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요한 하리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위키백과를 찾아 보았다가 다음 인용문과 같은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인기 작가로서 이런 과거는 잊혀지고 싶은 부끄러운 구석일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인디펜던트》를 퇴사한 뒤 오히려 전문 작가로서 더욱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회가 되면 2023년 국내에도 소개된 같은 저자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어 보고 싶다.
요한 에두아르트 하리는 《인디펜던트》와 《허프포스트》에서 근무했던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이다. 2011년 하리는 2001년부터 상습적인 표절과 자료 조작,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들의 위키백과 문서를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을 인정한 뒤 《인디펜던트》에서 정직되었으며 이후 사임했다. 출처: 위키백과
올해 2월 국내에 소개된 요한 하리의 책 매직필('기적의 비만 치료제와 살찌지 않는 인간의 탄생')<매직필>은 '집중력 문제와 비만율 증가의 공통점'이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전작인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비만으로 이어지면서 GLP-1(Glucagon-like peptide-1) 호르몬 기반 비만 치료제의 개발 경위와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관한 책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GLP-1은 음식을 먹었을 때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는 것을 촉진하여 혈당을 낮추고, 동시에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여 간에서 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며, 뇌에 작용하여 포만감을 유발한다. 쉽게 말해서 '어, 배불러~'하는 느낌을 주는 호르몬이다. 체중 감량이라고 하면 보통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로 여겨지는데, 그저 일주일에 한 차례 주사를 맞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도대체 어째서 그런 마술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일반인이라도 관심을 갖지 아니할 수가 없다.
매직필을 읽으면서 각 장의 시작 부분에 삽입된 간지의 화려한 분홍색이 눈에 뜨였다. 어디서 많이 본 색깔인데... 그렇다. 화제의 영화 <서브스턴스>였다. 출판사에서 일부러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연상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최신 생명공학 기술에 의존하여 젊을을 유지하려다가 결국 불행한 결말을 초래한다는 충격적인 이 영화는 매직필이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적 효과(의학적·심리적·사회적)와 맞닿아 있다.
출판용어 중에서 간지는 각 장을 단순히 구분하기 위해 넣은 색지를 일컫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인쇄는 하지 않는다. 각 장을 소개하는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면 이는 일본어에서 온 인쇄용어인 '도비라(とびら·문짝)'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 말을 국어로 순화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다음의 글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도비라·세네카·하리꼬미? 한국책 인쇄하는 것 맞나요(조선일보 2020년 10월 26일)
마침 BRIC의 Bio리포트에서 지난 4월 비만 치료제 개발 동향에 관한 리포트를 게재하였기에 그 링크를 참고 목적으로 소개해 둔다. 이 리포트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를 시장과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만 소개한 것이다. 2014년 비만 치료제로 최초 승인된 제품인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는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면서 체중 감소 효과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반감기가 길어서 주1회 주사로 충분한 새로운 개발제품 오젬픽(2017)이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등장하였고, 비만 치료 용도로 더욱 용량을 늘린 위고비(2021)가 나오게 되었다.
어쩌다가 비만이 이렇도록 인류에게 흔한 현상(질병?)이 되었는가? 매직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녕 부작용은 없을까? 특별히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체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거식증의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 약을 남용하게 된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저자인 요한 하리는 직접 오젬픽을 사용하면서 이 논쟁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비만이 곧 질환인가?'라는 물음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만에 의해 건강이 위협받고 일상과 사회 생활마저 어려운 상태라면 치료해야 할 질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단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의지 부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인류는 진화 역사의 대부분을 늘 배가 고프게 살아왔고, 따라서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남는 영양분은 되도록 체지방으로 비축하려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같다. 따라서 요즘과 같이 값싸고 입맛에 짝짝 달라붙는 공업화된 먹을거리가 넘치는 문명 사회에서는 누구나 쉽게 비만해질 수 있다. 이렇게 떨쳐 내기 어려운 비만을 일주일에 한번 맞는 주사로 해결할 수 있다니 정말 복음과 같은 소식 아니겠는가?
하지만 GLP-1 계열의 약품은 끊는 순간 다시 무섭게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공정이 개선되고 제너릭 의약품이 풀리면서 값이 더 내려갈 터이니 고지혈증약이나 고혈압약처럼 평생 사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낙관적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약은 배고픔을 둘러싼 신체의 근본적인 조절 메커니즘을 '해킹'하는 것이며, 장기 사용에 의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는 우리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본다. 약간 적게 먹고, 초가공 식품을 피하며,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체중조절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시력이 떨어지니 안경을 끼고, 소화가 안 되어서 소화제를 먹듯이 체중 감량을 쉽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초고도 비만인 사람의 삶의 질을 되돌리기 위한 방편이라면 모를까. 또한 패션이나 연예 산업에서 대중에게 마른 체형에 대한 환상을 계속 주입한다면(예를 들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모델 '트위기' 및 케이트 모스 등) 건강한 체중 또는 체형에 대한 왜곡된 추구를 할 수밖에 없다. 기술이나 효율성에 기반한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문화 및 사회적 수용성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제10장 '식욕을 없앨 수만 있다면'이었다. 여기에서는 주로 저술가 엘리스 로넌(Elise Loehnen), 그리고 저자의 오랜 친구 '라라'과 만나 대화하면서 겪은 경험을 다루었다. 책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매우 적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묵직하다. 먼저 엘리스 로넌. 할리우드 스타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아주 비싼 웰빙 경험을 팔다가 이것이 자기를 '삭제'하는 것임을 깨닫고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선 케이스이다. 두 번째인 라라. 저자가 오젬픽을 쓰는 것은 건강 때문이라고 하지만, 라라는 췌장암에 걸릴 위험(아마 장기 부작용 가능성을 말하는데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아님)을 감수하면서 고작 외모에 대한 허영 때문에 그 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냐면서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즉, 자기 몸과 전쟁을 벌이지 말자는 것이다.
글의 흐름은 다음 장에서 자연스럽게 비만한('비만이다'가 아니라 '비만하다'가 옳다고 함) 사람이 스스로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비만 수용 운동('fat pride' 또는 'fat acceptance')과 연결된다. 침대에서 누워서 살아야 할 정도로 극 초고도 비만인 사람에게 팻 프라이드를 가지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비만은 병일까, 아닐까? 2022년 코메디닷컴에 실린 기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 비만은 병이라는 입장 - 비만은 신경회로 이상으로 인해 식욕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 유전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 비만은 병이 아니라는 입장 - 비만을 병으로 간주하면 개인의 책임감이 희석된다. 비만은 개인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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