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9일 일요일

강원도로 떠난 폭우 속의 여름 휴가 - 참소리 박물관에 바란다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계속 내리고 있다. 일년 강수량의 절반 정도가  하루 이틀 사이에 내릴 정도이니 위키피디아에 2020년 한반도 집중호우라는 새 페이지가 생기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지난 주에는 다가올 휴가를 기다리면서 비가 좀 잦아들지 않겠냐는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여름 휴가 날짜도 이미 확정을 해 놓았고 한참 전에 예약한 숙소를 위약금 없이 취소하거나 변경할 방법도 없어서 지난 화요일(8/4),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대전에서 속초까지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운전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비를 만난 것은 평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고속도로를 빨리 빠져나와 인제를 거쳐서 속초로 향하는 여정은 정말 험하고도 위험했다.

둘째 날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설악산 등산로는 신흥사까지만 허락되었고 권금성 케이블카도  운행을 하지 않았다. 신흥사 옆을 흐르는 '쌍천'을 무섭도록 물이 불어서 굉음을 내고 있었다.




점심 식사는 아바이 마을에서.

오후에는 낙산사를 찾았다. 지난 2월이었던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양양 해변가를 들렀다 설악산 입구에서 1박을 하고 그 다음날 낙산사를 갔었다. 대전에서 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하는 곳에 있는 먼 절을 1년에 벌써 두 차례나 오다니 운전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마지막 날에는 강릉 안목해변의 커피거리를 찾았다. 잠시 비가 그쳐서 사진을 남기기 좋았지만 구름은 하루 종일 걷히질 않았다. 해변에 들어갈 사람에 대해서는 체온 점검을 철저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심해서 해수욕은 금지된 상태였다. 점심을 먹고 들른 카페는 연탄빵이 유명하다는 KIKRUS Coffee. 맛집 검색은 아이들에게 시키면 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오징어 먹물을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연탄빵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아마 2006년쯤에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과 함께 처음 가서 좋은 기억을 남겼었다.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여기를 다시 들른 것은 아들이 너무나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통로로 연결된 참소리 축음기·에디슨 과학 박물관 두 개 건물만 있었지만, 이번에 방문하니 '손성목 영화,라디오, TV 박물관'이 큰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이 건물은 2014년 8월에 지어졌다 한다.


손성목 관장의 60년 수집 인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박물관의 가치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엄청난 양의 컬렉션 사이를 거닐면서도 놀라움과 지적 충족감보다는 박물관의 전시와 운영 영 방법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하는 생각이 너무나 넘쳐나서 머리 속이 꽉 차고 말았다. 그냥 생각 나는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는 아마 백 쪽이 넘는 제안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나의 생각을 공식적으로 박물관에 전달할 방법이 없으니 내 블로그에 혼잣말을 하는 수밖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방문객이 더 있을 것이고, 박물관 측에서도 이미 운영에 관한 컨설팅을 받고도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선 구글 검색에서 찾은 글 하나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서울 아트 가이드] 과연 내가 이 박물관을 만들었습니까? 참소리축음기박물관장, 손성목










참소리 박물관에 바라는 글

여기서 '참소리 박물관'이라 함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93에 위치한 3개의 박물관을 통틀어서 일컫는 것입니다. 3개 박물관의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이렇게 적당히  뭉뚱그려 불러야 함을 양해해 주십시오. 참소리 박물관이 소장한 엄청난 컬렉션이 더욱 가치를 발하려면 현재와 같은 전시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감히 부족한 의견을 내어 놓습니다. 단지 가벼운 마음으로 강릉에 놀러온 방문객이 아이들 손을 잡고 한번 들렀다 가는 곳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합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너무나 많은 전시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전시물이 너무 많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이 전시 공간인지, 수장고 자체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영화... 박물관'은 이것이 영화사 박물관인지, 영화 기술 박물관인지, 영화 포스터 박물관인지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손성목 관장께서 평생을 두고 모은 엄청난 양의 수집품에 압도되기에는 좋으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직 참소리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핵심 전시품으로 상설 전시관을 꾸미고, 별도의 기획 전시실에는 시기에 따라 적절히 주제를 선정하여 기획 의도에 맞는 전시물을 골라서 놓아야 합니다. 도슨트가 없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자료도 비치하여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관람하려는 방문객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문성을 갖춘 학예사(큐레이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에디슨에 대한 관장님의 애정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 일생의 여러 측면 그 자체만으로도 풍부한 스토리가 됩니다. 에디슨과 그 아들들의 갈등이라든가, 전력 사업을 높고 벌인 테슬라와의 다툼 등 말이지요([한국전기연구원] 에디슨 대 테슬라, 끝나지 않은 전류 전쟁). 이런 것들을 가감 없이 다루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작동 가능한 전시물의 시연은 대단히 매력적인 일입니다.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기면서 오디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요즘 다시 LP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합니다. 참소리 박물관에 가면 정말로 작동되는 유성기나 뮤직박스를 볼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방송인 황인용 씨의 카메라타 뮤직 스페이스에서 지금도 소리를 내는 빈티지 오디오 못지 않은, 혹은 그 이상의 물건들이 참소리 박물관에 있다고 믿습니다. 오래된 라디오, 오디오, 카메라 애호가들을 수시로 모일 수 있게 만들 대단한 물건들을 모두 갖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카메라나 오디오 동호인들이 참소리 박물관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휴가철이 되어야 큰 맘을 먹고 먼 길을 와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이러한 점에서는 불리하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일반 관람객과 차별화된 회원 또는 매니아층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연간 회원제도와 같은 방법을 써서 입장료를 할인해 주고, 소장품을 유리벽 너머가 아니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현재 일하는 적은 수의 직원만으로 이러한 활동까지 감당하기 어렵다면, 관련 분야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열의도 있는 일반인을 자원봉사자로 위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자원봉사 도슨트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사는 곳이 강릉이라면 저는 마다하지 않고 이 일을 하겠습니다. 참소리 박물관에 얼마나 많은 영사기가 있습니까? 상태가 좋은 진짜 영화용 필름을 구해서 단 5분만이라도 예전의 방법으로 돌아가는 영화를 볼 수 있다면 - 컴퓨터 모니터가 아니라 - 얼마나 많은 관람객들이 열광할까요?
소장품을 이용한 카페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현재 영화 박물관 1층에서 커피 판매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시 공간의 일부인지 휴게 공간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분위기 좋고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어디든 갑니다. 참소리 박물관은 바로 옆에 바다와 경포 호수라는 기가 막힌 풍광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박물관 내부에 위치한 카페가 될 수도 있고, 입구에 별도로 위치해서 전시물을 보려는 관람객을 카페 이용객과 분리하게 해도 좋습니다. 기왕이면 경포호가 보이면 더욱 좋겠지요. 아이들은 전시물을 보게 하고, 다리가 아픈 부모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카페를 채울 고풍스런 물건들은 박물관 소장품에서 적절히 고르면 될 것입니다.
소장품 중에서는 과학교재나 기념품 등 다양한 제품으로 개발할 만한 것들도 많아 보입니다.
중복되는 소장품을 과감히 처분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로 인해서 참소리 박물관과 인연을 맺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박물관의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 아닐까요?
전시품 중에서 실제로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술로 이어진 것은 무엇인지, 영화나 음반 산업에서 에디슨이 한 핵심적인 기여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짚어서 전달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홈페이지(http://www.edison.kr/)를 시급히 정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트위터나 유튜브를 통해서 진귀한 소장품을 소개하고 관장님의 열정에 찬 모습이 더 널리 알려져서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그들의 인생이 바뀐다면 그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습니까?
이 글은 2020년 8월 9일에 처음 작성·게시되었지만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가 될 것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민간 박물관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행운이 깃드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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