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스케치 사진
오늘(2017.11.3.)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대전광역시가 공동으로 주최한 지역과학기술 혁신토론회에 참석하였다. 장소는 대전 유성의 라온컨벤션호텔(구 유진호텔)이었다. 유성지역의 국회의원도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고 대전광역시 4차산업혁명특별보좌관도 참석하여 대전시의 정책에 대해서도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 애를 써서 준비한 모습이었다.
특히 두 사람의 주제발표를 매우 인상깊게 들었다. 첫 순서에는 심진보 ETRI 기술경제연구 그룹장이 "제4차산업혁명 시대의 본질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두번째에는 안오성 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 "R&D 거버넌스 이슈와 의문요인, 자율성 확보는 시작일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하였다.
경영학 박사인 심진보 그룹장은 제4차 산업혁명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실재(實在)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변혁에 대한 이해와 대응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민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논하는 곳이 한국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 정부가 혁신, 저탄소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을 내세웠지만 별반 효과를 보지 못하였듯이, 성장 동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에 의한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것에서 기안하는 것으로 진단하였다.
1차부터 3차 산업혁명까지는 인간의 손발(노동력)을 대신하는, 즉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혁신인 반면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두뇌를 보완하는 혁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각 선진국마다 조금씩 이를 대비하는 모습은 다르게 나타난다. 클라우드 생태계를 선점한 미국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전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데이터가 모인다. 반면 유럽(특히 독일)에서는 이에 대응하여 제조업 혁신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을 이루고자 한다. ETRI에서는 DX(Digital Transformation)을 더욱 진화시켜 디지털 기술의 통합화 및 인공지능 기반으로 구현되는 IDX(Intelligent Digital Transformation)를 제시하고 민간에서 공공에 이르는 14개 분야를 아우를 IDX 플랫폼 개발을 계획 중이라고 하였다.
안오성 박사는 제한된 시간 관계상 슬라이드를 편집하여 앞쪽에서 주제를 발표하였다. 미처 발표하지 못한 뒷부분의 슬라이드는 자료집에서 참고해야 했는데, 묵직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많았다. 어찌보면 바이오 분야의 연구자들은 '우리에게(혹은 우리 분야에) 연구비를 더 달라'는 논리를 펴기에 바쁜데, 국가 전체의 R&D 틀에 대해서 큰 시각에서 바라본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몇 가지 슬라이드 제목과 내가 메모한 것을 정리해 보겠다.
- 낮은 열매 따먹기의 또 다른 사례: 정책 포럼. 토론을 위한 포럼 vs 존재감 홍보를 위한 행사인가?
- 출연연은 왜 이런 문제의 구조적 원인/재발방지를 요구하지 않는가? 이명박 정부 당시 로봇물고기 해프닝... 출연연/연구회는 국가 R&D 정책관련 여러 문제/적폐에 대해 보도자료를 낼 수 있는가?
- 국가가 R&D를 지원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 대학과 대기업의 약진 속에 출연연의 역할은 무엇인가?
- 연구생산성의 부실은 누구 책임이며,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 충분한 시간(축적의 시간? 이제 그런 거 요구하지 말자), 예산, 자원이 주어지면 연구생산성이 좋아질 것인가?
-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국회의원에게 우리 요구를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우리 존재를 스스로 작게 만드는 일이다. 정치인을 찾아가는 것으로 우리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 미래 예측, 외국 벤치마킹에 매몰되어 우리만의 현실을 보지 못하였다. 우리만의 컨텍스트에서 전략을 재정의하자. <= 오늘 패널토론의 맺음말. 내가 생각한 하이라이트!
아하, 안오성 박사는 대덕넷에서 <안오성의 과학 정책>이라는 연속 기고문을 게재한 바 있었다. 나도 얼핏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달린 덧글도 매우 긍정적이다. 나 하나 혹은 내가 속한 조직(혹은 연구소라 해도 좋다)의 존립(솔직하게 '생존'이라 말하자)만을 생각하다가 조직의 입장을 떠나 국가적인 시각에서 고민한 흔적을 보니 한편으로는 부끄러우면서도 속이 다 시원하였다. 항우연 내에서도 옳은 목소리를 내는 연구자 및 오피니언 리더로서 인정받는 분이기를 기원해 본다. 물론 오늘 처음으로 접한 발표를 듣고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옳지 않은지도 모른다. 대덕넷에서는 혁신을 주도하는 기관장으로 소개가 되었지만 덧글을 보면 무엇이 진정한 올바른 시각인지 판단이 잘 안서는 기사도 있기 때문이다(링크).
선도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아니, 좀 더 심각하게 바꾸어 보자. '선도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한다!' 절박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나는 좀 달리 생각해 보고 싶다. 의무감이나 절박함으로 일을 한다면(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한국은 S사도 이러한 식을 업무를 추진하는지 모르겠다) 당장은 마지못해 결과가 나올지 몰라도, 즐거움에 일을 하는 사람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즐겁게 일을 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생존도 하게 되고, 또 몰입하는 즐거움 속에 세상을 선도하게 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 것인지? 내가 너무 순진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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