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5일 화요일

[KORG X2 Self-Repair] amidi를 이용한 SysEx 전송

오늘의 글은 X2의 자가 수리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배터리 교체 후 설정을 복구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냈기에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X2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망가진 상태에서 설정을 복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SysEx 파일로 전환한 설정 내용을 MIDI 인터페이스를 통해 전송하는 것뿐이다. 이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전부 Windows 3.x~9x 등 매우 오래된 운영체계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Windows 11이 설치된 최신 PC에서는 잘 작동하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실행은 된다 하더라도 데이터를 너무 빠른 속도로 보내는 바람에 X2가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마지막 성공 경험은 Windows 7에서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했을 때였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을 꼭 Windows에서 하라는 법은 없다. 리눅스가 설치된 컴퓨터에서 USB 케이블형 MIDI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SoundCanvas SC-D70에 MIDI 또는 SysEx 신호를 전송한 일이 있다. 이때 사용한 프로그램은 alsa-utils 패키지의 일부인 amidi라는 것이다. X2에서는 아직 시도해 본 일이 없었다. 

우선 X2에 GM(General MIDI) 파일을 전송하여 재생해 보았다. Sequecer 모드로 진입해야 하므로 약간 번거롭다. 내장 메모리로부터 녹음이 되지 않은 곡을 하나 골라야 하는데, 단지 테스트를 수행할 목적이므로 첫 번째 곡(Song 0)을 선택하였다. Reference Guide 93쪽에 따르면 Song 9는 General MIDI 용으로 즉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기억해 두도록 하자.

Playing GM Songs. 자료 출처: X2/X3 Basic Guide.



GM 파일을 전송하였더니 아주 훌륭하게 재생이 되면서 선택한 곡이 변형되었다. 이를 되돌리기 위해 amidi에서 SysEx 파일, 즉 .SNG 파일로부터 X3File2Sysex로 전환한 것을 전송해 보았다. 작업 환경은 우분투 22.04가 깔린 낡은 컴팩 CQ61 랩톱 컴퓨터이다.



사용한 명령어.

신호 전송 중. 컴퓨터에서 프롬프트가 뜰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이 작업을 통해 곡 데이터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따라서 PC에서 X2로 SysEx 설정을 전송하기 위해 낡은 컴퓨터를 찾을 이유가 전혀 없게 되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내장 시퀀서를 적절히 활용하여 공연 등에 활용하는 것이다.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용하여 backing track를 재생하는 것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장점이 있다고 믿는다. Reference Guide의 6장과 7장을 꼼꼼하게 읽고 실습을 해야 되겠다.

2025년 3월 23일 일요일

[KORG X2 Self-Repair] 번외편 - 강압 트랜스포머 수선하기

내가 갖고 있는 Korg X2 Music Workstation은 100V 모델이라서 소형 강압 트랜스포머가 필요하다. 소비 전력은 10와트에 불과하므로 큰 용량의 것을 쓸 필요는 없다.



이 전자악기의 오랜 동반자였을 강압 트랜스포머는 91년 5월에 제조된 것이다. 제조 후 34년이나 되었으니 상태가 좋을 수가 없다. 220V에 꽂는 플러그 하나는 내부의 고정부위가 깨졌는지 덜렁거린다. 용량은 75VA, 퓨즈 규격은 0.5A라서 X2에 쓰기에는 충분하다.



내다 버리고 새 것을 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 집을 지어 주기로 하였다. 자작용으로 쓰려고 사다 놓은 밀폐용기를 가져다가 가공을 시작하였다. 사각 구멍을 뚫는 일은 항상 어렵다. 아트 나이프가 있어서 조금은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구멍을 뚫은 뒤 가조립을 한 상태. 원래의 것과는 달리 접지용 단자를 붙였다. 이를 위하여 접지가 달린 220V용 AC 파워 케이블을 잘라서 활용하였다.

테이프를 새로 감고...

단권 변압기를 사용한 매우 단순한 구조라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110V 출력에 LED가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절연용 외피 안에 저항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뚜껑을 덮기 전. LED에 불이 들어왔다.


트랜스포머가 움직이지 않도록 나무토막을 하나 넣었다.

접지 단자가 별도로 달린 110V 파워 플러그는는 이와 같은 형태의 콘센트에 끼울 수가 없다. 다음에 보였듯이 돌출된 접지용 핀이 들어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접지핀을 뽑아 버리면 접지부가 없는 강압 트랜스포머의 출력부에 꽂을 수는 있다. 그러나 X2의 금속 표면에서 기분나 쁜 전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택한 최선의 방법은 다음과 같이 잘라버린 접지핀에서 선을 인출한 뒤 접지선을 악어클립으로 연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별로 아름답지는 않다.



이렇게 만든 기기의 뚜껑을 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안전을 위해 '위험하니 열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붙이거나, 또는 볼트와 너트를 써서 열리지 않게 조여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KORG X2 Self-Repair] 출력 단자와 tactile switch의 수리를 마치다

성공적으로 수리 작업을 마친 뒤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왜 진작에 하지 않았었을까? 뒷판을 열었더니 안쪽에 이 중고 신시사이저를 구입했던 날짜(2004년 3월 14일)와 판매자의 이름 및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수리할 결심을 조금만 빨리 했더라면, 21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를 더욱 즐겁게 이용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너무 나무랄 수는 없다. CD 플레이어 수리를 위해 택트 스위치를 교체하는 경험을 작년에 처음 해 보았으니 말이다. 진공관 앰프 제작을 하느라 납땜에 더욱 공을 들인 것도 몇 년 되지 않는다.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차피 이 일은 지금쯤에야 내 손으로 할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무거운 악기를 보내어 믿고 맡길 수리업자를 찾느라 고심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수리의 일등 공신은 바로 맥파이의 3.6V 미니 전동 스크류드라이버(링크)였다. 이것이 없었다면 만성 통증이 있는 엄지손가락으로(불행히도 양 손이 다 그러하다) 드라이버를 돌리느라 무척 고생을 했을 것이다.

국내 브랜드인 맥파이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조를 시작한 독특한 연혁을 갖고 있다.

18650 리튬이온전지가 내부에 들어 있는 듯. 

그 다음 공신은 인터넷에서 찾은 X2 서비스 매뉴얼. 정확한 분해 순서, 각 보드의 이름, 제각기 다른 규격의 나사의 정확한 고정 위치 등이 있었기에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뒷뚜껑을 열었다. 위쪽의 기판은 왼쪽부터 파워 서플라이 유닛 어셈블리, 메인 보드(KLM-939), 그리고 아날로그 보드(KLM-937). 


파워 서플라이 유닛 어셈블리. 구입 당시 전해 캐패시터가 터진 상태라서 직접 교체하였었다. '부르르~'하는 잡음이 나로 하여금 겁도 없이 뚜껑을 열게 하였었다.

아날로그 보드를 분리하여 납땜면을 살펴 보았다. 헤드폰 잭과 출력 1번 및 2번 단자의 납땜이 살짝 떨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납땜을 보강하였다. 다음으로는 두 개의 보드에 걸쳐 장착된 37개의 택타일 스위치를 전부 새것으로 바꾸는 본 작업이 남았다. 단순하지만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다리 수가 두 개를 넘어가면 디솔더링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므로. 네 다리에 납을 조금씩 더 붙인 뒤 인두를 대고 녹인 다음 흡입기로 빨아내었다. 그 다음 기판 반대편에서 롱노우즈 플라이어로 부품을 떼어내면 된다. 무리하면 동박 패턴이 같이 뜯겨 나갈 수가 있으니 요령이 필요하다. 납이 어느 정도 남아 붙어 있으므로 손가락으로 부품을 떼어내기는 어렵다. 너무 많이 납이 남아 있으면 인두의 힘을 빌려야 한다. 솔더링 윅을 대고 녹여내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부품을 제거한 뒤 구멍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이를 사용하였다.

택타일 스위치를 전부 제거한 왼쪽 패널 보드(KLM-1647).

새 스위치로 전부 교체!

마찬가지로 작업을 마친 오른쪽 패널 보드(KLM-1648)

LCD 보드도 찍어 주었다. 

이번 수리 작업을 하는 동안 하네스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실은 보드에서 안전하게 분리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건반쪽 회로와 메인 보드를 연결하는 것(아래 사진의 빨간색 커넥터) 두 쌍, 그리고 LCD 유닛과 전원 보드를 연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손을 대지 않았다.

하얀색 하네스는 뽑기가 두렵다. 플라스틱 재질이 오래 되어 부스러지거나, 혹은 케이블만 쏙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덩달아 이 부품도 꺼내어 깨끗이 청소를 해 주었다.

탈거한 택타일 스위치. 많기도 하다!

오늘 작업에서는 CR2032 배터리 홀더를 하나 더 납땜해 놓았다. 전지를 교체한 뒤 시스템 설정 상태를 SysEx로 보내어 되돌리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여분으로 병렬 설치한 홀더에 새 배터리를 끼운 뒤 보드의 배터리를 교체한 다음, 여분 홀더의 것을 빼면 전압이 전지를 교체하는 중에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보드의 전해 캐패시터를 나중에 일괄 교체할 경우를 대비하여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조사해 두었다. 내압은 전부 16V이다. 그런데 진정 re-capping이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날로그 보드에는 220uF x 1, 22uF x 10(이상 짙은 파란색), 그리고 100uF x 5, 10uF x 1(이상 밝은 파란색)의 전해 캐패시터가 있다.

작업을 마치고 전원을 투입해 보았다. 교체한 스위치는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납땜 인두를 들고 여러 시도를 하면서 괜한 자신감에 우쭐한 적도 있었고, 좌절감에 휩싸인 순간도 많았다. 오늘은 분명한 교훈을 얻었다. '해 보고 후회하자!' 그리고 시도하기 전에는 충분한 준비를 하자. 좋은 공구를 갖추고 자료를 찾아 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기록을 위해 아날로그 보드의 사진도 남겨 둔다.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제프 베이조스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을까?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바이오 패권경쟁')에서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란 한국의 미래에 커다란 밑그림과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제시해 온 비전코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창조적 지식국가 건설을 위해 매일경제가 추진하고 있는 범국민 실천 운동입니다(출처).

여기에서 다루어진 주제가 정부의 정책과제로 채택되기도 하였으니 상당히 공을 들여 시의적절한 아젠다를 개발하여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2022년 5월에 열렸던 제32차 국민보고대회의 주제는 '용산 Renaissance'였으니(링크), 요즘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참으로 묘한 기분을 느낀다.

3월 19일에 열렸던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의 주제는 '바이오 패권경쟁 - 대한민국 재도약의 갈림길'이었다. 이와 관련한 몇 개의 기사 링크가 있고, 매일경제 웹사이트에서 '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 대한 AI 검색을 실시하면 다음과 같은 요약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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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개요

  • 2025년 3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
  • 매일경제 창간 59주년을 기념하여 열림
  • 주제: "바이오 패권경쟁"

## 주요 내용

  • K바이오 산업의 현주소 진단 및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 제시
  • 블록버스터 신약 확보 전략, 화이트·그린바이오 성장 정책, 항노화 산업 육성 방안 등 '액션플랜 V4' 발표
  • 글로벌 컨설팅사 PwC·Strategy&와 함께 K바이오 필승전략의 경제적 효과 분석 결과 공유

## 주요 제안

  • 의료 데이터 활용 확대
  • 혁신 신약 개발
  • 바이오와 타 산업 융합
  • 항노화 분야 개선
  • 아시아 통합 임상 주도권 확보를 위한 '바이오 원아시아' 이니셔티브 제안

## 전망

  • K바이오 산업 규모가 2034년 244조원으로 성장해 반도체 산업(24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
정치권과 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K바이오 산업 육성에 대한 지지와 협력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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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결과물은 총 15개의 참고자료를 제시하였고, 그 중에서 매일경제의 정식 기사에 해당하는 것만 정리하면 다음의 3개이다.

이 행사와 관련한 모든 기획기사 모음은 여기에 있다. 2026년이 되어 제36차 국민보고대회가 열리면 이 목록은 또 바뀌게 될 것이다.

바이오 산업의 혁신 및 데이터 개방과 활용에 관한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요즘 분위기로 보아서는 적절한 시기에 만들어진 행사라고 생각한다. 특히 의료데이터를 활용한 세계 최초의 바이오(데이터)거래소 구축에 관한 제안(링크)는 검토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각기 성격은 다르지만, 이미 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이나 K-CURE 및 이제 막 발자국을 뗀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사업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 데이터를 가져다 쓰는 것이 어렵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날 행사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발표용 자료를 입수하여 음미하다가 서론 부분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하였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아마존을 떠나 항노화 벤처기업에 투자하면서 "생명체가 죽음을 피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율적인 존재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정말로 이런 말을 했을까? 정식 기고문이나 인터뷰 등에서 한 말일까?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일까? 나는 지난해 말에 왜 측정해야 하는가? 아니, 측정을 정말 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통해서 유명인이 한 말이 잘못 전파되는 사례를 언급한 일이 있다. 악의적인 용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정보 과잉 시대에는 잘못된 정보가 많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많기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 그러면 제프 베이조스가 했다는 말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 챗GPT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챗GPT의 첫 대답은 2024년 월 스트리트 저널 기사에 실려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알려준 URL로 접속해 보니 '404 not found'였다. 챗GPT에게 재차 물었다.

이 URL에 접근하니 "404 not found"라고 나옵니다. 더욱 정확한 결과를 알려 주세요.

챗GPT는 이 링크가 현재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 URL이 정말로 존재한 일이 있었는지 약간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챗GPT의 대답은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끝났다.



나는 "좋습니다. 마지막에 제안한 대로 다시 검색해 주세요."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번에는 2024년 3월 게시된 Business Insider 기사를 알려 주었는데, 이것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의 맥락과 요약을 다음과 같이 천연덕스럽게 제시해 주었다.


도대체 챗GPT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 것일까? 현재 존재하는 출처에서 직접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가능한 시나리오는 '잘못 인용된 출처, 삭제되었거나 비곡개 전환된 기사, AI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 허위 발언'일 것이라고 하였다. 

베이조스가 했을지도 모르는 발언인 'If a living being doesn't actively work to avoid death, it's not automonous.'라는 문장을 그대로 구글 검색창에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비로소 진실에 근접해 나갈 수 있었다. 이 말은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떠나면서 투자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CEO 연례 서한('2020 Letter to Shareholders')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작성은 2020년에 한 것이니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공지능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베이조스는 이 편지의 'Differentiation is Survival and the Universe Wants You to be Typical"이라는 제목의 섹션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를 인용하였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것은 생물학의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덧붙이면서.

“Staving off death is a thing that you have to work at. Left to itself – and that is what it is when it dies – the body tends to revert to a state of equilibrium with its environment. If you measure some quantity such as the temperature, the acidity, the water content or the electrical potential in a living body, you will typically find that it is markedly different from the corresponding measure in the surroundings. Our bodies, for instance, are usually hotter than our surroundings, and in cold climates they have to work hard to maintain the differential. When we die the work stops, the temperature differential starts to disappear, and we end up the same temperature as our surroundings. Not all animals work so hard to avoid coming into equilibrium with their surrounding temperature, but all animals do some comparable work. For instance, in a dry country, animals and plants work to maintain the fluid content of their cells, work against a natural tendency for water to flow from them into the dry outside world. If they fail they die. More generally, if living things didn’t work actively to prevent it, they would eventually merge into their surroundings, and cease to exist as autonomous beings. That is what happens when they die.”

이 글에 대한 챗GPT의 국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죽음을 막아내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그저 내버려 두면—그리고 그 상태가 바로 죽음인데—몸은 주변 환경과 평형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온도, 산도, 수분 함량, 전위차 같은 어떤 수치를 측정해보면, 살아 있는 몸에서는 주변 환경과 뚜렷하게 다른 값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의 몸은 일반적으로 주변보다 더 따뜻하며, 추운 기후에서는 이 온도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우리가 죽으면 이러한 '작업'은 멈추고, 온도 차이는 사라지기 시작하며, 결국 우리는 주변과 같은 온도가 된다. 모든 동물이 주변 온도와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애쓰는 건 아니지만, 모든 동물은 이와 유사한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건조한 지역에 사는 동물과 식물은 세포 속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는 물이 자연스럽게 마른 외부 환경으로 빠져나가려는 경향에 맞서는 일이다. 이 노력이 실패하면 생명체는 죽는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살아 있는 존재가 이러한 변화에 맞서 적극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주변 환경과 하나로 섞이게 되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 이것이 바로 죽음일 때 일어나는 일이다."

편지 원문에서 이 인용문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베이조스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러하다. 도킨스의 글이 비록 은유(metaphor)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이 내용이 모든 기업과 조직 및 각자의 삶에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비록 많은 노력(에너지)이 든다 하더라도 당신이 평범해지도록 수천 가지 방식으로 끌어당기는 세상에 순응하지 말고 당신의 독창성(특별함)을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생명체의 당연한 속성이기도 하다. 이 글은 딱히 노화에 저항하라는 의미로 쓴 글도 아니고, (더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항노화 기업 투자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 말도 아닌 것이다. 

편지 원문을 제대로 인용한 CNBC의 기사 제목은... Jeff Bexos in his final letter as Amazon CEO: 'The world wants you to be typical. Don't let it happen'(링크). 이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웹브라우저에서 광고차단기를 거둬 내야 한다. 오늘 쓴 글의 제목을 뽑으라면 아무런 주저함 없이 이 기사의 제목을 선택하리라.

오늘의 글은 매일경제의 행사의 성격이나 약간은 기대 이하였던 챗GPT의 정보 처리 능력을 에둘러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인용문을 쓰려면 원래의 맥락을 되새기면서 정확하게 옮기고, 나의 인용 의도 및 (재)해석이 원본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면 이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2025년 3월 19일 수요일

[KORG X2 Self-Repair] 분해할 결심, 수리할 결심

올해 상반기에는 Korg X2 Music Workstation의 택트 스위치를 고체하기로 드디어 결심하였다. 별도로 운영하는 위키 사이트에 My old synths and MIDI라는 문서를 새로 만들고 자가 수리 및 설정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는 X2/X3에 관한 정보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나도 충분히 정보를 수집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Korg X3 Connection이라는 값진 웹사이트는 2002년 9월 21일이 마지막 업데이트였다. 만약 이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Ludovic Grossard가 이를 완전히 내리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정말 곤란할 것이다. Korg X2/X3보다 앞서 나온 01/W의 수리에 관해 정말 풍부한 정보가 담긴 웹사이트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일부는 X2/X3에도 적용 가능한 정보였는데, 이제는 이 웹사이트가 보이지 않는다. 

2025년 3월 19일 촬영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X2를 가져다가 전원을 넣고 소리를 들어 보았다. 셋업이 지워지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내장 CR2032 배터리는 잘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헤드폰 출력에서 '쉿-'하는 잡음이 심하고, 출력 단자(6.35 mm TS) 중 R 채널은 유격이 심하고 케이블을 건드려 줘야만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PCB에서 납땜이 떨어진 것 같다. 생각보다 손을 볼 곳이 많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마스터 키보드로서의 동작은 완벽하였다. 

X2의 동작 확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예전에 오디오 파일로 녹음해 놓은 데모곡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과거 X2를 몇 차례 자가수리하면서 뒷판을 열기 위해 풀어 놓은 스크류의 규격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고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재조립 시 맞는 구멍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대충 돌려서 끼워 넣었는데, 그 과정에서 본체의 나삿니가 망가진 것도 있을 것이다. 어제 비로소 서비스 매뉴얼 파일을 펼쳐 보았더니 3x8 스크류와 4x10 스크류를 정확히 구분해서 제 위치에 박아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수리를 하게 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출처: X3 service manual.

그동안의 DIY 경험이 적지 않으니 커넥터의 납땜을 보수하거나, 택트 스위치를 교체하는 정도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프리셋 설정을 SysEx로 덤프하여 파일로 받은 것이 있고, 이를 MIDI를 통해 다시 X2로 보내는 것도 이미 해 보았다. 이를 위한 MIDI-Ox 프로그램이 Windows 11에서 잘 작동할런지는 미지수. 하지만 리눅스 PC에서 MIDI 데이터나 SysEx를 다룰 수 있는 유틸리티가 있으니 별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교체를 위한 부품을 IC114에 주문하였다. 접촉불량 택트 스위치를 교체하였을 때의 상쾌함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Floppy emulator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비용이 많이 드는 수리라서 아직은 뒷조사만 열심히 하고 있다. 플로피 디스크나 MIDI 케이블을 통해 전송되는 데이터 및 파일에 대해서 충분히 공부한 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착수할 일이다. 가끔 Killer Organ 소리가 듣고 싶을 때, MIDI로 설정을 전송하는 것보다 더 쉽게 할 수 있다면 투자를 해 봄직하다. 

2025년 3월 16일 일요일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서울에서 약 1만 보 넘게 걸으며 돌아다니다가 대전에 돌아왔다. 좀 피곤했지만 달리기를 빼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기록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속도는 느리지만 거리 목표를 평소와 같이 7.2 km로 맞추었으니 달린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났다. 페이스는 6분 35초였다. 3월의 6회차 달리기 중에서는 가장 느렸다.

그랬더니...


'최장 시간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오늘은 왜 이렇게 천천히 달리셨나요'라고 실망을 안기는 메시지를 들을 줄 알았는데 오래 달렸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기록의 측면을 페이스(속도)가 아니라 달린 시간으로 평가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발상을 아주 약간 전환하여 달리는 사람의 의욕을 북돋을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최장 시간 신기록 어워드를 보고 있노라니 조만간 50분 지속 달리기를 일상으로 해야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8 km를 50분에 달린다면 페이스는 6분 15초에 해당한다. 이는 여름이 지나야 겨우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와이, 캐나다, 그리고 대한민국

주말, 광화문 인근은 아침부터 시위 준비로 분주하다. 의자를 배치하고, 커피를 나누어 주거나 시위용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장터를 보는 듯하다. 이윽고 대로변은 주차 중인 전세 버스로 가득해지고,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면서 선동적인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진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광장으로부터 수백 미터만 벗어나면 평온한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이 차분하게 오간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광장에서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들(좌든 우든)에게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모든 것이 어서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자는 발언을 해서 큰 물의를 불러 일으켰다.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는 말이지만, 캐나다 국민들은 이에 대해 얼마나 불쾌했겠는가. 잠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광장의 절반을 메운 사람들은 늘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들고 나온다. 왜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캐나다처럼 미국과 국경 전체를 마주하고 있지도 않고, 대미 교역량 역시 캐나다의 약 1/4 수준이다. 미국에게 우리는 몇 개의 중요한 나라 중 그저 하나일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게 만드는 것은 당장은 외교의 몫이겠지만, 나라 전체가 상식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거리 시위 때마다 성조기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민주정부 수립 과정과 6·25 전쟁 참전 등 우리 현대사에 미친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나 크고 고마워서? '공산화'의 위협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니 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태극기부대에 미국은 동맹국 이상의 의미이자, 이상향(ideal)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성조기는 시위대가 현재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넓은 의미의 문화적 정신적 질서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태극기부대 일원인 70대 남성의 “트럼프가 한국을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는 데 도움을 주기 바란다”는 말도 소개했다. 미국을 ‘기독교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 신성한 수호자’로 여기는 이런 태도는 특정 교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한국일보에 실린 글이다('태극기 부대가 성조기를 든 이유', 링크).

거리의 함성이 가깝게 들리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성환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링크)을 둘러보았다. 전시의 일환으로서 드류 브로데릭이 기획한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를 발췌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다. 하와이 트리엔날레는 하와이의 전통과 문화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예술 축제로서 매 3년마다 개최된다(Copilot 설명). 이 영상물을 통해 하와이가 어떻게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는지, 휴양지라는 이미지 뒤에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는 어떻게 소외되고 자본의 그늘의 가려 하류층 시민으로 전락하였는지, 그리고 전세계 천문학자들이 '천문학의 성지' 하와이에 앞다투어 설치한 고성능 망원경이 그들의 신성한 산('마우나 케아')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등 평소에 관심을 잘 두지 않았던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특히 천문대 건립을 둘러싸고 지역 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기에 이에 대한 2019년 보도를 찾아 링크를 남겨 둔다.

화가 강명희의 초기작. 전시 안내 및 언론 기사.

뮤지엄샵에서.

다음주에는 혼란한 상황이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2025년 3월 11일 화요일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나도 7.2 km를 달렸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있다가 자세를 바꾸는데 갑자기 오른쪽 무릎에서 '뚝'하는 소리가 났다. 나의 관절에서 나는 소리 중에서 가장 데시벨이 큰 소리였다. 뭐가 부러졌나? 잠시 뒤에 자세를 바꾸는데 또 소리가 났다.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달리기 8개월차에 드디어 나도 부상인가... 첫 달에 오른발 엄지발톱 밑에 피가 고였다가 아물면서 발톱이 들뜬 상태이고, 가끔 무릎이 뻑적지근하게 느껴지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반원상연골이 파열된 것일까? 운동 중도 아니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쉬다가 이런 일이 생기기는 어렵다. 일어나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았다. 무릎에서는 아무런 통증이 없다. 관절에서 나는 '딱' 또는 '뚝'소리는 기포가 생겨서 터지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아프지 않으니 부상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운동복을 챙겼다.

그리하여 3월 네 번째 저녁 달리기를 하러 집을 나섰다. 기온은 영상 8도라서 조금만 뛰면 덥게 느껴진다. 3월부터는 7.2 km씩을 달린다. 일주일에 한 번은 8 km를 달려 보고 싶었던 것이 2월의 당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7 km 대를 무난히 달리는 체력을 충분히 쌓은 뒤 8 km로 거리를 늘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 번 달리는 동안 기록이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4월까지의 목표는 6분 15초 페이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6분 이내의 페이스로 들어갈 것 같다. 




이번 달리기에서는 후반부에서 속도가 느려지지 않도록 꽤나 노력을 했다. 달리기를 마친 직후,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까지 무릎과 다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릎에서 유별나게 큰 소리가 난 것에 대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2025년 3월 9일 일요일

와이다이(WiDi)? 미라캐스트(Miracast)?

TV에 75옴 동축 케이블, 즉 안테나로부터 오는 선을 연결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던 시절은 정말로 모든 것이 단순하였다. VTR이 나오면서 세 가지 색깔의 RCA 단자가 나오더니 이어서 셋톱박스가 나오고 급기야 현재 통용되는 HDMI까지...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TV 설치와 작동에 대한 내 지식은 옅어져 가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출장이나 여행을 갔을 때 숙박업소에 비치된 TV와 관련한 리모콘이 두 개일 경우에는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심각한 기계치인 것은 아니다. 다만 TV와 관련한 최신 기술을 따라잡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TV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결합되어 온갖 복잡한 서비스를 누리는 세상이 아닌가. LG전자에서는 가전위키 TV편을 통해서 TV와 관련된 기술을 매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으니 앞으로 TV를 새로 구입할 일이 있으면 여기를 참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늘 최신 기술을 갈구하는 얼리 어댑터에게는 이 위키 페이지의 정보가 매우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이 브라운관 TV에 이별을 고하고 처음 구입한 평판 디스플레이 TV는 47인치(119 cm) 디스플레이를 갖는 LG 47LD662이다. 이 제품의 최대 해상도는 Full HD(1920 x1080)라서 아직 넷플릭스 등을 재생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수준이다. 2011년 구입 직후 수리가 불가능한 고장이 발생하여 새 제품으로 교체한 뒤 지금껏 써 왔다. 파견 근무를 나간 총 3년 반의 기간 동안은 켜지 않았으니 14년 내내 쓴 것은 아니다.





작년 쯤부터 이 TV가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같다. 처음에는 1세대 크롬캐스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TV가 제대로 신호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래 사진에 보였듯이 커넥터 부분이 무엇인가에 눌려서 꺾이는 바람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본 것이다. 


크롬캐스트 역시 오래 된 물건이라서 이를 대체할 것을 찾아야만 했다. 서두에 TV 관련 기술에 대해 내가 잘 모른다고 쓴 것은 바로 이 상황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장치를 뭐라고 부르는지도 몰랐으니까. 크롬캐스트는 4세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재고를 소진할 때까지는 계속 판매를 하겠지만, 이제는 가격도 훨씬 비싼 '구글 TV 스트리머'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관련 소식 링크). 구글 TV 스트리머는 셋톱박스 유사한 것과 리모콘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전의 크롬캐스트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구입하기 위해 쿠팡을 뒤져보다가 유난히 가격이 싼 것을 발견하여 점심 한 끼 먹은 셈으로 치고 주문을 하였다. D-Link라는 기업의 'MAINSTAGE' TV 어댑터인 DHD-131이라는 것이었다. 너무 오래된 물건을 싸게 처분하는 것임을 진작에 눈치챘어야 하는 것인데... 매뉴얼 인쇄일은 우리집 TV와 같은 2011년 4월! 이 제품이 쿠팡에서 '미라캐스트 동글'을 입력했을 때 상위에 오르는 신비한 알고리즘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와이다이(Wi-Di)는 무엇인가? WIDI라고 쓰면 블루투스를 통한 무선 MIDI 데이터 전송 기술이니 혼동을 해서는 안된다. WiDi는 인텔이 만든 기술로서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의 화면을 TV나 프로젝터에 무선으로 미러링(전송)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러나 미라캐스트(Miracast)라는 오픈 표준 기술이 나오면서 경쟁력을 잃어서 이미 2015년에 인텔은 지원을 종료하였고 지금은 미라캐스트에 자리를 내 주었다고 한다. 가장 훌륭한 무선 캐스팅은 Wi-Fi 공유기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완벽한 기기 대 기기 무선 연결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지금 여기까지는 상용화된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미라캐스트 동글'을 주문하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물건은 Windows 11이나 최신 스마트폰(갤럭시의 경우 'Smart View')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기술이 나와도 당분간은 하위 호환성을 지켜 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테스트 중인 TV는 LG 47LD662.

스마트폰의 화면을 캐스트하면서 '카메라'앱을 켠 장면. TV in TV? 이것은 LG의 제품이 아니라 인켈 브랜드의 32E4000이다(2018년 9월 제조). 수도권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기간 동안 쓰기 위해 서둘러 구입했던 것이다. 매우 가벼운 제품이라 집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쓰기 좋다.


몇 대의 TV를 번갈아 가면서 테스트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종합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 우리집 크롬캐스트 1세대는 정상이다.
  • 우리집 LG TV의 HDMI 단자 3개 중에서 2개는 불량이다.
  • 무슨 이유인지 우리집 네트워크 환경에서는 디즈니+의 캐스팅이 잘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서 재생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DHD-131은 TV를 바꾸어 연결하면 작동이 잘 되지 않는다. 뒷면의 리세트 버튼을 눌러서 기존의 프로파일을 삭제해야 되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연구를 좀 더 해 봐야 한다.
  • Windows 11 노트북 컴퓨터의 화면을 DHD-131를 경유하여 TV로 보내는 것은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 [Windows + K] 단축기를 누른다는 것만 일단 암기해 두었다.

크롬캐스트 1세대와 달리 DHD-131(WiDi)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그대로 TV로 보내주는 점이 편리하였다. 처음에 테스트를 할 때에는 매번 화면에 나타나는 PIN 번호를 넣어야 하고, 전체화면을 맞추는 법을 몰라서 약간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다음에 새 TV를 살 때에는 아마도 인터넷 기능이 일체화된 스마트 TV를 주문하게 될 것 같다. 화면은 얼마나 큰 것으로 해야 될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가벼움이 장점인 32E4000의 활용 방안. Apple TV+에 가입하여 파친코 시즌 2를 보는 모습이다. 이 드라마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의 글을 쓸 계획이다. 





2025년 3월 4일 화요일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경상남도 상주시에 출장을 가서 상주보 부근 경천섬이 바라보이는 곳을 차를 몰고 지나치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어떤 편액을 만나게 되었다. 흔히 '현판'이라는 낱말을 쓰고는 하는데, 현판은 나무판이나 종이 등에 글씨를 써서 거는 액자류를 통틀어 일컫는다. 건물의 이름을 써서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거는 목판은 편액이라고 부른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진 그것은 바로 입덕문(入德門)!




이곳은 선조 때 세워진 서원인 도남서원이다. 입덕문을 통과하면 성인의 덕을 배우게 된다는 뜻에서 이런 편액을 흔히 달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약간 덜 진지하게 말하자면 '입덕'이란 대중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을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1970년대 일본에 등장한 신조어인 '오타쿠'가 한국에서는 '오덕후', '덕후'로 바뀌더니, 이 세계에 들어서는 것을 '입덕'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입덕의 대상은 주로 만화책, 애니메이션, 피규어 등이다. 하지만 대상을 한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악기 연습이나 녹음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것도 '입덕'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다양한 분야로 입덕을 거치고 있다. 2월 초에 있었던 공연 때문에 잠시 손을 놓았던 진공관 앰프 개조 작업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현재 나의 최우선 덕질 대상은 달리기일까? 경북 여행을 겸한 2박3일 동안 달리기를 하지 못하였다. 날씨가 매우 나빴고 낯선 곳이라 코스를 새로 짜기도 어려웠던 탓도 있지만, 왼쪽 무릎이 보내는 '좀 쉬고 싶다'는 신호를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웠다. 

오늘은 거리에 연연하지 말고 가볍게 뛰어 보겠다. 

밤 10시 5분, 달리기를 마쳤다. 기온은 영상 4도. 7 km / 45분 22초 / 6분 28초의 페이스. 런데이 앱에서 몇 개의 배지를 받았다.

이보다 7 km 기록이 더 좋은 날이 많이 있었는데 왜 오늘 신기록 배지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2박3일에 걸쳐 대전에서 상주로 가기

부석사, 소수서원, 도산서원, 하회마을. 지난 이틀 동안 들른 곳이다. 긴 우회로를 거쳐 오늘(3월 3일) 저녁에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상주에 도착하였다.

부석사 석등과 무량수전.



아내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앉았다.

영주 소수서원 입구에서.





상상외로 거대했던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임금이 내려 준 '도산서원'이란 이름을 명필 한석봉이 선조 앞에서 직접 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내부에는 '전교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도산서원 앞마당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면 기묘하게 생긴 둔덕이 있다. 이는 시사단(試士壇)이라고 부른다. 정조때 퇴계 이황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서 과거 시험을 치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작은 건축물인데, 안동댐이 만들어지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약 10미터 높이의 언덕을 만들어 그 위로 옮겼다고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밟으며 퇴계 이황의 묘소에 들렀다.



이름도, 벼슬도 새겨져 있지 않은 묘비의 한가운데 새겨진 글은 
'퇴도만은 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퇴도는 퇴계가 쓰던 호의 하나이고, 만은은 늦게 은거했다는 뜻이다. 진성은 본관. 좌측에 새겨진 글은 퇴계가 생전에 직접 지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여기를 참고하라.

성리학, 또는 유학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부르짖는 바는 무엇일까? 어제 영주의 소수서원과 선비촌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시작된 골치아픈 물음은 여행 이틀째 더욱 내 머릿속을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볼거리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눈과 입을 자극하는 여행이 아니라 관념을 뒤흔들며 질문을 던지는 여행이 되었다.

나는 유학 또는 유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제대로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자 공부부터 시작해야 할까? 같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차라리 한자보다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더 나을까?

한국고전번역원 -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유교와 유학

명종의 어필 편액. 이로써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3월 2일에 방문하였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이육사 문학관(안타깝게도 오늘은 휴관일...)에서 바라본 풍광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 폭의 수묵화로 표현한 겨울 산을 보는 듯하였다.

옥빛으로 빚나며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물. 여기는 하회 옥연 구곡이다. 물 저편으로 보이는 것이 조금 뒤에 오를 부용대이다. 바위 색깔도 예사롭지 않았다. 안동의 '지질학'이 궁금하다.


부용대에 올라 바라본 하회마을. 여행 이틀째의 마지막 코스였다. 여기를 오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선비란 무엇인가? 학식과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아직 벼슬에 오르지 않은 '양반'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선비 정신을 현대에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려면, 신분에 의한 진입 장벽이 분명히 존재했던 과거의 기준을 털어 내야 한다고 믿는다. 양인(양반, 중인, 상민)뿐만 아니라 비록 노비로서 생존을 위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도 고매한 인격을 갖추고 있으며 시간을 내어 학문에 힘쓰고 있다면 선비라 불러 마땅하다.

조선시대에는 벼슬살이를 하는 것이 선비의 완성이었다. 모욕을 참으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권력자를 만나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는 것도 그러한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나의 신념과는 잘 맞지 않는다. 옳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노동을 천시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부과된 의무를 회피하지 않으며(서원은 세금과 병역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된 것으로 알고 있음) 권력 지향적인 자세를 과감히 버릴 때, 그러한 선비 정신이라면 현대에도 계승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