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3일 월요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들으며

실제 러시아 사람들은 차이콥스키가 아니라 치콥스키에 가깝게 발음한다고 한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은 내가 고등학교때 방학 숙제로 들으면서 클래식 음악에 가까와지게 된 계기가 된 곡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악장이 어느 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체를 다 좋아하고,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어제 저녁 KBS 클래식 FM에서 대구 교향악단의 최근 공연 실황 녹화를 들었다. 3악장이 끝날 때, 박수가 터져나오고 말았다. 워낙 흥겹고 박력이 넘치는 악장이라서 관객들이 전곡이 완전히 끝나는 것으로 착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발레나 오페라에서는 극적인 장면 혹은 아리아 직후 박수가 터져나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교향곡이나 모음곡 연주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은 <명연주 명음반>을 틀어놓고 일을 하는 중이다. 어느 악단의 연주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비창>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어져 나오는 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이다. 아이작 스턴의 꽤 오래된 실황 앨범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용 Hi-Fi 오디오가 추구해야 할 것은 실제 공연장과 같은 소리를 내 주는 것으로 말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적으로만 본다면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의 음질을 따를 방법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공연장의 의미는 음악적(음질?)으로 완벽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포함한 '현장의 분위기'이다. 약간의 방해요소와 기술적 불완전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최근에 다녀온 2회의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는 끊임없는 관객들의 기침소리로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다 해도 공연은 공연으로서의 즐거움이 있다. 공연 시작하기 직전, 객석은 아직 소음으로 부산하고 자리를 잡은 오케스트라의 주자들은 저마다 무대에 앉아서 막바지 개인 연습으로 불협화음을 내다가 드디어 악장 혹은 수석 연주자의 몸짓을 시작으로 조율을 한다. 그리고는 불이 꺼지고 무대 중앙으로 나오는 지휘자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바로 이런 분위기를 느끼러 공연장에 가는 것이지, 완벽한 <소리>를 듣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나에게는.

관객과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공연과 스튜디오 녹음, 어느 것이 더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대중성이 강한 음악이라면 공연의 의미가 매우 크겠지만, 클래식 음악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회가 있다면 전문 연주자에게 한번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공연을 좋아하세요, 녹음을 좋아하세요?"
"음악적으로 더욱 완벽한 연주는 공연인가요, 혹은 녹음시 스튜디오에서인가요?"

손수 만든 스피커 시스템이 무미건조한 사무실 근무환경에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진공관 앰프에 대한 관심이 스피커쪽으로 많이 옮겨갔다. 국내에서도 대규모는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스피커를 만드는 업체가 생각보다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업체가 전부 소출력 진공관 싱글앰프에 적합한 풀레인지 스피커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파수 특성이 비교적 평탄한 4인치급 유닛을 고르게 되면 고음 스피커를 쓰지 않고도 그런대로 음악 감상에 지장이 없을 수준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스피커 드라이버(유닛)을 제조하는 일과, 드라이버를 인클로우저에 넣고 크로스오버 튜닝을 하는 일은 또 별개의 기술력을 요하는 일이라는 것도. 그리고 더욱 심각하게는... 자작에는 분명한 한계점이 있다는 것까지.

새로 알게 된 것이 또 있다. 가정용 오디오에 들어가는 스피커보다 PA용 스피커 세계 시장이 더 크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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