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으로 수리 작업을 마친 뒤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왜 진작에 하지 않았었을까? 뒷판을 열었더니 안쪽에 이 중고 신시사이저를 구입했던 날짜(2004년 3월 14일)와 판매자의 이름 및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수리할 결심을 조금만 빨리 했더라면, 21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를 더욱 즐겁게 이용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너무 나무랄 수는 없다. CD 플레이어 수리를 위해 택트 스위치를 교체하는 경험을 작년에 처음 해 보았으니 말이다. 진공관 앰프 제작을 하느라 납땜에 더욱 공을 들인 것도 몇 년 되지 않는다.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차피 이 일은 지금쯤에야 내 손으로 할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무거운 악기를 보내어 믿고 맡길 수리업자를 찾느라 고심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수리의 일등 공신은 바로 맥파이의 3.6V 미니 전동 스크류드라이버(링크)였다. 이것이 없었다면 만성 통증이 있는 엄지손가락으로(불행히도 양 손이 다 그러하다) 드라이버를 돌리느라 무척 고생을 했을 것이다.
 |
국내 브랜드인 맥파이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조를 시작한 독특한 연혁을 갖고 있다. |
 |
18650 리튬이온전지가 내부에 들어 있는 듯. |
그 다음 공신은 인터넷에서 찾은 X2 서비스 매뉴얼. 정확한 분해 순서, 각 보드의 이름, 제각기 다른 규격의 나사의 정확한 고정 위치 등이 있었기에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
뒷뚜껑을 열었다. 위쪽의 기판은 왼쪽부터 파워 서플라이 유닛 어셈블리, 메인 보드(KLM-939), 그리고 아날로그 보드(KLM-937). |
 |
파워 서플라이 유닛 어셈블리. 구입 당시 전해 캐패시터가 터진 상태라서 직접 교체하였었다. '부르르~'하는 잡음이 나로 하여금 겁도 없이 뚜껑을 열게 하였었다. |
아날로그 보드를 분리하여 납땜면을 살펴 보았다. 헤드폰 잭과 출력 1번 및 2번 단자의 납땜이 살짝 떨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납땜을 보강하였다. 다음으로는 두 개의 보드에 걸쳐 장착된 37개의 택타일 스위치를 전부 새것으로 바꾸는 본 작업이 남았다. 단순하지만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다리 수가 두 개를 넘어가면 디솔더링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므로. 네 다리에 납을 조금씩 더 붙인 뒤 인두를 대고 녹인 다음 흡입기로 빨아내었다. 그 다음 기판 반대편에서 롱노우즈 플라이어로 부품을 떼어내면 된다. 무리하면 동박 패턴이 같이 뜯겨 나갈 수가 있으니 요령이 필요하다. 납이 어느 정도 남아 붙어 있으므로 손가락으로 부품을 떼어내기는 어렵다. 너무 많이 납이 남아 있으면 인두의 힘을 빌려야 한다. 솔더링 윅을 대고 녹여내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부품을 제거한 뒤 구멍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이를 사용하였다.
 |
택타일 스위치를 전부 제거한 왼쪽 패널 보드(KLM-1647). |
 |
새 스위치로 전부 교체! |
 |
마찬가지로 작업을 마친 오른쪽 패널 보드(KLM-1648) |
 |
LCD 보드도 찍어 주었다. |
이번 수리 작업을 하는 동안 하네스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실은 보드에서 안전하게 분리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건반쪽 회로와 메인 보드를 연결하는 것(아래 사진의 빨간색 커넥터) 두 쌍, 그리고 LCD 유닛과 전원 보드를 연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손을 대지 않았다.
 |
하얀색 하네스는 뽑기가 두렵다. 플라스틱 재질이 오래 되어 부스러지거나, 혹은 케이블만 쏙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
덩달아 이 부품도 꺼내어 깨끗이 청소를 해 주었다. |
 |
탈거한 택타일 스위치. 많기도 하다! |
오늘 작업에서는 CR2032 배터리 홀더를 하나 더 납땜해 놓았다. 전지를 교체한 뒤 시스템 설정 상태를 SysEx로 보내어 되돌리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여분으로 병렬 설치한 홀더에 새 배터리를 끼운 뒤 보드의 배터리를 교체한 다음, 여분 홀더의 것을 빼면 전압이 전지를 교체하는 중에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보드의 전해 캐패시터를 나중에 일괄 교체할 경우를 대비하여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조사해 두었다. 내압은 전부 16V이다. 그런데 진정 re-capping이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
아날로그 보드에는 220uF x 1, 22uF x 10(이상 짙은 파란색), 그리고 100uF x 5, 10uF x 1(이상 밝은 파란색)의 전해 캐패시터가 있다. |
 |
작업을 마치고 전원을 투입해 보았다. 교체한 스위치는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
납땜 인두를 들고 여러 시도를 하면서 괜한 자신감에 우쭐한 적도 있었고, 좌절감에 휩싸인 순간도 많았다. 오늘은 분명한 교훈을 얻었다. '해 보고 후회하자!' 그리고 시도하기 전에는 충분한 준비를 하자. 좋은 공구를 갖추고 자료를 찾아 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기록을 위해 아날로그 보드의 사진도 남겨 둔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