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4일 토요일

최근 몇 달 동안의 오디오 방황기[6] - 튜너 이야기

기왕이면 거실에서도 FM 방송을 듣게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직거래를 통해 롯데 중고 튜너 LT-6000을 구입하였다. 거실에 있는 아이와 AWP-ZX7의 튜너가 구입 8년만에 모노로만 방송이 잡히는 현상이 벌어진 때문이었다. 서비스 센터에 가지고 가서 고치면 되겠지만 비용이 꽤 나올 것이 뻔하고 아이와 자체의 튜너 음질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차라리 2만원 선에 중고 튜너를 구해서 AUX 단자에 연결하여 듣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하였다.


이번에 구입한 중고 튜너는 고급품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내부를 열어보니 비교적 한산한 부품 배치를 보이고 있다. 타이머나 시계 기능은 없는 아주 기본적인 성능의 튜너이다. 한가지 독특한 점은 원하는 방송 주파수를 숫자로 입력하여 직접 선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구입한 것은 3일 전이다. 퇴근길에 구입을 해 오자마자 한가지 문제점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바로 방송을 기억시켜 놓아도 전원을 끄기만 하면 다 지워진다는 것이다. 주파수 직접 입력 기능이 유용하기는 해도,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방송국 메모리 백업용으로는 충전기, 동전형 리튬전지, 수퍼커패시터 등 다양한 소자가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튜너를 열고 해당되는 부품을 찾아보았다. 전면 패널부로 연결되는 리본 케이블 커넥터 근처에 세로로 고정된 수퍼커패시터가 눈에 뜨였다.


부품만 구할 수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일단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판매자께서는 튜너를 한번 가져와 보라고 하였고, 나는 구입 이틀째(바로 어제) 퇴근길에 튜너를 들고 판매자의 집으로 갔다.

판매자는 부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 다른 튜너에서 비슷한 부품을 떼어서 기판 뒷면에 납땜을 해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몇가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였다.

  1. 작업을 하는 솜씨가 매우 거칠었다. 바로 곁에서 고객이 보고 있어서 편안하게 작업하기가 어려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면 패널을 연결하는 리본 케이블을 완전히 뽑지 않고 작업을 하다가 모서리 부분이 약간 꺾였다. 이것이 나에게 하루 동안의 좌절을 안겨다 준 원인이 되었다.
  2. 내가 알기로는 분명히 수퍼커패시터(대용량 콘덴서)인데 자꾸 전지라고 하는 것이다.
  3. 기본형 튜너인데 타이머/시계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고, 방송국 기억이 지워지지 않으려면 항상 켜 둬야 한다는 것이다. 전원을 꺼도 방송국 기억이 남아있게 하기 위해서 백업 배터리 혹은 수퍼커패시터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다른 튜너에서 떼어낸 약간 크기가 작은 부품으로 교체를 하니 일단은 방송국이 기억이 되었다. 이 확인 작업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전원을 넣었을 때 디스플레에이에 나온 주파수는 칠십 몇 MHz였던 것이다! 그저 저장이 된다는 것만으로 작업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커피 한 잔을 얻어마시고는 집으로 왔다.

집에서 다시 전원을 넣고 방송국을 기억시키려고 조작을 하기 시작하였다. 주파수 조절 버튼을 눌러서 수치를 키워 나가고 있는데, 90 MHz를 넘어가더니 다시 70 kHz로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건 좀 이상하다. 판매자 집에서 테스트를 하면서 기억시킨 주파수는 76.5 MHz 혹은 비슷한 값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정상적인 FM 방송 주파수 범위(87.5~108 MHz)가 전혀 아니다!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교체한 전지(?)에 문제가 있나? 원래 끼워져 있던 부품을 다행히 버리지 않고 가져왔기에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납땜을 해서 원상복구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전원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오 하느님!

케이스를 닫아버리고 일단 잠자리에 들었다. 2만원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들인 것인가? 부품 하나 갈아끼우고 커넥터를 연결한 것이 전부인데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다니... 내 실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나? 어설프지만 만능기판에 납땜질도 좀 하는 편이라 여겼었는데...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다시 작업을 하기로 했다. 토요일이라서 시간은 충분하다. 어쩌면 전면 패널과 기판을 연결하는 커넥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위 사진에서 상단부에 보이는 리본 모양의 케이블이 용의자이다. 판매자가 수리를 한답시고 기판을 분리하여 뒤집을 때, 커넥터의 한쪽 끝이 완전히 뽑히지 않은 채로 뒤집는 바람에 리본 끝이 약간 꺾였다. 그래서 동박으로 된 접점과 이를 바닥에서 지지하는 절연 필름이 들뜬 상태였다. 혹시 이게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 리본 케이블을 뽑은 뒤 커넥터를 살펴보면 접점이 양쪽에 존재한다. 리본 케이블을 꽂는 순간 양쪽 접점 중 하나만 케이블의 동박 부분과 닿는 것이 정상적인 접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그림으로 정리해 본다. 케이블 및 커넥터의 옆면에서 본 모습이다. 물론 이 그림은 순전히 나의 상상일 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해결 방안이 있을 것도 같았다. 들뜬 절연필름층을 손가락으로 잘 펴서 다시 커넥터에 꽂은 다음 전원을 넣으니 비로소 화면에 숫자가 뜨면서 80 MHz대의 정상적인 주파수가 화면에 표시된다. 살았다!

이상의 추론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A와 B 접점 중 B만 회로쪽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고(기판 뒷면의 회로 패턴을 보지는 않았으니), 리본 케이블이 꽂히면서 A와 B가 서로 떨어지게 하여 작동이 유지되게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이 케이블의 말단부가 완전히 망가지더라도 시중에서 전혀 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디바이스마트에서 FFC 케이블이라는 명칭으로 판매가 되고 있다.

이상한 주파수가 뜬 것이 백업용 수퍼커패시터가 호환되지 않아서인지, 혹은 커넥터 접점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커넥터의 절연필름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그냥 꽂으면 전원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업과 관련된 부품은 콘덴서가 맞다! 0.2 F이라는 숫자가 옆면에 분명히 인쇄되어 있었다. 전원을 넣은 상태에서 테스터로 찍어보면 5볼트가 나온다. 호환되는 부품을 수배하거나 혹은 리튬전지로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무서워서 당분간 인두를 들지 못하겠다...

(참고: 전원을 넣으면 항상 전압이 걸려있게 되므로, 리튬 전지를 개조해 넣는 것은 옳지 않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DIY 정신을 완전히 접을 필요는 없겠다. 다만 중고 전자제품을 분해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어떤 커넥터의 경우 기판에서 분리하는 방법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경험자의 도움 혹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는 수밖에.

망했다... 다시 뚜껑을 열고 손을 보다가 완전히 망가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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