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른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슈(임금피크제 강행,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 KF-X 사업 등)가 차고 넘치는데 일개 소시민이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즐기는 취미에나 몰두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 시름을 잊는 길이다.
[사족: 위에 KF-X 사업과 관련하여 걸어 놓은 링크에는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글이 실려있다. '탐색 개발'을 국과연(국방과학연구소)이 한 것이 왜 잘못된 시작이었는가에 대한 논리가 눈길을 끈다.]
서울 출장 길에 볼일을 마치고 몇 가지 부품을 사러 아세아전자상가를 방문하였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방문하는 바람에 빼먹고 그냥 돌아온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프엠>에서 볼륨 포텐셔미터(가변저항)를 사기로 해 놓고는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70~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남자 중 납땜 한 번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바로 이 동네가 각종 부품과 키트, 자작 정보의 메카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열망이 매우 높았지만, 실제로 공작 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30대가 넘어서면서 연구실에서 장비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납땜질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개인적인 취미로서 간단한 오디오를 만드느라 뒤늦은 나이에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나 할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10대 시절에 돌아다닌 미로같은 부품점 골목은 바로 아세아전자상가 1층이었고, 30대에 부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해(대량이라 해 봐야 저항 커패시터 등 한 봉지 단위지만) 돌아다닌 곳은 아세아전자상가 2층이 아닌가 싶다.
어제 들른 곳은 아세아전자상가 1층이었다. 여기에서 구입한 것은 볼륨 노브와 삼미 스피커 유닛(CRW-165B50AT) 정도였고, 커넥터류는 세운상가 동편을 따라 난 골목에 즐비한 점포에서 구입하였다. 아세아전자상가 1층은 예전 기억과 마찬가지로 너무 좁고, 어둡고, 적당히 지저분(?)하다. 원래 목표로 한 가게에서는 사장님이 계시지 않아서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았다. 누가 오기를 기다리며 볼륨을 좀 골라볼까 했는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부품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커넥터나 기타 지원부품은 먼지가 좀 묻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볼륨은 좀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결국 발길을 돌려 다른 곳에서 구입을 하고 말았다. 문만 열어놓고 아무도 가게를 지키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았다. 대략 쇼핑을 마치고 바로 옆의 예지동 카메라 골목을 가 보았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종로 4가의 세운스퀘어로 옮겼다는 안내문을 붙인 곳도 있었다. 필름 사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구형 카메라를 유통하던 많은 점포들이 쇠락하는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종종 다니던 카메라점 태양사(10년 전 방문하여 찍은 사진은 여기에 있다. 나의 젊은 모습도 눈에 뜨인다.)는 굳게 셔터를 내리고 있다. 혹시나 하여 일부러 세운스퀘어를 가 보았다. 필름 카메라 수리점으로 꽤 알려진 보고사는 활발히 영업 중이었지만, 태양사는 보이지 않았다.
산업 구조가 바뀌고 소비자의 취향도 바뀌니 과거 호황을 누리던 상가가 한산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운상가에서 용산으로, 또 테크노마트 등으로 좀 더 현대적인 시장으로 계속 이동은 이루어지지만, 찾는 사람들이 그에 따라서 늘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아세아전자상가 2층을 올라가보지 않은 것이 아쉽다. 2층에서 구해야 할 품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울을 방문한 김에 취미 제작자로서 장사동 전자부품상가의 다양한 모습을 눈에 담아오지 못하다니. 내가 사는 대전시는 자작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그렇게 유리한 곳은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지역 업체를 좀 더 이용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주말에는 오정동이나 대화동을 좀 더 찾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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