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독서 기록 - 우리는 왜 억울한가(유영근 지음)

부제: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
책 뒷표지의 소개글: 한국인들이 유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의 심정과 사회적 틀에서 받아들여지는 억울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늘지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법률적 정의는 양립할 수 있는가? 현직 부장판사가 사회학적 상상력과 법적 균형감각으로 풀어낸 억울함의 실체와 해법.


현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는 유영근의 책 <우리는 왜 억울한가>를 읽었다. 저자는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소한 접촉사고와 자신이 활동하는 조기축구회가 주말에 학교 운동장을 빌려쓰는 문제와 관련한 개인적 경험을 예로 들어서 우리에게 억울함이란 어떠한 감정인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였다.

서양에서 시작된 심리학의 견지에서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억울하다'라는 감정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한다('섭섭하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굳이 서양의 언어를 빌려서 설명하자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갖게되는 감정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느끼는 억울함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약자여서 당한 일이고, 어쩔 도리가 없었고, 나한테 그 탓을 돌리는 한(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최상진 교수의 <한국인의 심리학>을 인용하면서 한국인 특유의 보편적인 감정인 억울함을 설명하는데 지면을 할애하였다. 이 부분은 나에게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이에 대해 분연히 저항하거나 일어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그것이 약자인 내 탓, 내 잘못이라고 자책을 하는 정서가 이렇게 우리에게 뿌리깊은 것이었나? 결국 그것이 홧병의 원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를 부정하고 극복해야 하지 않는가? 이는 나의 가족사와도 얽힌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와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이 숙제로 남아있다.

이 책은 심리학에 대한 책은 아니다.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소개하면서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억울함의 원인과 타당성 여부를 같이 고민해 보면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자는 취지에서 쓰여진 것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충돌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심화되었을 때 우리는 법원을 찾게 된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에는 딱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판사로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서로간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원만한 해법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분쟁 당사자 모두가 만족하는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였지만, 현행법과 사회정의 구현의 측면에서 판단하자면 옳음과 그름 사이의 경계에 걸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된 사례도 있음을 실토하였다.
재판을 하다 보면 명백히 거짓말하는 피고인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당사자나 증인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도 법관들은 일단 끝까지 듣고 담담하게 판결로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통상 법정에서 소리를 높일 때보다 조용히 판결로써 말할 때 결론은 훨씬 가혹하게 나온다. 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논쟁을 유도해 반박과 변명의 유지를 주는 것이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경우는 더 이상 반박과 변명이 무의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54쪽).
끊임없는 고뇌 속에서 묵묵하게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률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민주주의, 국민주권, 권력분립, 그리고 사상과 의견에 대한 표현이 자유, 평등의 원칙, 인권의 보장 같은 정치적·사회적 권리 - 275쪽]는 얼마나 많은 투쟁과 희생을 딛고서 얻어진 것인가? 물론 여기에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로 와서 싸운 미군(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떠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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