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일 토요일

2025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콘티넨탈 '25 』를 관람하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대전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수도권 파견 근무를 하던 약 3년 반 동안의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매년 이 영화제를 찾고는 하였다.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국밥을 먹으러 '힁허케' 다녀오기도 하니까 말이다. '힁허케'는 매우 낯선 낱말처럼 보이지만,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표준어로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관련 글 - ‘휑하니’ 갔다 오지 말고, ‘힁허케’ 갔다 오세요). 

전주국제영화제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공식 '포스터'는 극장에서 영상으로 보아야 한다. 촤르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왼쪽의 꽃무늬는 J자처럼 펼쳐진다. 이미지 원본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져왔다.


전북대학교에서.

꼼꼼하게 사전에 작품을 고르는 성격은 아니라서 아무런 준비 없이 전주에 갔다가 표가 남아 있는 것을 겨우 골라서 관람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 방문한 날에 구입할 수 있는 표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영화제 상영관이 아닌 <조이앤시네마>에서 일반 영화를 본 일도 있었다.

기왕이면 전주 영화의거리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좋다. 거리를 가득 채운 포스터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영화제의 분위기를 한껏 즐기다 보면 나도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거리 이외의 장소에서도 상영이 이루어진다. 작년에도 잔여석이 남은 상영관을 찾다가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까지 가서 미셀 고메즈 감독의 2022년작 <콘도르 작전>을 보았었다(관련 글 링크). 올해에는 5월 1일 휴무일을 이용하여 개막작인 라두 주데 감독의 <콘티넨탈 '25>를 보기로 하였다. 상영관은 이번에도 전북대학교.




라두 주데 감독은 이 영화를 전부 아이폰으로 찍었다고 한다. 배경은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도시. 헝가리 출신의 법정 집행관인 오르솔랴는 건물 지하 보일러실에서 사는 노숙자를 강제로 퇴거시키고자 헌병과 같이 현장을 찾는다. 이 건물은 곧 헐려서 고급 호텔이 세워질 예정이다. 오르솔랴는 이 노숙인이 겨울에 쫓겨나지 않도록 집행을 최대한 미루었던 것이다. 노숙자는 짐을 정리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바깥에서 커피를 마시고 20분 뒤에 보일러실을 찾았던 헌병과 오르솔랴는 충격적인 모습을 접한다...

더 이상 상세한 이야기를 쓰면 이른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영화의 배경은 현대이지만, 트란실바니아를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을 미리 이해하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를 보았던 이틀 전까지 나는 루마니아라는 나라 이름은 '로마인의 후예가 사는 땅'을 의미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세계사와 지리학에 문외한인 나는 '로마인'이라고 하면 고대 로마제국에 살았던 사람의 후예, 즉 현재의 이탈리아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글 자막에서도 '로마인'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와서 당시에는 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실은 '루마니아 국적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었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영어권에서 Romanian이라고 말하면 현재 존재하는 나라인 루마니아 사람이라는 의미가 잘 전달된다고 한다. 고대 로마 제국의 사람은 Roman이라고 부른다. 즉, 아마도 영어로 제공된 대본에서는 분명히 Romanian이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는 현대 루마니아 공화국의 국민 또는 출신자를 의미한다. '로마인'이라고 번역을 해 놓으면 나처럼 혼동을 하게 될 것이다.

오르솔랴가 충격을 벗어나는 과정이 영화의 중반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친구와 만나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모친과 만나서 다투기도 하고, 음주 및 뒤이은 약간의 일탈...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아주 심각하게 끝나지는 않고 차츰 일상을 되찾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민족간 갈등을 해결한다거나, 국가 권력 또는 자본에 맞서서 소외된 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게 된다거나 하는 끄런 뻔한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코메디 영화로 분류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장르에서 삶이 지속되는 이야기는 모두 코메디로 분류되는 관습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음 주에는 출장을 위해 전주를 또 방문해야 된다. 그러면 올해 네번째 방문이 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