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5일 목요일

중고 옴니아팝 구입기

스마트폰이 없어도 세상을 영리하게 사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러한 신념이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피처폰만으로는 34요금제를 알뜰하게 사용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모토롤라 아트릭스를 딸아이에게 넘겼지만 24개월 약정 기간 동안 34요금제를 유지해야만 한다. 확정기변을 하고 맞번호 변경과 맞기기 변경 등 몇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다른 식구에게 34요금제를 떠넘기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막상 출장을 가 보니 3G 데이터 통신을 이용한 이메일 확인이 매우 요긴하였다.

디지털 카메라, 자전거, 휴대폰 등 새로운 '장난감'을 살 일이 생길때마다 정보를 알아보고 고르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다. 성능과 가격을 놓고 수도 없이 저울질을 하고, 인터넷에서 사용기를 검색해 보면서 혹시 알려진 문제가 없는지 파악한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고, 돈이나 많으면 충분한 성능에 만족하면서 오랫동안 사용 가능한 좋은 제품을 사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런 핑계로 눈이 아프도록 검색창을 매달리게 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런 '연구'과정이 힘은 들면서도 사실 이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현재까지 나의 임시(?) 휴대폰은 노리폰이다. 작고 가볍다는 것이 휴대용 기기에서는 얼마나 큰 미덕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아트릭스의 예에서도 그랬듯이, 한번 세팅을 해 놓은 다음에는 스마트폰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 이메일 푸쉬 알림 기능이 충실하면서 사용이 편리한 작은 중고 스마트폰을 찾게 된 것이다.

물망에 오른 것은 옴니아팝, 엑스페리아 X10 미니 프로, 그리고 갤럭시 에이스였다. 옴니아팝은 대충 3-6만원, 나머지는 개통 이력만 있는 사실상 신품이 12만원대이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개성이 넘치는 엑스페리아 X10 미니 프로로 거의 마음이 굳어져 가는 듯 했으나, 결국은 3만원짜리 옴니아팝으로 결정을 지었다. 이것 말고도 옥션에서 물건을 주문했다 취소를 하고, 네이버 중고장터에 올라온 물건을 사겠다고 연락을 했다가 취소하는 등 소심한 나는 몇번이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었다. 용돈을 좀 모아놓은 것이 있었지만, 10만원이 넘는 돈을 쓴다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 옴니아팝은 워낙 가격이 싸기 때문에 만약 구입해서 실망을 한다 해도 식사 두어번 한 셈으로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하였다. 윈도우 폰은 절대 쓰지 말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며칠간 사용해 본 뒤 버려야 되겠다고 결심을 한다고 해도 구입에 들인 돈 때문에 크게 속이 쓰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삼성전자 옴니아팝 공식 홈페이지

삼성 옴니아 시리즈에 얽힌 영욕의 역사를 찬찬히 찾아서 읽어 보았다. 한때 아이폰의 대항마를 자처하면 꽤 많은 사용자를 확보했지만,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주력 OS로 삼으면서 사후 지원에 성의를 보이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원성이 빗발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옴니아 시리즈의 보급형 모델인 옴니아팝에 대해서는 그렇게 나쁜 의견들은 의외로 별로 없다. 아마 사용자도 적고, 옴니아2와 CPU 등 주요 하드웨어는 같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일반 피처폰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소박하기에, 기능을 극한으로 밀어부치면서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었던 듯. "스마트폰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라는 간혹 보이는 푸념이 오히려 나에게는 재미있게 느껴진다. 화면도 작고, 감압식인데다가 3.5파이 이어폰 단자도 없고 게다가 윈도우 모바일이 OS인 휴대폰. 재미있게도 윈도우 모바일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스타일러스 없이 쓰기가 어려운 기존 옴니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처폰의 햅틱 UI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 화면이 작은 대신 배터리가 오래 간다는 것, 외형이 작다는 것 등 얼리 어댑터들은 고개를 돌릴만한 특징들이 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멜론 평생 무료라는 조건도 고려해볼 요소가 된다. 서랍 속에서 쉬고 있는 모토로이도 마찬가지 조건이지만, 한달에 한 번 유심을 바꾸어 끼워서 연장을 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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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작성하고 하루가 지났다. 3만원짜리 옴니아팝이 우체국 택배를 통해 배달되었다. 안드로이드와는 사뭇 다른 인터페이스가 매우 흥미로왔다. 딱 3만원의 가격 수준에 맞게 적당히 낡은 상태였고 전원이 꺼졌을 때 오른쪽 아래 귀퉁이의 액정 색이 약간 다른 것이 신경이 쓰였다. 유심을 끼우고 이것 저것을 만져보는 과정에서 문제의 귀퉁이가 터치입력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천지인 키패드를 펼쳐 놓으면 백스페이스 위치를 아무리 눌러도 글자는 지워지지 않고 그 바로 곁은 줄바꿈이 입력된다. 메모장을 열어놓고 화면 전체를 색칠하듯 긁어 보았다. 역시 오른쪽 아래 모서리 영역은 입력이 되지 않는다. 허허... 역시 3만원짜리란 별 수 없구나. 다시 포장하여 반품 신청을 하였다.

그러면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엑스페리아 X10 미니 프로 혹은 갤럭시 에이스를 살 것인가? 구입을 결심하고 버추얼 박스로 실행하고 있는 윈도우 7에서 G마켓을 접속한 뒤 상품을 고르고 나서 아무리 결제를 하려도 해도 진행이 잘 되지 않는다(가끔 이런 오동작을 보인다). 돈을 많이 쓰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컴퓨터를 옮겨서라도 결제를 하려다가, 조금 더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비록 반품을 위해 다시 포장을 해 놓았지만, 옴니아팝의 첫인상은 신선했다. 감압식 터치 스크린도 나쁘지 않았다. 이를 한번 꼭 써 보고픈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잘 뒤져보면 박스 신품 수준의 것도 팔리고 있지만, 이것도 10만원이 넘는다. 어떻게 할까? 최종 결론은, 구매자평이 조금 좋은 판매업자의 사이트로부터 무려 45,000원짜리(!) 옴니아팝을 주문하는 것.

과연 현명한 판단을 했는지는 내일 알 수 있다. 만일 이번에도 문제가 있는 기기가 온다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되겠다. 돈이 좀 들더라도 신품에 가까운 물건을 사는 것이 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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