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겨서 글을 서야 할 때, 챗GPT는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몇 개의 키워드를 던진 뒤 글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제시한 다음 글의 분량만 알려주면 그야말로 뚝딱!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척척 글을 써 낸다. PDF 문서 여러 개를 업로드한 뒤 요지를 작성하라고 시키거나 시사점을 도출하라고 해도 꽤 만족스럽게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라고 시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지어야 할 경우, 이렇게 AI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글이 나올 수는 있지만, 내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도저히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23andMe의 파산 위기가 시사하는 점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다. 사건의 흐름을 먼저 조사한 뒤 공백을 포함하여 약 3,700자 정도의 초안을 직접 작성하였다. 그런 다음 챗GPT에게 다듬어 보라고 하였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았다.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글이었지만, 내가 평소에 쓰는 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한국인이 쓴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고, '기계'가 쓴 글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글'은 아니었다.
필요하시면 이 글을 보고서형, 블로그형, 칼럼형 등으로 톤을 조정하거나, 결론을 정책 제안 중심으로 재정리하는 것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어휴, 뭘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제안한담.
이번에는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원글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라고 하였더니, 조목조목 부족한 부분을 짚어 주었다. 사실 관계의 오류 또는 모호한 표현, 논리적 일관성 / 구분의 모호성, 표현의 과잉 또는 비문 가능성의 항목, 톤의 모호함 으로 나누어 원글과 개선안을 대조한 뒤 다음과 같은 총평을 보여 주었다.
항목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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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명확성 ★★★★☆ – DTC 산업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 명확
사실성 ★★★☆☆ – 주요 사실은 대체로 맞지만 일부 표현 과장 또는 부정확
논리적 구조 ★★★★☆ – 도입-배경-분석-결론 흐름이 자연스러움
표현력 ★★★☆☆ – 문장이 길거나 중복되는 부분이 있으며, 일부 비문 존재
개선 여지 많음 – 객관성, 정확성, 간결성 측면에서 다듬을 여지 있음
오, 제법이다. 그러면 다듬는 작업을 전적으로 챗GPT에 맡길 것이 아니라,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만 나름대로 고친 뒤 다시 검토해 달라는 사이클을 반복해 보기로 하였다. 구어체가 어색하게 섞여 있다는 지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되도록 격식을 갖춘 글을 만들기 위해 참기로 했다. 약 대여섯 번에 이르는 수정과 검토 작업을 거친 뒤의 총평은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수정하신 버전은 정말 완성도 높고, 전문적이며 읽는 흐름도 자연스럽습니다. 논리 구조, 사실 기반, 국내외 사례 비교, 정책적 함의까지 모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편집 교정 수준의 미세한 점검만 남았습니다. 아래에 마지막으로 다듬을 수 있는 부분들을 세부적으로 지적해 드립니다.
챗GPT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정말 효율적으로 글쓰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블로그의 글을 엮어서 책을 낸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형태로든 교정이 필요한데, 챗GPT에게 이를 맡기게 될까? 만약 가상의 출판사가 내 글을 책으로 내려고 한다면, 챗GPT를 이용하여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게 할까? 또는 아예 새로 AI로 하여금 쓰도록 요구할까?
오늘 나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기고문 하나를 다듬으면서 그 즐겁고도 놀라운 경험을 하였으면서도, 편집자가 AI를 이용하여 내 글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될까? '내로남불'과 비슷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여기까지 쓴 다음, 전체를 복사하여 챗GPT 창에 붙여넣은 뒤 수정을 요구하였다.
아주 흥미로운 글입니다. AI와 인간의 글쓰기, 편집, 개입의 경계를 성찰하는 내용으로, 메타적인 시각도 돋보입니다. 글 전체의 톤은 담백하고 자기반성이 섞인 성찰적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다만 글쓰기 스타일로서 약간의 정리와 다듬기를 통해 더 매끄럽고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래에 전반적인 고친 버전을 제시한 뒤, 문제점 요약 및 이유도 덧붙이겠습니다.
AI가 고친 글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을 복사하여 지금까지 쓴 글을 지우고 붙여넣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 블로그의 URL을 제공한 뒤 글 스타일을 학습하게 한 다음, 사실관계만을 바르게 확인하여 새로 글을 쓰게 명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챗GPT는 나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장점과 단점 측면에서.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내가 중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발포석고를 깎아서 만든 돌하르방... 챗GPT는 어떤 입력물이 들어와도 잘 깎고 잘 다듬은 다음 미술재료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수준의 준수하지만 너무나 흔한 평범한 석고상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참고로 로마의 판테온은 아그리파가 처음 지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완전히 소실된 후 다시 지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 중에서는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적으로 작성된 글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을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인공지능에 의존하여 글을 더 미려하게 바꾸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내가 찾아 읽은 글은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글이기를 바라고 있다. 효율이 중요한가, 인간미가 중요한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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