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세대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 방법의 하나인 MinION 기술과 관련한 논문을 검색하다가 bioRxiv.org라는 매우 생소한 시스템을 발견하였다. 많은 학술지가 이제는 온라인으로만 간행되는 시대라서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에서 주관하는 bioRxiv("bio-archive"라고 발음)도 그런 것의 일종이라 볼 수도 있겠다. 구글 검색 결과에서는 "The preprint server for biology"라고 소개가 되어있다.
프리프린트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학술논문 출간 시스템에서는 하나의 논문이 정식으로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투고 후 지루한 peer review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리뷰를 거치지 않은 원고(프리프린트)를 공개하는 시스템이 1991년 이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arXiv.org는 물리학과 수학, 천문학과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일찌기 자리를 잡았다. 프리프린트로 먼저 연구 성과를 연구자 커뮤니티에 공개한 뒤, 의견을 수렴하여 다른 정식 저널에 출판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 많다.
2014년도 PLoS Biology에 The Case for Open Preprints in Biology(PLoS Biol 11(5): e1001563. doi:10.1371/journal.pbio.1001563)라는 재미난 논문이 실렸기에 그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생명과학 분야의 문화에서는 프리프린트가 아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1)프리프린트를 통해 아이디어를 쉽게 빼앗긴다는 인식, 그리고 (2) 동일한 내용의 논문을 복수로 출판해서는 안된다는 소위 "Ingelfinger rule"의 준수 문제 때문이다. 프리프린트를 옹호하는 측은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 첫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아이디어를 도둑맞는 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먼저 공개함으로서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프리프린트 시스템이 peer review를 거치는 정식 학술논문 출간 체계가 아니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저널들은 논문의 정식 출간 전에 프리프린트가 먼저 선보이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어떤 저널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리프린트를 먼저 내보내려면 궁극적인 타겟으로 삼는 저널의 프리프린터 허용 정책을 먼저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다.
실제 내가 검색한 사례를 보자. 환자의 혈장 샘플로부터 바이러스 감염체의 게놈을 MinION 기술로 실시간 검출한 논문(Rapid metagenomic identification of viral pathogens in clinical samples by real-time nanopore sequencing analysis)이다. 이것은 bioRxive.org에 먼저 실렸고, 동일한 내용이 Genome Medicine에 실렸다. bioRxiv 사이트에서는 다른 저널에 정식 출판되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논문의 수(임팩트 팩터와 저자 자격을 복잡한 공식에 대입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피인용수까지 산입하려 한다!)가 연구자의 평가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프리프린트를 악용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을 것 같다. 즉 bioRxiv에 한번 내고, 내용은 거의 같지만 제목만 살짝 바꾸어서 정식 학술지에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단순히 논문 성과의 수를 불기에는 좋다. 물론 bioRxiv는 SCI(E) 등과는 무관하므로 비 SCI(E) 학술지에 출간한 논문은 성과로 치지 않는 평가 시스템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프리프린트 서버(저널이라고 하기에는 영 어색하므로 서버라고 하겠다)를 잘 모르는 허름한 학교나 연구소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연구성과를 부풀리는데 한두번 악용을 할 수는 있겠다.
연구 기술이 워낙 발전하고 있어서 짧은 시간에도 대량의 데이터가 쏟아져나오는 세상이다. 이를 잘 정제하고 가공하여 리뷰를 통과한 소량의 논문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가? 당장 보기에는 어설퍼 보일지 모르나 나중에 재발견되는 논문이나 데이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를 적시에 공개하기 위한 프리프린트 시스템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때 Genome Announcements가 논문이냐는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다. 새 기술, 새 시대는 논문 출간에 대해서도 혁신적인 사고를 필요로한다. 시대적 변화가 요구하는 연구성과 발표 시스템에 대해서 이제는 생각해 볼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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