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3일 토요일

버릴 줄 아는 용기

사무실 이전을 앞두고 오래 묵은 책들을 정리하였다. 90년대에 구입해서 한번도 열지 않은 전공 분야 서적. 대학교 2학년 때의 생화학 교과서, 3학년 때의 분자생물학 교과서. '알기쉬운 C언어' 등 전산 관련 교재... 훗날 유명한 사람이 되어 내가 쓰던 물건을 가지고 박물관을 차릴 일이 생긴다면 이 물건들이 의미가 있는 유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공간을 차지하는 쓸데 없는 물건들은 결국 비용이다. 자리를 옮길 때 비로소 버리게 되는 물건들이라면 진작에 버려도 되는 것들이다.

내 의지와는 큰 상관이 없이 사무실을 비교적 자주 옮기다 보니 되도록 지니고 다니는 짐을 줄이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생명과학 분야는 너무나 발전이 빠르기에 오래된 교과서는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 대학 교재 수준의 일반적인 지식은 위키피디아에 그득하고, 최근 지식은 논문이나 뉴스로 접하게 된다.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이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집에는 학위 논문의 원본과 당시 학술지에 투고했으나 떨어진 논문 원본 자료까지 보관되어 있다. 이것들에 대한 집착을 결연히 끊고 과감히 버리는 날이 와야 하지 않을까?

다음 대상은 무엇일까? 안쓰는 휴대폰, 필름 카메라와 렌즈들, 그리고 과거의 사진들일까? 한때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나는 어머니와 장모님이 이사를 가실 때 과거의 사진들을 큰 주저함 없이 버리시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음번 이사할 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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