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7일 일요일

독서 기록: 차가운 계산기('I spend, therefore I am')

지은이: 필립 로스코(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부 부교수)
옮긴이: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 소개된 글


책의 서론을 읽으면서 묘한 흥분감과 함께 이렇게 몰입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세상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심지어 누구나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는 목숨에 대해서도? 만약 목숨에 가격표를 붙일 수 있다면 과연 얼마라고 써야 합당할까? 그 사람이 평생 벌어들이는 '급여'에 약간을 덧붙인 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 우리가 행동하는 모든 것, 심지어 감정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 의식까지도 가격표를 붙여서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하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서 행동하면 세상은 정말 합리적으로 돌아갈까?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비용-편익 분석에 따라서 행동한 것일까?

경제학의 시작은 과학이었는지도 모른다. 원시적인 공동체 사회에서 거래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화폐와 시장이 생기고, 재화에 대한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으로서 옮긴이의 견해는 그러하지 않다). 그러다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렇게 바꾸면 모두가 번영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바뀌고 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공학을 넘어서 일종의 '규범'과 같은 것처럼 변하고 말았다.
경제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근대적 의미의 <과학>을 지향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어느 시점에서 서유럽 문명에서 형성된 <공리주의적 인간관>, 즉 인간의 본성을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파악하는 형이상학적·도덕적 관점이 실증 과학으로 변장하여 마치 자연과학과 같은 의미에서의 <과학>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이 경제학 자체를 비판한 것인지 혹은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인지 명료하게 구별하기가 힘들 정도로 나의 지식 수준은 일천하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쏟아져 나오는 경제경영서를 나름대로 솔깃하게 귀를 기울이며 읽던 나에게 이 책은 큰 충격을 주었다. 결론 부분에서 저자의 글 일부를 인용해 본다.
경제학은 이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슨 전문적 지식에 대한 정답 같은 것을 댈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학의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 여러가지의 선택을 이루어야 한다.
책장을 넘기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대중 저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번역가의 능력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은 뒤에 독후감을 쓰려고 표지를 살펴보니 홍기빈이라는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아... 그가 번역한 글을 이제 처음 읽어보는구나. 내가 하는 홍기빈은 정치경제학자이자 저술가이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몽양'으로 시작한다. 현실적인 정치경제학적 문제들에 대한 체계적 비판과 대안 제시라는 그의 관심 분야와도 잘 어울리는 주소이다. 물론 이 '몽양'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다 아는 유명한 사람의 아호를 딴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다.

나는 홍기빈과 고등학생 시절 일주일 동안의 인연이 있었다. 여러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모인 수련회에서 같은 분임에 속했었고 홍기빈은 분임장이어서 장기자랑을 리딩해야 했다. 학생회 '간부'들이 교련복을 입고 모여서 합숙을 하는, 80년대 중반이라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런 딱딱한 수련회였다. 교육 내용은 충효정신을 강조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미래 지도자를 길러내기 위한 그런 것이 주였을 것이다. 밤 늦은 시간의 교육에서 조명을 낮추고 부모님의 은혜를 떠올리게 하는 마이크 소리에 감성을 자극받다가 갑자기 단상에 설치된 태극기에 불이 확 켜지는...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러한 감각적인 시청각적 연출에 10대의 나는 조금은 감동을 받았었다. 아마 지금의 보수층이 이 교육에 참관했더라면 무릎을 탁 치면서 '아, 그렇지. 이런 교육이 정말 필요해! 어떻게 지키고 만들어온 대한민국인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서울교육원>이라는 이름의 그 교육원은 경복궁 근처 인왕산이 가까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교육 동기생들에게 나누어준 앨범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지만 홍기빈이라는 이름만은 뚜렷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kids 게시판(으와, 추억 '돋는다')에서 그의 글을 발견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보았었다. 아마도 10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이메일을 한번 보냈지만 답장은 받은 기억은 없다. 그가 나를 기억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어지러운 시대에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학자로서 사회 참여에 소극적인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그 교육원의 프로그램에는 음악 시간도 있었다. 교육을 진행한 강사 중에서 유일하게 성함을 기억하는 분은 작곡가 신귀복 선생님이다. 가곡 '얼굴'을 작곡한 바로 그 분이시다(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경제학 비판서 독후감을 쓰다가 주제가 널뛰기를 하여 kids BBS까지 이르고 말았다. 나무위키 덕분에 이제 고인이 된 스테어, 픽터, 시만두라는 전설적인 아이디를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키즈의 열혈 사용자는 아니어서 특정 게시판이나 회원의 글을 탐독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아라(ara) 비비에스를 열심히 쓰던 사람이었다. 첫 중고 자동차 거래(1995년)도 아라의 vehicle 게시판을 통한 것이었으니까. Dima라는  ID를 쓰던 전정열 선배에게 프라이드 EF를 구입했었다.

내 게시글에 '좋아요(+1)'를 눌러주는 거의 유일한 친구 신정식(thanks!)은 아마 키즈와 아라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신정식은 인터넷(특히 이메일의 초기 서비스)에서 한글의 손쉬운 활용을 위하여 지대한 공헌을 한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이런 이들과 인연이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영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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