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오늘 간식으로 350 kcal를 초과 섭취하였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50분간 걸으십시오. 바깥 기온이 다소 높으므로 마실 물을 챙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제 열렸던 ICT Convergence Korea 2015에서 헬스케어 분야의 미래 서비스 산업 전망에 대한 한 기업체의 발표를 들으면서 느낀 일이다. 참으로 멋진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 생활을 늘 감지하면서 건강 관리에 관한 조언을 해 주는 서비스가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 아직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남아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먹은 음식을 사진으로 찍는다 해도 정확한 칼로리를 알기가 어렵다. 음식의 분량, 양념, 조리상태 등을 이미지만으로 판정하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일들은 전부 웨어러블 혹은 스마트 기기에 맡겨놓으면 인간은 좀 더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또한 더욱 창조적이고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될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 발표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귀하는 현재 사회적 활동이 부족합니다. SNS에 접속하셔서 3개 이상의 글을 올리시고 부모님께 전화하여 3분 이상 통화하십시오. 지적 활동도 부족한 상태이니 앞으로 1주 동안 철학 분야의 책 2권을 읽으십시오(책 제목도 함께). 주말에는 지역 친목 모임에 나가서 신입회원 2명과 사귀시기 바랍니다. 이번 달 안에 동해안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를 권합니다.'
어떤가? 자기 생각이나 주관은 없이 그저 부모의 의지에 의해 학원을 뱅뱅 돌고 있는 우리의 자녀와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주는 최첨단 기기와 로직, 서비스가 늘 주변에서 우리를 코치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이를 위한 기준은 각종 빅데이터를 통해 자동적으로 수립되고 최적화된다고 생각해 보라. 인간적인 요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측정하지 못하면 개선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인간 생활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까? 가령 행복도라든가 우정, 사랑, 지역 사회에 참여하면서 누리는 만족감 등등. 혹시 최신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사회 현상을 계량적인 방법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고 산업을 일으키는 것은 좋은 일이나 우리가 직접 고민하고 자유의지에 따라서 처리해야 할 일을 너문 외부에 맡기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 사람(예를 들어 컨설턴트)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ICT 기술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다. 두번째,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다 측정하고 수치화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어떻게 보면 개선은 하나의 핑계이고 한국이라는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단지 사람들을 줄세우기 위한 방안일 수도 있다. 건강과 같이 물리적이고 외형적이며 객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측정을 통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심리적이고 무형적인 세계까지 이런 '서비스'가 치고 들어올까봐 걱정이 된다.
어제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다. 차를 수리하느라 서비스센터에서 좀 오래된 차를 빌려주었다. 당연히 헤드라이트가 자동으로 꺼지지 않는다. 이를 모르고 라이트가 켜진 채로 차를 세웠다가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 애를 먹었다. 차를 내릴 때 '전조등이 켜져 있습니다' 혹은 '주차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으셨습니다' 등의 음성 경고를 해 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소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함으로써 '남는' 시간에 더 의미있는 일을 하게 될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소해 보이고 반복적이며 지루한 일을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스마트한 기계에 맡기는 순간, 우리는 점점 더 둔해지고 멍청해 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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