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서툰 솜씨로 장작을 피워 식사를 준비하고, 직접 구성한 교육과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일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해 겨울에는 천호동 교회 학생들과 연합으로 행사를 가서 너무 열심히 눈싸움을 하다가 감정이 너무 고조되어 진짜 싸울뻔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번을 연수리를 오가면서도 오래된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는 한번도 가 보지를 않았었다.
평소에는 용평 리조트에서 열리던 유전체학회 겨울 심포지움이 이번에는 강원도 홍천군 대명리조트에서 열렸다. 대전에서 출발하여 생전 처음 지나는 고속도로를 타고 양평 IC로 빠져나오니 용문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연수리 교회의 추억이 서린 곳.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문사와 더불어서 한번 들러보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연수리 청소년 수련원이 나온다. 예전에 수련장으로 쓰이던 곳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았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하였다. 버스가 다니는 큰 길에서 콘크리트가 깔린 비좁은 농로로 600미터를 더 가니 현대적인 건물이 보인다. 여기가 30여년 전에 수련회를 왔던 곳인가? 수련원 마당에 차를 세우고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냇물이 흐르던 옛날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이 나오셨다. 평안한 표정의 관리인 아저씨는 손님들로 며칠간 바쁘다가 모두 퇴실을 하여 잠시 한가한 틈에 쉬는 중이셨다고 한다. 나를 보시더니 낯이 익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대문 교회를 다니신 적이 있으며 우리 가족들을 기억한다고 하셨다. 커피를 얻어 마시며 이곳의 연혁과 서로 추억하는 동대문 교회 신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당시 쓰던 수련관 건물은 이곳이 아니라고 하셨다. 일반인 이용자가 꽤 많아서 재정 상황도 이제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버스가 다니는 큰 길가로 나가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새로 지어진 연수리 교회가 있는데 주일이면 신도가 35명 정도 출석한다고 하셨다.
다시 차를 몰고 큰 길로 나가 보았다. 어디에도 교회 위치를 알리는 푯말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교회 위치를 검색하여 다시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였다. 이번에도 돌담 사이의 좁은 골목길로 차를 인도한다. 잘못 들어갔다가 차를 돌릴 수나 있을지 걱정을 하며 내비게이션의 안내와 감에 의지하여 조금 들어가니 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이를 따라 수십 미터를 더 가니 2013년에 새로 지어진 아담한 교회가 눈에 나타났다.
낡은 한옥이던 연수리 교회가 이렇게 새단장을 하다니... 교회 바로 옆으로 돌아가면 예전 수련관이 있던 곳이란 말인데 과연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교회 마당을 지나니 예전에 세수를 하고 멱을 감던 개울이 드디어 보인다. 바로 여기였구나! 그러나 수련관이 있던 곳으로 생각되는 곳은 양옥들과 절이 들어서 있었고 줄에 묶인 개가 나를 보고 허허롭게 짖어댔다. 그렇지. 어느해 여름이었던가, 길가의 돌을 골라내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땅벌집을 건드려서 손가락과 장딴지에 두 방을 쏘여서 한참 고생을 했었다.
모친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연수리 교회!' 어머니는 현재의 청소년 수련관을 운영하는 분의 가족과 잘 아신다면서 반가워 하셨다.
다음 목적지는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는 용문사이다. 집에 전화를 하니 아내는 한적한 평일 오후에 출장지에서 곧바로 귀가하지 않고 혼자서 여행이라니 갱년기라도 왔느냐면서 참 별일이라고 하였다. 용문사 초입은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서 볼거리와 편의시설이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매표를 하고 일주문을 지났다. 얼마나 올라가야 절이 있을까? 논산 관촉사럼 들어서자마자 대웅전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설마 4-5 km는 되는 것은 아니겠지?
추정되는 수령은 1100년. 그러면 이 나무가 심겨진 서기 900년 경은 고려가 건국(918년)된 즈음이다. 정말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망국의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은 것일까? 수령은 길게는 1500년까지도 추정된다 하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은행잎 모양으로 만든 시설물이 있다. 여기에 사람이 올라서서 은행나무를 뒷 배경으로 삼아 사진을 찍게 만든 포인트인 듯.
인증샷 하나 남긴다. 팔이 가제트처럼 길어지지 않으니 배경의 은행나무가 너무나 크게 나올 수밖에 없다.
절에 왔으니 대웅전 사진을 남기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바로 곁의 지장전에서 흘러나오는 독경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부를 들여다보지는 못했으나 그 느낌으로 보아서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필경 '라이브'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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