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1일 목요일

바쁜 5월을 마무리하며

논문 작성과 워크숍 발표 준비로 바쁜 5월을 보냈다. (주)엠디엑스케이에서 개최한 PacBio User Group Meeting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경험한 PacBio RS II 기반 유전체 해독 사례를 총정리하고, 최근에 공개된 software tool을 적용하여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발표할 주제에 대한 배경 설명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보통 주어지는 30분의 발표 시간이 늘 부족하다.


외부에서 부탁을 받는 강연은 내가 콘트롤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쁜 일정을 쪼개어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내가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 기한만 채우면 되는(혹은 쪽수만 채우면 되는) 보고서
  • 참석자 수만 채우면 되는 회의(또는 행사)
  • 결론을 내리지 않고 끝나는 회의
  •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하는 회의
  • 순서에 따라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정해진 시간에 끝나는 패널 토론
  • 행사의 무게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행사 시작 부분에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행위
  • 행사 자체에는 참여하지 않고 행사장 주변에서 와글거리는 사람들
모두 본질은 외면하고 형식과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낸다. 연구도 그런 것 같다. 이번 PacBio UGM에서는 문화와 관련하여 평소에 슬라이드로만 비추었던 나의 주장을 인쇄물로 남기기에 이르렀다. 핵심 슬라이드 두 매를 블로그에도 소개하고자 한다. 혹시 인터넷에서 아래의 같은 글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내 슬라이드를 누군가 도용한 것이다. 행사를 주관한 회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일 수도 있다.


이러한 비난에서 나 역시 벗어날 수는 없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것들이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개인으로서의 책임,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일, 지역사회나 국가가 제공해야 할 일 등이 돈을 내고 사는 서비스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이제 연구라고 하는 영역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시대가 되었다. 논문을 보고, 동료와 토론을 하고, 잘 안되는 것은 다시 실험을 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과정이 이제는 돈을 주고 소비자의 입장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상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갑'의 입장이 되어 연구 결과의 생산 과정을 콘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구매자(=연구자)에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외형적으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여 포장된 결과를 가지고 나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과연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당하게 수행되었는지, 또한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으로 수행되었는지를 잘 따지지 않게 된다. 

연구 수행의 일부분, 즉 고도화된 장비를 표준 프로세스로 돌려서 일정 품질의 데이터를 얻어내는 규격화된 작업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은 일견 바람직하기도 하고 그 추세를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종 작업은 자신의 손을 통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 과제책임자는 또 누군가를 시켜서 일을 하겠지.

오케스트라를 꾸미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단원은 없고 전부 지휘자가 되고 싶은 꼴이라고나 할까. 월간중앙에 실렸던 이국종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해 본다(링크).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의사는 고단한 수술실에 잘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인정받는 자리에서 존경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 아래 의사들이 대리수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병원은 의사 한 명이 암 수술을 연간 1000건 넘게 한다고 홍보한다. 그게 자랑할 일인가? 그건 정상이 아니다... 최고 지휘관들이 폼 잡고 각 잡는데 신경 쓰지 말고 목숨 걸고 전장(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한다..우리나라는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가만히 앉아서 일 시키는 사람을 더 높이 쳐준다..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 단독 인터뷰] ‘국민의사’ 이국종이 의료계에 던지는 쓴소리
일을 시키는 원동력(돈 혹은 권력이고, 결국은 같은 것이다)을 갖고자 달려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야심만만 사람? 욕심 많은 사람? 그것을 향해 너무 내달릴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이 사회에 정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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