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2일 목요일

부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삼엽충

이번에도 아들은 독특한 생일 선물을 보내 주었다. 상자의 크기나 무게를 보니 책이 분명한데 다른 것이 같이 들어 있었다. 상자를 열어 보니 <삼엽충('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그리고 진짜 삼엽충의 화석 2점. 이 책의 원제는 <Trilobite: Eyewitness to evoution>이다.


몸을 둥글게 말고 방어 자세를 취한 Austerops sp.(왼쪽)와 Flexicalymene ouzregui. 오른쪽 것(아쉽게도 라벨지에 인쇄된 학명 철자가 틀렸음)은 오르도비스기의 지표 화석이라고 한다. 판매처는 루페우스 코리아.

저자인 리처드 포티(Richard Fortey, 1946-2025)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수석 고생물학자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었으며, 과학의 대중화에 큰 공로를 세운 인물이라고 한다. 지난 3월 <가디언>에 실린 부고 기사를 보면 인기 있는 저술가이자 TV 프로그램 진행자였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다른 책을 읽느라 아들이 보내준 <삼엽충>은 지난 화요일 부산 BEXCO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읽었다. KTX에 밀려서 대전-부산을 오가는 고속버스가 없어진 지금(도태 또는 멸종?), 전세버스를 타고 부산을 향하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였다. 오늘 행사 참석을 위해 부산을 또 다녀 왔으니 이것 또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이 책의 시작은 매우 문학적이다. 토마스 하디의 소설 <푸른 눈동자(A Pair of Blue Eyes)>의 주인공이 영국 콘월(Cornwall) 지역의 해안가 절벽에서 미끄러져서 위태롭게 매달렸다가 시야에 들어온 점판암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매달린 채 잠시 숨을 돌리면서 정신을 차릴 때 주변세계의 익숙한 것들이 서서히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나이트의 눈에 암석에서 약간 튀어나와 있는 박힌 화석 하나가 보였다. 눈이 달린 생물이었다. 죽어서 돌로 변했음에도 그 눈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삼엽충이라고 하는 초기 갑각류의 일종이었다. 서로 전혀 다른 시대에 살았던 나이트와 이 하등생물은 죽음의 장소에서 마주친 듯했다. 마치 지금 그 자신이 그러하듯이, 손이 닿는 곳에 한때 살아 있었고 구해야 할 몸을 지니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였다(29쪽).

하디는 이 지역에서 젊은 시절 건축 관련 일을 하기 위해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니 이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리처드 포티는 이 소설에 나오는 해안 지형을 답사하면서 소설의 이 구절을 소개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열 네살 때 삼엽충과 사랑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들이 여자친구를 찾던 시기에 남웨일스 지방의 세인트데이비스 반도 절벽에서.

화석에 흙이 많이 묻어 있어서 치약과 함께 솔로 문질러 닦았더니 조각이 일부 떨어져 나갔다. 이렇게 세척하면 안된다!

포티는 이렇게 삼엽충에 매료되어 30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그가 처음 박물관 직원이 되어 고생물학과에 배정되었을 때, '삼엽충에 관한 연구를 하는'이라고 적힌 직무설명서를 받아 들고 '즐기면서 돈을 번다'로 받아들였다고 한다(177쪽). 그리고 평생을 삼엽충을 보러 다녔다. 새로운 삼엽충의 종을 찾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새로운 생물의 종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삼엽충이 얼마다 다양하고 정교한 생명체였으며, 어떻게 번성하고 사라졌는지를 흥미롭게 서술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방해석으로 이루어진 삼엽충의 눈은 정밀하고도 독특하다. 이러한 멋진 특성을 이어받은 현생생물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꿈과 같은 상상이지만 만약 삼엽충의 DNA를 지금 해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삼엽충 진화가 단속적으로 이루짐을 선구적으로 발견한 루돌프 카우프만(1909-1941?, 위키백과)의 비극적 이야기는 정말 가슴을 저미게 한다(198~203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2018년 흑백 영화 <콜드 워>를 몇 번이나 연상했는지 모른다. 1991년 우표 경매시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편지와 엽서 묶음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슬픈 인생 결말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PubMed에서 리처드 포티의 논문을 찾아 보았다(검색 결과). 놀랍게도 매우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2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roc. Natl. Acad. Sci. USA)에 삼지창 모양의 구조를 머리에 달고 있는 새로운 삼엽충 Walliserops trifurcatus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었다. 이 내용은 302쪽에 나온다.

Trilobite tridents demonstrate sexual combat at 400 Mya. Gishlick AD, Fortey RA. Proc Natl Acad Sci U S A. 2023 Jan 24;120(4):e2119970120. doi: 10.1073/pnas.2119970120. Epub 2023 Jan 17. PMID: 36649420 (원문 링크) 보도자료 국내 기사

이 별난 삼엽충의 삼지창은 성적 경쟁을 위한 무기라는 것이 이 논문의 주장이다. 공작 수컷의 화려하고 거대한 장식 깃이나 사슴 수컷의 뿔을 연상해 보라. 출처: 그림 1(링크).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지금(인공지능의 파급력은 모두의 관심거리이다), 도대체 삼엽충이라니? 그리고 고생물학이라니?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은 10장 <눈이 있는자, 보라!>를 읽어보기 바란다. 전 세계적으로 삼엽충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포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리 애써도 삼엽충학이 인간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에 동원되는 시나리오를 짜낼 수가 없다. 이렇게 외롭고 무해하며 연구비를 따기 어려운 분야이지만. 그러다가 갑자가 어떤 연결이 이루어지면서 최첨단에 영광스럽게 등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핵물리학이나 생리학(요즘 말로 이야기하자면 '바이오') 분야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삼엽충 분야는 역사 전체를 살펴볼 여유가 있다.

탐구에 끝이란 없으며, 우리는 다음 절벽 뒤나 다음 셰일 조각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고. 내 삼지창 삼엽충은 하나의 꿈, 존재해서는 안 되는 키메라였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했다. 그것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세계는 더 메마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전율을 불러일으킬 것들이 더 많이 발견되리라고 예견한다... 앞으로 지식의 그물에 어떤 연결이 이루어질지 헤아리기는 더 어렵다. 그것은 다른 10겨 개 과학 분야의 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결이 계속 이루어질 거라고 확신하며, 그것은 앞서 그런 일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303쪽).

고생물학은 장대한 시간 속에서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는 올바른 생각을 갖게 한다. 한때 번성하였지만 지금은 절멸한 생물을 탐구하면서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있고, 환경·기후·지질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일례로 우리는도시화된 곳에 밀집해 살면서 지리적 여건과 심지어 기후까지도 기술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올바른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

화요일 BEXCO에서 있었던 학술 행사에서 L박사는 합성생물학의 밝은 미래를 소개하였다. 발표가 끝난 뒤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생명체가 이런 공학적 원리에 저항하지 않던가요? (K대) L교수님 발표를 들으면 정말 안되는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여러 군데 유전자를 한꺼번에 조작하면 수십 세대만 지나도 그 형질이 그대로 유지될까요?" 이에 대해 L박사는 빙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챗GPT에 의하면 고생물학은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를 위한 학문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거대한 시간의 거울에 비춰보게 하는 지적 자극'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포티의 글 중 Nature 2016년 9월 15일자에 발표한 신간 서평이 매우 인상깊었다('Dendrology: The community of trees', PubMed). Nature는 구독하지 않으면 전문을 접근할 수 없어서 내 맘대로 이 글의 번역을 여기에 올리지는 못한다. 짧게 소개하자면 이는 독일의 삼림 관리인 Peter Wohlleben의 책 <The Hidden Life of Trees: What They Feel, How They Communicate — Discoveries from a Secret World>에 대한 서평이다. 저자는 숲을 매우 정교하게 얽인 다층적 네트워크로 묘사하였음을 포티는 비판적으로 지적하였다. 충분히 흥미로운 접근이지만, 이는 마무를 껴안으려 더 깊은 실재와 연결된다고 믿는 행위와 멀지 않다고 하였다. 즉, 나무는 엔트(Ents)가 아니라고 하였다. 엔트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나무 생명체라고 한다. 포티의 글을 완벽하게 음미하려면 토마스 하디에 이어서 J. R. R. 톨킨의 책도 읽어 봐야 될 것 같다. 국내에도 소개된 포티의 또다른 저서 <나무에서 숲을 보다(원제: The Wood for the Trees)>도 구해서 읽어봄직하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2016년, 즉 포티가 Nature에 서평을 쓴 바로 그 해이다.

파손 방지를 위해 앞으로는 화석을 솔로 문질러 세척하는 일이 절대 없어야 되겠다. 

삼엽충 외골격의 상세 구조. 출처: British Geological Suervey(링크).


삼엽충 모양의 마우스 디자인. 출처: ATEC-DAB UTDallas 블로그에 게시된 Ashley D. Goodenough의 작품(링크).


무수한 화석으로 남은 삼엽충 앞에서 우리는 보다 겸허해져야 할 것이다. 달이나 다른 행성으로 자원을 찾으러 떠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지금 AI가 발달하는 것을 보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그런 시대가 오기 전에 스스로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뜻하지 않은 아들의 선물이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챗GPT에게 부탁하여 그린 그림. 머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드디어 달을 파먹기 시작할 것이다. 삼엽충 모양의 우주선에 달에서 채취한 광물자원을 싣고 지구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삼엽충은 언젠가 고도로 발달한 기술에 의해 스스로 파멸할지도 모르는 우리 인류의 문명을 암시한다.



2025년 5월 21일 수요일

값싼 휴대용 오실로스코프를 주문하다

취미로 이따금 납땜을 하는 사람은 비싼 도구를 살 때 실력이 올라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고주파 인두가 그렇고, 오실로스코프가 그렇다. 아마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은 납 흡연기를 사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라는 나라 덕분에 DIY에 필요한 각종 부품이나 공구, 계측기기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오실로스코프가 몇 만원이라니? 조작성이나 전반적인 성능이 중고 텍트로닉스 제품에 비할 것은 아니겠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텍트로닉스의 TDS 210이라는 오실로스코프를 갖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전원을 넣었더니 화면이 알아볼 수 없게 나왔다(링크). 교체용 스크린(5.7인치)을 국외에서 구할 수는 있지만 신품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 게다가 노브도 몇 개 없어졌다. 그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저가 오실로스코프를 새로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uora에는 2020년에 160달러에 Tektronix TDS 210 오실로스코프를 구매할 가치가 있을까요?라는 글이 있다. 답변은 '비싸다'였다. 

어차피 오디오 신호 외에는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에 5만원 미만의 휴대용 오실로스코프면 충분할 것이다. 디지털 멀티미터 및 신호 발생기를 겸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가격이 슬슬 올라간다. 프로브는 이미 두 개의 텍트로닉스 P6112(100MHz, 10X)를 갖고 있으므로 프로브를 포함하지 않는 패키지를 선택하면 몇 천원이라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2채널로서 배송비가 무료이면서 조금이라도 싸게 파는 것이 없을까...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하나의 모델을 골라 놓은 뒤 검색을 하여 조건이 괜찮은(=프로브를 적게 포함한) 다음의 제품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화면은 3.2인치에 불과하고—놀랍게도 TDS 210의 5.7인치 디스플레이와 동일한 해상도인 320 x 240 픽셀—샘플링 속도는 채널당 50M, 대역폭은 10MHz이다. 유튜브에서 SCO2 dual channel digital oscilloscope review를 입력하면 몇 개의 동영상이 나온다. 메뉴가 불편하고 펌웨어 업그레이드가 까다롭다는 의견이 있다. 직류 전원의 미세한 리플을 정확히 측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구입한 가격은 30,250원. 패키지에는 악어클립 케이블, 고전압 프로브, 그리고 USB 케이블이 포함되었다. 다른 물건도 두어 가지 같이 주문하면서 약간의 할인을 더 받은 것 같다. 

돈낭비일까? 글쎄, 점심 두 번 먹은 것으로(거기에 커피까지?) 생각하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DSO2512G라는 제품은 이보다 더 좋지만, 10만원 언저리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이 기기는 요즘 잡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KORG X2 synthesizer를 비롯하여 내가 가끔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오디오 기기의 점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텍트로닉스 TDS 210을 30년 가까이 갖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DIY 기술의 근본적 혁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제 와서 점심값 수준의 오실로스코프를 구입하고는 뭐가 갑자기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오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달라진 것이 있다. 많은 경험을 통해 그 분야가 무엇이든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생각하는 수준이 높아졌고, 추진력 자체가 더 왕성해졌다. 또한 단순히 취미로 끝날 수 있는 이러한 종류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의 경력 및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방향과 연결지어 통합적인 성과로 완성하겠다는 확신이 더욱 커졌다.

X2의 잡음 문제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고 있는 오디오퍼브에서는 오디오 스펙트럼 분석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오실로스코프의 부재 문제를 해결하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었다. 오디오 인터페이스만 있으면 된다. 이를 사용하면 FFT(Fast Fourier Transform)도 가능한 것으로 안다.

Wave Spectra와 Wave Gen 프로그램

ARTA 소프트웨어용 테스트 픽스처 만들기

CJ대한통운에서 배송 완료 알림이 왔다. LT3042라는 LDO(low dropout regulator)를 이용한 초저노이즈 5V 공급 보드가 도착했을 것이다. X2의 DAC 및 IVC에 안정적인 5V가 공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주문한 것이다. 일주일 쯤 지나서 오실로스코프가 도착하면 전원의 품질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근 몇 달 동안 구입한 물건 중 쓸모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도 밝혀질 것이다.

LT3042 보드(위)와 M5216L op amp(데이터시트). 아래의 부품은 KORG X2의 아날로그 보드에서 헤드폰 앰프 회로를 구성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2025년 5월 19일 월요일

요한 하리의 책, 매직필(Magic Pill)

저자 요한 하리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위키백과를 찾아 보았다가 다음 인용문과 같은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인기 작가로서 이런 과거는 잊혀지고 싶은 부끄러운 구석일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인디펜던트》를 퇴사한 뒤 오히려 전문 작가로서 더욱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회가 되면 2023년 국내에도 소개된 같은 저자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어 보고 싶다. 

요한 에두아르트 하리는 《인디펜던트》와 《허프포스트》에서 근무했던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이다. 2011년 하리는 2001년부터 상습적인 표절과 자료 조작, 자신을 비판한 언론인들의 위키백과 문서를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을 인정한 뒤 《인디펜던트》에서 정직되었으며 이후 사임했다. 출처: 위키백과

올해 2월 국내에 소개된 요한 하리의 책 매직필('기적의 비만 치료제와 살찌지 않는 인간의 탄생')<매직필>은 '집중력 문제와 비만율 증가의 공통점'이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전작인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비만으로 이어지면서 GLP-1(Glucagon-like peptide-1) 호르몬 기반 비만 치료제의 개발 경위와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관한 책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GLP-1은 음식을 먹었을 때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는 것을 촉진하여 혈당을 낮추고, 동시에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여 간에서 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며, 뇌에 작용하여 포만감을 유발한다. 쉽게 말해서 '어, 배불러~'하는 느낌을 주는 호르몬이다. 체중 감량이라고 하면 보통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로 여겨지는데, 그저 일주일에 한 차례 주사를 맞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도대체 어째서 그런 마술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일반인이라도 관심을 갖지 아니할 수가 없다.

매직필을 읽으면서 각 장의 시작 부분에 삽입된 간지의 화려한 분홍색이 눈에 뜨였다. 어디서 많이 본 색깔인데... 그렇다. 화제의 영화 <서브스턴스>였다. 출판사에서 일부러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연상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최신 생명공학 기술에 의존하여 젊을을 유지하려다가 결국 불행한 결말을 초래한다는 충격적인 이 영화는 매직필이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부정적 효과(의학적·심리적·사회적)와 맞닿아 있다.



출판용어 중에서 간지는 각 장을 단순히 구분하기 위해 넣은 색지를 일컫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인쇄는 하지 않는다. 각 장을 소개하는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면 이는 일본어에서 온 인쇄용어인 '도비라(とびら·문짝)'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 말을 국어로 순화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다음의 글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도비라·세네카·하리꼬미? 한국책 인쇄하는 것 맞나요(조선일보 2020년 10월 26일)

마침 BRIC의 Bio리포트에서 지난 4월 비만 치료제 개발 동향에 관한 리포트를 게재하였기에 그 링크를 참고 목적으로 소개해 둔다. 이 리포트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를 시장과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만 소개한 것이다. 2014년 비만 치료제로 최초 승인된 제품인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는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면서 체중 감소 효과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반감기가 길어서 주1회 주사로 충분한 새로운 개발제품 오젬픽(2017)이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등장하였고, 비만 치료 용도로 더욱 용량을 늘린 위고비(2021)가 나오게 되었다.

어쩌다가 비만이 이렇도록 인류에게 흔한 현상(질병?)이 되었는가? 매직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녕 부작용은 없을까? 특별히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체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거식증의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 약을 남용하게 된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저자인 요한 하리는 직접 오젬픽을 사용하면서 이 논쟁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비만이 곧 질환인가?'라는 물음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만에 의해 건강이 위협받고 일상과 사회 생활마저 어려운 상태라면 치료해야 할 질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단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의지 부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인류는 진화 역사의 대부분을 늘 배가 고프게 살아왔고, 따라서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남는 영양분은 되도록 체지방으로 비축하려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같다. 따라서 요즘과 같이 값싸고 입맛에 짝짝 달라붙는 공업화된 먹을거리가 넘치는 문명 사회에서는 누구나 쉽게 비만해질 수 있다. 이렇게 떨쳐 내기 어려운 비만을 일주일에 한번 맞는 주사로 해결할 수 있다니 정말 복음과 같은 소식 아니겠는가?

하지만 GLP-1 계열의 약품은 끊는 순간 다시 무섭게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공정이 개선되고 제너릭 의약품이 풀리면서 값이 더 내려갈 터이니 고지혈증약이나 고혈압약처럼 평생 사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낙관적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약은 배고픔을 둘러싼 신체의 근본적인 조절 메커니즘을 '해킹'하는 것이며, 장기 사용에 의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는 우리 몸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본다. 약간 적게 먹고, 초가공 식품을 피하며,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체중조절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시력이 떨어지니 안경을 끼고, 소화가 안 되어서 소화제를 먹듯이 체중 감량을 쉽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초고도 비만인 사람의 삶의 질을 되돌리기 위한 방편이라면 모를까. 또한 패션이나 연예 산업에서 대중에게 마른 체형에 대한 환상을 계속 주입한다면(예를 들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모델 '트위기' 및 케이트 모스 등) 건강한 체중 또는 체형에 대한 왜곡된 추구를 할 수밖에 없다. 기술이나 효율성에 기반한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문화 및 사회적 수용성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제10장 '식욕을 없앨 수만 있다면'이었다. 여기에서는 주로 저술가 엘리스 로넌(Elise Loehnen), 그리고 저자의 오랜 친구 '라라'과 만나 대화하면서 겪은 경험을 다루었다. 책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매우 적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묵직하다. 먼저 엘리스 로넌. 할리우드 스타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아주 비싼 웰빙 경험을 팔다가 이것이 자기를 '삭제'하는 것임을 깨닫고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선 케이스이다. 두 번째인 라라. 저자가 오젬픽을 쓰는 것은 건강 때문이라고 하지만, 라라는 췌장암에 걸릴 위험(아마 장기 부작용 가능성을 말하는데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아님)을 감수하면서 고작 외모에 대한 허영 때문에 그 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냐면서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즉, 자기 몸과 전쟁을 벌이지 말자는 것이다. 

글의 흐름은 다음 장에서 자연스럽게 비만한('비만이다'가 아니라 '비만하다'가 옳다고 함) 사람이 스스로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비만 수용 운동('fat pride' 또는 'fat acceptance')과 연결된다. 침대에서 누워서 살아야 할 정도로 극 초고도 비만인 사람에게 팻 프라이드를 가지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비만은 병일까, 아닐까? 2022년 코메디닷컴에 실린 기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 비만은 병이라는 입장 - 비만은 신경회로 이상으로 인해 식욕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 유전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 비만은 병이 아니라는 입장 - 비만을 병으로 간주하면 개인의 책임감이 희석된다. 비만은 개인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이다. 



2025년 5월 18일 일요일

10km를 한 시간에 달리고 싶다면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가

왜 낮에 달리면 더 힘이 들까? 더워서일까? 비가 잦았던 요즘 날씨 때문에 그렇게 덥지도 않은 5월 중반에 더워서 달리기가 더 힘들다는 핑계를 대기도 어렵다.

일요일이었던 오늘은 오전을 이용하여 달리기를 하기 위해 갑천변으로 나섰다. 첫 1km는 5분 36초로 끊으면서 잘만 하면 평균 페이스 6분 미만으로 들어올 수도 있겠다고 자신을 하였는데,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숨도 차서 4km째에 잠시 멈추어야 했다. '지속 가능한 페이스를 유지하세요'라던 런데이의 멘트가 떠올랐다.

요즘 들어서 목표 거리(6km)를 왜 한번에 채우지를 못하는 것인가. 이틀 전, 영종도에서도 5km를 뛰고 잠시 쉬어야만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오래 달리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추가로 4km를 더 뛰어서 8km를 채웠다. 평균 페이스가 6분 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지만, 전반적으로 지난 봄보다 실력이 떨어진 것만 같다. 2025년에는 6분 미만의 페이스가 되거나 10km를 쉬지 않고 달려 낼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 기대하였건만, 고통스런 훈련이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달리기를 거르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그저 평소와 동일한 목표만 채우는 것으로는 퇴보하고 만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런데이의 <50분 달리기 도전> 프로그램을 따라서 해 보거나, 전력 질주를 약간 포함하는 변형된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ChatGPT에게 "6분 15초 정도의 평균 페이스로 6km를 겨우 달리는 수준입니다. 1시간에 10km를 달리려면 어떤 체계적 훈련을 해야 되나요?"라고 질문해 보았다. 답변은 다음과 같다. 제시된 훈련은 4주 용 계획이므로 나에게는 상당한 고강도일 수도 있다. 

현재 6분 15초/km의 페이스로 6km를 완주하셨다면, 이미 기초 지구력과 심폐 능력은 갖추고 계신 상태입니다. 목표인 1시간에 10km(= 6:00/km 페이스) 달성은 충분히 가능한 거리이며, 훈련을 체계화하면 수주 내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몇 가지 훈련 요소를 골고루 강화해야 합니다.


🎯 목표

  • 목표 거리: 10km

  • 목표 페이스: 6:00/km

  • 목표 시간: 60분


🧱 주간 훈련 구성 (주 3~4회 기준)

지속주 (기초지구력 향상) – 1회

  • 내용: 편안한 속도로 7~9km 달리기

  • 페이스: 6:30~6:45/km

  • 목적: 거리 적응, 지구력 향상

페이스주 (목표 페이스 적응) – 1회

  • 내용: 4~6km를 목표 페이스(6:00/km)로 달리기

  • 점차 거리를 늘려 8km까지

  • 목적: 목표 페이스에 신체 적응

인터벌 or 템포런 (심폐기능 강화) – 1회

  • 템포런: 2km 워밍업 → 3~4km를 5:30/km 전후 → 쿨다운

  • 인터벌: 800m × 45회 (5:155:30/km), 휴식 400m 조깅

  • 목적: VO₂max 및 유산소 임계 향상

④ (선택) 리커버리 조깅 or 크로스트레이닝 – 1회

  • 자전거, 빠른 걷기, 수영 등

  • 너무 지치면 휴식도 괜찮음


⏳ 시간 프레임

  • 꾸준히 하면 4~6주 안에 10km 1시간 완주 가능

  • 이후에는 페이스 안정성부상 예방에 집중


📌 보조 팁

  • 스트레칭과 코어 운동 병행 (부상 예방)

  • 주 1회는 걷기 포함해도 좋음 (회복용)

  • GPS 워치나 앱으로 기록 추적 (Strava, Garmin 등)

  • 충분한 수면과 수분 섭취


🧭 마일스톤 예시

주차장거리주페이스주템포런
1주차7km @ 6:454km @ 6:003km @ 5:45
2주차8km @ 6:405km @ 6:004km @ 5:40
3주차9km @ 6:356km @ 6:005km @ 5:35
4주차10km @ 6:307km @ 6:003km × 인터벌

✅ 마무리

목표는 충분히 현실적이며, 페이스 유지력과 호흡 여유도 함께 키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ChatGPT가 제시한 훈련 프로그램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특히 국문 설명에서는 지속주-페이스주라고 해 놓으니 이를 해당 주의 3회 달리기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달리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8주짜리 프로그램을 짜 보는 것이다. 다시 요청하여 다음과 같은 계획표를 받았다.


상당히 합리적인 계획표라고 여겨진다. 



실수투성이의 KRIBBtonite 5월 공연

UST KRIBB스쿨에서 개최한 스승의날 행사에서 우리 밴드 KRIBBtonite가 작은 축하 공연을 하였다. 지난 2월 연구소 창립 40주년 행사에서 가졌던 공연, 연구소 마당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노래 몇 곡을 연주한 것까지 포함하면 벌써 올해 세 번째의 공연이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공연이 확정되었고 건반 연주자의 출산 휴가, 게다가 내가 손가락을 다치는 일도 생기는 바람에 공연을 포기할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열정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연습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연주자가 충분하지 않아서 배킹 트랙을 미리 준비하여 이를 틀어 놓고 나머지 악기와 보컬을 얹는 이른바 노래방 모드로 공연을 진행하였다.

배킹 트랙 준비는 언제가 그렇듯이 내가 하였다. 이번에는 모든 곡에 대해서 전체 음량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어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원 파일을 GAUDIO STUDIO 등에 올려서 일부 파트를 제외하게 만들면 남은 소리는 영 깨끗하지 못하다. 다음부터는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MIDI 데이터를 얻어서 최소한 드럼 트랙은 따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 실전에 사용한 삼익 패드 드럼 역시 잡음이 너무 심해서 아쉬움이 많았다. 다음의 영상에서 두 번째 곡인 우효의 <민들레> 시작 부분에서 잡음이 크게 들린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배킹 트랙을 휴대폰에서 블루투스 수신기를 통해 파워드 믹서로 보낸 것이다. 곡을 잘못 재생하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는 없었다. 세 번째 곡인 볼빨간사춘기의 <여행> 2절을 신나게 끝내자마자 갑자기 반주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 년에 걸쳐 사용해 온 블루투스 수신기가 갑자기 말썽을 부린 일은 없었다. 블루투스 수신 기능이 있는 ALTO Uber PA를 파워드 믹서(SAMSON XML 610)에 유선으로 연결하여 모니터 스피커용으로 쓴 것이 문제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면 적절한 위치에 두기가 어려워서 충전을 한 뒤에 작동을 시작하였는데, 이 스피커의 배터리가 다 방전되면서 불안정한 상태에서 블루투스 수신 기능을 잡아 챈 것으로 여겨진다.  공연 현장에서 무선 연결을 쓸 경우 배터리 방전이나 다른 기기와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대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것도 좋다. 

공연이 끝나고 장비를 연습실로 옮긴 뒤 다시 케이블을 연결하면서 SAMSON 파워드 믹서의 1번 채널 레벨이 다른 것에 비해 월등히 낮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자다가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이 남는 공연이었지만 KORG X2를 중고 구입 21년째에 처음으로 라이브 현장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 가곡의 베이스 라인을 내 마음대로 원 없이 만들어서 사실상 즉흥 연주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것(첫 곡의 건반 연주 역시 그러했지만)에 의의를 두기로 하였다. 다음 공연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가급적이면 휴대폰 녹음이 아니라 믹서에서 직접 오디오 신호를 따서 컴퓨터로 녹음을 해 보겠다. 장비를 연결하여 제대로 점검도 하지 못했는데 본 행사 진행을 위해 장비를 거두어 들였다가 다시 설치하다여 연주에 돌입해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된다. 작년부터 연구소에서 요청하여 수락했던 세 번의 공연이 다 이런 식이었는데, 실수가 벌어지기 정말 좋은 조건이 된다.

리허설 현장.

공연 현장.

공연이 끝나고. 왼쪽 뒤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상옥, 권태호, 김선규, 나, 그리고 이언진.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달린 결론: 궁즉통(窮則通)은 특이점-빅뱅, 그리고 그 후의 도약이다

한국생명정보학회에서 개최한 제4회 영종 생명정보 AI 바이오 컨퍼런스를 찾았다. 해마다 영종도에서 열렸기 때문이 이런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15분짜리 짧은 발표를 준비하면서 어떤 말로 시작을 할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개최지인 Inspire Entertainment Resort 근처를 달려 보기로 하였다.




달린 거리는 총 언제나 그렇듯이 총 6km. 부슬비를 맞으며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달렸다. 여전히 평균 페이스를 6분으로 맞추는 것은 어렵다. 2km까지는 5분 50초 미만을 유지했지만 이를 유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5km를 달리고는 한참을 쉬어야 했다. 추가 훈련을 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이틀에 한 차례 5~6km를 슬렁슬렁 달리는 것으로는 현상 유지만 겨우 하거나 심지어 더 퇴보할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서 중간에 쉬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가?

Inspire(고무하다), aspire(열망하다), conspire(공모하다), expire(만료되다), respire(호흡하다), perspire(땀을 흘리다)... 전부 'spirit'(활기, 기운)를 어원으로 하는 영단어이다(출처). 'Aspire to inpire before you expire'라는 멋진 말도 있다.

'I inspired other people', 이것은 내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의 배경으로 쓰는 이미지이다. 내 묘비명에 정말 이런 글을 새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22년 갤러리밈에서 있었던 팀 벤겔(Tim Bengel)의 아시아 지역 첫 개인전에서 찍은 것.


INSPIRE 리조트에서 열리는 학술행사에서 나는 'Expire하지 맙시다'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하였다. 이 학회는 상대적으로 젊은 학회이고, 영종 컨퍼런스는 새롭게 임용된 교수들이 자신의 연구분야를 소개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신진 연구자들의 등장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세대는 이른바 '고인물'인 셈이다. 

생명정보학 기술을 이용하면 여기 앉아계신 분들 사이로 고인물 구분 경계선을 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INSPIRE 리조트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인물들이여, 절대로 EXPIRE하지 맙시다.

두 번째의 오프닝 메시지는 주역에 나오는 '궁즉통(窮則通, 원래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이지만 이를 줄인 것)'이란 말에 관한 것이었다. 출장을 오면서 가지고 온 책 <공자가 인생에 답하다>(한민 지음)을 오늘 아침에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었다. 이 말은 궁핍한 상황에 처하면 반전을 일으키거나 결국은 이를 돌파하여 통하게 된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여기서의 '궁'은 어렵고 딱한 처지가 아니라 '궁극'을 뜻함이 옳다고 한다. 즉,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의 옳은 풀이는 이러하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변하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면 막힘이 없이 통하게 되며, 막힘없이 통하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궁'은 특이점(singularity)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기술이나 역량이 고도로 발전하여 어떤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펑! 터지면서(=big bang!) 모두가 행복해지는 현상. 바로 이런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발표 본론에 들어갔다.

가기 위하여 더 이상 긴 말은 하기 어려웠지만, 챗GPT에 물어보니 궁즉통을 특이점과 연결하거나, 특이점을 사회적 빅뱅과 연결하여 설파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현대 사회는 AI에 의해 특이점으로 치닫고 있다.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고, GPU는 너무 인기가 있어 구입하기 어려우며, 이를 운좋게 구입했다 해도 대규모로 운용하려면 전력 수급이 어렵다. 이것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 일으킬지 아무도 확신하기 어렵다. 모든 인류가 행복해질까? 디스토피아가 될까? 그것을 모르기에 우리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다. 그러나 '궁즉통'이라는 오랜 말처럼, 이는 새로운 돌파구로 연결될 것이다. 궁극은 파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우리 앞에 펼처질 대전환은 바로 특이점(singularity)에 해당한다. 문명의 본질적 도약은 바로 이 창조적 폭발의 시점에서 일어나게 된다. 이 시기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리더의 조건

어느 조직이나 리더는 필요하다. 리더를 다른 말로는 '관리자'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두 개념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혀 둔다. 

관리자 없이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02년, 구글에서 이러한 시도를 해 보았지만 수 개월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자율성과 이상주의는 더 이상 정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웹을 조금만 뒤져 보면, 구글의 이 실험에 대한 실패 원인과 이로부터 얻은 교훈에 대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요즘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가리키는 리더포비아(leader phobia)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이다.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제대로 조직되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임은 많고 보상은 점점 적어지니 이러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접근 동기' '회피 동기'... 이런 용어까지 들먹이면서 설명하고 리더가 되기를 꺼리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직에게 돌아간다. 단지 나이가 들고 약간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리더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차세대 리더를 길러내는, 이른바 리더 풀(pool)이 있어야 하며, 이들을 육성하고 격려해야 한다. 이들로부터 리더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소수 엘리트 그룹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에 의해 리더로 육성되었다 해도,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고 리더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리더가 된 뒤에 비로소 리더의 면모를 갖추어 나간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모두가 성공적으로 변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리더로 나서지 않을 때—나는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다들 거부할 것이다—리더가 되면 안 될 사람이 리더가 될 수도 있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에는 무엇이 있을까? 솔직한 태도는 '리더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전략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우왕좌왕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리더의 자리가 정말 무서운 것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겸손이란 덕목은 양날의 칼과 같다. 특히 리더는 겸손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원래 유교적 전통에서 겸손은 절대적인 미덕과 같이 여겨지고 있으나, 요즘과 같이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소속 조직을 내세워야 하는 전쟁터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 중요성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문제는 '거짓 겸손'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교만함을 가장한 겸손과, 자기비하의 두 가지가 있다(참고할 글 -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겸손의 두얼굴, 지나친 겸손과 진정한 겸손).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리더는 빨리 배우고 적응하는 사람이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리더가 되고, 그 자리에 오른 뒤 더 이상 배우거나 변하지 않는 그런 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과 일 년 반 전에는 이런 종류의 고민이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 길을 걸어 오면서 겪은 사연을 일일이 밝힐 수도 없고 또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내야만 한다.

2025년 5월 11일 일요일

KORG X2의 잡음을 시각적으로 기록해 보다

전원회로를 완전히 개조하였지만 잡음은 거의 제거되지 않았다. 다만 교류 220V에 직접 연결할 수 있게 되어서 활용성은 매우 좋아졌다. 헤드폰을 끼고 연주를 하던 중, 전원을 넣고 시간이 흐르면 문제의 hiss-like noise가 상당히 줄어드는 것을 관찰하였다. Mackie Onyx Producer 2·2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Audacity를 이용하여 이를 시각적으로 나타내 보기로 하였다.

녹음에 사용한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게인 및 믹스 노브의 위치.

X2의 볼륨 슬라이더는 최대로 한 상태에서 전원을 넣은 뒤 5분 간격으로 7초씩 무신호 상태로 녹음을 하였다. 30분까지 측정을 한 뒤에는 전원을 끄고 5분 동안 기다린 후 전원을 넣고 다시 7초 동안 녹음을 하였다. 다시 전원을 끄고 5분을 기다린 뒤, 전원을 넣은 뒤 또 7초 동안 녹음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볼륨 슬라이더를 완전히 내리고 녹음을 지속하였다.

무신호 녹음이므로 그대로 두어서는 노이즈 상태를 알기 어렵다. 50데시벨 증폭을 하여 잡음 수준을 시각화하였다. 



전원을 넣고 시간이 흐르면 잡음이 점차 줄어들어서 25분 정도가 지나면 최소한의 수준으로 내려감을 알 수 있다. 잡음 수준은 오른쪽 채널이 왼쪽보다 더 높았다. 50dB 증폭을 한 것을 들어보면 120hz hum도 들린다.

X2 service manual에 의하면 출력 단자의 residual noise는 -85.0[dBu], output level signal level은 max 15.0~18.0[dBu]라고 한다. 잡음 수준은 하이파이 오디오 앰프 수준은 아니지만 프로 오디오 장비에서는 실용적으로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프로 오디오는 하이엔드 오디오와 같은 뜻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내 X2의 실제 잡음이 어떠한지 측정을 할 방법은 없다. X2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헤드폰으로 연결한 경우 상당히 귀에 거슬리는 '쉿-'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출력 레벨은 일반 프로 라인 레벨인 +4 dBu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라고 한다. 

5월 14일에 있을 작은 규모의 공연에서 과연 X2를 쓸 수 있을지 궁금하여 오늘 오후 연습에 이를 들고 나가 보았다. Samson XML610 파워드앰프 + FdB CX12 스피커에 연결한 뒤 소리를 들어 보았다. 파워드 앰프에서 나는 고유한 잡음 — 실제로는 이를 더 낮출 수 있는 현장 적용 테크닉이 있겠지만 — 보다 특별히 더 크지는 않았다. 따라서 아주 까다로운 관객이 많지 않은 현장에서 취미 밴드가 공연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은 나의 X2은 2004년 중고로 구입한 이후 실내를 벗어나거나 공연 현장에서 쓰인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장비가 갖고 있는 잡음 문제(실용상 문제가 없다는 가정 하에)와 건반 연습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공연장소로 끌고 가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을 느끼고 있다.

부품을 개선하여 잡음을 줄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덕허덕, 최악의 달리기 기록

계속 비가 내려서 삼일을 쉰 뒤 모처럼 오전 달리기에 나섰다. 마침 일요일이었고, 늘 심야에만 달리다가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상하리만치 힘이 많이 들어서 3km를 조금 넘긴 뒤 한참을 쉬어야만 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또 한번을 쉬었다. 이렇게 엉망인 상태로 6km를 채운 부끄러운 기록은 다음과 같다. 두 번이나 쉬고도 페이스는 6분 26초였다.



드디어 6분 아래로 평균 페이스가 내려간다고 그 가능성일 보았던 것이 바로 지난달.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람... 이상하게도 다리가 무겁고 숨도 가쁘게 느껴졌다. 오전이라 몸이 덜 풀린 때문이라면, 기상 직후에는 무슨 수로 달리겠는가. 2월과 3월에는 무슨 수로 평균 7.2km씩 달렸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은 간간이 스쿼트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틀에 한 번 달리기를 한다고 필요한 운동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보충 운동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밤 9시 50분에 나가서 달리면 오늘 오전의 실망스런 기록보다는 더 잘 나올 것만 같다.

다음은 오늘의 ChatGPT 결과물. 큐비즘 스타일로 변환한 그림이 마음에 든다. 지브리나 픽사 스타일, 고흐 스타일은 너무 흔해서 다른 시도를 해 보았다. ChatGPT 안에서 미드저니를 연결하여 사용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창의력은 결국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달린 것일까?





2025년 5월 8일 목요일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 ChatGPT가 자동으로 쓴 글 소개

제목만 제시한 상태에서 ChatGPT에게 공백 포함 2,700자 분량의 글을 쓰게 하였다. 프롬프트는 다음의 두 가지였다.

  • 프롬프트 1: "ChatGPT 시대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공백 포함 2600자 정도의 에세이를 써 줘.
  • 프롬프트 2: 경어체로 바꾸어서 다시 써 주세요. 제목도 조금 더 그럴싸하게 바꿔 주세요
다음에 실은 것은 프롬프트 2에 대한 결과물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나는 이 글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 여기부터 ====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
– ChatGPT와 함께하는 새로운 글쓰기의 풍경

요즘 들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많은 분들이 글을 쓰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고 느끼고 계실 텐데요. 예전에는 글쓰기란 오롯이 개인의 고유한 사고와 감정, 그리고 표현력에 의존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글쓰기의 도우미이자 때로는 공동 작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와 방식, 그리고 그 의미까지 다시 묻게 만듭니다.

먼저, ChatGPT는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우 빠르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마감이 코앞일 때, 혹은 문장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고민될 때, 이 도구는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 직장인, 그리고 작가분들께서 초안 작성, 문장 교정, 번역, 글의 구조 잡기 등 다양한 작업에 AI를 활용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편리함이 커질수록, 동시에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도 함께 생깁니다. 이 글은 누구의 것일까요? 사람이 쓴 걸까요,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일까요? 인간이 작성한 글에 AI가 일부 기여했다면,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AI가 써 준 문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AI가 만들어내는 글에는 때때로 감정의 미묘한 결이 빠져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간은 삶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 갈등과 화해, 성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하지만 AI는 그런 체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AI가 작성한 글은 문법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정의 뉘앙스, 문화적 함의, 또는 풍자와 아이러니 같은 표현은 아직 인간의 손길이 더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새로운 글쓰기의 시대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종이와 펜, 이후에는 워드프로세서가 글쓰기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AI가 글쓰기의 파트너로 등장한 것입니다. 글쓰기를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창작 ‘과정’으로 본다면, 인간과 AI의 협업도 새로운 창작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글쓰기는 사람과 인공지능 사이의 경계 위에서 계속 진화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활용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ChatGPT는 상상력을 보조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맹신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한계를 이해하며 지혜롭게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결국 글쓰기의 본질은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것’입니다. 아무리 AI가 멋진 문장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 문장을 선택하고, 다듬고, 그 안에 의미를 불어넣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진정한 글쓰기란, 기술의 도움을 받되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이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 여기까지 =====

훌륭하지 않은가? 지금은 이러한 수준이지만, 1년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얼마나 개선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AI를 이용한 이미지와 음성 생성에서는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이 놀랍고도 즐거운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훌륭한 도구가 있으니, 학생들의 과제물이나 청탁받은 글을 쓰기 위해 쫒길 때 이를 써 보고 싶은 유혹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확히 '한 달 전에 챗GPT 시대의 글쓰기'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이때에는 내가 쓴 원문을 제시한 뒤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하고, 다시 이에 맞추어서 검토를 요청하고 재수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최종본을 만들어 나갔다. 오늘의 글에서는 챗GPT에게 제목과 스타일만 제시한 뒤에 완전히 자동으로 생성한 글을 실어 보았다. 내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서 긍정적인 글이 될 수도 있고,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글쓰기에 AI를 활용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직접 정성들여 쓴 인간적인 글이면 좋겠다' - 이는 AI에 대한 전형적인 양가 감정이자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효율만 추구한다면 사람이 쓰든 AI가 쓰든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로 시각을 달리하여 글을 써 보도록 지시하였다. 첫 번째 글에서는 부정적으로, 두 번째 글에서는 긍정적으로. 두 가지 프롬프트에 대한 결과물을 싣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친다.


[부정적] 인공지능 글쓰기, 과연 창작의 진보일까요?

요즘은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SNS에서의 짧은 글부터 보고서, 에세이, 심지어 시나리오까지, 다양한 형태의 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글쓰기 도구가 있습니다. 몇 마디 지시어만 주면, AI는 순식간에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줍니다. 얼핏 보면 놀랍고 편리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흐름에 선뜻 동의하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이 인간의 생각과 표현을 대신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사고력의 퇴화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를 구성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복합적인 행위입니다. 그런데 글쓰기의 과정을 AI에 맡겨 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깊이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주제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지 않고, 표현을 다듬으려 애쓰지도 않게 됩니다. 결국 인간 고유의 사고력과 표현력이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편리함이 우리의 능력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글에는 진정성의 부재라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AI는 경험이 없습니다. 감정도 없습니다. 단지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여, 확률적으로 적합한 단어들을 배열할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말은 맞지만 마음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생각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저작권과 책임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AI가 만든 글은 누구의 것일까요? 그 글 속에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관점이 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현재로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그저 ‘도움받았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은 창작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어렵게 만듭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이미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과제나 논술을 AI에게 맡기고, 자신은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제출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사는 그 글이 AI가 썼는지, 학생이 썼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평가의 기준도 애매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교육의 본질인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을 완전히 배제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정보 정리나 아이디어 발상 등에서 적절히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본질까지 AI에게 넘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한 흔적이며, 그 사람의 내면이 담긴 고유한 창작입니다. 이 과정을 포기하면서까지 편리함을 좇는다면, 우리는 결국 글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아닌 ‘글을 받아보는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더 글을 써야 할 때입니다. 더 느리더라도, 더 서툴더라도, 직접 손으로 써 보는 연습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문장보다, 부족하더라도 나의 경험과 감정이 담긴 문장이 더 소중하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인간 고유의 생각과 표현, 그리고 진정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 AI와 함께 쓰는 글,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인공지능이 불러온 글쓰기의 혁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글을 쓴다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적절한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때로는 고통스럽고도 느린 작업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글쓰기는 더 이상 혼자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AI라는 강력한 조력자와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적 편의를 넘어, 인간의 창작을 더욱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은 생산성과 효율성 면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써야 할 시간이 부족할 때, 복잡한 정보를 정리해야 할 때, 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AI는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이나 키워드만 입력하면, AI는 즉시 초안을 생성해 줍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는 빈 화면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의 창의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AI는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제는 AI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러운 문장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문서도 손쉽게 번역할 수 있고, 문법이나 표현을 점검해 주는 기능은 국제적인 소통에도 큰 힘이 됩니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단순한 글쓰기 도구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글쓰기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부에서는 AI의 글에 감정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AI는 인간의 언어와 표현을 학습한 결과물로, 오히려 어떤 글에서는 인간보다 더 절제된, 그리고 더 정확한 감정 전달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용자가 원하는 분위기나 감정의 뉘앙스를 설정하면, 그에 맞는 문체와 어휘로 글을 조율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이는 창작자가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하고, 표현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창작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쓰는 데에 일정한 훈련과 능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AI의 도움으로 처음 글을 쓰는 사람도 보다 쉽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는 문화 콘텐츠 생산의 장벽을 낮추고, 더욱 다양하고 다채로운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만든 글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맥락을 잘못 이해하거나, 사실관계를 혼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의 한계일 뿐이며, 사용자와의 협업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대신 써주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창조하는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란 결국 생각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인공지능은 그 생각을 더 멀리, 더 넓게 퍼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도, AI와 함께라면 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보다 창의적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글쓰기는 진화할 것이고,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함께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이 기술을 경계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일입니다. AI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되는 세상. 그것이야말로 창작의 진정한 확장 아닐까요?



2025년 5월 7일 수요일

30년 전에 찍은 몇 장의 흑백 사진

어느 단체에서 만드는 계간지에 실을 원고(에세이) 청탁을 받았다. 원고청탁서와 이미 발간된 글 사례를 보니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형식의 글을 써야 될 것 같았다. 아주 짧은 회고록이라고 해야 하나... 벌써 그런 부류의 글을 써야 할 나이는 아닌데, 막상 마음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손가락 끝에서 적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흘러 나오기 시작하였다. 부탁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글을 쏟아 놓은 다음 이를 어떻게 줄여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다.

저자의 활동과 관련된 사진도 몇 장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행사 등에서 참여하면서 공식적인 용도로 쓸 수 있게 나 자신을 찍은 사진은 거의 없었다. 연구 초년생 시절에 만든 장비 사진 같은 것이 없는지 집에 보관되어 있던 사진 더미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의외로 흑백 사진이 많았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가끔 흑백 사진을 인화하는 것이 취미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 취미는 2천년대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장식장 안을 채운 몇 대의 카메라와 렌즈는 작동 상태를 알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암실에서 확대기에 필름을 걸고 8x10" 인화지를 반으로 잘라서 노광한 후 현상과 정착을 하던 숱한 나날들이 떠오른다. 대학원생 시절, 전기영동 사진(폴라로이드) 등을 논문 투고용으로 보낼 수 있게 흑백필름으로 재촬영하여 인화해서 팔기도 하였다. 당시 바로 곁의 KRIBB에서도 알음알음으로 손님이 오곤 했었는데, 내가 KRIBB에 들어가서 이제 정년퇴직까지 남은 햇수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준에 이르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실험 사진이나 '청슬라이드'를 만들어 주던 어은동의 사진문화원이라는 곳이 기억이 난다. 구식 사진술에 대해서는 꽤 아는 편이지만, 글씨나 선으로 만들어진 원고를 발표용으로 비추기 위해 만들던 청슬라이드의 제작 원리는 지금도 도저히 모르겠다. 바탕은 청색, 글씨나 선은 투명하게 만들어지던 바로 그 슬라이드.

두 장의 흑백 사진을 골라 스캐너에 걸고 파일로 전환하였다. 30년 정도가 흘렀는데 전혀 빛이 바라지 않은 것을 보니 정착액을 아주 잘 씻어낸 것 같다. 

먼저 가수 김정민의 사진. 박사과정 재학 중이던 1995년 정도였던 것 같다. 축제 때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공연으로 기억이 난다. 다른 사진에는 권인하와 박상민도 찍혀 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남성 댄스 가수 그룹도 있었고, 여성 트리오도 있었다. 네거티브에 촬영 정보가 기록되어 있으니 정확한 연도와 날짜는 금방 찾을 수 잇다.



또 하나의 사진은 유성 장터에서 찍은 철창 속의 원숭이. 원숭이를 팔기 위한 것인지, 혹은 약을 팔기 위해 손님을 모으려고 곡예를 보여주면서 관심을 끌기 위한 출연진인지는 전혀 기억할 수 없다. 얼마 전 오창 분원에 갔을 때 영장류센터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실험용 원숭이가 생각난다. 


유성 장터에서 뻥튀기를 만드는 할아버지를 찍은 흑백 사진도 있다. 월간 사진예술의 독자 사진전 단사진 부문에 출품하여 총 세 번 입선을 했었다. 소개하자면 바로 그 뻥튀기 할아버지, 위에서 김정민을 찍었던 같은 날 가수 박상민을 촬영했던 흑백 사진, 그리고 아내를 찍었던 컬러 사진이다(11년 전에 쓴 관련 글 - 20년 전의 월간 <사진예술>).

스캔을 하고 보니 노출, 네거티브 현상, 인화 모두 무난하게 된 것 같다. 컬러 필름을 확대기에 걸고 흑백 인화지에 장난삼아 인화한 것도 꽤 된다. 이 경우 콘트라스트가 매우 나쁜 결과물이 나오므로 별로 권장할 것은 못 된다.

지금은 주말 나들이를 하루 다녀와도 휴대폰으로 백 장 가까운 사진을 찍게 되지만, 구글 포토로 전부 백업해 버리고 만다. 클라우드에 오른 수천 장의 사진은 지리정보와 날짜 및 찍힌 인물/사람을 이용하여 아주 스마트하게 검색이 된다. 그러나 예전에 정성들여 찍어서 인화해 놓은 사진은 어떤가? 36매 필름 한통을 찍어서 인화해 놓고 가끔 들추어 보면 장면 하나 하나에 얽힌 사연이 전부 떠오른다. 생산하는 정보의 양은 지금의 것이 과거와 비교 불가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지만,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추억의 양은 더 적어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여 다시 필름 사진기의 시대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렌즈교환식 사진 장비를 무겁게 들고 다니기도 어렵고, 사진 재료를 구입하고 처리하는 데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주머니 속에 간편하게 휴대하여 다니는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 

가끔씩 구식 기술이 그리워진다.



2025년 5월 4일 일요일

KORG X2를 사용하기 위한 집착, 그리고 텐진 빠모(Jetsunma Tenzin palmo)

PC에서 재생한 Canyon.mid 파일을 X2에서 multitrack recording을 하여 재생하는 모습. 이 결과물 하나를 얻기 위해 몇 시간을 투자하였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4년에 X2를 구입하여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한 시간과, 최근 이를 자가수리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Jetsun (Tibetan: རྗེ་བཙུན།, Wylie: rje btsun) or Jetsunma (Tibetan: རྗེ་བཙུན་མ།, Wylie: rje btsun ma; the "ma" suffix is feminine) is a Tibetan title meaning "venerable" or "reverend." It is a specific term applied to revered teachers and practitioners of Vajrayana Buddhism. 출처: 위키피디아 [ChatGPT의 번역: Jetsun (티베트어: རྗེ་བཙུན།, 와일리 표기: rje btsun) 또는 여성형인 Jetsunma (티베트어: རྗེ་བཙུན་མ།, 와일리 표기: rje btsun ma; 여기서 "ma"는 여성형 접미사)는 티베트어로 "존귀한" 또는 "거룩한"이라는 뜻의 칭호입니다. 이 용어는 금강승(바즈라야나) 불교에서 깊이 존경받는 스승이나 수행자에게 특별히 사용됩니다.]

KORG에서 2001년 출시했던 신시사이저 중에 KARMA라는 것이 있었다. 붉은 몸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물을 본 일은 없었다. 그저 미디앤사운드(지금은 MNS) 웹사이트의 광고를 보면서 부러워만 했을 뿐이다. 

 

KORG KARMA. 출처: ZZOUNDS

KORG의 신시사이저 제품명은 신화적인 요소를 차용한 것이 많다. Triton, Oasys, Kronos 등. Trinity나 Karma처럼 종교적 의미가 내포된 것도 있다. 물론 KARMA는 Kay Algorithmic Realtime Music Architecture의 약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Karma, 즉 업(業)은 힌두교나 불교 등에서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선행이나 악행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인과 법칙을 뜻한다.

21년 전에 중고품으로 구입한 KORG X2 Music Workstation을 손봐서 다시 쓰고 싶은 나의 집착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실은 방구석에 세워서 방치한 기간이 너무나 길었다. 이는 여러 분야를 떠돌았던 나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는 '음악'으로 귀결되고 있으며, 음악을 만들거나 기록하는 도구를 잘 정비하고 매만지고 싶은 집착이 지금까지는 꽤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개인 웹사이트에 꼼꼼하게 기록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데, 너무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서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텐진 빠모(1943~)의 책 <서양인을 위한 불교 강의>(원제는 'Reflections on a mountain lake')을 열심히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텐진 빠모는 서양인 최초로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비구니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 읽은 내용 중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부분인 101쪽을 사진으로 찍어 여기에 남긴다.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X2는 정말 소박한 장비에 해당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리듬 트랙을 미리 저장한 뒤 공연 등에 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철저히 테스트를 해 보고자 하였다. 컴퓨터를 이용한다면 훨씬 좋은 음질의 음원을 쉽게 다룰 수 있겠지만, 버튼과 단 2개의 슬라이더(노브는 없음)만으로 이루어진 신시사이저 내장 시퀀서를 다루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고장났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SNG 파일은 SysEx로 전환하여 MIDI 인터페이스를 통해 전송할 수 있지만, 현재는 컴퓨터에서 SNG 파일을 새로 만들거나 편집할 방법이 없다. 표준적인 MIDI 파일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PC에서 MIDI 파일을 재생하면서 X2에서 multitrack recording을 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았다. 

레퍼런스 가이드를 읽고 따라하는 것으로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생각하지 않았던 많은 문제에 부딛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X2 자체 키보드를 이용하여 녹음을 할 때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외부 기기를 clock source로 하여-내가 즐겨 사용하는 Tracktion Waveform Free는 이 기능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Cakewalk을 설치하였음-녹음을 하면 Local control이 저절로 Off로 바뀌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combination 음색이 일절 소리가 나지 않게 된다거나... 게다가 clock source를 다시 internal로 바꾸어 놓지 않으면 X2의 start/stop 버튼을 눌러도 곡 재생이 되지 않았다. 다음은 레퍼런스 가이드 160쪽(3A Global MIDI Channel & MIDI Clock Source)에 나오는 설명이다.

To synchronize the X2/X3 to another MIDI device, set the Clock Source to EXT. In this mode, the X2/X3 sequencer responds to MIDI Clock data such as Start, Stop, Continue, Song Select, and Song Position received through MIDI IN, and the X2/X3 tempo setting has noeffect. For X2/X3 multitrack recording, set the Clock Source to EXT.

녹음을 마치고 clock source를 internal로 바꾼 뒤에는 녹음된 원곡에 맞게 템포를 다시 맞추어 주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이는 위에 인용한 글에도 설명이 되어 있다. Sync를 PC쪽에 맞추지 않으면, 기록이 이루어진 뒤 아주 까다롭게 quantize를 해야 될 것이다.

몇 번이나 공장 초기화를 한 뒤 리눅스(amidi)로 설정을 다시 SysEx로 보내어 되살리고 테스트를 하는 반복 작업을 하였다. 최종적으로는 global 설정에서 combination protect 기능을 켜 놓아야만 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별도의 위키문서 Using the Sequencer and Sequencer Edit Mode on KORG X2에 정리하였다. 

오늘의 결과물을 녹음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오늘의 실험 대상이었던 Canyon.mid 파일은 몇 시간의 작업 끝에 X2 내장 시퀀서의 첫 번째 곡('S0')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봄에 몰두하였던 X2의 잡음 개선 작업(관련 글 링크)은 눈에 뜨일 정도의 개선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Audactiy에서 녹음을 해 보면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왼쪽 채널의 잡음 레벨이 약간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들으면 라이브에서 아주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음의 목표는 드럼 연주 MIDI 파일을 시퀀서에 기록한 뒤, 각 부분을 패턴으로 뜯어내어 활용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탐구 정신이 지나친 집착이나 급기야 번뇌로 이어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두고 나름대로 바쁘게 지낸 오늘 하루가 어떤 '카르마'로 남을지 생각해 본다.

2025년 5월 3일 토요일

2025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콘티넨탈 '25』를 관람하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대전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수도권 파견 근무를 하던 약 3년 반 동안의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매년 이 영화제를 찾고는 하였다.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국밥을 먹으러 '힁허케' 다녀오기도 하니까 말이다. '힁허케'는 매우 낯선 낱말처럼 보이지만,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표준어로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관련 글 - ‘휑하니’ 갔다 오지 말고, ‘힁허케’ 갔다 오세요). 

전주국제영화제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공식 '포스터'는 극장에서 영상으로 보아야 한다. 촤르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왼쪽의 꽃무늬는 J자처럼 펼쳐진다. 이미지 원본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져왔다.


전북대학교에서.

꼼꼼하게 사전에 작품을 고르는 성격은 아니라서 아무런 준비 없이 전주에 갔다가 표가 남아 있는 것을 겨우 골라서 관람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 방문한 날에 구입할 수 있는 표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영화제 상영관이 아닌 <조이앤시네마>에서 일반 영화를 본 일도 있었다.

기왕이면 전주 영화의거리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좋다. 거리를 가득 채운 포스터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영화제의 분위기를 한껏 즐기다 보면 나도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거리 이외의 장소에서도 상영이 이루어진다. 작년에도 잔여석이 남은 상영관을 찾다가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까지 가서 미셀 고메즈 감독의 2022년작 <콘도르 작전>을 보았었다(관련 글 링크). 올해에는 5월 1일 휴무일을 이용하여 개막작인 라두 주데 감독의 <콘티넨탈 '25>를 보기로 하였다. 상영관은 이번에도 전북대학교.




라두 주데 감독은 이 영화를 전부 아이폰으로 찍었다고 한다. 배경은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도시. 헝가리 출신의 법정 집행관인 오르솔랴는 건물 지하 보일러실에서 사는 노숙자를 강제로 퇴거시키고자 헌병과 같이 현장을 찾는다. 이 건물은 곧 헐려서 고급 호텔이 세워질 예정이다. 오르솔랴는 이 노숙인이 겨울에 쫓겨나지 않도록 집행을 최대한 미루었던 것이다. 노숙자는 짐을 정리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바깥에서 커피를 마시고 20분 뒤에 보일러실을 찾았던 헌병과 오르솔랴는 충격적인 모습을 접한다...

더 이상 상세한 이야기를 쓰면 이른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영화의 배경은 현대이지만, 트란실바니아를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을 미리 이해하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영화를 보았던 이틀 전까지 나는 루마니아라는 나라 이름은 '로마인의 후예가 사는 땅'을 의미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세계사와 지리학에 문외한인 나는 '로마인'이라고 하면 고대 로마제국에 살았던 사람의 후예, 즉 현재의 이탈리아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글 자막에서도 '로마인'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와서 당시에는 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실은 '루마니아 국적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었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영어권에서 Romanian이라고 말하면 현재 존재하는 나라인 루마니아 사람이라는 의미가 잘 전달된다고 한다. 고대 로마 제국의 사람은 Roman이라고 부른다. 즉, 아마도 영어로 제공된 대본에서는 분명히 Romanian이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는 현대 루마니아 공화국의 국민 또는 출신자를 의미한다. '로마인'이라고 번역을 해 놓으면 나처럼 혼동을 하게 될 것이다.

오르솔랴가 충격을 벗어나는 과정이 영화의 중반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친구와 만나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모친과 만나서 다투기도 하고, 음주 및 뒤이은 약간의 일탈...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아주 심각하게 끝나지는 않고 차츰 일상을 되찾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민족간 갈등을 해결한다거나, 국가 권력 또는 자본에 맞서서 소외된 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게 된다거나 하는 끄런 뻔한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코메디 영화로 분류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장르에서 삶이 지속되는 이야기는 모두 코메디로 분류되는 관습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음 주에는 출장을 위해 전주를 또 방문해야 된다. 그러면 올해 네번째 방문이 된다.


2025년 5월 8일 업데이트

2025년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동영상)이 다운로드 가능한 상태라서 내 블로그에도 기록을 위해 올려 본다. 출처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