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온 국민은 TV를 통해 어이없는 비상계엄선포를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계엄 포고문을 들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이고 반국가 세력은 또 무엇인가? 국회에 의해 계엄령은 즉시 해제되었지만, 이 사태가 가져온 파급효과는 너무나 컸다. 전직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이 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망가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아직도 우리는 많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계엄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놓고 왜 이렇게 다른 입장인 것인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던 나는 곧바로 서점에 가서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원제: Democracy's Discontent, 2022년 판)을 구입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절반 정도를 읽고 말았던 것을 최근에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나갔다.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이라서 연필을 잡고 편하게 줄을 그어 나가면서. 이렇게 하여 끝을 맺은 것이 7월 25일이었다.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을 뽑은 것은 우리 국민이었고, 트럼프를 두 번이나 대통령에 만든 것 역시 미국의 국민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퇴보에 해당한다. 국민들의 마음 속에 어떤 불평과 불안이 있었기에 그 빈 곳을 공략한 정치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렇게 치밀한 전략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의 정치경제사도 항상 옳은 길만을 추구해 온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개인의 이익 추구와 생산 체계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시민의 자치 참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는 서로를 견제하면서 발전해 왔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이지만, 제퍼슨주의자들은 대규모 공장제도는 시민적 윤리를 해칠 것이며, 자작농이 더욱 유리하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에 들어 나타는 큰 흐름인 반독점운동은 경제 권력의 집중화를 막고자 하였다. 챗GPT를 이용하여 마이클 샌델의 관점에서 2차대전 종전까지의 미국 정치경제사를 인물 중심으로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보았다.
| 시기 | 핵심 인물/사건 | 주요 특징 | 샌델 관점의 의미 |
|---|---|---|---|
| 18세기 말~19세기 초 |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 1801~1809) | - 소규모 자작농 중심의 농본주의(agrarianism)- 분산된 토지 소유, 시민 덕성·자치 중시- 중앙정부 권한 축소, 주(州) 중심 | 시민적 공화주의의 정점.경제가 정치적 자치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발상 |
| 18세기 말~초기 공화국 시대 |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 - 강력한 중앙정부, 산업·금융 육성- 국립은행 설립, 제조업 진흥- 영국식 금융·상업 모델 수용 | 자치보다는 국가 경쟁력과 경제 효율을 중시, 시장 중심 사고 확대 |
| 19세기 초중반 |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 1829~1837) | - 금융 엘리트 견제(제2합중국은행 폐지)- 대중정치 확대(백인 남성 참정권 확장)- 서부 개척 장려 | 금융 권력 견제 등 일부 공화주의적 요소 유지, 그러나 구조 개혁은 제한적 |
| 19세기 말~20세기 초 | 로크너 대 뉴욕 판결 (1905) | - 노동시간 제한법을 위헌 판결 (‘자유계약’ 절대화)- 정부의 경제 규제 최소화- 노동자 보호 입법 제약 | 시장 자유주의의 제도적 확립.경제와 자치를 분리하는 흐름 완성 |
| 20세기 초~1910년대 | 세오도어 루즈벨트 (26대 대통령, 1901~1909) | - ‘트러스트 파괴자’, 반독점 강화- 식품·의약품 규제, 국립공원 제도- 공공선 회복 시도 | 시장 자유주의 속에서 공화주의적 공공선을 재도입하려는 개혁 |
| 1933~1945 | 프랭클린 D. 루즈벨트(FDR) (32대 대통령) | - 뉴딜 정책, 대공황 극복- 사회보장제도, 노동자 권리 보장- 금융 규제, 대규모 공공사업 | 복지국가 모델 확립.경제가 시민 자치와 사회적 연대에 기여하도록 재설계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쇠퇴하고 경제 성장 및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대체됐다...(중략)...이렇게 해서 경제가 자치라는 목적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발상은 정치 논쟁에서 사라졌다.(320쪽)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국가가 아닌 세계 차원의 규모이며 금융이 주도하고 있다. 자본의 이동성이 너무나 높아지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법인세율이 감소하였고, 이에 따라 노동자와 소비자의 세금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나친 금융화는 산업 구조를 왜곡한다. 상품을 생산하여 부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산의 미래 가치를 추정하여 '막대한' 부를 얻게 만든 것이다. 금융은 필수적인 장치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생산적이 않다. 즉, 실물경제에서 부당한 이득을 지대(地代, rent)로 빼돌리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좌파 정당은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우파 정당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능력주의 시대에는 양상이 뒤바뀌었다. 지금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중도 정당의 좌파에 투표하고,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이 우파 정당에 투표한다.(374쪽)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만들었지만, 능력주의는 승자와 패자를 확연하게 갈라놓았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분열이 사람들 사이에 굴욕감을 안겨줬고, 트럼프를 비롯한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이 굴욕감을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했으며 또 효과를 봤다.(378쪽)
미국인들은 경제적인 불만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믿는 지도자(미국을 위대하게 만듦으로써? 관세를 이용하여?)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대통령을 군주로 여기는 마음(여기에서 건국 대통령이라는 개념이 나온다)을 부추긴 다음 안보문제, 즉 북한이나 중국의 위협을 적당히 버무리면 늘 어떤 당이나 인물을 지지해야 된다는 '정답'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고, 그 비율은 특정 지역과 연령층에서는 거의 상수로 고착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층-심지어 청소년-사이에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대단히 걱정스럽다.
민주주의는 눈에 띄지 않게 퇴보할 수 있다. 시민 모두가 깨어있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은 잠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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