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독서 기록] 새뮤엘 헌팅턴 『문명의 충돌』

꽤 오래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6년에 2판이 나왔다고 되어 있는데, 저자는 개정판을 낸 일이 없으니 아마도 추천사가 추가되었거나 번역이 조금 바뀌지 않았나 싶다. 역사학자 김기협이 쓴 추천사의 날짜는 2016년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브레진스키의 글도 2011년이다. 지난주에 다 읽었지만 기록이 늦었다. 원저가 나온 것이 1996년이니 그 후 약 25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변화도 저자의 시각과 잘 맞는지를 살피면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별도의 문명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고 하여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현존하는 국가의 수는 200개가 넘는다. 저마다 독자적인 문화와 가치를 갖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한 권의 책에 주장하는 바를 담기 어렵다.

서구,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에게 일본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우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임진왜란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으로서 비난을 받은 것도 잠시, 이제 일본은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동아시아 국가가 되고 말았다. 패전 이후 맥아더를 매개로 하여 일본이 미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모르면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가장 큰 숙제로 남았다. 트럼프에 정책 기조 중 바이든 정부에도 이어지는 것은 대중 정책인 것으로 여겨진다. 서구의 보편적인 가치, 즉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을 받아들여야 동반자로서 대우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보편주의는 서구가 내어 놓은 허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은 더욱 합리적인 곳으로 '발전'할 것만 같지만, 그 발전은 매우 느리며 때로는 후회하기도 한다. '변화'한다는 것이 진리일 뿐이다.  코로나 시국에도 생명과 같은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일부 교회를 보라. 냉전이 끝나고 더 이상의 이념 분쟁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종교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해묵은 갈등이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과 같다.

구 유고슬라비아 땅에서 벌어진 복잡한 '단층선 전쟁'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504쪽을 인용해 본다.

첫째, 서구 문명은 지금까지 존재해온 다른 모든 문명들과 너무도 달라서 그 자체가 하나의 유형, 새로운 종이라고 할 수 있는가?

둘째, 서구의 범지구적 팽창은 다른 모든 문명들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가?

다른 문명에 살았던 과거인들도 이와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구인의 입장에서 쓴 해결책은 521-522쪽에 나온다. 중국을 바로 곁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해결책이지만. 가장 보편타당은 가치는 '국익'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문명 전쟁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저자는 이를 방지하려면 다른 문명의 내부 분쟁에 개입하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가까운 예로써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구금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제 사회는 이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거나 제제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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