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동안 과학관에서 모두 세차례의 진로체험학습 강연을 하였다. 생명과학분야 전문가로서 나에게 주어진 강연 시간은 30분이었고, 간단한 실험실습이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다. 참여대상은 모두 중학생이었다. 나는 강연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겸임교원으로서 가끔 협동 강의에 참여하지만 그 빈도가 높지 않으니 교수법이 획기적으로 늘 수는 없다. 그래도 이런 기회를 갖는 것을 매우 즐기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꽤 애을 쓴다.
참여자는 25명 정도. 30분의 강연 시간 동안 집중해서 듣는 학생은 서너명이 되지 않았다! 내가 교수법이 부족한 것일까? 딱딱한 내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내용도 적절히 섞어서 흥미를 유발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면 강연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겠는가? 차라리 자기들끼리 떠들기라도 하면 좋았을 것이다. 그저 푹 엎어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에게 요즘 교실은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질문을 하거나, 하다못해 지난시간 어디까지 배웠냐고 물어도 반응이 없다고 한다. 왜 이렇게 아이들이 활력이 없을까? 이 아이들이 사교육장(학원)에서도 과연 이럴까?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오히려 학원 숙제를 한다고 들었다. 모두가 선행학습에 몰두하고 있으니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새로운 내용을 전달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고 만다. 오히려 "너희들 학원에서 다 배웠지?", "글쎄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 한글을 모르는 애가 있어" 이것이 현장 교사들의 솔직한 토로이다. 부모는 불안한 마음에 자식 하나 잘되라고 아무리 가계가 어려워도 사교육비는 줄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문제풀이 교육에만 매달리고 공교육을 책임지는 선생님들마저 의욕이 없어진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운다는 기대감과 즐거움은 모든 곳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왜 아이들은 학원에서 졸고 않을까. 부모가 그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럼 학교는? 의무교육이라 나(학생) 또는 부모님이 돈을 내지 않아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을 악착같이 챙기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라. 공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결국 내가 낸 세금이 아닌가.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서 혜택이 돌아오면 내가 납세자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가 합당한 서비스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 경제는 좀처럼 나아지질 않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연구개발비 증가에도 불구하고 성장동력이 될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연구자들은 끊임없는 질책을 받는다. 매년 10월이면 이웃 이웃은 과학기술분야의 노벨상을 항상 배출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인은 죄인이 되는 심정이다. 중학교 입학 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과 영어를 여러차례 선행학습하고 진학하고 있으니,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이 사회의 주역이 되면 당연히 나라의 수준이 지금보다 월등히 나아져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호기심을 품고 학습하는 것을 즐기며 협력과 토론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자세를 가진 아이들은 점점 줄어든다. 부모(더욱 솔직하게는 조부모 세대)가 마련한 경제적 부유함의 토대라는 식탁에 그저 빈 그릇과 수저만 들고 와서 앉게 우리가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설거지조차 직접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과연 전세계를 상대로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에 어떻게 이 사회 체제를 건전하고 영속성있게 이끌어나갈지 걱정이 된다.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교육이다. 정말 과격한 생각이 되겠지만 선행학습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