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1일 화요일

공동연구와 인력양성 사이에서

나는 컴퓨터로만 일을 하는 생물학자이다. 그러면 생명정보학(bioinformatics) 전공자인가? 그건 아니다. 내가 공부를 하던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과목이나 연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필요에 의해서 리눅스와 Perl을 조금씩 익혀서 쓰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손에 물 묻히는' 실험은 완전히 접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굳이 명함을 내밀어 보라고 한다면 (microbial) genomics 연구를 현재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현재 나는 실험연구를 하는 많은 선후배 및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과 공동연구 거리를 구해서 나름대로 재미나게 1인 기업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수행하는 연구 과제의 울타리와 연구소의 센터 조직 내에 들어 있으나 자율성을 갖고서 일을 하는 위치에 있다.

실험연구를 하는 사람이 직접 하기 어려운 '약간의 기술'을 갖고 있기에 종종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하고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베풀수 있는 우위적인 위치에 있음을 뜻함은 절대 아니다. 이미 나는 실험에서 손을 놓은지 꽤 오래되었고, 실험 연구자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이나 문제해결 능력을 이제는 따라잡기 어려움을 잘 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이를 채우면서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대학원 학생에서 연구원, PI(Principal Investigator) 등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동안은 선의에 바탕하여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는 편이었다. 나는 정부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기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따라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찾아가서 공동연구를 제안하기도 한다. 내가 필요한 비용을 대면서까지!

공동연구란 무엇일까?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참여자들이 연구 과정에 필요한 뭔가를 내어놓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만이 갖고 있는 기술일 수도 있고, 내가 활용하는 연구조원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연구비만을 내놓을 수도 있다. 만약 연구의 '원재료'만을 내어놓는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예를 들어 정말 기가막힌 특성을 갖는 균주를 가진 연구자가 있다고 하자. 유전체나 전사체를 해독해서 그 특성을 설명하고 가치를 더욱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이런 기술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그 기술을 발휘하려면 돈이 든다. 인건비가 될 수도 있고, 시퀀싱 비용일 수도 있다. 문제는 끝내주는 균주를 갖고 있는 것이 경쟁력이니 유전체 해독 비용 같은 것은 되도록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감당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가상의 시나리오이고, 내가 이런 경우를 아직까지는 겪은 적은 없다.

'사람 하나 보낼테니 (가르쳐서) 일 해 줘'

이건 공동연구가 아니다. 내가 일을 시킬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올바른 공동연구다. 물론 그 인력이 정말 숙달을 해서 연구에 크게 기여하게 될 날이 올 수 있다. 먼 안목에서 보면 이는 분명히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공동연구의 형태가 아니다. 공동연구와 트레이닝 부탁은 별개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학생이나 연구원이라면 반드시 책임있는 상급자를 통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할 생각이다. 매정해 보이지만 이것이 옳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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