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켜면 너무 많이 나와서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광고가 있으니 바로 커블과 밀크T이다. 국민 정신을 개조라도 하려는 듯,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커블은 마치 모든 의자에는 자기네 제품이 하나씩 올라가 있어야 한다고 세뇌를 하는 것 같다. 아이들 의자, 부모님 의자를 거쳐 이제는 사무용 의자까지 목표로 삼은 모양이다.
설 연휴 기간 동안 JTBC 교육특집 투모로우 클라스에서는 'AI 시대 초학습이 온다'는 제목의 방송을 하였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나오는 안내문에서는 간접 광고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출연자 앞에 특정 기업의 음료수라도 놓여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발표자로 나온 교수가 시작 부분에서부터 신산업 관점에서의 비대면 학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가 싶더니, 결국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요즘 TV에서 줄기차게 광고를 하는 '밀크T'를 홍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방송 중간을 끊고 나오는 광고 역시 밀크T였다.밀크T가 도대체 뭘까? T라는 알파벳이 들어 있어서 처음에는 SK텔레콤에서 만든 교육 서비스라고 생각을 했었다. 알고 보니 교과서를 만드는 천재교육(이 기업 이름은 교육이 당면한 목표를 잘 반영하고 있는가? 고등학교 때 해법수학 참고서를 만들던 그 회사이다)이 SK텔레콤과 제휴해서 만든 학습 관리 서비스가 밀크T이다. 회비를 납부하면 교재와 태블릿이 제공되고, 이를 이용하여 학습 관리를 받는 것이다. 전담 교사가 꼼꼼하게 매니저 혹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나무위키에서 밀크T를 검색해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밀크T용으로 제공되는 태블릿은 일반적인 인터넷 이용이 되지 않도록 펌웨어 혹은 소프트웨어 수준에서 차단이 되어 있는데, 이를 뚫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무위키에 매우 상세하게 나오고 있었다.
투모로우 클라스에서는 구체적으로 회사 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물론 방송을 보고 나면 다 알 수 있는) AI를 이용하여 학습용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를 개발하는 부서를 소개하였다. 기업이 이렇게 알아서 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전통적인 대면 교육이 어려우니 새로운 기술이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소비('산업'이라고 해 주자)를 창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하자. 하지만 이것이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학습 습관을 기르는 데에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기술과 플랫폼을 갖고 있는 교육테크 기업의 '소비자'가 되어 버린다면 능동적인 학습을 하기가 오히려 어렵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진 프로그램 안에서 얼굴을 들이대고 터치만 할 뿐이다.
코세라(Coursera) 등 대규모 온라인 교육(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가 지식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한 점은 인정한다. 여기에서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을 전통적인 교육 전달의 방법에서 한 매개체로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평가나 피드백 등이 중요한 어학 교육이라면 현재 나온 기술을 조금 더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 나가는 어린 아이들에게 태블릿을 쥐어주고 학습 관리를 받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미 요즘 아이들은 사전을 잘 찾지 못하고 글씨도 잘 쓰지 않는다. 방송에 소개된 그 회사에서는 아이들이 쓴 손글씨를 인식하여 디지털화하는데 첨단 AI 기법을 쓰고 있었다. 이를 자랑삼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기술이 완전히 뿌리를 내린다면 정갈한 글씨를 쓰기 위한 노력을 누가 할 것인가? 다소 딱딱한 음식을 공들여 씹고, 손가락을 놀려서 글씨를 쓰거나 악기를 익히고... 이런 노력 자체가 뇌의 발달을 비롯하여 교육 및 인간 관계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서 지식을 찾는 방법은 이미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마 기술 옹호론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책을 뒤적이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전통적인 방법은 이제 다 버려야 한다고. 손글씨를 익히기 전에 키보드나 태블릿으로 글씨를 입력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아무리 악필이라 해도 AI가 다 인식을 해 주고, 말로 녹음을 해도 텍스트로 정확하게 전환이 되니 무슨 상관이냐고.
공유 경제 시대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였고, 이제는 구독(subscription) 경제 시대라고 한다. 월정액만 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자동차도 소유할 필요가 없고, 알아서 비만 관리도 해 주고, 아이들의 학습 관리도 해 준다. 관심과 노력을 돈과 바꾸는 시대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여 남는 시간에 뭘 하겠다는 것인가? 더욱 가치 있는 일을 할 수나 있을까? 결국 남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이나 문지르고 주식 시황판만 들락거릴 것이 뻔하지 않은가?
기술은 스마트해지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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