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0일 화요일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

열흘에 이르는 긴 연휴를 보내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주변 나들이를 한 것 말고는 지적(知的)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책은 거의 읽지 않았고 글씨도 전혀 쓰지 않았다. 몇 편의 영화를 본 것은 그저 시간 때움에 불과하다. 극장에서는 킹스맨: 골든 서클을 보았고 넷플릭스로는 배트맨 비긴즈, 맨 오브 스틸, 세렌디피티,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았다. 바로 어제 보았던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저 심각한 갈등이 포함된 드라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 이름이 제목이었던 영화 <선셋 대로>를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긴 기간을 푹 쉬고 있으려니 당연히 블로깅도 게을리하였다. 다시 무엇인가를 써야 하겠다는 생각에 앞어서 나는 왜 블로그를 운영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 보았다. 연재소설 작가처럼 새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이를 통해서 개인 홍보를 하거나 수익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샘물이 흐르듯, 업무와 일상 생활을 하면서 자연적으로 넘쳐나는 생각과 정보,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구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으니, 인터넷 공간은 일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항이 지나치게 공개되면 본의아니게 피해를 당할 수도 있고, 이를 읽는 다른 사람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한 화풀이를 고발 정신과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인 차원 혹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충분히 자정작용이 일어나서 개선될 수 있을 문제를 너무나 쉽게 공론화를 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사회적인 피로를 불러 일으킨다. 예를 들어서 여러 형태의 갑질 논쟁이 있다. 손님은 손님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갑질을 하는 '진상' 손님 혹은 어처구니없는 영업주를 공개하여 비난하기에 바쁘다. 거래 관계로 얽힌 경우 자신이 지불한 요금에 대한 정당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업주 또는 다양한 형태의 감정 노동자 역시 자신의 억울함을 정당하게 호소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가다가 만난 사람, 아파트 주자장에 삐딱하게 차를 세운 사람, 식당에서 만난 옆자리의 불쾌한 손님 등 고발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다들 분노의 대상을 찾아서 칼을 갈고 있는 것처럼 매섭기만 하다.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고발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인지, 단지 나쁜 감정(특히 혐오)을 쏟아붓는 쓰레기통인지 요즘은 알 수가 없다.

이런 글들이 주로 올라오는 커뮤니티 사이트는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바깥 세상에 어떤 일들이 돌아가는지 알아보겠다는 핑계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글들에 대해서 가벼운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과 철학을 갖고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어제는 은행동에 나갔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존 스토셀의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리디북스 무료요약)를 만지작거리다가 말았다. 촛불혁명에 의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가 나서서 많은 일들을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요즈음 생뚱맞게 작은 정부 옹호론이라니. 물론 이러한 시각에 내가 찬성한다는 것은 아니며, 정부가 나서서 모든 일을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알아보고 싶은 것에 다름아니다. 아마도 곧 책을 구입하게 될 것만 같다.

마침 2017년 노벨 경제학상(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은 <넛지(nudge)-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의 공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 시카고대의 리처드 H. 탈러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고전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아무리 그런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결과는 기대한 것과 영 딴판으로 나올 수도 있다. 정부가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것도 이와 어느 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좋은 지도자가 나와서 단칼에 모든 문제(적폐?)를 청산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어쩌면 영원한 신화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정부가 나서서 뭘 해도 어차피 잘 안되기 마련이니 그냥 자유롭게 놔두라는 것은 더욱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