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9일 일요일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던데, 악기용 케이블은...

밴드 멤버들이 모여서 합주 연습을 시작하려고 분주하게 장비를 세팅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악기(베이스 기타)에서 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파워드믹서의 8개 채널 스트립 중 잘 써 왔던 어느 하나가 갑자기 망가질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테스트를 해 보니 악기와 DI box를 연결하는 6.35 mm TS 케이블이 문제인 것 같았다. 일단 다른 멤버의 여분 케이블을 얻어서 연습을 마쳤다.

문제의 케이블은 오래전부터 쓰던 기타 케이블의 커넥터를 직접 납땜하여 교체한 것이었다. 집에 케이블을 들고 와서 커넥터를 돌려서 열어보니 신호선쪽이 끊어져 있었다.

단선이 일어난 신호선 끄트머리를 관찰해 보면 커넥터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단선이 일어난 뒤 알지 못한 이유로 수축이 일어난 것인지, 또는 내가 서툴게 납땜을 하여 신호선에 장력이 가해진 상태로 마무리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이 케이블은 내가 처음으로 전기기타를 샀을 때부터 쓰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건 80년대 후반의 일이니 아마 케이블 내부의 심선이 많이 '썩은' 상태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납땜을 하기 위해 피복을 벗겨 냈더니 그라운드선의 색깔이 좋지 않았다. 선 끝을 조금 잘라내면 조금 더 온전한 선이 나올까 싶어서 몇 번을 더 끊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심선은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나의 경험으로는 구리선이 검게 변색되면 납땜이 잘 되지 않는다. 솔더링 페이스트의 힘을 빌려볼까? 그러나 어디에 보관해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충 납땜하여 쓰기로 했다.

과연 현명한 수리였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음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프로 음악가라면 아마 진즉에 내다 버렸을 것이다. 몇 개 되지 않는 케이블이 사라지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지 수시로 세어보는 소심한 방구석 음악인이자 DIYer인은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행방이 묘연한 6.35 mm TS 케이블 하나가 어디로 갔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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