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월요일

학술회의 풍년 유감

구글에서 학술회의, 토론회, 모임 등과 관련한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예전에는 '낱말'이라는 순우리말 표현을 자주 썼었는데 요즘은 한자어인 '단어'가 이를 완전히 대체해 버려서 아쉽다.

  • 세미나(seminar): 1. 대학에서 교수의 지도 아래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학생들이 토론·연구하게 하는 교육 방법. 2. 전문인들이 특정한 과제에 관하여 행하는 연수회나 강습회. 순화어는 '연구회', '발표회', '토론회'.
  • 심포지엄(symposium):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두 사람 이상의 전문가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참석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의 토론회. 순화어는 '학술 토론 회의'
  • 포럼(forum): 1. 고대 로마 시의 중심에 있었던 집회용 광장. 2. 공공의 광장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공공의 문제에 대해 사회자의 진행으로 공개 토의하는 일. 토의를 위한 간략한 주제 발표가 있은 뒤, 청중의 참여로 이뤄짐.
  • 이외에도 colloquium, conference, congress, workshop 등이 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각종 포럼을 안내하는 게시글이 풍성하다. 전문학술단체의 연례학술회의는 말할것도 없고 지자체나 정부부처에서 추최하는 행사도 수두룩하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후자에 속하는 행사이다. 정부부처는 주최, 즉 행사나 모임을 주장하고 기획하여 여는 일을 하고(비용을 댄다는 의미가 강하다), 대개 산하단체에서 주관을 한다. 주관이란 어떤 일을 책임을 지고 맡아 관리함을 뜻한다. 일반인에게는 주최와 주관을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실제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잘못 표기하거나 실수로 순서를 바꾸거나 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단연 돋보이는 위치는 '주최'이기 때문이다. 주최자에 대하여 '을'의 입장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주변에서 청취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연구원 내 전자게시판에 올라온 최근 행사 목록을 나열해 보았다.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은 분명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엇비슷한 성격의 행사가 너무 많고 - 전세계에서 독보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행사가 많을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 이를 개최하는 단체나 조직의 '존재감 부각하기용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너무 많으며, 그 주최 기관의 영향력 하에 있는 하위 기관에서는 참여자 수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주관기관에서는 행사장에 오는 내빈(특히 주최기관 소속의)을 위한 영전에 엄청난 신경을 써야 한다. 소개 순서, 자리 배치, 안내 등.. 잘못하면 '내가 왜 저 사람보다 낮은 취급을 받게 만든거야?'하는 질책성 뒷말을 듣게 되기 떄문이다. 이런 행사를 처음 접하면서 내빈의 축사는 본인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기관에서 작성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내가 느낀 문화적 충격은 정말 상당하였다. 요즘은 이러한 일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만약 초청받은 인사가 직접 축사를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은 행사를 다녀야 한다면, 그런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도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는 사람이 내용을 미리 써서 건네는 관행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어느 정도 급의 인사가 내빈으로 오느냐에 따라서 이 행사의 중요성이 정해지고 만다.

이렇게 고급 호텔에 아침일찍 모여서 참여한 내빈들의 공허한 축사를 듣고, 다음 행사 참여를 위해 자리를 빨리 떠나야 하는 바쁜 내빈들을 위해 미리 기념사진촬영을 하고(제발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연출 사진은 그만!), 비싼 점심을 먹고, 사람들은 발표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마치는 형식적인 패널 토론으로 끝난다. 그래도 기자들은 의미있는 행사였다면서 기사를 찍어내기에 바쁘다. 혹시 건질만한 것이 없는지 청중으로서 열심히 귀기울여 듣고 메모도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은 듣도보도 못한 외국 학술행사에서 나를 강연자로 모시겠다는 이메일을 많이 받는다. 아마도 등록비 납부를 통해서 연명하는 그런 단체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유명한 학자라서 이런 메일을 받을리가 있겠는가?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메일을 추출하여 뿌리는 메일일 것이다. 

이런 '영혼없는' 행사가 늘어나면서 컨벤션 비즈니스가 확장되는 효과는 분명 거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너무 거기에 들이는 수고와 비용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보여주기·예산 소진용 행사는 이제 그만하자. 생기가 넘치고 자발적인 참여로 열기가 가득한 생산성 최고의 진정한 행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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