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6일 일요일

하와이, 캐나다, 그리고 대한민국

주말, 광화문 인근은 아침부터 시위 준비로 분주하다. 의자를 배치하고, 커피를 나누어 주거나 시위용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장터를 보는 듯하다. 이윽고 대로변은 주차 중인 전세 버스로 가득해지고,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면서 선동적인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진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광장으로부터 수백 미터만 벗어나면 평온한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이 차분하게 오간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광장에서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들(좌든 우든)에게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모든 것이 어서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자는 발언을 해서 큰 물의를 불러 일으켰다.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는 말이지만, 캐나다 국민들은 이에 대해 얼마나 불쾌했겠는가. 잠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광장의 절반을 메운 사람들은 늘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들고 나온다. 왜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캐나다처럼 미국과 국경 전체를 마주하고 있지도 않고, 대미 교역량 역시 캐나다의 약 1/4 수준이다. 미국에게 우리는 몇 개의 중요한 나라 중 그저 하나일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게 만드는 것은 당장은 외교의 몫이겠지만, 나라 전체가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거리 시위 때마다 성조기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민주정부 수립 과정과 6·25 전쟁 참전 등 우리 현대사에 미친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나 크고 고마워서? '공산화'의 위협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니 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태극기부대에 미국은 동맹국 이상의 의미이자, 이상향(ideal)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성조기는 시위대가 현재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넓은 의미의 문화적 정신적 질서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태극기부대 일원인 70대 남성의 “트럼프가 한국을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는 데 도움을 주기 바란다”는 말도 소개했다. 미국을 ‘기독교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 신성한 수호자’로 여기는 이런 태도는 특정 교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한국일보에 실린 글이다('태극기 부대가 성조기를 든 이유', 링크).

거리의 함성이 가깝게 들리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성환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링크)을 둘러보았다. 전시의 일환으로서 드류 브로데릭이 기획한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를 발췌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다. 하와이 트리엔날레는 하와이의 전통과 문화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예술 축제로서 매 3년마다 개최된다(Copilot 설명). 이 영상물을 통해 하와이가 어떻게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는지, 휴양지라는 이미지 뒤에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는 어떻게 소외되고 자본의 그늘의 가려 하류층 시민으로 전락하였는지, 그리고 전세계 천문학자들이 '천문학의 성지' 하와이에 앞다투어 설치한 고성능 망원경이 그들의 신성한 산('마우나 케아')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등 평소에 관심을 잘 두지 않았던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특히 천문대 건립을 둘러싸고 지역 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기에 이에 대한 2019년 보도를 찾아 링크를 남겨 둔다.

화가 강명희의 초기작. 전시 안내 및 언론 기사.

뮤지엄샵에서.

다음주에는 혼란한 상황이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