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을 응급실에서 보내다

미술학원을 가야 하는 딸아이가 갑자기 목이 아프다며 제대로 몸을 가누기 어려워한다. 미대 입시를 위한 실기시험을 앞두고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드디어 몸에 탈이 난 모양이다. 학원에서 하루에 14시간 가깝도록 불편한 자세로 그림을 그리니 늘 목, 어깨, 허리의 통증을 호소해 왔었다. 게다가 유일한 휴식과 소통의 수단인 휴대폰은 또 얼마나 나쁜 자세를 유발하기 쉬운가. 차를 몰고 근처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올해 초 음력설 연휴가 시작될 즈음 딸아이는 깨진 향수병을 버리려고 넣어 둔 비닐봉지를 잘못 밟아서 발바닥 바깥쪽의 두터운 피부가 꽤 깊게 파여나가는 작은 부상을 입은 일이 있다. 서둘러 을지대학병 응급실을 찾아 피부를 꿰매는 작은 시술을 받았었다. 마취도 없이! 엄지손톱만하게 떨어져 나간 살 조각을 가지고 갔지만 이를 제자리에 붙일 수는 없다고 하였다. 아이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바느질(?)을 잘 견뎠다.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응급실 체계가 예전보다 많이 선진화되었다. 보호자는 한 사람씩만 입장이 허용되고,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증세에 따라 분류하고 진행 상황을 대기실에 있는 동반인에게 알리는 등 시장바닥같이 법석대는 모습은 거의 줄었다. 몇 차례의 국가적 outbreak를 겪으면서 감염 관리도 철저하다. 하지만 어제 저녁 외출을 했다가 사람이 꽉 찬 신분당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서 이동을 하니 감염병이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목과 어깨가 아픈 딸아이는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진통제와 수액을 맞고 있다고 아내가 대기실에 있는 나에게 전화로 알려왔다. 통증은 한층 가라앉았다고 했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비슷한 일을 겪은 일이 있다. 당시에 나쁜 자세로 이러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겠지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는 금세 회복이 되었었다. 

중년인 나나 성년이 된 딸이나 경추의 상태는 통증을 유발하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루 종일 목을 빼고 컴퓨터를 보거나 두 팔을 앞으로 빼고 휴대폰을 매만지는 자세가 결국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시선과 관심을 화면 바깥의 세상과 바로 곁의 사람에게 돌려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디자인 전공을 위한 대학 입시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 외형적으로는 일반 미대 입시와 비슷해 보이지만 문제의 형식도 많이 다르고 이를 전공으로 택하려는 수험생도 이전보다는 훨씬 많다. 이미 한 차례의 실패를 겪었는데 이번 기회는 어떤 결말을 가져다 줄지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어린 수험생들이 건강을 해치지 않고, 또한 좌절에 빠지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모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에는 개선된다고는 하지만, 2천명 가까운 수험생이 킨텍스에 모여 시장바딕같은 분위기에서 수시 실기시험을 치르게 하는 서울대학교 미대의 정책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다.

119 구급대가 한 차례 왔다 가고,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환자들이 계속 휴일의 응급실을 찾는다. 모두 쾌차하시길.

2019년 12월 22일 일요일

린지 폴락(Linsey Pollak)의 DIY 관악기

색소폰용 마우스피스에 구멍을 뚫은 파이프를 연결하면 클라리넷류의 목관악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라이온 향기따라' 블로그에서 린지 폴락이라는 사람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클라리니Clarini 링크). 린지 폴락은 호주 출신의 음악가이자 악기 제조가이며 발명가로서 2003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KBS 뉴스 링크). 색소폰 마우스피스를 쓰면서 왜 클라리넷이라고 부르는 것이냐고 따지지는 말자.

당근 클라리넷 만드는 법. 출처: https://www.linseypollak.com/instruments/

그의 웹사이트에 소개된 DIY 관악기 중에서는 Clarini(제작도면 PDF 파일)가 가장 현실성이 있다. 본체의 주료 재료인 irrigation riser pipe는 1/2 인치 ID(아마도 내경internal diameter) 15 mm라 하였는데, 아마 농자재를 취급하는 곳에서 농수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린지 폴락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Making a Paper Clarinet' 링크) 중에는 포장지를 말아서 만든 클라리넷도 있다.


동영상이 끝나는 부분에 설계도가 나오는데 위에서 소개한 Clarini의 치수와는 약간 다르다. 대단히 간단하다. eBook 'Make your own Mr. Curly & other Clarinets'(링크)를 구입하면 그가 개발한 악기의 더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Ammoon Pocket Sax의 알토 색소폰 마우스피스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출처: 'Making a Paper Clarinet' 링크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Ammoon의 8-hole LittleSax(B♭) 좀 더 알아보기 - 치명적 단점 발견!

악기에 딸려온 합성 리드를 케인 리드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은 소리를 나게 하는 방법임을 베노바를 통해 깨달았다. Ammoon LittleSax는 어떠한가? 리드가 무려 10개나 들어있지만 설명서를 보면 하나씩 테스트를 해 보고 가장 소리가 잘 나는 것을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하나씩을 번갈아 끼워서 불어 보았더니 두세개 정도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고, 소리가 매우 잘 나는 것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리드가 매우 단단하고 그 정도 역시 고르지 않아서 단번에 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동봉된 리드의 품질이 이렇게 좋지 않으니 리드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베노바를 위해 구입했던 것과 동일한 회사(AW-Reed GbR)의 알토 색소폰용 리드(2.5호)를 구입해 보았다. 구글에서 이 회사를 찾으니 폐업을 했다는 정보가 나온다. 그래서 비교적 싸게 리드가 팔리는 것일까? 회사 홈페이지(링크)에서는 폐업 여부를 알 수 없다.


Ammoon LittleSax에 포함된 순정 리드는 그야말로 복불복이었지만, AW의 것은 단번에 좋은 소리가 났다. 5개 들이 AW 리드의 가격은 할인된 가격으로 산 LittleSax의 그것에 거의 접근한다. 리드를 바꾸는 것 이상의 투자는 할 필요가 없다.

AL, AW의 알토 색소폰용 리드. AL', Ammoon에 기본 포함된 리드. SL, AW의 소프라노 색소폰용 리드. SL', 베노바에 기본 포함된 리드.

Ammoon 8-hole LittleSax(key B♭)의 미스테리는 공식 운지표에는 높은 E음을 어떻게 불어야 하는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의 사진을 보라. 위의 것은 key B♭, 아래 것은 key C 제품의 운지표이다. 오버톤으로 불어야 하는 높은 음(분홍색 배경)은 제품에 따라 운지가 다르다고는 하는데, 어째서 B♭ LittleSax 운지표에는 높은 D#(E♭)과 E를 부는 방법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비디오 튜토리얼에 혹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국어로 된 동영상 31개 중 어느 것에 그 방법이 소개되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몇 개를 클릭하여 열어보니 중요한 곳에는 영문 자막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첫 소리를 내는 단원에서는 아랫입술로 아랫니를 살짝 말아서 마우스피스를 무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다. C조 LittleSax 운지표에는 높은 E를 연주하는 운지법은 나오지만 희한하게도 D#(E♭)은 없다.


높은 E를 어떻게 부는가... 왼손 엄지로 막은 구멍을 살짝 열고 불었을 때 나는 소리는 E인가 F인가? 비디오 튜토리얼(31강 overtone skill) 및 C조 LittleSax의 운지법에는 이것이 E라고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F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지?

2019년 12월 22일 업데이트: 높은 D#(E♭)과 E는 연주 불능!(B♭ key 제품)

몇 음을 부는 방법이 운지표에 나오지 않는 문제를 LittlsSax 개발자인 He Linxian에게 이메일로 문의하였다. 그랬더니 즉시 답장이 왔는데,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이후에 개발된 C 키 버전에서는 이 문제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D#(E♭) 한 음을 불 수 없다고 한다, 두 음을 불 수 없는 것에 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음역대 거의 중간에 위치한 음 자체를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결함이 아니겠는가? 매뉴얼과 광고 어디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밝힌 곳은 없다. 불량품이 아니라 설계상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서른개가 넘는 실습용 동영상을 올릴 정도로 LittleSax의 저변 확대를 위해 들이는 He Linxian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높은 위치의 '미♭'와 '미'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가? 초등학생 교재용 소프라노 리코더도 이렇지는 않다.

할인된 가격에 산 것은 다행이지만, 추가로 비용을 들여서 AW 리드를 산 것은 과한 일이 아니었을까? 동봉된 10개 리드 중에 쓸만한 것이 두세개는 있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PVC 파이프를 자르고 구멍을 뚫어서 나만의 악기를 만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알토 색소폰 마우스피스는 하나 챙겼으니 말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흥미로운 정보가 많다. 라이혼 향기따라 티스토리 블로그의 '악기' 카테고리에 참고할만한 정보가 많음을 발견하였다.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The Clumsy Venovist] Ammoon B♭ Mini Saxophone(8-Hole 'LittleSax') 도착

알리익스프레스에서 12월 3일에 주문하여 12월 18일에 받았으니 배송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동수원 우체국에 도착한 것은 17일 새벽이었지만 바로 그날 배달이 되지는 못하였다. 마우스피스(색소폰용 알토 마우스피스)를 결합하기 전에 코르크 그리스를 발라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바셀린을 조금 발랐다. 리드는 무려 10개가 들어 있는데, 동봉된 설명서에는 전부 특성이 다르니 소리가 잘 나는 것을 택해서 쓰라고 하였다.

야마하 베노바(위)와 비교한 사진. 

리가춰는 저가품 느낌이 난다. 이 가격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ammoon'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마우스 피스를 이렇게 끝까지 밀어넣으면 안된다.
B♭ 제품은 마우스피스를 파이프에 끝까지 밀어넣어 끼우면 안된다. 10 mm 정도 떨어지게 유지해야 한다. 원본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aTCLEvjvVes이다(비디오 튜토리얼 2번 'Assembly and maintenace).

베노바의 마우스피스를 물던 방식 그대로 입에 물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 어라? 쉭쉭거리기만 할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암부슈어를 바꾸어 보면서 애를 쓰니 대단히 높은 소리가 가끔 새어 나오기만 한다. 입술 밖으로 나온 부분을 손가락으로 지지하여 마우스피스에 밀착한 뒤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제 음높이의 소리가 나온다. 물론 이렇게 악기를 연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암부슈어를 계속 바꾸어 보다가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마우스피스를 좀 더 짧게 물었더니 어렵사리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랫니를 입술로 덮고, 윗니로는 마우스피스를 누르는 정석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고 그저 초등학교 때 리코더를 불듯이 입술로만 마우스피스 끝을 물고 바람을 넣어도 소리는 잘 난다. 그러나 음량은 베노바보다 훨씬 작고 음색은 두툼하고도 부드럽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불기에는 매우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색소폰'을 연주하게 되면 지금과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까? 베노바와 암문 미니 색소폰이 이렇게 다를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음색과 음역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떠한 관이 붙어있든 소리 자체를 내는 요령은 순전히 마우스피스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소프라노와 알토가 이렇게 다르다니 정말 놀랍다.

베노바는 독일식 리코더의 운지법과 거의 같다. Xaphoon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어서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구입한 관악기의 운지법은 리코더 또는 Xaphoon과 완전히 다르다. 특히 중간 '시'를 짚는 방법을 보니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관의 뒷쪽 중간쯤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개폐하는 구멍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제품에 딸려온 운지표를 아래 사진에 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높은 '미'를 짚는 법이 아예 나오질 않는다. 악기 제조사 웹사이트에 있는 매뉴얼 파일을 찾아보니 편집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운지법이 서로 다른 관악기를 불다보면 치매 예방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품에 포함된 운지표. 분홍 배경으로 칠해진 높은 음역의 운지법이 잘못되었다.

2019년 12월 12일판 웹사이트에 게시된 매뉴얼(2019년 10월판) 42쪽의 수정된 운지표.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악기 판매처는 Ammoon이지만 실제 개발과 제작을 한 곳의 웹사이트가 존재한다. 상세한 설명서와 동영상 등이 여기에 있다. 중국어 위주라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2014년에 11홀 버전이 먼저 나왔고 더욱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지금의 8홀 버전이 나왔다고 한다.

매뉴얼 맨 뒤를 보면 정식 품명은 LittleSax Simple Saxophone이고 Fuzhou LittleSax Musical Instrument Co., Ltd.에서 제조하였음을 밝혔다.


이 악기는 '8孔小萨' 또는 8-Hole LittleSax라고 불러주는 것이 개발자 He Linxian의 뜻에 더욱 가까운 것 같다. 참고로 '萨'는 색소폰을 중국어로 부르는 명칭인 '萨克斯风'의 첫글자를 딴 것이다. 발음은 유튜브를 참조하라. '싸커쓰꾸안(sà kè sī guǎn)' 정도로 들린다.

이러다가 Xaphoon, Saxmonica, MiniSax를 전부 섭렵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음은 유튜브에서 찾은 Elle Jimmy Tan의 Ammoon Mini Pocket Saxophone 개봉기이다.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The Clumsy Venovist] 리드(reed)의 맛

일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더니 AW의 케인 리드가 드디어 수명을 다하였다. 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가 나가듯 끝부분이 망가졌다. 마우스피스에 끼운 상태에서 칼로 살짝 도려내는데 엉뚱하게 칼날이 마우스피스 위로 지나가고 말았다. 으이그... 집에서 쓰는 돋보기 안경의 도수를 더 올릴 때가 되었다.

리드 트리머를 쓰지 않고 대충 잘라서 그런지, 혹은 너무 많이 잘라내서 그런지 소리를 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 이제는 교체를 해야지.. 아침에는 순정 합성 리드를 꽂아서 힘겹게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두번째 케인 리드를 끼워서 수월하게 소리를 내었다. 입술 근육과 부는 힘을 키우려면 뻣뻣한 합성 리드가 도움이 된다. 더디지만 소리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두번째 케인 리드는 맛이 좀 이상하다. 원래 이랬었던가? 마치 땀에 전 속옷에 혀를 댄 느낌이랄까, 찝찔하게 느껴지는 것이 영 개운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물에 몇 시간 담가서 맛이 나는 미지(?)의 성분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장 내기 어려운 소리는 F#이다. 매뉴얼에도 이 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했으니 받아 들여야 하겠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시-도를 빠르게 연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왼손 검지와 중지를 매끄럽게 교차시키며 운지하는 것이 어렵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한 Ammoon의 포켓 색소폰은 오늘 항공편으로 드디어 국내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늦어도 모레까지는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다. 어떤 묵직한 소리를 내어 줄지 기대가 된다.

자체 검열을 많이 한다는 것

<르몽드 비판 경제학>을 읽으며. 종로 영풍문고에서 아내가 정해영을 촬영하다.
대형 서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는 그 책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만약 표지를 꽉꽉 눌러 접어서 넘겨가며 손에 침을 발라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나의 모습이 누군가의 휴대폰에 찍혀서 그날 저녁 '몰지각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올지도 모른다.

누구나 휴대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의 바람직한 고발·자정 작용이라 해야 할까?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일반인,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지정된 구획을 넘어서 세운 자동차, 식당의 '진상'손님... 별별 상황의 사진을 찍어서 '(극혐)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비난조의 글이 함께 올라오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바로 그 상황에서 지적을 하여 바로잡거나, 문제가 발생한 커뮤니티 안에서 해결하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공론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글을 올리는 동기은 십중팔구 댓글이 달리는 것으로부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게다. 건전한 고발의 목적이라면 사회적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만한 것만 걸러서 올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에 대한 실천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읽으나 마나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더 이상 들락거리지 않는 것이다.

나도 내 블로그를 통해 이런 사소하고 소심한 복수를 가끔 한 일이 있다. 그러나 블로그와 공개 커뮤니티 사이트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의 나는 <르 몽드 비판 경제학>책을 구입한 뒤 읽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에 구입한 나의 소유물이니 펜을 꺼내 밑줄을 치든, 책장을 넘기면서 접거나 살짝 찢든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점 안에 마련된 자리에서 책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판매용 책을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조심스럽게 책을 읽었다. 아! 차라리 구입 영수증을 책갈피 삼아 끼운 상태로 읽었더라면 좀 더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잘 팔리는(혹은 잘 팔리기를 기대하며 밀어주는) 책은 이렇게 평서가에 놓여있다. 가운데에는 <르몽드 비판경제학>은 내가 올려놓은 것으로, 그 아래에는 다른 책이 놓여 있었다. 맨 오른쪽 <금융의 역사>는 아마도 나머지 경제학 비판서와는 다른 분위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The Clumsy Venovist] 연습, 또 연습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에 2-3회 열심히 베노바를 연습하고 있다. 하루에 연주하는 총 시간은 아마 2시간을 조금 넘을 것이다. 케인 리드로 바꾼 이후 소리를 내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최근 이삼일은 열심히 텅잉('tonguing')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물듯이 한 상태로 마우스피스를 문 다음 혀를 놀려서 음을 끊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암부슈어 - 여기에는 혀를 잘 놀리는 것도 포함한다 - 를 완성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린다고 하니 조급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악기 연습을 마치면 바닥에 떨어진 침을 닦아서 뒷정리를 해야 한다. 평소에 내가 침이 좀 많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관악기 연습을 하니 약간 과장을 보태어 모든 구멍에서 침이 흘러나옴은 물론이요, 바닥에도 뚝뚝 떨어져서 그 흔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남는다. 별도로 수건을 갖고 다니면서 바닥에 깔고 연습을 해야 될 것 같다. 베노바는 악기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관을 구불구불하게 만든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막는 뒷편 구멍(아래 사진에서 빨강 화살표로 표시한 곳)이 구부러진 돌출부에 위치해 있어서 이쪽으로 침이 흘러나오기 쉽다. 그러면 높은 음을 불기 위해 이쪽 구멍을 열었을 때 소리가 예쁘게 나오질 않는다.



어차피 캐주얼 관악기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이런 사소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재설계를 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베노바로 연주한 정식 음반이 나올 정도로 이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또 모를까. 요즘에는 음반을 내는 것이나 유튜브에 연주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기는 하다. 유튜브에 베노바 연주 동영상은 꽤 많으니 말이다. 이것이 연주자에게 얼마나 수익을 가져다 주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아직 피치도 불안하고 음이탈('삑사리')이 자주 일어나 고전하고 있지만 간단한 곡은 연주할 수준이 되었다. 케인 리드의 탄력이 처음보다는 조금 줄어든 것 같다. 기타줄을 갈듯, 관악기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이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