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4일 월요일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 영화 <검열자들>을 보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2018.5.3~12.)의 마지막날, 아내와 함께 일주일만에 다시 전주를 찾았다. 개막 직후였던 어린이날(지난 토요일)에는 거의 모든 관람권이 매진된 상태여서 영화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봐야만 했었다.



선택한 영화는 Has Block과 Moritz Rieswieck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검열자들(The Cleaners; JIFF 링크)>이었다. 필리핀 마닐라 도심의 복잡한 밤거리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면서 거의 즉각적으로 'Delete','Ignore'를 반복한다. 이들의 직업은 무엇인가?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유튜브 등에 올라오는 사진과 동영상들을 직접 검토하면서 부적절한 것을 제거하는 일이다. 이들이 하루에 검열하는 자료는 총 25,000건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개발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고달픈 검열 작업을 하지 않는다. 단지 지구 반대편의 값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곳에(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것도 큰 이유이리라) 용역을 주는 것이다. 이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생활을 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도 있고, 세상이 더 도덕적인 곳이 되기를 바라는 신념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content moderator')은 겨우 삼사일 정도의 교육을 받고 실무에 투입된다. 음란물, 폭력물, 잔혹물 등을 정해진 기준에 의해 재빨리 판단하여 1-2초 안에 삭제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풍자적인 예술가의 작품(예를 들어 성기를 노출한 트럼프의 누드 그림 - 물론 그 성기의 크기는 매우 작다!)이나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의 실상을 전하는 정보, 그리고 다소 충격적이라서 일간지에는 직접 싣기 어렵지만 중요한 사건을 전달하는 사진들이 삭제된다. 하루종일 이런 정보를 보면서 일을 하는 검열자들의 정신건강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한 몇 명은 일을 그만 둔 상태에서 촬영에 임하였다. 자살과 관련한 동영상을 너무 많이 접한 검열자는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지 않았다. 동료가 집에 찾아가 보니 이미 목을 맨 상태였다.

아동 포르노, 자살 동영상, ISIS의 참수 동영상, 폭탄 제조법, 테러와 관련된 정보 등은 없애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의 한 사례를 보자. 한 단체에서는 민간인 지역에 벌어진 공습의 피해를 지리 정보와 함께 올려서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검열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동영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삭제하게 된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이 영상을 업로드한 의도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터키는 최근 언론 통제를 강화하면서 Social Network Service 제공자에게 자국 정부에 대한 불리한 정보를 수록한 사이트를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것은 결국 그 나라에서의 비즈니스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 요청을 수락하고 만다. 나중에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이를 거부한 사례가 있는지 물어보니 구글에서는 그러한 요청사항이 있었고 거절하였음을 별도로 공지한다고 하였다.

인종 간 혐오를 부추기는 가짜 뉴스 사태(미얀마), 범죄자에 대한 비인권적·초법적인 대처로 논란에 있는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가짜 저널리즘을 통해 인기를 얻는 연예인(필리핀) 등 영화에서는 Social Media가 어떻게 악용되는지, 그리고 이를 개발한 사람들은 단지 기술은 중립적인 것이라며 어떻게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영화에 삽입된 마크 저커버그의 강연 모습을 보자. 서로를 하나씩, 하나씩 연결하여 세상을 바꾸어 나가겠다고. 그들은 기술을 제공했을 뿐이고, 결국 모든 책임은 정보를 업로드한 개인이 지라는 태도가 역력하다. 검열 작업을 필리핀에 아웃소싱한 것은 그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이다.

영화 상영을 마친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나도 질문을 던졌다.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업로드하고 공유하면서 풍부한 정보 속에 세상은 더욱 자유롭고 민주적인 곳이 될 것이라는 순진한(?) 상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람은 늘 존재한다. Social Network Service를 제공하는 사람은 결국 사람들이 많이 클릭하여 보는 것,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는 정보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바로 광고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정보 특히 잘못된 여론을 만들 목적으로 올리는 정보에 대해서는 차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일을 누가 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 더욱 발달하여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서도 자동적인 차단 또는 삭제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앞뒤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은 아직까지는 인간이 더 나은 것 같다. 그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생각해 보라. 기술은 너무나 빠르게 발달하는데 반하여 이것이 사회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이 일단 감정과 '악의', 그리고 숨은 의도를 쏟아내기에 너무나 바쁘다. 

약간은 다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드루킹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이 무엇을 검색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그리고 왜 키보드 위에서는 그렇게 무례해지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이나 생각을 자기만의 범주에 가두어서 혐오를 부추기는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무거운 영화였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끊임없이 캐고 물어보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아닐까? 비록 해법은 우리가 만들어야 하겠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바로 해결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를 추억할 사진 두 장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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