마스터즈 시리즈 7>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을 감상하였다. 단역 백미는 2악장. 겨우 4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임팩트는 대단하였다. 유튜브에서 이 곡을 찾아서 소개한다. 가장 최근에 달린 댓글(3년 전)에는 악장이 헤비 메탈의 기원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According to my music theory text books this movement was the origination of heavy metal. [Madison Sawyer]
당시의 억압적이고 암울하던 소련의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고 있는 듯한 무겁고도 빠른 곡이었다. 듣는 내내 악당이 등장하는 영화의 한 대목을 연상케 하였다. 다스 베이더나 타노스에게 어울리는 주제라고나 할까? 이 곡은 스탈린의 초상화라는 말도 있다.



격정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객원지휘자인 로베르토 밍크주크는 악장 사이마다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았다. 연주가 끝나고 거듭되는 박수 속에 지휘지는 입을 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나서 앵콜에 응하는 것은 어렵지만... 2악장을 한번 더 연주하겠습니다.'



1부에서는 17세 소년 피아니스트 네이슨 리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였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을 나서는 길은 말 그대로 조용한 '대혼란'이었다. 둔산대공원 주차장이 6월부터 유료화가 되면서 주차난이 해소되었다고는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수백명의 차량이 한꺼번에 나가면서 주차비를 내기 위해 장시간 줄을 서야 하는 문제는 미리 대비를 했어야 한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주말의 에버렌드나 롯데월드도 아니고 평일 밤 9시 반이 넘은 시각의 대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이럴거면 차라리 주차장을 운영하지 말고 대중교통으로 공연을 보러 오라고 홍보하는 것이 낫다.



시에서 만든 공공 시설을 이용하면서 사용료를 내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다만 공연이 있는 날의 특수 상황을 반영하여 출차 시 오래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8년 7월 10일 화요일

6N1 + 6P1 싱글 앰프의 자작 마무리

손바닥만한 class D 앰프와 SMPS만 있으면 좌우 채널에서 각각 50 와트가 넘는 출력을 뽑아낼 수 있는 오디오 앰프가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진공관 앰프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품도 비싸고, 생산 중단된 구관은 점점 구하기가 어려워지며, 고전압을 다루어야 하기에 감전 사고도 잦다. 섀시 가공도 해야 하고, 전력 소모와 발열도 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진공관은 임피던스 매칭을 위해 출력 트랜스를 필요로 한다. 이는 섀시를 제외하면 부품값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직접 만드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부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출력 트랜스를 만드는 것을 진공관 앰프 제작 전 과정 중 백미로 꼽는 사람도 적지 않다.

3월말에 착수하여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앰프 보드와 진공관으로 구성된 키트를 구입하고, 전원트랜스는 주문제작하되 출력트랜스는 기성품 전원트랜스를 개조하는 것으로 일단 앰프 제작을 시작하였다. 못쓰는 컴퓨터 케이스를 가공하여 섀시를 삼았다. 트랜스 개조를 하면서 손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220 V를 잘못 다루어서 PCB의 동박을 날려버리기도 하면서 결국은 소리를 내는데 성공한 것이 5월 중순. 그 다음 도전은 R-코어에 직접 에나멜선을 감아서 출력트랜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권선기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다음의 사진은 권선기의 최종 버전으로서 1차 코일을 감을 때 쓰던 것과는 구조가 조금 다르다.




지난 주말, 낑낑대면서 출력트랜스를 완성하였다. 임피던스비는 5 kOhm : 8 Ohm이다. 리드선을 처리하는 좀 더 합리적인 방법과 코어를 맞물리는 법, 그리고 다 만들어진 트랜스를 섀시에 고정하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이를 드디어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앰프에 장착하기에 이르렀다. 전원선을 뽑아두었지만 평활용 캐패시터에 충전된 전기로 인하여 감전이 되는 바람이 충격이 컸다.




전원트랜스의 코어를 개조하여 출력트랜스로 사용하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히 넓은 대역을 편안하게 재생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측정기를 사용하면 객관적으로 어떤 점이 개선되었는지를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나의 손으로 직접 앰프를 조립했다는 보람은 음질의 개선으로 얻는 이익을 훨씬 상회하기 때문이다. 특이 전체 과정 중에서 출력트랜스를 만드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이 일이 가능하도록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고 R-코어를 제공한 곳은 제이앨범이다. 그곳에는 제작 진행 과정에 따른 기록을 상세하게 남겨 두었다.

진공관 앰프를 만들고자 인터넷의 여러 카페를 기웃거리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일 하지 말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다. 제이앨범은 철저히 전자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론과 실제를 미처 몰라도 좋으니 일단 부딛혀 보라는 제안을 하는 곳이다. 진공관 앰프 자작을 권하지 않는 사람의 심정은 무엇일까? 너무 고생스러우니까? 아니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나도 모른다.

어느덧 보유한 진공관 앰프는 총 4 대가 되었다(하나는 헤드폰 앰프). 이제 이론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시기가 되었으니 DHT 사운드의 기술포럼 - 자작교실의 글들을 꼼꼼하게 읽어봐야 되겠다.

만약 앞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자 한다면? SMPS를 이용하여 B+ 전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Anvi'o의 사소한 문제점 개선하기

지난주부터 Anvi'o(Advanced analysis and visualization platform for 'omics data)에 관심을 갖고서 설치 및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설치와 사용이 쉽고 project page에서 풍부한 문서를 제공하고 있어서 초심자도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실제 부딛혔던 사소한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고자 한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큰 좌절은 아니었었다.

설치 방법

Homebrew, conda, 직접 설치, 혹은 docker 등 몇 가지 방법 중에서 원하는 것을 택하면 된다. 나는 처음에 conda를 이용하여 아주 쉽게 설치를 했으나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설명한 몇 가지 스크립트가 아예 깔리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Anvi'o의 실행에는 python 3이 필요하다. 이것을 미처 모르고 python 2.7 기반의 conda environment에 Anvi'o를 설치했던 것이다.
  • 프로젝트 페이지에 설명된 기능은 최신판인 v5.1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function enrichment analysis와 ANI 분석 같은 것은 예전 버전에는 구현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Anvi'o의 bioconda 패키지는 v4.0이다.
다른 workflow가 잘 도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ANI 계산용 스크립트인 anvi-compute-ani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탐구해 보니 위에서 나열한 두 번째 이유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docker image를 사용한다면 번거로운 설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anvi'o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Anvi'o docker image의 사소한 문제

Docker의 정의를 내린다면 "an open platform for distributed applications for developers and sysadmins"라 할 수 있다. Docker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깊게 이해하지 못해도 개발자가 배포한 이미지를 가져와서("docker pull <이미지 이름>") 컨테이너를 생성하는 것("docker run <이미지 이름>")으로 실행한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면 족하다. 도커 컨테이너는 이미지가 실행된 상태를 뜻한다. 사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보다 조금은 더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 docker run --rm -p 8080:8080 -v /home/merenbey/my_data:/my_data -it meren/anvio:latest
:: anvi`o ::  / >>>

위와 같이 실행하여 anvi'o의 최신판 v5.1의 이미지를 실행하였다. 기본적인 pangenome 분석은 해 놓았고, 이어서 anvi-compute-ani을 실행하여 ANI 분석을 시도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에러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Config Error: PyANI returned with non-zero exit code, there may be some errors. please check the log file for details.
 실제 ANI의 계산은 PyANI(average_nucleotide_identity.py)에 의해 이루어진다. 왜 이런 에러가 발생하는 것일까? PyANI의 로그 파일을 열어보았다. vim 등의 기본 에디터가 없어서 좀 불편한다.


pandas가 없다고? pip를 이용하여 설치된 python library를 확인하려는데 pip도 없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컨테이너 안에서 apt-get, pip... 이런 것을 깔아야 되나? 컨테이너에서 빠져나오면 이런 설정 사항은 다 없어지는데? 약간의 삽질을 하다가 이런 문제가 생긴 원인을 발견하였다. Anvi'o에 딸린 모든 python 스크립트는  python 3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pip3는 존재한다. /usr/local/bin/anvi-compute-ani를 열어보면 첫 줄(흔히 shebang line이라 부름)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있다.
#!/usr/bin/python3
그러나 Anvi'o 컨테이너의 default python interpreter는? 커맨드라인에서 python -V을 치면 Python 2.7.12가 출력된다. 그렇다면 /usr/local/bin/average_nucleotide_identity.py의 shebang line은?
#!/usr/bin/env python
그렇다. PyANI 스크립트는 시스템 기본 버전인 python 2.7의 위치에서 pandas를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pip3 freeze를 해 보면 python 3.x의 pandas가 잘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PyANI가 python3을 사용해서 돌게만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여 average_nucleotide_identity.py 스크립트를 편집하려 했는데, 문제는 docker container에는 편집기로 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vim을 설치하려니 apt-get update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 호스트 터미널로 되돌아가면 컨테이너 내에 설치했던 프로그램은 전부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유지하는 방법은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다소 번거롭지만 vim을 설치하여 /usr/local/bin/average_nucleotide_identity.py의 첫 줄을 #!/usr/bin/env python로 수정한 다음 anvi-compute-ani를 실행해 보았다. 이번에는 아무런 에러가 없이 잘 진행이 되었고 ani-display-pan으로 그 결과를 확인하였다. 웹브라우저를 연 뒤 Layer 탭으로 가서 ANI 관련 사항을 체크한 뒤 그림을 다시 그려야 ANI heatmap이 보인다. Layer는 anvi'o의 시각화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관련 문서를 찾아서 철저히 읽어봐야 되겠다. 데이터 파일이 있는 디렉토리에 shebang line을 수정한 average_nucleotide_identity.py 스크립트를 준비해 둔 다음 컨테이너 내에서 이를 /usr/local/bin/ 위치에 복사하는 것도 일종의 꼼수가 되겠다.

average_nucleotide_identity.py을 고치기가 귀찮다면 /usr/bin/python3를 /usr/bin/python이란 이름으로 바꾸어도 된다. 어차피 python 2.7은 필요가 없고, 컨테이너를 나가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Docker 내부에 프로그램 설치하고 재활용하기

다음 웹페이지에서 힌트를 얻었다. 두번째의 PDF 파일은 무작정 따라하면서 기본 개념을 익히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지시한대로 따라하면 docker import가 잘 되지 않는다. 세번째 자료도 매우 잘 작성되어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pyrasis.com] Docker 기본 사용법 추천!

docker run으로 Anvi'o 컨테이너를 생성하여라. 그 안에서 apt-get update, apt-get install vim을 하여 필요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usr/local/bin/average_nucleotide_identity.py도 편집을 하여라. 그 다음 별도의 터미널 창에서 docker ps를 하여 현재 돌고 있는 Anvi'o 컨테이너의 ID를 확인한다. 이제 docker commit 명령을 실행할 단계이다.
# docker commit e47956140b67 my_docker_image
Image의 이름으로 쓸 수 있는 문자에는 한계가 있다. 오직 [a-z0-9-_.]만 허용이 된다. 이렇게 하여 나만의 docker image를 만든 것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docker run [options] my_docker_image를 하면 된다. 그 안에서는 vim도 실행이 되고, average_nucleotide_identity.py도 변경된 shebang line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docker run --rm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rm 옵션은 컨테이너가 종료되었을 때 이를 자동으로 제거한다. 이 옵션이 없으면 현재 실행 중이 컨테이너의 변경 상태(패키지 설치, 파일 생성 및 변경 등)가 다음번에 docker run을 실행할 때에도 유지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아직도 docker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2018년 7월 6일 금요일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 감독의 1984년도 영화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어제, 직접 만든 수동 권선기를 가지고 손잡이를 돌려가면서 진공관 앰프용 출력 트랜스에 들어갈 코일을 직접 감았던 것이다. 돌린 횟수는 총 4200 회! 보빈 4 개에 각각 1050 회씩 에나멜선을 감은 것이다. 아직 완성은 하지 못했고 진공관에 연결되는 1차측 코일을 감고 테이프로 가장 바깥쪽에만 마감을 한 상태이다. 원래 제대로 감으려면 한 층을 감고, 절연테이프를 두른 뒤 다시 두번째 층을 감는 식으로 해 나가야 한다. 더욱 고급스런 트랜스를 만들려면 1차와 2차를 번갈아 겹겹이 감기도 한다. 이를 샌드위치 권선이라고들 한다. 생전 처음 트랜스를 감는 나는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일 수는 없었다. 1차를 한번에 다 감고, 그 위에 절연테이프를 두른 다음 2차를 감는 것으로 끝내려고 한다.


처음에는 위의 사진처럼 가지런하게 정렬 권선으로 시작을 하였다. 그러나... 두 층을 넘어가면서 모양새는 점차 흐트러지더니...



결국은 이렇게 '막감기'로 끝나고 말았다. 가장 첫번째로 감았던 것은 보빈 옆을 구성하는 도너츠 모양 마개가 벌어지면서 김밥 옆구리가 터지듯 에나멜선이 이탈하기 시작였다. 그래서 이를 재활용하기 위해 다시 보빈으로부터 천천히 풀고자 하였으나, 중간에 뒤엉키고 말았다. 아! 눈물을 머금고 보빈 하나를 다 감았던 에나멜선을 중간에서 끊어야 했다. 화가 나서 뭉쳐놓은 구리선 덩어리에 내 감정이 담겨있다. 아까운 구리!


R-코어에 가조립을 하여 보았다. 이 위에 2차 권선은 두 배 정도 두꺼운 에나멜선으로 각각 50 회씩을 감으면 된다. 1차용 전선 직경은 0.35 mm, 2차용은 0.7 mm이다.


R-코어 역시 도너츠 모양이지만 보빈이 끼워진 곳에서 내부적으로 잘린 형태이다. 싱글 엔디드 앰프용 출력 트랜스라서 코어가 서로 접촉하지 않게 절연체를 사이에 넣어 갭을 만든 뒤 코어를 서로 고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 만들어진 트랜스를 앰프에도 고정해야 한다. R-코어를 이용한 트랜스는 감기는 쉬운데 고정을 하는 방법을 잘 고안해야 한다. 임피던스 비율은 5 kΩ:8 Ω 되겠다.

오디오용 트랜스는 진공관 앰프를 제외하면 요즘 잘 쓰이지 않는데다가 그 이론이나 제작 기법이 널리 공유되고 있지 못하다. 나 역시 동호회에서 배운 정보와 실험 정신만으로 그냥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트랜스와 관련된 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압비는 권선비에 비례하고, 임피던스 비는 권선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앗, 잘못 감았다! 1050:50은 5 kΩ:8 Ω이 아니라 3.5 kΩ:8 Ω용 권선 스펙이었다! 1250번:50번을 했어야 하는데... 2차를 조금 줄여서 감야야 되겠다. 5 kΩ:8 Ω = 625:1이다. 여기에 제곱근을 취하면 권선비가 된다. 625의 제곱근은 25이다. 25:1 = 1050:42이니 42회 감으면 되겠다..

오늘 글을 쓰면서 각 보빈에서 나오는 에나멜선을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대해서도 적고 싶었으나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말로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한다.

Anvi'o 배워나가기

Anvi'o: an advanced analysis and visualization platform for 'omics data. PeerJ 2015 (PubMed)

Anvi'o는 각종 오믹스 정보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도구이다. 주로 다음과 같은 스타일로 분석 자료를 표현한다. 한 입을 베어먹은 도너츠와 같은 형태로 각종 데이터를 시각화한다.


2 년쯤 전에 메타게놈 분석 도구인 metAMOS에 강렬한 인상을 받고 이를 활용해 보고자 노력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python 및 부수적으로 필요한 프로그램의 설치가 너무나 까다로와서 불완전한 상태로 설치를 마무리한 뒤 몇 번의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특히 shotgun assembly 기반의 metagenome data가 없으면 이를 활용하기도 어려웠다. 개발자 사이트를 가끔 가 보아도 별다른 업데이트에 대한 소식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Anvi'o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shotgun sequencing 기반의 metagenomics에 어울리는 도구이다. 단, co-assembly와 mapping은 사용자가 알아서 해야 된다. 그러나 pan-genome 분석과 phylogenomic 분석을 이 환경 안에서 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분석 결과를 웹브라우저에서 interactive하게 볼 수 있다.

Anvi'o의 metagenomic overflow. 빨강색 데이터는 유저가 준비해야 한다. Contig와 read mapping 파일이 이에 해당한다. 출처: PeerJ

Anvi'o을 이제 실제로 다루어 봐야 되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오늘 아침이다. Bioconda를 이용하여 설치를 끝내고, 테스트 스크립트를 몇 개 돌려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최근에 논문으로 투고했던 Lactobacillus rhamnosus 111종 유전체 서열의 pangenomics analysis를 시작하였다. 꼭 필요한 과정은 아니지만 지금은 Anvi'o 환경 내에서 COG annotation을 실행하고 있다.

설치가 아주 쉽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cherrypy 실행과 관련한 에러, 그리고 CentOS 6.9에 크롬 대신 크로미움을 설치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metAMOS와 비교하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Anvi'o project page에 풍성하게 준비된 튜토리얼 자료들이었다. 몇 가지 핵심적인 기본 개념만 머리에 '탑재'하면 어렵지 않게 원하는 목적의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내 위키 페이지에 별도의 정보를 정리해 나가는 중이다.

Anvi'o 설치 후 테스트 스크립트 실행 화면.

Phylogenomics 튜토리얼을 읽다가 내가 그동안 모르던 phylogenomic market set을 발견하였다. 이는 Campbell 등이 출간한 2011년 PNAS 논문 "Activity of abundant and rare bacteria in a coastal ocean(링크)"에서 소개한 것이다. 그동안 phylosift marker만 편식하던 나에게 매우 유용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2018년 7월 6일에 추가한 글

어제의 테스트에서 anvi'o의 동작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원인은 python 2.7을 기반으로 anvi'o를 설치한 때문이었다. 이러한 중요한 정보는 설치 설명서 맨 위에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Homebrew와 conda 등을 이용한 설치 설명에 이어서 '힘들게 설치하는 방법 - Installation (with varying levels of pain)' 파트에 있었던 다음의 경고문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만큼 python 환경도 이제 3.x 버전이 대세임을 알아야 되겠다.


이미 설치가 되어있었던 python 3.5 기반 environment에 다시 설치를 하고 HMMER version을 3.1b2로 맞추니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2018년 7월 5일 목요일

ISMapper (2015)

국문에서는 괄호와 그 앞에 오는 낱말을 붙여쓰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영문에서는 철저히 공백을 두어야 한다. 이 글의 제목을 적으면서도 'ISMapper (2015)'와 'ISMapper(2015)' 중 어느 것으로 할지 고민을 하다가 영문만으로 작성된 것이라서 공백을 넣는 쪽으로 하였다.

유전체 내에는 다양한 반복 서열이 존재한다. 많은 경우 이들은 유전체 내의 다른 위치로 자기의 복제본을 삽입할 수 있는 transposable element이기도 하다. Transposition이라 하면 쉽게 말하여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극장이나 공연장을 찾아서 자리에 앉았는데 빈 좌석이 많은 상태로 공연이 시작되면 앞자리로 옮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나중에 그 자리의 원 주인이 나타나면 낭패!). 이것이 바로 transposition에 해당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염색체 내에서 일어나는 transposition은 원래 위치를 고수하면서 다른 자리에 자기의 분신을 끼워넣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진다. 그렇게 되어야 그 copy number가 많아지면서 반복 서열이라 불리지 않겠는가?

유전체 진화에서 반복 서열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별도의 주제로 다루어도 될만큼 간단하게 기술하기는 어렵다. 간혹 생명공학적 접근을 위해 IS(insertion sequence - 박테리아에서 발견되는 가장 보편적인 transposable element로서 transpoase 유전자 말고는 다른 기능이 없는 것)를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연구 프로젝트도 있었다. IS는 유전체의 안정성을 해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 것은 대장균의 K-12 MG1655와 B strain의 유전체를 비교하는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대장균 B 스트레인의 생물공학적 유용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OmpT 및 lon protease가 없어서 재조합 단백질을 온전한 형태 그대로 생산하는데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단백질 분해 효소가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IS와 관련된 현상으로 확인되었다. 있으면 안될 것만 같은 IS가, 오히려 특정 유전자를 망가뜨림으로서 결론적으로는 인류가 이를 이용하는데 유익한 특성을 제공하고 만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배양 조건을 영원히 고정할 수만 있다면, 박테리아의 유전체는 엔지니어링을 했던 그대로 유지되는 것(즉 높은 안정성)이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자연적인 환경 조건은 늘 변하는 것이라서 박테리아는 이에 대처하여 '자기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IS가 이러한 혁신(돌연변이)의 원동력으로서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마치 요즘 나오는 수퍼히어로 영화에서처럼 선과 악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오늘의 글감으로 삼은 것은 NGS 유래 short read sequencing data를 이용하여 IS의 삽입 위치를 찾아내는 소프트웨어인 ISMapper이다.
ISMapper: identifying transposase insertion sites in bacterial genomes from short read sequence data. BMC Genomics 2015 (PubMed GitHub)
삽입된 IS의 위치는 프로그램 실행 시 제공하는 reference genome 상의 포지션을 기준으로 나타내어 준다. Simulated read와 real data를 사용하였을 때 각각 97%와 98%의 비율로 IS의 삽입 위치를 찾아내는 성적이라면 나쁘지 않다. 단, 이 소프트웨어는 IS를 스스로 찾아주는 것은 아니다. 찾아내고 싶은 IS의 서열을 query로서 제공해 주어야 한다. 주어진 염기서열에서 IS를 찾는 것은 ISfinder를 활용해야 한다. ISMapper의 작동 방법은 다음의 그림에서 설명하고 있다. IS가 삽입된 경계 부위에서 발생한 sequence read는 IS query와 삽입 위치 전부에 매핑이 될 것이니 이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고, 가능하다면 IS의 삽입 표적에서 duplication되는 서열도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558774/figure/Fig1/
결과는 reference genome을 기준으로 IS 삽입 위치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reference와 동일한 위치에 삽입되었거나 혹은 novel 위치에 삽입되었음을 구별해 준다. 그리고 여러 샘플을 시퀀싱한 경우 이를 종합한 표를 만드는 유틸리티도 제공한다.

결과의 시각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을 하는 중이다. 원형? 선형? 만약 샘플이 100종에 육박한다면 어떻게 이를 효율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Anvi'o를 이번 기회에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나에게 컴퓨터와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IS, prophage, restriction-modification system... 이런 것의 의미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

2018년 7월 3일 화요일

손으로 그린 genome alignment

박테리아의 유전체 진화 과정에서 마치 점돌연변이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multiple sequence alignment에서 보여지듯), 실제로는 좀 더 과격한 변화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IS(insertion sequence)의 transposition이라든가, 아니면 Ter site, 즉 복제를 개시하는 원점인 oriC의 180도 반대편에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염색체 단편이 뒤집어지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이는 whole-genome alignment plot을 그리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간혹 교차가 두 번 일어나기도 한다. 최초에 inversion이 일어난 단편 내에서 두번째 뒤집힘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이를 포함하여 그 외부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더욱 복잡하게는 한쪽 경계는 뒤집힘이 일어난 내부이고 반대편 경계는 원래의 이중나선일 때이다. 이를 쉽게 파악하기 위해 손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Reference와 query는 a-b-c-d-e-f의 조각이 순서대로 배열된 형태인데, 이 중에서 일부가 떨어져나가서 180도 방향을 바꾼 뒤 다시 연결되는 상태를 가정해 보았다. Reverse complementary 형태가 된 서열 조각의 위에는 bar를 그렸다.


맨 위 왼쪽의 A는 최초의 뒤집힘이 일어난 상태이다. 그 다음에 일어난 뒤집힘이 이전 것의 내부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완벽히 외부에서 일어난다면 아래 왼쪽의 파랑색 네모로 둘러친 것처럼 alignment가 생성될 것이다. 나머지 경우, 즉 복합적으로 두번째 뒤집힘이 일어난다면 오른쪽에 그린 그림(Ia 또는 Ib)와 같이 될 것이다.

Whole genome level에서 두 서열 사이의 관계를 맺는 것, 이를 nucleotide alignment로 확장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시각화하는 것은 모두 별개의 문제이다. 1999년에 최초 버전이 발표된 MUMmer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목적의 유전체 분석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지금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근무하는 Arthur Delcher에게 감사를!(구글 스칼라 링크)

2018년 7월 1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생각의 지도>외 다섯 권


생각의 지도(원제: The Geography of Thought)

  • 부제: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s differently...and why)
  • 리처드 니스벳 지음 | 최인철 옮김
동양인(이 책에서는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한중일 3개국을 의미함)과 서양인의 생각의 차이를 역사·문화적 배경과 심리학적 원리에서 설명한 책이다. 잘 알려진 실험을 하나 소개해 보자. 닭과 소, 풀을 한번에 보여주고 서로 관계가 있는 것끼리 묶으라고 하면 동양인은 소와 풀을 묶는다. 소는 풀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인은 닭과 소를 묶는다. 둘은 동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풀은 식물이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전체적인 맥락 하에서 관계를 중요시하지만 서양인은 개별적인 개체가 갖는 (변하기 어려운) 속성에 더 주목한다. 총기 난사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에서도 동양인은 그 범죄자가 처한 상황에 주목하는 반면 서양인은 그 범죄자 개인의 폭력적인 성향에 주목한다. 이러한 사고의 차이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지, 이 차이를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앞으로 두 세계의 생각 차이가 수렴할지 혹은 서로 타협하기 어려운 '문명의 충돌'로 귀결될지에 대하여 논하였다. 저자는 두 문화가 서로 수렴하여 가운데 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였다.

지난 500년 동안 서양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를 무기로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왜 동양은 이렇게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말았을까? 그 원인으로서 동양적인 문화와 사고방식의 '열등성'을 떠올리는 것은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대체로 한국인(동양인 전체?)은 질문을 잘 하지 않고, 강연장에서도 앞자리에 앉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특성 하나를 가지고서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선하려는 노력(과학기술 및 공학의 목표이기도 하다)이 태생적으로 적은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좋을까? 동양 철학 체계에서 논리학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분명 불리한 일일 수도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만이 옳다는 편협한 사고도 위험하고, 문화의 충돌을 예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두 세계의 사고 체계가 매우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 부제: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 이정전 지음
완벽한 시장이란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보았다. 물론 이는 나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고, 독서나 인터넷 정보 검색 등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1. 경제 주체들은 모두 100%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시장에 참여한다.
  2.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의 품질과 가격 정보는 100%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지켜진다면 시장은 수요-공급 곡선에 의해서 완벽하게 움직일 것이고, 누구나 정당한 몫을 가져가며,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 주체는 전부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장은 옳고 바름과는 상관이 전혀 없는 메커니즘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소외되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고, 남들은 그렇지 않을 때 노력(요즘 분위에게서는 부유한 부모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을 통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치 못한 것을 비난받아야 할 것인가? 
시장에도 '정의'가 필요한 때가 왔다. 우리가 어떻게 이걸 풀어나가야 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정의가 사라져버린 시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 마이클 샌델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 이원재 지음
저자에 의하면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겨오던 경제학의 상식은 사실 이상하다. 시장에서는 모두가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 옳고, 경쟁은 항상 높은 효율성을 가져오며,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모두에게 좋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왜 2011년 7월 월스트리트에서는 "우리는 99%이다"를 외치는 시위대가 몰려들었을까? 같은 해 11월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10' 강의 시간에 학생들은 왜 공개편지를 통해 수업을 거부했을까?

마지막 파트에서는 안철수와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2018년 기준으로 본다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이 책은 2010년에 발간되었고, 기업인 안철수는 이후 교수를 거쳐 정치에 입문하면서 이미지를 많이 구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탐욕 없는 성공의 증거로 안철수를 소개하였다. 기업가로서는 그러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전통적으로 경영자의 사명은 투입(input)을 프로세스에 넣어서 산출(output)을 만들어내는 것까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성과(outcome)이라는 개념이다. 문제는 주주자본주의의 발달로 성과가 재무적인 성과만으로 치우치게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이익 중심으로 극심하게 변질되고 말았다. 스타벅스는 2008년 4분기에 18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그 다음 분기에 수천명의 직원을 해고하겠다는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바로 전년도 같은 분기의 이익에 비해 70%에 불과한 수준이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협동조합(아무리 출자를 많이 해도 1인 1표제), 윤리적 소비, 사회적 기업 등을 저자는 대안으로 소개하였다. 우리에게는 '탈성장 시대의 새로운 경제 문법'이 필요한 것이다.

검은 감자

  • 부제: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
  •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 곽명단 옮김
지은이 수전 캠벨 바톨레티는 지난번에 읽은 책 <위험한 요리사 메리>의 저자이기도 하다(독서 기록). 평소에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던 아일랜드 대기근에 관한 책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아일랜드인이 주식으로 먹던 감자에 지독한 역병이 퍼진 때문이지만, 이것이 이렇게 비참한 결과로 이어진 것은 당시 아일랜드의 사회 구조, 특히 소작농 제도와 농업 정책 등에도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농민들은 굶주리지만 영국으로 수출할 농작물은 여전히 배에 실려서 아일랜드의 항구를 떠났다고 한다. 더군다나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의 대책도 매우 미흡했다. 하지만 아직도 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루는 입장은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영국 정부가 대량학살을 저질렀다고 보는 입장(민족주의자), 영국이 인명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주장하는 입장(수정주의자)이 그것이다.

무작정 배를 타고 살 길을 찾아 북미로 떠난 이민자들도 항해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진이 없던 당시 신문에 실렸던 그림을 통해 이 책은 비극적인 기근 사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하느냐고 물으신다면(원제: How to be alive - a guide to the kind oh happiness that helps the world)

  • 콜린 베번 지음 | 이은선 옮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나가는 '정형화된 공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곧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흔히 자기계발서라고 하면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입장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만 주목한다. 자기계발은 곧 침몰할 타이타닉호를 타고 가면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을 '상호계발서'라고 하였다. 상호계발의 입장에서는 서로 도와서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단한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25년 전 숭산 스님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으며('오직 모를 뿐 비누'로 머릿속을 씻어라 - 현각 스님의 책으로도 출간됨) 현재 관음선원의 상임법사이기도 하다.

저자가 1년 동안 뉴욕에서 전기를 쓰지 않고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으며 사는 과정은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화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난자들

  • 부제: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 주승현 지음
저자 주승현은 비무장지대에서 북측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복무하다 휴전선을 넘어서 남측으로 내려왔다. 연세대학교 입학하여 10년 만에 최종적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비무장지대를 건너는데는 고작 25분이 걸렸지만 한국 사회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사는 그는 아직까지도 말 그대로의 조난자인지도 모른다. 탈북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진정한 통일시대를 대비한 실험으로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시기이다.

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독서 기록 - 공부의 철학(지바 마사야)

2018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는 여수에 출장을 왔다. 둘째 날의 모든 학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서 밀린 독후감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열었다. 참고로 나는 2 주 간격으로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5~6 권 정도 빌린다. 정해진 기한 안에 전부 읽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간혹 재미가 너무 없어서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도 있고, 간혹 시간이 부족하여 대출기간을 일주일 늘이기도 한다.

오늘 독후감을 적으려는 책은 젊은 일본인 철학자(1978년생)인 지바 마사야의 공부의 철학이다. 부제는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이다. 옮긴이는 박제이.


마치 90년대 아이돌을 연상시키듯 염색한 긴 머리를 한 그는 그러나 어엿한 대학 준교수(associate professor)이다. 이 책에서 논하는 깊은 공부(radical learning)란, 세상과의 동조에 서툴러지는 것을 의미한다. 도입부에서는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타자'를 소개하고, 유한과 무한의 대립, 언어의 불투명성에 대하여 논한다. 언어의 불투명성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언어를 조작하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모든 공부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일이 된다. 래디칼 러닝이란 곧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어 언어유희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러니와 유머, 그리고 난센스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환경에 순응하는 코드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이러니, 코드에서 어긋나려고 하는 것이 유머이다. '이래야 한다(당위)'를 '이러한 코드다'라고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을 '메타적 입장에 머문다'고 한다. 아이러니와 유머가 과잉 상태가 되면 극한 형태인 난센스가 된다.

아이러니는 원래 그리스어 eironeia에서 온 것이다. 이 말에 철학적 깊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소크라테스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아이러니(링크)>를 읽어보자.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자신의 현 상황을 메타적으로 관찰하여 자기 아이러니와 자기 유머의 발상으로 현 상황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고찰한다. 단 무비판적으로 무엇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결단주의는 피해야 한다. 아이러니의 비판성을 살려두면서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이번에 같이 읽은 책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한다고 물으신다면(원제 How to be alive - a guide to the kind of happiness that helps the world; 콜린 배럿 지음)>에서 정형화된 삶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어떤 종류의 책을 골라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실전적인 면을 설명하였다. 되도록 여러 종류의 입문서를 비교하고, 교과서나 기본서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한다. 전체를 다 읽으려고 애쓰지 말고, '골라 읽기'도 독서의 한 방법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의 타임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에버노트와 같은 앱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책 제목만 보아서는 역시 일본인 작가인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쓴 <지성만이 무기다>(독서 기록)와 같은 독서 및 공부 방법에 관한 책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현대 (프랑스) 철학 입문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토 다카시의 <철학 읽는 힘>(독서 기록)도 다시 기억해 두자.

지바 마사야의 저작으로 이보다 앞서 2017년 국내에 소개된 <너무 움직이지 마라>도 읽어보도록 하자.

2018년 6월 24일 일요일

수치화와 평가가 전부는 아니다

풍족한 간식, 그리고 평가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교육장의 모습이다. 교육도 일종의 서비스이므로 피교육자, 즉 고객에게 더 나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노력을 제공자가 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당연히 평가서에는 좋은 점수를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 금요일 직장에서 열렸던 연구역량강화 교육에 참여했었다. 요즘은 이런 교육을 제공하는 전문 기관이 생겨서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집합 교육에 참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렇게 현장에 와서 실시하는 집합 교육에 참여하기도 한다. 교육장에 들어가니 냉장식품이 든 스티로폼 상자가 여럿 보였다. 보통 물이나 커피, 쥬스와 과자 정도가 있는 정도인데 웬 냉장식품? 진행자가 상자를 열고 꺼내는 것은 일회용 용기에 담긴 생과일 쥬스와 아주 조그맣게 자른 티라미수 케익 등이었다. 오~ 이런! 이렇게 준비가 철저하다니! 나에게 감동이 밀려왔을까? 그건 아니었다. 물론 맛있게 먹기는 하였다. 하지만 먹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일회용 포장재는 다 어떻게 하고?

이렇게 길들여진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회의장이나 교육장에 가면 간식거리로 무엇을 주는지 기대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기 때문이다. 과도한 칼로리가 건강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을 물론이요, 간식을 담는 일회용 포장재의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아무데서나 먹을 것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모바일 간식(혹은 음료)'에 대한 생각은 다음에 정리하여 글로 남기고자 한다.

그 다음은 평가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계량하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말이다. 강의 평가서를 받는다는 것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표로 삼기 위함이다. 매우 좋은 목적이다. 그러나 계량(평가)를 하려면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올 봄에 며칠 동안 열리는 집합 교육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마지막 날 수료식을 마치고 강의 평가서를 작성해야 했다. 평가서 양식에는 약 10 사람의 강사 이름이 적혀있고 이에 대한 만족도를 여러 항목에 대해서 수치화하여 적어야 했는데, 강사 이름만으로 그 강의가 어떤 것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내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대충 평가서를 적어야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하여 아예 평가서를 펼쳐놓고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즉시 평가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오히려 강의에 집중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강의(교육)란 지식을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평가서를 펼쳐놓고 강의를 들으니 마치 내가 강사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는 면접장에 앉은 면접관이 된 느낌이었다. 교재는 잘 짜여졌나? 전달력과 강의 태도는 우수한가? 이런데 집중을 하면서 오히려 강사가 전달하는 내용은 한 귀로 흘려듣게 되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독자에서 문학 평론가의 입장인 척 하려니 오히려 책이 주는 정보와 감동에 집중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평가서에 체크를 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일년에 한 번 정도 학회 참석을 위해 국외 출장을 간다. 정부 연구비의 지원으로 다녀오는 것이니 출장 보고서를 남겨야 한다. 대충 작성하는 사람도 있고, 동행인 표시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어서 다른 사람이 작성한 보고서에 이름만 얹으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좀 더 꼼꼼한 편인 나는 충실한 보고서를 만들고자 강연 내용을 열심히 메모를 한다. 그런데 때로는 이 일이 너무 과도해서 정작 영화나 책을 보듯이 편안히 음미를 하지 못한다. 이 일은 '평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기록 행위 자체는 강의 평가서를 만드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전부 수치화하여 순위를 매길 수도 없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정서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가전제품 수리를 위해 서비스 센터를 다녀온 뒤 전화로 서비스 만족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연말이 되면 공공기관의 인프라 부서는 고객만족도 평가를 한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정책을 펼치기 전에 여러 가지 형태의 설문 조사를 하는 일도 잦다. 대부분 설문지의 문항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기 일쑤이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것에도 마찬가지의 의도가 작용한다. 모 일간지에서 정례화한 대학순위평가라는 것도, 그 일간지의 인지도·사회적 영향력·발간 부수와 구독률(종이 신문을 별로 보지 않는 요즘은 의미가 없는 지수이지만)·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광고 수주를 높이기 위한 철저한 기획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이 평가에서 좋은 순위를 받기 위한 대학의 노력은 좀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학교 본연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계량화와 평가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을 다 이렇게 처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수치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자정(子正)은 오늘인가 내일인가

늦은 시간,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떤 식당 옆을 지나게 되었다. 그 식당에는 LED 광고판이 붙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이 영업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영업시간: 오전 1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아마도 영업주는 낮 12시에 문을 열어서 밤 11시에 닫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전 12시는 24시 시간 체계에서 0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전광판에 표시된 문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우리 가게는 밤 12시(자정)에 문을 열어서 하루 종일 영업을 하다가 23 시간째인 밤 11시에 닫습니다'는 말이 된다.

하루를 12시간 단위인 오전과 오후로 나눌 때, 나머지 시각은 이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그 단위의 경계가 되는 12시는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문제가 된다.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에서 한 주의 시작이 무슨 요일인가를 다루면서 이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링크). 이에 의하면 하루에 두 번 있는 12시는 오전이나 오후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으므로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낮 12시, 밤 12시'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오전과 오후의 경계가 아니라 하루의 경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오늘 밤 12시'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오후 11시 59분에서 1분이 지난 시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 이 시각은 내일(의 시작) 아닌가? '자정'이라는 표현도 '날'과 결합하면 종종 혼동을 불러 일으킨다.
이 과제의 온라인 제출 마감은 6월 20일 자정까지입니다.
그러면 6월 20일 0시가 마감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6월 20일 24시(=21일 0시)가 마감이라는 뜻인가? 상식적으로는 6월 20일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난 밤 12시를 의미할 것이지만, 6월 20일 0시가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법 하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24시, 즉 하루가 끝나는 시점을 자정으로 해석한 것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혼동을 막기 위해 뉴스 등에서는 자정(=오전 12시), 오후 12시(낮 12시)이라는 표현 대신 철저히 24시 체계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자정이라는 낱말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자정이라는 낱말이 만들어지고 쓰이던 시절에는 하루가 바뀌는 경계과 자정은 별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대단한 결심을 했어. 오늘 자정을 기하여 실행에 옮긴다!
자정을 0시로 정의한다면 이 말은 넌센스가 된다. 이미 0시는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언어 현실에서 자정은 하루가 끝나는 밤 12시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딴지를 걸자면 오늘 밤 12시는 이미 내일의 시작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한국 대 멕시코의 경기가 6월 24일 0시에 열렸다. 이를 예고하는 뉴스를 직접 보지는 않았다. 아마도 어제(6월 23일) 앵커는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비록 자연스런 표현이기는 해도 말이다.
오늘 밤 12시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열립니다.
오늘 자정에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열립니다.
우리의 언어 현실에는 지극히 자연스런 표현이다. 하지만 6월 23일 앵커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내일(24일) 새벽 0시에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열립니다.
이 글은 24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작성하고 있다. 이미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는 다 끝난 과거의 사건이 되었는데, 뉴스 앵커는 이 시점에 '오늘 자정에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열렸었죠'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오늘 새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자동차 보험을 새로 들었을 때 효력이 발생하는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오늘(6월 24일) 계약을 체결했다면 밤 12시부터이다. 계약서에는 6월 24일 24시로 표현된다. 그러나 나는 이를 결국은 같은 시간이지만 6월 25일 0시부터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휴대폰 시계에서 자정에 날짜가 바뀌는 것을 보라. PM 11시 59분에서 1분이 지나면 정확히 다음날 AM 12:00 (혹은 00:00)으로 표시되지 않는가? 시계의 표현 방식을 12시에서 24시 체계로 바꾼다 한들 24:00이 표시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현실 생활에서는 한밤중이라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이지만, 하루의 경계를 이 사이에 심어서 둘로 나누는 것이 불가피하니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어쨌든 자료 조사와 내가 가진 상식을 종합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쓸 것을 제안한다.

  • 12시에는 '오전' '오후'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고 대신 '낮 12시', '밤 12시'라고 한다.
  • '자정'에는 가급적 '날'과 관련된 표현을 붙이지 않는다. 대신 몇일 0시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 오늘 밤 12시는 사실은 내일이다 :)


2018년 6월 20일 수요일

로드 엔드 베어링(rod end bearing)은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

인터넷이나 뒤적거리는 일반인의 지식 수준이 오죽하겠는가. 진공관 앰프용 트랜스포머 권선기를 만들면서 회전축을 지지하기 위한 적당한 물건을 찾다가 지난 5월 하순에 로드 엔드 베어링을 알리익스프레스에 주문하여 오늘 받았다. 고정된 축이 자유롭게 회전하는 그런 베어링을 꿈꾸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응? 뭐가 이렇게 뻑뻑하지? 내가 상상하는 용도가 아니었나? 다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이 베어링은 축의 회전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일정 각도 이내에서 축이 자유롭게 꺾일 수 있게 하면서 축을 단단히 지지하는 물건이었다. 유튜브에서 캡쳐한 다음 사진을 보자(원본 링크). 이것은 비행기의 보조익을 움직이는 봉 끝에 쓰인 사례이다.


그냥 흔한 몇백 원 짜리 미니어쳐 베어링이나 살 것을... 

그림 출처: 베어링샵. 제품명은 미니어쳐베어링 일반형 내경 6~9mm이다.


2.14 달러 낭비했다. 이렇게 배워가는 것 아니겠는가. 

2018년 6월 17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예술가로 살만합니다> 외 다섯 권


예술가로 살만합니다

  • "우리 동네 예술가들과 작업 이야기"
  • 이상진 글·그림
예술을 생업으로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장래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며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딸아이를 보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하는 학교에 들어간다 해도 졸업 후에 원하는 일을 하면서 과연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지은이 이상진은 드로잉 작가와 그림선생님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살고 일하는 연남동 주변의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들의 솔직한 모습을 그림과 글로 담았다. 수제화 공방, 1인 미용실, 음악 스튜디오, 도자기 공방 등 그 범위도 매우 다양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꿈을 꾸는 자에게는 (열심히 노력하면 대체로) 길이 열린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괄호 안의 글에 담긴 의미가 무겁지만 말이다. 특정 지역이 이슈화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샵을 내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지만,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서 처음에 분위기 조성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사람들이 점점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고, 결국은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이곳을 차지하면서 해당 지역의 모습이 점차 삭막해져가는 일이 되도록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링크는 바로 다음의 책 <무용지물 경제학>의 주장과 연관지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임대료가 아니라 권리금이다

무용지물 경제학

  • "정통경제학의 신화를 깨뜨리는 발칙한 안내서"
  • 베르나르 마리스 지음 | 조홍식 옮김
수요와 공급의 법칙, '보이지 않는 손', 경쟁과 효율의 추구, 모든 경제 주체들이 이기적인 동기로 움직인다는 것, 심리학과 경제학이 뒤범벅이 된 요즘의 이론... 현대 경제학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현실을 이해하자는 취지를 한참 벗어나서 이제는 '이러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계를 움직이려 한다. 법칙을 더욱 손질하고 난해하게 만듦으로써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저자의 결론은 이러하다.
  1.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바보다.
  2. 완전경쟁에 가까울수록 세계는 더욱 비효율적으로 변한다.
  3. 교환가지가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라 비화폐적이고 호혜적인 행동이 발전을 이끈다.
342쪽부터 나오는 로빈스 크루쏘우와 프라이데이의 국민생산 모델(toy model)은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다. 기회가 된다면 브뤼노 방뜰루(Bruno Vebtrlou)가 제시했던 원본 글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유엔을 말하다

  • 장 지글러(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지음 | 이현웅 옮김
이번에 읽은 여섯 권이 책 중에 불편한 현실을 가장 잘 일깨워준 책이다. 장 지글러는 학자이자 활동가로서 <왜 세계의 절만은 굶주리는가>를 쓴 사람이기도 하다. 유엔 이전 존재했던 국제연맹이 무력하게 사라졌듯이 유엔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쟁과 기아, 빈곤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적 조직이라는 점에서 희망을 놓을 수는 없다. 물론 현재의 유엔이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엔이 형성된 과정, 운영 방식, 미국의 영향력과 공작, 상임이사국이 행사하는 거부권의 문제점 등에 대하여 상세히 묘사하였다.

특히 5장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략>을 관심있게 읽었다. 
다자 외교에 견주어볼 때, 키신저는 제국주의적 이론과 전략을 육화하고 있는 인물이다... 제국주의 이론의 바탕에는 이러한 가정이 있다. 제국의 정신적인 힘,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 법적 의지, 사회 조직은 안정을 보장한다. 제국만이 국가, 국민, 대륙 사이의 평화를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히 말한다면 미국이 신으로부터 민주주의와 문명을 전파할 임무를 부여받았을 거라는 이런 메싱적 이데올로기는 아직까지도 낡은 것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키신저는 이 책에서 왜 미국이 핵폭탄을 자유롭게, 그리고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 정당한 권한을 가진 세계 유일의 국가인지 설명한다... 국제법, 인권, 국제인도법의 기준에 따르면 헨리 키신저는 전범이다. 나아가 그의 세대에서도 가장 악한 전범 중 한 사람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키신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들의 주동자였고, 당시에 그 대륙에서 성립된 폭력적인 독재 체제들의 가장 충실하고 능력 있는 보호자였다. 
156쪽부터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된 과정과 그 배경을 다루고 있다.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한국 경제 4대 마약을 끊어라

  • "권태호 묻고 유종일 답하다"
  •  유종일(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과 권태호(한겨레 논설위원)의 대담집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급기야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철학과 정당성·도덕성이 없는 정권이 한 국가의 역사를 얼마나 잘못된 길로 후퇴시켰고, 이를 청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이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압축 성장만의 신화를 좇던 과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약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1. 투자라는 이름의 마약 - 자본과잉 시대의 투자 방향 전환
  2. 환율 마약 - 수출주도 아닌 소득주도 성장
  3. '빨리빨리 마약'과 혁신성장 - 여유가 있어야 '유레카'가 나온다
  4. '찍기'라는 마약 - '선택과 집중'을 넘어 '백화제방, 백가쟁명'으로
새 정권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하여 비정규직 철폐·최저임금인상 등을 주요 정책으로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고용지표와 같은 현실적인 경제 수치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이에 대하여 자유주의적 경제론자들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고, 경제 지표를 측정하여 이를 평가하는 데에는 현 대통령의 임기 내에는 어려울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며 경제적 체질 개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위험한 요리사 메리

  • "마녀라 불린 요리사 '장티푸스 메리' 이야기
  •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 곽명단 옮김
아일랜드 이민자였던 메리 맬런(Mary Mallon, 1869~1938)은 강건한 신체에 자존심이 높고 지적 욕구도 높은 가정 요리사였다. 그런데 그녀가 일했던 집에서 연쇄적으로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하였다. 세균이 감염병이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보건 위생에 대해서 제도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던 시기였지만 아직 항생물질은 발견되기 전이었다. 공교롭게도 메리는 아주 건강한 상태에서 장티푸스 균을 퍼뜨리는 보균자였던 것이다. 그녀가 유일한 건강 보균자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중 추적 끝에 붙잡혀서 격리시설에 수용되어 일생을 보내야만 했다. 그녀는 황색 저널리즘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실명이 공개된 채로 자극적인 그림(요리하면서 내쉬는 숨에 해골이 그려짐)과 함께 장티푸스를 퍼뜨리는 마녀처럼 취급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던 것이다. 고용된 가사 노동자로서의 평범한 삶이 완전히 파괴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을까? 그녀가 보건 당국에 조금만 더 협조적이었다면 조금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리는 자기 삶은 직접 제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고, 남의 개입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것이 비록 공적이 권력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녀가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요리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보균자로서 아무리 개인 위생에 조심을 한다 하여도 요리사라는 직업을 이어 나갈 수는 없다. 당시 사회는 이러한 개인에게 다른 직업을 갖도록 재교육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강제 수용 중인 그녀에게 장티푸스 균이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생제가 없던 시절 수술은 위험한 일이었고 그 효과도 확신할 수 없었으며, 메리 자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저자가 지은 <검은 감자(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도 읽고 싶어졌다.

별난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 코드

  •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배우는 경제학"
  • 청스 지음 | 임보미 옮김

2018년 6월 16일 토요일

6월의 일상


자전거 타이어용 펌프로도 자동차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다. 공기압은 로드 자전거용 타이어에 비하면 훨씬 낮지만 워낙 많은 양의 공기를 넣어야 하기에 2-3 주에 한 번씩 이렇게 바람을 넣다 보면 등허리가 뻐근하다. 타이어는 아직 교체 주기가 되지는 않았으나 천천히 공기가 빠지는 증세를 앓고 있다. 카센터에서 비눗물을 칠해가며 점검을 몇 차례 하였지만 공기가 새는 곳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니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공기를 채울 수밖에... 매번 차에 오르기 전에 타이어의 상태를 확인하는 버릇이 든 것은 좋은 일이다.


알라딘에서 구입한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의 음반. '형제들(Fratres)'에 이어서 두 번째로 구입한 패르트의 음반이다. 이번에 구입한 음반에 수록된 곡은 Tabula Rasa, Collage über Bach, 그리고 Symphony No. 3이다. Tabula Rasa는 '깨끗한 석판(위키)'을 의미한다.  깨끗한 석판 또는 빈 서판은 철학 이론으로도 매우 잘 알려진 용어이다.

패르트의 음악은 간결하고 느리며 서정적이다. 명상을 위한 음악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패르트의 음악에서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그의 신앙적 바탕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마치 복잡한 수학 공식처럼 난해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

2018년 6월 15일 금요일

박테리아 유전체에서 재조합(recombination)의 흔적을 찾기

내가 생각하는 진화라는 것은 결국 유전체 서열의 변화가 표현형으로 나타나고, 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개체의 빈도가 집단 내에서 늘어나는 현상이다. 좀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적합도(fitness)가 낮아진 개체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까지 포함해야 할 것이다.

흔히들 박테리아의 진화라고 하면 단일 염기서열 수준에서 일어나는 염기치환변이 또는 indel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상동유전자 서열을 여러 종에서 모은 다음 다중서열정렬을 해 보면 기준 종에서 먼 것일수록 염기서열의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난다. 이러한 염기(서열)의 변화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DNA polymerase의 실수, radiation으로 손상된 염기의 불완전한 수복, DNA의 double-strand break가 일어난 뒤 일어나는 error-prone repair 등 다양한 메커니즘이 있지만 교과서를 쓰고자 함이 아니니 깊게 들어가지는 않겠다.

실제로는 이보다 과격한(?) 유전체 변이가 더욱 빈번하게 벌어진다. Insertion sequence의 삽입이라든가 prophage의 침입 등이 그러하다. Horizontal gene transfer도 많은 연구자들의 흥미를 끄는 주제이다.

그런데 (homologous) recombination에 의해서 외부의 유전자(일부, 전부 혹은 클러스터)가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하게 된다. Recombination, 즉 재조합이란 기원이 다른 DNA 조각이 서로 교차하여 새로운 혼성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ds DNA 가닥이 끊어져서 서로 근본이 다른 것끼리 연결되는 것이다. 재조합이 일어나는 정도는 미생물 종마다 매우 다르다. 결핵균처럼 매우 제한된 환경에서 '조용히' 서식하는 것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적지만, 자연적인 transformation이 가능한 세균으로서 자유롭게 바글거리며 사는 세균은 그 빈도가 매우 높다.

Recombination은 계통발생학 분석을 하는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수십 종의 미생물 유전체 서열로부터 multiple sequence alignment를 공들여 얻은 뒤 phylogenetic tree를 그리는 것이 요즘 genomics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일인데, 유전체 상의 특정 block이 재조합에 의해서 '훌러덩' 유입된 것이라면 족보를 그리는 일이 아주 까다로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조합의 검출하는 일 역시 매우 어렵다.

Homologous recombination을 검출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은 Xavier Didelot의 ClonalFrame이 그 시초가 아닐까 한다(Inference of bacterial microevolution using multilocus sequence data. Genetics 2008, PMC 링크). 이것은 원래 mltilocus sequence 데이터를 이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녹색은 mutation, 빨강색은 recombination. 
이후 수백 개의 genome sequence를 다룰 수 있는 도구가 등장하면서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졌고, 요즘 유행인 베이지언 기법을 이용한 것도 등장하게 되었다. 임상에서 분리한 Streptococcus pneumoniae의 대규모 유전체 분석을 통하여 recombination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남을 밝힌 선구적인 논문이 이미 2011년에 Science에 게재된 바 있다.

Rapid pneumococcal evolution in response to clinical interventions. Science 2011 331:430 PubMed 링크

치료 중인 환자에게서 분리된 감염균은 살아남기 위하여 온갖 전략을 구사한다. 그 중의 하나는 항원으로 작용하는 capsule의 스위칭을 하는 것이고, 바로 여기에 recombination이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물론 recombination을 검출하고 멋지게 그림을 그려주는 도구는 이 논문 이후에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안다. 당시에는 SNP의 density를 이용하여 recombination이 일어난 곳을 추정하였었지만 지금은 훨씬 세련된 통계학적 추론을 이용하는 도구도 있다. 아래 그림의 오른편에 보인 heatmap에서 빨강 블록으로 표시된 것이 바로 재조합이 일어난 곳이다.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648787/figure/F1/
요즘 내가 테스트하는 것은 Sanger Institute에서 개발한 Gubbins이다(링크). 2014년 Nucleic Acids Research에 'Rapid phylogenetic analysis of large samples of recombinant bacterial whole genome sequencing using Gubbins(링크)'라는 논문으로 발표가 되기도 하였었다.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데이터셋은 바로 위에서 소개한 Science 2011년도 논문의 것을 사용하였다(PMEN1 dataset 링크).

Gubbins를 실행하려면 FASTA 형식의 whole genome alignment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처럼 쉽게 뚝딱 만들어지지가 않는다. 먼저 고려할 것은 raw sequencing read에서 시작할 것인가, 혹은 assembled sequence에서 시작할 것인가이다. 처음에는 Roary(assembly 필요)가 만들어내는 core gene alignment를 활용할 생각을 했었으나, 이것은 유전자들을 concatenation한 것이다. 따라서 gubbins 분석이 끝난 뒤 재조합이 일어난 부위의 유전자를 찾으려면 별도의 파일(core_alignment_header.embl)을 참조해야 한다. 이것은 상당히 성가신 일이다. Reference의 좌표에 맞추어서 각 alignment를 배열하고 그 사이에 gap('---')을 넣은 파일이 필요한데 말이다.

Harvest suite의 parsnp를 사용하면 유전체 서열에서 유래한 alignment가 나오지만 이것 역시 concatenated sequence이다. Gubbins가 딱 필요로하는 형태의 FASTA alignment 파일을 만들 방법이 없는지 구글링을 반복하다가 Snippy라는 도구를 찾았다. 이것은 raw sequencing read뿐만 아니라 contig도 사용할 수 있으며, .aln(core SNP alignment)과 .full.aln(whole genome SNP alignment including invariant sites)를 생성해 주므로 후자를 gubbins에 투입하면 된다. 하지만 막상 설치를 하니 에러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첫번째 에러에 대해서는 개발자 사이트에 이미 보고가 되어 있었고(error with gbk #154) 임시방편으로 버전을 낮추어 쓰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했더니 vcflib의 위치와 관련한 에러가 또 발생하여 freebayes-parallel 스크립트의 40번째 줄을 고치는 수고까지 해서 겨우 성공적으로 실행을 하였다. Snippy 설치 이력에 대한 정보는 별도의 글로 상세하게 작성해 보고자 한다.

2018년 6월 14일 목요일

ANI 분석에 의한 잘못된 종명 바로잡기 - NCBI

NCBI에 유전체 서열을 등록할 때에는 여러 가지의 quality control process가 진행된다. Contig의 수가 너무 많거나 그 길이가 지나치게 짧지는 않은가? 200 bp 미만의 contig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Vector나 adaptor, 혹은 일루미나 시퀀싱 장비를 구동할 때 control로 들어가는 phiX174 서열은 섞여있지 않은가? Species 명칭은 올바른가?

이런 사전 점검 프로세스를 거쳤다 해도 균주의 species 명칭을 잘못 붙인 것에 대한 점검은 오로지 제출자의 몫이었다. 천랩의 EzBioCloud에서는 다른 어느 유전체 서열 데이터베이스보다도 빠르게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상태였다. 즉 특정 종의 type strain에 대한 유전체 서열이 이미 공개된 상태라면, 등록된 다른 미생물 유전체의 서열을 이것과 대조하여 ANI(average nucleotide identity)에 기반한 종 동정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용자 Bacillus amyloliquefaciens라는 이름을 붙여서 유전체 서열을 등록했고 NCBI에서도 이 정보를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EzBioCloud의 genome 항목에서는 자체 동정 결과에 의하여 Bacillus velezensis라고 명명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시퀀싱이 된 type strain이 점차 증가하면서 NCBI에서도 'submitted organism name'이 맞는지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수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새벽에 NCBI에서 받은 이메일에는 과거에 내가 Bacillus endophyticus의 스트레인이라고 등록한 유전자를 Bacillus filamentosus로 변경할 예정이니 이것이 옳지 않다는 합리적인 증거를 2주 이내에 제시하지 않으면 WGS는 물론 BioSample과 BioProject도 업데이트가 될 것이라 하였다.

실제로 이런 과정이 적용된 WGS 엔트리 하나를 살펴보자. 이는 안내 메일에 소개된 것이다.

https://www.ncbi.nlm.nih.gov/nuccore/JWAI00000000.1/


늘 접하던 ###Genome-Assembly-Data### 블록 위에 ###Taxonomic-Updated-Statistics###라는 블록이 새로 생겼다. 원래 Bifidobacterium longum이라는 이름으로 제출이 되었던 유전체 정보 기록이지만, ANI 분석에 의하여 Alloscardovia omnicolens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RefSeq이 아니라 GenBank 엔트리임에 유의하자. 

이는 매우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13만개가 훌쩍 넘는 유전체 정보를 전부 점검하여 일괄적으로 변경을 하는 것인지, 점진적으로 점검을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제출한 유전체 서열과 cutoff 기준을 만족시키는 sequenced type strain이 아직 없다면, submitted name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메일에서 소개한 관련 논문 두 가지도 인용해 본다.

Meeting report: GenBank microbial genomic taxonomy workshop (12-12 May, 2015). Stand Genomic Sci (2016 ) PMC

Using average nucleotide identity to improve taxonomic assignments in prokaryotic genomes at the NCBI. Int J Syst Evol Microbiol (2018) PubMed

그림 1. ANI process workflow for processing of pre-submission genomes.
출처: 두번째 논문(Int J Syst Evol Microbiol)

2018년 6월 11일 월요일

LinkedIn을 탈퇴하다

나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가입이 되고, 메일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지메일에서는 현명하게도 광고성 메일은 '프로모션' 항목에, 인맥 관련 메일은 '소셜' 항목으로 자동 분류해 주어서 번거로움을 덜어주고는 있다.

링크트인(LinkedIn)에서는 수시로 이메일 메시지가 날아온다. 누가 새로운 1촌이 되었으며, 누가 연락을 보냈으며, 새로운 직장으로 갈 수 있는 어떤 기회가 생겼으며... 마치 내가 인터넷 상의 정보의 바다에서 전세계의 사람들(주로 직장 혹은 비즈니스와 관련이 있는)과 연결이 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실 나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네트워킹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나는 카카오톡조차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2011년 네이버에서 쓰던 내 블로그(지금은 백업 후 전부 삭제)에 몇 가지 소셜 서비스가 성격에 맞지 않아서 탈퇴한다고 글을 썼더니, 뜬금없이 이런 댓글이 붙었다.
제 생각으로 님은 사회부적응자 외톨이시군요... 좀 안스럽네요...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까다로운 인간이라는 글도 종종 보인다.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에 따라서 움직인다면 다른 사람의 삐딱한 시선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휴대폰을 하릴없이 들여다보면서 다른 사람이 어떤 글과 사진을 올렸는지, 내가 올린 것에 사람들이 어떤 댓글을 달았는지 모니터링하는 것도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고민하고 공부하고 나누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열린 개인공간(블로그 처럼)에 꾸준히 기록을 할 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기억을 돕기 위한 것이고,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기쁨이리라.

주말에 이틀 정도 고민을 한 뒤 링크트인을 탈퇴하였다. 나의 일촌(몇 명 되지 않는다) 혹은 일촌 후보들에게 '정해영님이 LinkedIn을 탈퇴하였습니다'라는 소식은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회원이 합류하여 일촌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메일을 날릴 뿐이다. 필요하다면, 수고스럽더라도 내가 직접 인맥을 찾겠다.

2018년 6월 10일 일요일

여권 사진을 찍으며

9월에 다녀올 국외출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권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이제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여권을 다시 만드는 것은 신규 발급과 같이 취급하는 것 같다. 여권 재발급은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수록 정보의 정정 및 변경, 여권 분실, 훼손, 사증란 부족 등의 이유료 여권을 다시 발급받는 것을 뜻한다.

여권 발급에 필요한 구비서류는 여권발급신청서, 6개월 이내 촬영한 여권용 사진 1매, 신분증이다(외교부 여권안내 홈페이지 링크).

휴대폰으로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는다 해도 증명에 필요한 개인 사진은 사진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관에서 내 사진을 찍은 것이 언제였을까? 꼭 10년 전 여권을 다시 만들 때, 그리고 2011년 승진을 하면서 출입증을 재발급 받을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하여 근처의 사진관을 찾았다. 세 컷 정도를 촬영한 뒤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한 다음 그자리에서 보정을 완료하여 총 8 장의 사진을 넘겨받았다. DSLR로 찍은 내 얼굴을 컴퓨터 모니터로 상세하게 펼쳐보니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는 것이 약간 슬펐고, 생각보다 촬영 후 보정 작업을 많이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약간 뻗쳐나간 머리카락,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어깨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촬영 전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정리할 필요도 별로 없다고나 할까. 촬영을 할 때 가장 나에게 주문한 것은 고개의 각도와 표정 정도였다. 나머지는 보정으로 해결 가능하니까 말이다.

'고개의 각도'를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항공기에서 흔히 쓰는 용어인 롤링(rolling), 요잉(yawing), 그리고 피칭(pitching)으로 나누어 보면 된다. 얼굴을 정면에서 후면으로 관통하는 선을 x 축, 얼굴을 촤우로 관통하는 선을 y 축, 그리고 이에 대해 수직으로 위치한(즉 목뼈의 방향) 선을 z축이라 하자.
  • 왼쪽으로 갸우뚱하게 해 보세요(x축에 대한 회전) - 롤링
  • 오른쪽으로 돌려보세요(z 축에 대한 회전) - 요잉
  • 고개를 좀 들어보세요(y축에 대한 회전) - 피칭
자료 출처: 위키피디아(링크)

자기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진사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거울로 자기의 모습을 보아도 어느쪽으로 머리가 기울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단, 피칭의 정도는 다른 사람이 옆에서 봐 주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근골격계 질환이 있거나 늘 바르지 못한 자세로 있는 것이 습관화된 상태라면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축에 대해서 머리가 돌아가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세 컷의 사진 중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나 고른 다음 실제 보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하였다. 사진사는 보정하는 과정을 옆에서 그대로 지켜보게 하였었다.
'나중에 오세요' 혹은 '잠시 차 한잔 하시면서 기다리세요' 하지 않고 작업하는 모습을 다 지켜보게 하는 것은 작업자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을까?
사진을 촬영하면서 고객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고 주문하는 것과, 사진 촬영을 한 뒤에 수정하는 것 중 사진사는 어느 것을 더 선호할까?
주름이나 잡티를 제거해 주는 정도는 모르겠지만, 증명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에서 윤곽을 수정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사진은 정말로 현실의 기록인가? 우리는 사진이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현실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의도하지 않았었지만 정성들여 준비한 뒤에 찍은 2018년 6월 나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출력트랜스를 만들 자재를 준비하다

R 코어와 에나멜선, 그리고 보빈이 전부 갖추어졌다. 에나멜선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승리케이블에 주문하여 택배로 받았고, 보빈은 30 ml 주사기(그린젝트-30)의 실린더를 길이 32 mm로 자른 것이다. 작업할 때 공작물을 고정하여 두 손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얼마나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실톱으로 주사기 실린더를 자르는 간단한 가공에서도 왼손으로는 작업물을 지지하고 오른손만으로 톱질을 하려면 상당히 어렵다. 이제는 공작용 소형 바이스를 하나 장만할 때가 되었다.


정작 트랜스포머 코일을 감을 때 필수적인 도구인 권선기는 아직 만들지 못하였다. 권선기에 들어갈 카운터(아래 사진)는 이미 구입하여 놓았지만 베어링이나 커플링 등 구동부의 핵심 부품이 아직 배송 전이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서 보인 디지털 카운터는 자기장에 반응하는 홀(Hall sensor)를 이용한 것이다. 회전하는 물체에 자석을 붙여서 한번 회전할 때마다 센서 근처를 지나가게 하면 수치가 하나씩 올라가는 것이다. 단, 역회전인지 정회전인지는 알지 못한다. 완전 수동식 코일 권선기는 잘못 감은 것을 반대로 돌려서 풀어내면 이에 따라서 회전수도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이 카운터를 사용하면 앞으로 감으나 뒤로 풀어내나 똑같이 카운트 수치가 올라가므로 조심해야 한다. 

다음 주 중에는 필요한 부품을 전부 구해서 늦어도 주말에는 보빈에 에나멜선을 감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미세먼지에 쫓겨서 급히 되돌아온 주말 전주 나들이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때에는 두 번을 방문하여 영화의 거리와 객사길 언저리만 돌아다니다 돌아왔었다. 한옥마을의 북적이는 분위기를 다시 즐기고 싶어서 어제 토요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다시 전주를 찾았다. 치명자산 임시주차장과 한옥마을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그렇게 많이 탔었는데 기사분이 전주관광지도("한국 전통문화의 중심 전주여행지도")를 나누어주며 안내 방송을 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전주여행지도에서는 테마별로 총 다섯 곳의 권역을 소개하였다.

  • 덕진권역: 역사와 문학이 담긴 생태문화 명소
  • 아중호수권역: 해질 무렵 야간경관이 아름다운 곳
  • 서부권역(신도심): 젊음의 낭만이 시작되는 거리 명소
  • 한옥마을권역: 처마 밑으로 전해오는 전통의 향기
  • 전주부성(원도심)권역: 조선시대, 근대 전주옛길, 객사길(객리단길)을 찾는 곳

동전주 IC로 빠져나오는 길목에 위치한 아중호수가 늘 눈길을 끌었었는데 이 지도를 보니 저녁무렵에 한번 들러서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졌다.

마침 시간이 맞아서 경기전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링크). 변함없이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전동성당에서는 결혼식을 막 마친 부부가 성당 앞 계단에서 하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늘 즐겨찾는 JB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객사쪽으로 가 보려고 밖으로 나섰는데 바람이 심하고 공기는 너무나 뿌옇게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다음의 화면 캡쳐는 오늘(일요일)의 상황인데 어제는 이보다 조금 더 나빴었다. 아마 153~156 정도였을 것이다. 대전, 군산, 논산, 김제, 공주 등 주변 지역을 다 검색해 보았지만 전주가 가장 대기 질이 나빴다.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빗방울도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여 서둘러 대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고속도로로 접어들어서 이동하기 시작하니 뿌옇던 주변이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보고 먹고 즐길 거리가 많아도 이렇게 대기의 질이 나쁘면 소용이 없다.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는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이고, 우리의 노력으로 과연 이를 줄일 수 있는 것일까? 선택의 여지가 이렇게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2018년 6월 6일 수요일

원핵생물의 분류학을 위한 유전체 데이터의 최소 기준 제안

오늘은 올 초에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하나 소개해보려 한다.

Proposed minimal standards for the use of genome data for the taxonomy of prokaryotes. Int J Syst Evol Microbiol 2000; 68:461-466 PubMed PDF 파일

흔히 IJSEM이라고도 줄여서 부르는 학술잡지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and Evolutionary Microbiology"는 미생물의 분류학을 다루는 전문지이다. 새로운 분류군을 보고하고 분류학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미생물이라고 하면 무척 다양한 생물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서 광합성을 하는 단일세포 생물인 클로렐라도 넓은 의미의 미생물에 속한다. 그러나 IJSEM은 세균(bacteria)과 효모(yeast)만을 다룬다. 이 글에서 말하는 좁은 의미의 미생물은 핵이 없는 원핵생물(prokaryote), 즉 박테리아(세균)를 뜻한다. 엄밀히 말하면 고세균(archaea)도 원핵생물의 한 부류이지만 말이다.

신종으로 공인이 되려면 이에 대한 표준 균주(type strain)를 공인 균주 은행 최소 두 곳에 이를 기탁하여 균주 번호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전북 정읍 소재 생물자원센터(KCTC, Korean Collection for Type Cultures 링크)가 있다. 균주 번호 끝에 윗첨자 T(혹은 괄호를 둘러친 T)가 있다면 이것은 그 종의 표준 균주임을 뜻한다.

박테리아는 형태적으로 비교적 단순하여 그 모습을 보고 분류를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형태적 특성 외에도 분석적 방법(지질 분석, 전체 세포 단백질 분석)과 유전적 방법(G+C 비율, DNA sequence...)을 총동원하게 된다.

두 생명체가 같은 종에 속하는지를 판별하는 문제 역시 박테리아에서는 쉽지 않다. 다른 생물에서는 서로 교배를 해서 생식 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으면 동일 종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박테리아는 유전물질을 서로 1:1로 교환하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없다(파트너에게 유전물질의 일부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과정은 있다). 그러나 두 개체 혹은 두 집단이 동일 종에 속하는지를 판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기준은 DNA-DNA hybridization(DDH)을 하여 70%를 넘는 similarity가 나오면 동일 종으로 판별한다는 것이다. IJSEM에 새로운 미생물 종을 보고하려면 여러 특성을 조사하는 것 외에 알려진 다른 종의 표준 균주에 대하여 DDH가 70% 이하로 나와야 한다. 문제는 이 실험 기법이 숙련되기가 어렵고 재현성도 높지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실험을 해 본 적도 없고, 이 실험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한 적도 없다. 신종 미생물 등록 실적에서 세계 1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성균관대 윤정훈 교수가 근처에서 근무할 때 구경이라도 한번 할 것을 그랬다.

상황이 이러하니 과거에 부정확한 DDH 실험 결과를 가지고서 신종으로 보고했던 미생물이 나중에는 이미 알려진 종과 같은 것이라는 논문(A is a later heterotypic synonym of B...)이 종종 발표되는 것이다. 이제는 NGS를 통해서 genome sequencing을 누구나 싼 값에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까다로운 DDH 실험을 할 필요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DNA 간의 유사도는 결국 염기서열 배열 정보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유전체 DNA를 읽어서(이 과정은 철저히 표준화가 되었고 오차나 재현성의 문제가 거의 없다) 서로 비교하면 DDH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16S rRNA gene sequence도 균주 동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로 쓰이고 있지만 이것이 98.7% 보다 같거나 높으면 두 균주가 동일한 종인지 혹은 아닌지를 알기 어려워서 DDH 실험을 해야만 했다.

서론이 길었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서는 이러한 유전체 데이터를 원핵생물의 분류학에서 쓰고자 할 때 준수해야 할 최소 기준을 제안하는 것이다. 아직 IJSEM의 논문 투고 요령에는 신종 보고 논문을 투고할 때 반드시 유전체 시퀀싱을 완료하여 공개하라는 요구사항은 없지만 시퀀싱에 드는 비용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므로 이것이 포함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이 논문이 발표된 이후 미생물 유전체 해독 서비스를 주업무로 하는 천랩에는 이에 대한 문의와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연구자들이 과거에는 하지 않던 일을 새로 해야 하니 부담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고, 남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확한 미생물 신종 보고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유전체 해독을 하면서 해당 종의 표준 균주 유전체 정보가 부족하여 애를 먹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자가 이 논문의 취지를 받아들인다면 천랩으로서는 더욱 사업이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논문의 저자 중 천랩의 중요 관계자가 있다는 것은 애교로 봐 주자.

두 미생물 유전체의 similarity 혹은 distance를 산출하는 프로그램은 꽤 많은 종류가 있다. 이를 통틀어서 OGRI(overall genome related index)라고 하며, 오늘 소개하는 논문의 표 1에 OGRI 계산 도구를 소개하였다. 가장 널리 쓰이는 수치인 ANI(average nucleotide identity)는 95~96%일 때 DDH 70%에 해당한다. ANI의 이론은 단순하지만 실제 구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유전체를 일정 길이로 잘라서 쓸 것인가 혹은 유전자 영역만 추출하여 쓸 것인가? Sequence alignment에는 blast를 쓸 것인가 또는 mummer를 쓸 것인가?

OGRI는 종 수준의 판별에는 매우 유용하지만 subspecies와 genus(혹은 그 상위 레벨)의 판별에 대해서는 아직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논문에서는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그림 1. Workflow of genome based classification at the species level. To recognize new genera, phylogenomic treeing should be used.
출처: http://ijs.microbiologyresearch.org/content/journal/ijsem/10.1099/ijsem.0.002516#tab2


그러면 논문의 결론에 해당하는 "minimal standard"가 무엇인지 나열해 보자.

  1. DNA sequencing platform: 무슨 장비를 사용하였는가?
  2. Quality of raw NGS data and assembled genome sequences: Genome size, the number of contigs and N50, sequencing depth of coverage
  3. Authenticity of the genome assembly: genome assembly에서 발견된 16S rRNA gene sequence를 실제 보고된 유사종의 그것과 맞추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알려진 종과 너무 유사하여 16S rRNA 서열이 너무나 비슷하다면, gyrB, rpoB, recA와 같은 단백질 코딩 유전자 서열을 사용하라.
  4. Contamination in the genome assembly

4번의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범주는 약간 다르지만 샘플 표지를 잘못하였거나 균주 자체를 잘못 동정한 상태로 만들어진 유전체 어셈블리를 GenBank에 올리는 일도 있다. 그리고 일루미나의 시퀀싱 키트에 포함된 phiX174 콘트롤 DNA가 시퀀싱되어서 최종 결과물에 남는 일도 요즘 종종 발견된다. 원래 정상적인 겨우 이 서열 정보는 최종 결과에는 남아서는 안된다.

미생물 분류학은 자유로움보다는 엄격한 기준 준수를 요구하는 독특한 학문 분야이다. 공인되지 않은 종 이름은 사용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생물계에서는 '오늘부터 나는 너하고 다른 species이니 그리 알아라'하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자연세계를 대상으로 인간이 가장 잘 하는 일이 형태를 구분하여 무리를 짓고 편을 나누는 것이다. NGS라는 새로운 기술이 보급되어 미생물 분류학도 이렇게 변화해 나가고 있다.

2018년 6월 2일 토요일

독서 기록 - <말이 칼이 될때> 외 세 권


말이 칼이 될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 홍성수 지음
좋고 싫음에 대한 생각을 갖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이를 발화(發話)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어떠한 선동과 폭력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는 강력하게 제지해야만 한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혐오표현을 차별적 괴롭힘·편견 조장·모욕·증오선동의 네 가지로 규정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표현의 모든 면을 현실 세계에서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혐오표현의 가장 큰 목적은 선동이므로, 이를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서 저자는 '대항표현'을 제시하였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Never out of season)

  • "풍요로운 식탁은 어떻게 미래 식량을 위협하는가"
  • 롭 던 지음 | 노승영 옮김
제철 과일의 개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다. 여름에나 맛보던 농산물을 일년 내내 마트에서 접하는 것을 물론이요,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농산물이 멀리 몇천킬로미터 혹은 그 이상을 이동하여 우리의 식탁에 올라온다. 소비자의 기호, 자동화된 대규모 농업, 그리고 규격화된 유통 현실에 맞추어 생물종 본래의 다양성은 전부 자취를 감추고 한 가지 품종만 재배하고 소비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는 무슨 문제를 야기하는가? 서양 열강에 의해 현지의 농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자기들이 소비할 작물을 강제로 재배하게 만든 과거 식민지시대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는 저개발 국가의 정치·경제적 문제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일 품종 위주의 재배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병충해가 발생할 경우 그 작물은 절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농산물로써 책의 표지를 장식한 바나나가 그러하다. 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감자역병 역시 한 가지 작물에 의존하는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이러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원산지에 남아있는 다양한 품종을 지키고, 현지에서 전해내려오는 전통지식을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탐험가가 배를 타고 머나먼 대륙(A)에 갔더니 진기한 식물(B)이 지천으로 널려있어서 이를 자기 나라고 가지고 왔는데 정말 쓸모가 많은 식물임을 알았다. 그래서 재배법을 개발하고 대량으로 수확하는데 성공하여 전세계에 이를 팔기 시작했다. B의 원산지는 A이다.'
 이 진술에는 불편한 사실 몇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A 지역의 원주민들이 B라는 식물의 쓸모를 알아내고 이를 세계적으로 보급한데 기여한 바가 없다는, 즉 그 탐험가가 속한 제국주의시대 강대국이 이에 더 많은 공을 세운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원산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위 글에서는 마치 '원산지=자생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생물의 다양성 및 보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원산지는 이렇게 다시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 원산지란, '현지의 주민에 의해서 유용한 어떤 동식물이 처음으로 작물화(혹은 가축화, 즉 domestication)이 된 곳'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더 좋은 품종이 되도록 개량을 하고 병충해를 극복하는 방법이 전통 지식으로 남아있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원산지에는 하나의 종에 대하여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고, 새로운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저항성을 갖는 품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옥수수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알려진 멕시코에는 58종류나 되는 다양한 옥수수 품종이 존재한다고 한다.

재배에 대한 전통 지식이 거의 없는 작물은 고무나무이다. 합성고무가 아무리 발달해도 타이어의 옆면에는 천연고무가 들어가며, 그 사용량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고무나무 재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만약 치명적인 병충해가 발생하면 관련 산업이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식물육종학자로서 전세계를 다니면서 종자를 수집하고 연구한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이야기가 이 책의 8장과 9장에 소개되었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종자를 먹을 수는 없다. 굶주린 시민들로부터 종자를 빼앗기지 않으려 지키다가 굶어죽은 동료들의 이야기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아, 무지한 트로핌 리센코는 권력을 등에 업고서 얼마나 많은 인민을 굶주려 죽게 하고 또 소련의 농업을 거의 바닥 수준까지 몰락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식탁에서 즐기는 농산물 하나하나에는 이 종의 작물화를 위해 노력한 조상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으며, 우리의 기호에 따라서 세상의 생태 지도가 바뀔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되겠다. 나의 전공 분야 및 평소에 관심을 갖던 분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이라서 독후감이 길어졌다.

공대생이 아니어도 쓸데있는 공학 이야기

  • 한화택 지음
내가 종사하는 분야를 흔히들 생명공학(biotechnology)라고 일컫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현대사회의 공학(engineering)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설계라는 개념, 정량적 사고, 측정과 평가 등등 그 기본 구조와 구현 방법 모든 면이 그러하다. 일반인을 위한 서적으로서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을 지은 한화택 교수는 국민대학교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고 한다. 

특허공학(Patent engineering)

  • "A guide go building a valuable patent portfolio and controlling the marketplace" - 가치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 및 시장 지배를 위한 가이드
  • Donald S. Rimai 지음 | 정재철 옮김
이 책의 9쪽에 실린 현대 특허전략의 목적을 인용하겠다.

  1. 특허는 당신이 경쟁자가 수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경쟁사가 하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2. 당신은 경쟁자가 당신의 제품과 유력하게 경쟁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3.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새로운 기능에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나 기존 제품의 개선, 비용 절감, 안전성 향상 또는 사용 편의성 향상 등의 기능이 포함될 수 있다.
  4.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다루는 지식재산을 소유함으로써 경쟁 업체가 당신과 효과적으로 경쟁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 있다.
  5. 우수한 특허 포트폴리오는 귀사의 부가 가치 제품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
1번 항목과 똑같은 이야기를 몇년 전에 지인을 통해 들었을 때 나는 이를 대단히 속물적이고 야비하며 저속한 명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러면 그 사이에 내가 그렇게 세상의 때에 물들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이러하니까 말이다.

문제 전체를 소유하라는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번역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5쪽에 이런 글이 있다.
제록스사는 스티브 잡스가 현재 제록스사의 전설적인 팔로 알토 연구센터에서 체리 피킹을 할 수 있게 하는 대가로 애플사로부터 대량의 주식지분을 쌓아 두었다.
여기에서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말이 이 문맥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구입하여 필요한 때마다 수시로 참고하고 싶은 책이었다.

2018년 6월 1일 금요일

대전시향 공연 관람으로 마무리한 5월

낮에는 한여름이나 다를 바가 없이 뜨겁다. 아직은 그렇게 습하지 않아서 불쾌감은 덜하지만 벌써 6월에 접어들었으니 머지않아 장마가 시작되고 무더위가 닥칠 것이다. 나들이하기 좋았던 계절 5월이 이렇게 지나갔다.

5월의 마지막날은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대전시향 공연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공연명은 "난해함을 넘어서다(링크)".  앙상블홀에서는 무용가 홍신자 씨의 공연도 열리고 있어서 로비는 제법 혼잡하였다. 오랜만에 음반도 하나 구입하였다. KBS 클래식 FM 방송에서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의 초청연주회가 열린다는 안내방송을 들었는데 연주 목록에 있는 프로코피에프의 곡이 잠깐 배경으로 깔렸다. 문득 음반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내 음반매장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곡을 찾아 보았는데 마침 나탄 밀스타인의 앨범이 하나 있었다. 음반 정보는 여기에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2번, 그리고 바이올린 소나타가 수록되어 있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집에 와서 음반을 재생하였다. 아, 예전에 테이프로 들었던 슐로모 민츠의 연주가 기억이 났다(음반 정보 링크).


지휘는 상임지휘자인 제임스 저드가 아니고 수석 객원지휘자인 마티아스 바메르트가 맡았다. 공연의 후반부를 달구었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 정말 좋았다.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서 그러하다. 바이올린 협연은 콜야 블라허였다. 열정적인 1악장이 끝난 뒤 박수가 쏟아진 것은 아쉽지만.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은 오늘 대전에서 공연을 한다. 이틀 연속하여 공연을 보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장에서 복지 차원으로 관람권을 제공하는 공연만 볼 것이 아니라, 직접 당당한 유료 관객으로서 공연장을 더 많이 찾아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를 못한다. 여윳돈 2만원이 있다면 음반을 살 것인가, 유뷰트 레드 서비스 요금으로 쓸 것인가, 혹은 공연장을 찾을 것인가? 소유할 물건을 사는 것과 경험을 사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가끔은 경험을 사는 것도 좋다.

2018년 5월 31일 목요일

Spoligotyping과 CRISPR

세균의 subtyping이란 종(species) 혹은 아종(supspecies)보다 더 낮은 단계까지 구별하는 행위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strain 수준에서 미생물을 동정하는 행위(=strain identification)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역학(疫學·epidemiology: 지역이나 집단 내에서 질환이나 건강에 관한 사항의 원인이나 변동하는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 전염병학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음. 물리학의 한 분야인 力學이 아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감염원의 동정 및 outbreak의 발생 여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subtyping은 whole-genome sequencing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따라서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발전한 PCR 기반의 서브타이핑 방법이 여전히 널리 쓰인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Mutilocus variable number tandem-repeat (VNTR) analysis
  • Multilocus sequence typing (MLST)
  • (기타 non-PCR 기법) RFLP, PFGE 등
Spoligotyping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 complex, MTBC)의 typing에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결핵균의 염색체에는 36 bp의 direct repeat(DR)이 34-41 bp의 spacer를 사이에 두고 연속적으로 배열한 구조가 존재한다. DR 영역의 끝부분에 바깥쪽을 향하게 결합하는 primer를 사용하여 spacer 영역을 전부 PCR로 증폭한 뒤, 표준 결핵균주에 해당하는 H37Rv(NC_000962.3) 및 Mycobacterium bovis BCG에서 알려진 43종의 spacer에 해당하는 oligomer array에 hybridize하여 어떤 타입인지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914561/
미국 CDC에서 배포한 자료인 'Spoligotyping and Mycrobacterium tuberculosis(PDF 링크)'에 좀더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Spoligotyping에 쓰이는 염색체 부위는 어쩌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유전자 편집 기술로서 각광을 받는 CRISPR/Cas 시스템의 CRISPR에 해당하는 것이다. 

위 그림에서는 편의상 생략하였지만, 결핵균 유전체의 DR 영역에 IS6110이 삽입되어 있어 PCR로 이를 철저히 분석하는 것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임상분리균주에 따라서 IS6110의 삽입 위치는 약간씩 다르다. 또한 CRISPR과 그 주변 영역에 결실이 일어난 균주는 negative spoligotype을 나타내기도 한다('Structure and variation of CRISPR and CRISPR-flanking regions in deleted-direct repeat region Mycobacterium tuberculosis complex strains'. BMC Genomics 2017 18:168 PMC 링크). CRISPR 영역 자체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고, 어차피 모든 원핵생물에 이 시스템이 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유전체 정보가 확보된 고세균의 85%, 박테리아의 48% 정도에만 CRISPR-Cas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의 subtyping 용도로 가장 이상적인 CRISPR은 무엇일까? 만약 bacteriophage나 plasmid가 많은 조건이라면 spacer 서열을 획득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outbreak가 일어나는 시간 프레임 안에 CRISPR이 변하게 되므로 subtyping의 유용성이 줄어든다. 혹은 내부 spacer가 없어지거나, SNP가 발생하거나, 하는 등의 사고를 겪을 수도 있음을 염두어 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 쓴 글은 다음의 리뷰 논문을 많이 참고하였다.

CRISPRs: Molecular signatures used for pathogen subtyping. Appl. Environ. Microbiol. 2014 80:430 (PMC 링크)

또한 결핵균의 genotyping marker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로는 SITVITWEB이 유명하다고 한다.

바쁜 5월을 마무리하며

논문 작성과 워크숍 발표 준비로 바쁜 5월을 보냈다. (주)엠디엑스케이에서 개최한 PacBio User Group Meeting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경험한 PacBio RS II 기반 유전체 해독 사례를 총정리하고, 최근에 공개된 software tool을 적용하여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발표할 주제에 대한 배경 설명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보통 주어지는 30분의 발표 시간이 늘 부족하다.


외부에서 부탁을 받는 강연은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쁜 일정을 쪼개어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내가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 기한만 채우면 되는(혹은 쪽수만 채우면 되는) 보고서
  • 참석자 수만 채우면 되는 회의(또는 행사)
  • 결론을 내리지 않고 끝나는 회의
  •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하는 회의
  • 순서에 따라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정해진 시간에 끝나는 패널 토론
  • 행사의 무게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행사 시작 부분에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행위
  • 행사 자체에는 참여하지 않고 행사장 주변에서 와글거리는 사람들
모두 본질은 외면하고 형식과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낸다. 연구도 그런 것 같다. 이번 PacBio UGM에서는 문화와 관련하여 평소에 슬라이드로만 비추었던 나의 주장을 인쇄물로 남기기에 이르렀다. 핵심 슬라이드 두 매를 블로그에도 소개하고자 한다. 혹시 인터넷에서 아래의 같은 글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내 슬라이드를 누군가 도용한 것이다. 행사를 주관한 회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일 수도 있다.


이러한 비난에서 나 역시 벗어날 수는 없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것들이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개인으로서의 책임,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일, 지역사회나 국가가 제공해야 할 일 등이 돈을 내고 사는 서비스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이제 연구라고 하는 영역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시대가 되었다. 논문을 보고, 동료와 토론을 하고, 잘 안되는 것은 다시 실험을 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과정이 이제는 돈을 주고 소비자의 입장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상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갑'의 입장이 되어 연구 결과의 생산 과정을 콘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구매자(=연구자)에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외형적으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여 포장된 결과를 가지고 나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과연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당하게 수행되었는지, 또한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으로 수행되었는지를 잘 따지지 않게 된다. 

연구 수행의 일부분, 즉 고도화된 장비를 표준 프로세스로 돌려서 일정 품질의 데이터를 얻어내는 규격화된 작업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은 일견 바람직하기도 하고 그 추세를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종 작업은 자신의 손을 통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 과제책임자는 또 누군가를 시켜서 일을 하겠지.

오케스트라를 꾸미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은 없고 전부 지휘자가 되고 싶은 꼴이라고나 할까. 월간중앙에 실렸던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해 본다(링크).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의사는 고단한 수술실에 잘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인정받는 자리에서 존경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 아래 의사들이 대리수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병원은 의사 한 명이 암 수술을 연간 1000건 넘게 한다고 홍보한다. 그게 자랑할 일인가? 그건 정상이 아니다... 최고 지휘관들이 폼 잡고 각 잡는데 신경 쓰지 말고 목숨 걸고 전장(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우리나라는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앉아서 일 시키는 사람을 더 높이 쳐준다..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 단독 인터뷰] ‘국민의사’ 이국종이 의료계에 던지는 쓴소리
일을 시키는 원동력(돈 혹은 권력이고, 결국은 같은 것이다)을 갖고자 달려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야심만만 사람? 욕심 많은 사람? 그것을 향해 너무 내달릴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이 사회에 정착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