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다시 만년필을 손에 잡다

오랫동안 서랍 속에 방치되어 왔던 리브라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더운물에 촉을 담가서 말라붙은 잉크를 녹여내고, 새 카트리지를 끼웠다. 예전 네이버 블로그를 찾아보니 2007년 무렵부터 만년필을 쓰기 시작한 기록이 있다. 난 처음부터 저가형 만년필을 주로 사용해 왔었고, 품질도 가격에 비례하여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부산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유일한 국산 만년필 제조사인 아피스 만년필도 사업을 접은 것 같다. 90년대에 제작된 펌프식 제품인 F-202 재고품이 옥션 등에서 1만원에 팔리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국산품이라는 이유로 처음 선택했던 '자바펜'의 아모레스. 도장이 들뜨고 급기야는 두동강이 나면서 버리게 되었다. 리브라는 도장이 부풀어 올라서 신품으로 교체를 받은 바 있다. 아모레스보다는 약간 더 고급이지만 필기감이 좀 거칠다는 것이 불만이다. 그 사이에 파커 저가품과 일회용인 프레피를 좀 쓰다가 점점 손글씨를 쓰지 않게 되면서 한동안 내 손을 떠나 있었다. 파커 벡터 스탠다드(스텐레스)를 써 본 일도 있는데, 내 손과는 잘 맞지 않았었다. 이 만년필은 나와 2008-2010년 기간 동안 같이 일했던 연구원 한 모 양이 한번 써 보겠다고 빌려갔다가 사라져 버렸다.

어느날 리브라 캡에서 고리 모양의 검정색 플라스틱 부속이 빠져나왔다. 매우 두꺼운 반지 모양이라고 할까? 정확히 말하자면 두루마리 휴지 속심을 1/3 정도 잘라낸 모양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다시 끼워 넣으려 애를 썼지만 실패했고,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부속이 빠진 이후로는 캡이 만년필 뒤쪽에 잘 끼워지지 않는다. 리브라 만년필을 취급하는 로고스코리아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서양에서는 만년필 필기시 대부분 뚜껑을 한손에 들고 쓰거나 ,뚜껑을 책상 위에 놓고 약25g 전후의 필압으로 필기를 합니다.

캡을 뒤로 꽂어 쓰면 캡의 무게가 펜에 가중되어 필기선이 굵어지며, 캡속의 플라스틱이 점점 늘어나 캡이 헐거워 질수 있고, 또, 배럴(body/축)에 스크래치가 생겨 라커도장의 수명이 단축될수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필기시 캡을 분리하여 사용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만년필이라는 물건이 사실상 내구재나 다름이 없고, 항상 손에 쥐고 쓰는 물건이라서 품질이 좋아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만족할 수준의 만년필을 쓰고 싶다면 최소한 6-7만원 이상은 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나 역시 자신을 위한 선물로서 조금은 가격이 나가는 만년필을 사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카트리지가 꽤 많이 남아있어서 당분간은 리브라를 써야 되겠다. 피에르 가르댕 브랜드를 구태여 고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파커 조터도 있는데..

만년필을 오래 쓰려면 가급적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하루에 반 페이지라도 글을 써야 한다. 정성이 묻어나는 손글씨! 모바일 기기는 점점 스마트해지고 사람들은 게을러지는 요즘, 신년을 맞아 만년필을 조금 더 많이 써 보겠노라고 다짐한다. 남아있는 카트리지를 다 쓰려면 2년은 걸릴 듯.


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리눅스 서버 부팅 시 에러!

오랜만에 yum update를 한번 돌린 다음 재부팅을 하였다. 그런데 디스크 체크 및 마운트 과정에서 심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가... LVM으로 묶은 하드디스크 4개 중에서 또 악몽같은 에러가 발생한 것일까, 혹은 OS가 설치된 디스크에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일단 KOBIC 전산팀으로 들고 와서 지원을 요청하였다.

NAS로 백업을 한지도 시간이 좀 지난 상태라서 걱정이 된다. LVM으로 묶어 놓은 논리 볼륨 쪽에서 데이터가 손실되면 안되는데!

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몇 가지의 악기를 떠나보내며

CME U-Key MIDI 키보드 콘트롤러에 이어서 오늘은 야마하 TG300이 새 주인을 찾아 떠날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니 고만고만한 악기를 중복해서 구입했다가 중고로 처분한 일이 꽤 된다.

  • Sound module: 국산 음원 소리샘(정말 옛날이다!), Yahama MU50, Yamana TG300
  • Master keyboard: Roland PC-200mkII, CME U-Key Mobiletone
비슷한 사양의 물건을 다시 사게 될 것을 왜 중고로 팔았으며, 결국 최종적으로 다시 처분하게 될 것을 애초에 왜 샀었을까? 모든 것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장비만 있으면 열심히 MIDI note를 찍고, 또 홈 레코딩도 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나를 그렇게 한가롭게 놔 두지를 않는다.

있으면 좋을지 모르겠으나 없어도 별 지장이 없는 물건에 대해서는 이제 욕심을 버리자.

추가 작성: 이 글은 수년전에 작성하여 올린 것인데, 모델명을 잘못 적은 것을 최근 발견하여 수정했더니 2016년 8월 10일 날짜로 올라가고 말았다. 결국 블로그에서는 최신 글처럼 가장 앞에 나타남을 의미한다. 이 덧글을 다는 것은 8월 12일이니 또다시 게시일이 바뀔 것이다. 이러한 체계가 작성자나 독자에게는 혼란을 주지 않을까?

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Korg X2] 윈도우7에서 HSR 2.0 미디 인터페이스로 SysEx 전송하기

90년대에 나온 신세사이저에서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매우 중요한 장치였다. 음원 설정이나 시퀀스 데이터 등을 백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별도의 확장 PCM 카드가 없는 상태에서는 내장 ROM에 수록된 웨이브폼을 변형하여 갖가지 음원(악기 소리)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세팅을 저장하거나 바꾸려면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야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고, 또 Korg X2에 들어있는 드라이브는 국내에서 널리 보급된 PC에 들어있는 것과 커넥터의 모양이 달라서 교체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넥터가 아니라 얇은 플렉서블 판에 동박이 입혀진 리본 케이블 형태의 것을 그냥 꽂게 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2HD도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FDD가 망가졌을 때의 유일한 대안은 현재의 설정 상태를 SysEx로 덤프한 것을 파일로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다시 X2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미디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윈도우 9X, XP 시절에는 조이스틱/미디 포트가 달린 사운드카드가 흔했었고 여기에 연결 가능한 미디 인터페이스가 있었다. 이 당시에는 Korg X2/X3 계열의 악기를 위한 Xedit라는 걸출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음원 디스켓에 담겼던 .PCG 파일의 내용을 X2 혹은 X3로 직접 보낼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러한 방식의 전송은 SysEx의 형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Xedit는 안타깝게도 윈도우 3.x 시절의 프로그램으로서 윈도우 9x까지만 동작한다. 윈도우 XP라면 MIDI OX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내가 2008-2009년 정도에 했던 짓도 바로 이를 활용한 것이다. 각 음색 디스크를 로딩해 놓은 다음, MIDI OX를 써서 SysEx 파일 형태로 받아 놓았던 것이다. 당시의 경험을 돌이켜본다면, USB 미디 인터페이스는 윈도우 XP + MIDI OX에서 잘 작동하지 않았다.

낡은 신세사이저에 SysEx를 보내려면 USB 케이블 형태의 미디 인터페이스와 MIDI OX의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USB 미디 인터페이스는 윈도우에서 드라이버를 제공하는데, 이게 신통하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아웃풋 버퍼의 크기를 적당히 늘리고 버퍼 사이의 딜레이(밀리초)를 늘려서 에러 없이 SysEx를 전송하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 기본 설정으로는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황당무계한 에러가 발생한다. 단, X2 -> PC로의 덤프는 MIDI OX + USB 미디 인터페이스로도 잘 된다. 버퍼의 의미는 MIDI-OX FAQ의 아홉번째 질문과 답인 "9. MIDI-OX: How do I configure Buffers...?"에 설명이 나오는데 완벽하기 이해하기는 어렵다.

결국 한참 웹을 뒤져서 가장 무난히 작동하는 SysEx 전송 프로그램을 발견하였다. 바로 C6 SysEx Manager(2020년 7월 현재 유효한 다운로드 링크)라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Elektron이라는 악기의 SysEx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보이는데, 윈도우7 + HSR 2.0 미디 인터페이스 + Korg X2에서 문제 없이 작동함을 확인하였다. 설정할 것이 있다면 Configure 메뉴에서 딜레이를 200 ms로 늘려놓는 것뿐이다. 아마 딜레이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으면 X2가 데이터를 받아서 처리하는데 허덕이게 되는 모양이다.

C6 SysEx Tool v1.51의 시스템 요구사항.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완전히 공장 초기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Enter]키와 커서 [다운]키를 동시에 누른 상태에서 전원을 넣는다. 액정 표시창에는 Init00이 표시될 것이다. 이 작업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초기화를 해서 메모리를 텅 비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Global menu의 3D(MIDI FILTER 2)에서 EX:ENA인지 확인한다. EX:DIS로 되어 있으면 SysEx 송수신이 불가능하다.
  3. 미디 인터페이스를 컴퓨터와 X2 사이에 연결한다. C6 SysEx 매니저를 실행하고 Configure 메뉴에서 Delay를 200(ms)으로 조절한다.
  4. 적당한 SysEx 파일을 로드하여 보낸다. [링크1] [링크2] <= 여기에 있는 파일들은 내가 직접 X2에 디스켓을 로딩한 뒤 다시 PC로 덤프하여 만든 것이다.
  5. 전송이 완료되면 X2 액정창에 "Processing..."이라는 메시지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이 방법을 알아내기 전인 어제 윈도우7에서 MIDI OX를 가지고 놀다가 음원이 다 날아가버린 뒤, 정말 눈앞이 캄캄했었다. Xedit를 다시 설치할 마땅한 컴퓨터가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조이스틱 포트가 달린 중고 사운드 블라스터를 다시 구입해서 윈도우 98이나 XP를 설치해야 하나? 오로지 X2의 설정 관리만을 위하여? 아이패드용 미디 관리 도구(Midi Tool Box)는 되지 않을까 싶어서 9달러가 넘는 돈을 주고 앱을 구입했건만 역시 되지 않았다. 버퍼 크기나 딜레이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아이패드용 앱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단, X2에서 SysEx를 덤프해 오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Korg X2 Music Workstation - SysEx 전송 문제

X2는 1993년에 출시된 Korg사의 오래된 악기이다. 시퀀서가 내장된 76건반의 뮤직 워크스테이션이다. 예전에 올린 포스팅을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본다. 현재는 X자 형태의 스탠드에 올라가 있다.

http://blog.genoglobe.com/2013/02/blog-post.html

네이버 블로그에 X2를 가지고 수년간 씨름을 한 경험을 꽤 많이 포스팅했지만 구글 검색에서는 나타나질 않는다. 미디앤사운드 커뮤티니의 자료실에도 다음과 같은 두 건의 포스팅이 있으나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안보인다.

돌이켜 보면 가장 MIDI 작업을 왕성하게 했던 시절은 사운드 블라스터 16에 웨이브 블라스터2 도터보드를 끼워서 놀던 시절이었다. 마스터 키보드를 처음 샀던 것은 그보다 약간 나중의 일이고(롤랜드 PC-200mkII), 한동은 케이크웍에서 마우스를 열심히 찍었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난 그렇게 유명한 사운드캔버스 모듈조차 실물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결국 내가 했던 일은 여러모로 장난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십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건반이나 기타를 직접 연주하는 것에 더 만족을 해 왔었다. 그리고 Desktop Music 환경도 실로 엄청나게 바뀌었다. 하드웨어적인 음원 모듈에서 가상악기(VSTi), 그리고 아이폰/아이패드와 같은 모바일 장비까지.

윈도우 8.1이 공개된 이 시점에 X2를 가지고 "노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내장 리튬 배터리의 수명이 다 되어서 교체했다고 치자(소모되는데 10년 정도 걸릴 것이다). 그러면 액정창에 Init00이라는 프로그램명이 뜨면서 듣기에 거북한 삑삑 소리가 난다. 이를 원래 공장 초기치로 되돌리려면 음원 설정이 들어있는 플로피 디스켓을 로드해야 하는데, 내 X2의 디스크 드라이브는 고장이 나 있는 상태이다. 낡은 컴퓨터에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구할 수는 있으나, 케이블 컨넥터의 모양이 다르고 용량도 달라서 도저히 쓸 수가 없다. 이제부터 고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SysEx의 전송을 통해서 초기 설정을 되돌릴 수 있다. 각 음색 디스켓대로 설정된 X2에서 덤프한 SysEx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컴퓨터 환경을 이제 구비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 본 테스트로서 가장 확실했던 것은, 윈도우 98 환경에 Xedit 3.1.3을 설치한 다음, 사운드카드의 조이스틱 포트에 미디 인터페이스를 연결하여 설정을 음색 디스켓의 PCG 파일을 X2쪽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Korg X-series 장비를 다루는 소프트웨어로서는 Xedit가 가장 완벽했었다. X2로부터 SysEx를 덤프할 때에는 MIDI OX ver. 6.2.0을 사용한 바 있다. 약간 업그레이드된 설정으로서는 윈도우 XP + PCI 사운드 카드 + 사운드카드용 미디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SysEx 송수신을 성공적으로 한 바 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망가진 상황에서 음색 디스켓의 내용물을 X2로 보내는 방법은 다음의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된 바 있다. 2008년에 올라온 동영상이니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운영체계가 윈도우 XP로 개선되고, USB 케이블 형태의 MIDI 인터페이스가 나오면서 상황이 점점 꼬이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로는 SysEx를 가지고 감히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윈도우 98이 있는 PC를 찾아서 X2를 들고 직장까지 나왔던 일을 생각하면... 

남은 숙제는 윈도우 7 + HSR 2.0에서 최신 버전의 MIDI OX를 가지고 실험을 해 보는 것이다. 잘못 SysEx 전송해서 액정 화면 글자가 깨지고 소리가 이상해졌던 경험이 하도 많아서 겁이난다! 2013년 12월 18일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실험한 결론에 따르면 X2 -> PC dump는 잘 되지만 PC -> X2 전송에서는 버퍼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에러 메시지가 나온다. 물론 X2의 기본 설정은 또다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조이스틱 포트가 있는 오래된 메인보드가 하나 있으니 컴퓨터를 대충 조립하여 윈도우 98을 깔아서 작업하면 될 것이다. 이 또한 매우 끔찍한 시나리오지만.

[참고] X2로 SysEx를 보내려면 설정을 약간 건드려야 한다.


5A MIDI DUMP  원하는 대로 설정하고 OK
3B LOCAL ON/NoteR ALL
3C FILTER1 PROG:ENA AFT:ENA
3D FILTER2 CTRL:ENA EX:DIS

CME U-Key Mobiletone 건반을 떠나보내며

2년전 여름 중고로 구입하고 갖고만 있다가 거의 활용이 되지 못한 MIDI 콘트롤러 키보드를 드디어 팔았다. 미디앤사운드 홈페이지의 중고 장터에 다른 물건과 같이 올렸는데 유일하게 연락이 와서 유니크로 안전거래 사이트에 새로 등록한 다음 입금 여부를 확인하고 우체국을 통해서 오늘 오전 발송을 마쳤다. 안전거래를 위한 시스템이 이렇게 편리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구입자는 전주에 거주하는 사람인데 미디 작업에 쓰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악기의 피치를 맞추는데 쓰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건전지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체 음원이 있다는 것이 이럴때 매우 유용할 것이다. 오리지널 박스가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포장하여 보낼 수 있었다. 전원 어댑터는 별도로 구매한 것이라 박스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른 작은 상자에 넣은 다음 옆에다 포장 테이브로 잘 붙였다.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는 관계로 자잘한 물건들을 모으게 되는데, 결국 애정을 갖고 활용하게 되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좁은 집 안에 활용되지 않고 있는 물건을 쌓아두는 것도 결국은 비용이다. 치우고 싶은 물건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상태가 안좋은 구형 오디오 시스템, 엄청나게 부피가 크고 무거운 톨보이 스피커, 야마하 TG300 음원 등.

아마 음악 작업을 앞으로 계속 하게 된다면, 주된 작업 환경은 컴퓨터 대신 아이패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안녕! U-Key~

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주변을 단순하게 정리하기

사람의 손은 단 두개라서 한번에 들고 만족할 수 있는 물건에는 한계가 있다. 욕심을 부리다 보니 가방이라는 물건도 생겨나고 창고라는 시설도 생겨나는 것. 그러나 수납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잊혀지게 되고, 이를 유지하는 것에도 비용이 든다.

음악을 취미로 하면서 자질구레한 장비를 많이 사 모았다. 구매 당시에는 하루 종일 웹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자료 조사도 하고, 이것만 사게 되면 정말 내 음악 작업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항상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에 몰두하다보면 기타나 건반과 같이 그냥 가까이에서 손에 잡히는 악기를 가지고 잠깐씩 연주를 하게 될 뿐이지, 복잡하게 케이블을 연결하고 설정을 손봐야 하는 장비는 활용 빈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또 돌이켜보면 제대로 집에서 녹음을 해 본 경험도 얼마 되지 않는다. 만약 정말로 레코딩을 할 생각이 있다면 복잡한 PC가 아니라 아이패드를 활용할 생각이다. 앱스토어에서 팔리는 가격은 좀 높지만 Cubasis가 마음에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뭐하러 자리만 차지하는 소품들을 계속 갖고 있을 것인가? 활용 빈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물건들을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역시 자리만 차지하는 일부 컴포넌트 오디오와 톨보이 스피커도 없앨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휴대폰에서 밴드 앱을 과감히 삭제하였다. 그 동안 잊혀졌던 친구를 찾게 해 준 일등공신이지만, 너무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게 만드는 원흉이기도 하다. 업무 중에는 웹 버전으로 간간이 소식을 확인할 수 있으니, 퇴근 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를 굳이 갖고 있을 필요가 무엇인가? 탈퇴까지는 하지 않았다.

좀 더 간결히 정리된 환경에서 일과 생활에 몰두하기!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경록회의 추억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과 청량리동 석관동에 걸쳐있는 야트막한 산의 공식 명칭은 천장산( 天藏山)이다. 이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경희학원에서는 이 산을 고황산(高凰山)이라 부르는데, 이는 교가에도 나타나 있다.

"고황산 맑은정기 우리의 예지되고~"

천장산이라는 이름을 비로소 접하게 된 것은 도로명 주소 덕분이다. 동대문구 이문동에 40X 번지에 있는 고향집 주소가 '천장산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희고등학교에서는 경황제라는 이름의 행사를 치르는데, 매년 발간되는 교지의 명칭도 경황이다. 반면 경희여고에서는 '녹황'이라는 명칭을 쓴다. 경희고와 여고 졸업생의 연합 동문회 성격의 모임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경록회"이다. 이 이름은 경황과 녹황에서 각각 한 자씩을 딴 것으로 알고 있다. 모임이 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현재도 이 모임이 신입회원을 받으면서 명맥을 이어 나가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 내가 이 모임을 나가던 당시에는 매주(격주?) 토요일 오후에 모여서 인문학적 토론과 사회 참여 등을 논하면서 라면 안주에 막걸리잔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정규 모임 장소는 돈화문 앞의 경희한방병원(?)이었고, 항상 성대앞의 허름한 분식점 '미소'에서 뒷풀이 모임을 가졌였다. 내가 이 모임을 나가던 당시에는 경희고 문예반 출신 동문들이 회원으로 많이 활동했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경록회가(歌)가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짜임새가 있고 외형을 갖춘 모임이었다. 연합 동문회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사실상 친목 모임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다. 이 모임을 통해 결혼에 골인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으니.

요즘도 이 모임이 이어지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구글을 뒤져봐도 경록회라는 키워드로 전혀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명맥이 끊어진 모양이다. 지난 금요일 서울에서 22년만에 만난 친구를 통해서 경록회 동기들이 가끔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이버 앱 "밴드"를 통해 다시 만난 친구들과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에서 종종 수다를 떨면서 잠시나마 당시의 추억에 젖어 보았다.

87년 어느 여름날, 청량리에서 중앙선을 타고 간현 옆의 '판대'라는 곳에서 야유회를 가서 모두 옷은 그냥 입은 채로 물 속에 주저앉아 게임을 하덕 추억, 다시 청량리로 돌아와 어느 중국집에서 가진 뒷풀이 자리에서 다들 과음을 하여(나는 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기억 등...

이제 누군가 구글에서 "경록회"를 치면 이 글 하나는 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