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로드용 자전거의 규격을 줄줄 외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웬만한 자전거 정비용 공구를 다 갖추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도싸, 발바리, 파크툴 등의 웹사이트를 들락거렸다. 2006년 미국 보스턴에 장기 출장을 갔을 때에는 Harris Cyclery에 꼭 가 보고 싶었으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자전거 기술 정보에 관련하여 세계 최고의 웹사이트라고 할 수 있는 Sheldon Brown's Bicycle Technical Info도 오늘 오랜만에 들러 보았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었었나! 다시 한번 셸든 브라운(1944-2008, 위키백과, 생전에 유지했던 개인 이야기 링크)을 추모한다. 셸든 브라운은 Harris Cyclery의 웹마스터이자 'general Tech Guru'였다.
70년 동안 가족 소유 기업이었던 Harris Cyclery는 아쉽게도 2021년 6월 13일 폐업하였다(관련 글 링크, 이에 관한 reddit의 언급 링크). 사람들의 관심이 바뀌고, 자전거를 소유하는 것보다 대여해서 쓰는 일이 더 많아지니(특히 두 바퀴를 지닌 전기 충전식의 탈것) 일반 소비자 대상의 부품 판매나 서비스로는 지속적인 경영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은 웹사이트가 유지되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자가 정비와 개조에 몰두하던 시절은 벌써 약 20년 전의 과거가 되고 말았으며, 다른 취미가 내 정신세계 깊숙하게 자리잡으면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졌다.
블로그에 가장 마지막으로 올린 자전거 관련 사진과 글 '뻘짓의 지평을 넓혀야 인생이 풍부해진다 - 자전거 이야기'(2022년)을 소개한다.
오늘 문득 자전거 이야기를 써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침에 출근버스를 기다리다가 편의점 앞에서 접한 어느 국산 브랜드의 700C 하이브리드 자전거 때문이었다.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어떤 하이브리드 자전거. 지금은 알톤으로 넘어간 코렉스 브랜드의 R21로서 단종된 모델이다. |
내 자전거는 알루미늄 프레임이라서 전통적인 로드 자전거보다 튜브 직경이 크다. 알루미늄을 쓴 프레임의 경우 30 mm를 넘는 것이 많다(Bike Frame Design - the influence of tubing diameter and wall thickness). 대충 top tube의 직경을 측정해 보니 32.4 mm(1.28인치)에 해당하였다.
고전적인 로드 자전거는 직경 28.6 mm(1 1.8인치)의 강철(고급품이라면 크로몰리라고도 불리는 크롬-몰리브덴 스틸) 튜브를 써서 프레임을 구성하되 top tube는 수평으로 뽑아낸다. 저가품 자전거는 경우 하이텐(high tensile steel)을 쓰는데 강도가 높지 않아서 가느다란 튜브로 뽑아내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위 예전에 '철티비'로 불리던 자전거가 이런 재료를 쓴다.
가느다란 탑튜브가 수평으로 지나가는 고전적인 로드 자전거는 보기에도 아주 멋지다. 드롭바, 림 브레이크, 다운튜브 시프터... 이런 것이 고전적인 로드 자전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평 탑튜브는 키가 작은 사람이 제 몸에 맞지 않는 사이즈의 프레임을 택했을 때 상당한 불편을 초래한다... 유럽 출장을 갔을 때, 큰 키의 서양인들이 엄청나게 큰 프레임 사이즈의 자전거를 타고 일상적인 복장으로 도로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자전거 문화와는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출처: Reddit |
내 자전거에 이런 전통적인 밴드 고정형 downtube shifter를 달고 싶다는 욕망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지만 실은 다운튜브 직경이 너무 커서 불가능하다.
1세대 시마노 Dura-Ace 다운튜브 시프터(출처 링크) |
그래서인지 28.6 mm 튜브 직경의 자전거를 보면 무척 반갑다. MTB 스타일의 유행이 지나가고, 픽시나 로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나서 그런지 주변을 돌아다니는 자전거의 형태가 좀더 다양해진 것 같다. 만약 이런 자전거가 하나 있다면, 구식 부품들을 하나씩 달아서 개조를 할 수도 있으리라.
지금 나의 자전거는 아파트 계단 난간에 묶인 상태로 몇 년이 지났다. 요즘은 방화문을 닫아놓고 지내고 있으니 자전거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도 잘 되지 않는다. 튜브 바람도 다 빠지고 아마 지금쯤 림에 눌려서 타이어도 변형이 되었을 것이다. 중고로 구한 부품으로 교체한다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었는지 모른다. 페달 클립(클릿 + 전용 슈즈가 아님)을 달아서 쓴 일도 있었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바람을 가르고 싶다. 요즘 관심을 갖는 달리기나 자작 진공관 앰프 및 밴드 연습 수준으로 다시 되돌리기는 어렵겠지만. 그러려면 정비를 해야 할 것도 많다.
참고 - 자전거 브레이크 레버의 위치
내 자전거는 왼쪽 브레이크 레버가 뒷바퀴, 오른쪽 브레이크 레버가 앞바퀴를 제동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행정안전부의 고시로 인해 이것이 바뀌었다. 요즘 생산되는 자전거는 오른쪽 브레이크 레버가 뒷바퀴를 제동하게 만들어진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왼손으로는 수신호를 하기 위함이다. 만약 한 손으로만 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대상이 하필 앞바퀴라면? 뒷바퀴가 들리면서 앞으로 홀라당 넘어가는 사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