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나열한 낱말은 전부 하코(HAKKO) 생태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즘 내가 취미 작업을 위해 사용하는 납땜인두는 (주)엑소의 세라믹 히터를 사용한 40와트급 제품 JY-2200이다. 2019년부터 사용 중이며, 내 생애 네 번째의 납땜인두이다. 온도도 빨리 오르고 열량도 높아서 트랜스포머 단자 납땜 등 큰 작업물을 대상으로 납땜을 하기에는 매우 좋다.
칼팁이 있으면 편리할 것 같아서 얼마 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별 생각 없이 팁 세트를 싼 값에 구입하였다. 그러나 나의 엑소 인두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인두팁의 규격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세라믹 히터를 쓰는 납땜인두라면 그냥 다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덜컥 구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900M이라는 것은 하코에서 제조한 온도조절형 스테이션 납땜인두에 쓰이던 인두팁 규격이라고 한다. 실제 개별적인 팁은 900M-T-I(뾰족한 콘형), 900M-T-K(칼날형) 같은 형식으로 부른다. 이 인두팁(+인두 핸들)이 쓰이는 스테이션은 하코 936/937이 대표적인데, 2009년에 공식 단종되었다. 936은 다이얼식, 937은 버튼식(+LED 디스플레이)으로 온도조절 메커니즘은 그렇게 정밀하지는 않다고 한다. 트랜스포머를 통해 약 24V 교류 전원을 세라믹 히터에 인가하고, 센서를 통해 온도를 측정하면서 과열되면 전원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요즘은 중국산 호환(카피) 제품이 널리 판매되고 있다. 인두핸들, 온도조절기 회로부 등 호환 부품의 가격도 싸고 사용자가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다. 907은 핸들의 형번이다.
그 후에 나온 모델인 FX-888은 DC 펄스파와 센서를 이용한 PID(Proportional-Integral-Derivative) 제어 방식을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팁과 히터를 분리할 수 있었다. 그보다 나중에 나온 T12 규격부터는 히터와 팁이 일체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를 흔히 고주파 인두라고도 하는데, 사실 ‘고주파’라는 용어는 교류에 대해 쓰는 것이 옳다.
스테이션 타입의 인두는 인두 핸들과 이에 딸린 케이블이 가볍고 유연해서 편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스테이션의 무게를 생각해 보라. 이동하지 않고 작업대 위에 두고 쓰는 조건에서는 매우 적합한 물건일 것이다.
요즘은 한술 더 떠서 C-type USB 단자가 달린 ‘스마트 인두’까지 나왔다. 어떤 것은 충전도 된다! 몇 볼트의 직류라고 해서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불과 수 초 만에 무연납을 녹일 수준으로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GVDA라는 중국산 브랜드의 GD301 같은 제품이 꽤 인기인 것 같은데, 이런 부류는 LCD와 버튼까지 달려 있어서 떨어뜨리면 금방 망가질 것만 같다. 220V에 직접 연결해서 쓰는 인두는 내동댕이쳐도 망가질 일이 별로 없지 않은가.
JY-2200은 만능기판 작업을 하기에는 너무 용량이 커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패드가 떨어져 나가거나, 또는 납이 산화되어 광택이 없어지면서 잘 흐르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원래 자작 트랜스포머 권선기에 사용하려고 만들었던 조광기(전동 드릴 속도 제어용)를 대충 연결해서 쓰고 있다. 그런대로 만족하고는 있지만, 기왕 구입해 놓은 900M 인두팁 식구들을 언젠가는 사용해 보고 싶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907 인두(iron)’로 검색하면 900M 팁을 사용하는 저렴한 스틱형 온도조절 인두(스테이션형 아님)가 꽤 나오니 나중에 적당한 것을 고르거나, 아니면 스테이션에 대한 호기심으로 936 호환품 중에서 고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JY-2200을 구입하였을 때 T-B 기본 팁 외에도 끝이 더 뾰족한 교체용 팁(T-I)이 하나 더 들어 있었다. 어제 이것으로 바꾸어 놓으니 만능기판 작업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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