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일 화요일

아두이노 자작품을 만들면서 얻은 교훈 - 코딩은 기다림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절차는 보통 다음의 6가지 절차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1. 요구사항 분석(Requirement Analysis)
  2. 시스템 명세
  3. 설계(Design)
  4. 프로그래밍(Programming)
  5. 테스트(Testing)
  6. 유지보수(Maintenance)

현재는 데이터 센터와 유사한 성격의 곳에서 일을 하고 있노라니 1번 단계, 즉 개발자가 사용자를 만나서 인터뷰를 수행하는 모습을 곁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프로젝트의 성격이 단순하다면 이러한 6가지의 단계를 다 거칠 필요는 없고, 몇 가지 단계가 한꺼번에 뭉쳐서 진행되기도 한다.

아두이노 나도 응용 DIY 제품을 구동할 용도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비교적 단순한 소프크웨어 개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코드를 저장하고기 위해 마련된 플래시 메모리의 공간이 32KB에 불과한 아두이노 나노에 채워 넣어야 하는 코드가 아무리 방대하고 복잡한들 그게 얼마나 되겠는가? 

C/C++ 문법도 잘 모르는 내가 아두이노 나노로 구동되는 MIDI sound module 제어기('Nano Ardule MIDI Controller')용 코드를 짜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제어 대상은 본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소개했던 SAM9703 기반의 반주기 개조품(유튜브 링크).

그런데 그게 정말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요한 기능을 챗GPT 대화창에 입력해 넣으면, 이를 실행하게 해 주는 .ino 파일을 생성하여 통째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바로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 챗GPT가 생각을 하고 코드를 짜 주는 동안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하여 제공한 코드가 항상 잘 컴파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괄호를 빼먹는 것으로부터 선언하지 않은 변수나 함수가 쓰인다든지... C/C++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아두이노 IDE에서 뱉어내는 에러 메시지만 보고서 금방 소스 코드를 수정할 터인데, 나와 같은 코딩맹(盲)은 에러 메시지를 그대로 복사하여 챗GPT에 붙여 넣은 뒤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한 코드 파일을 다시 제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내가 봐도 똑같아 보이는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부글부글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면 또 컴파일 중에 나오는 오류 메시지를 복사해서 제출하고, 기다리고... 그래서 코딩은 기다림이다. 지루한 반복 작업을 견디다 못한 나는 가장 마지막에 컴파일 및 작동에 성공한 코드 파일을 업로드한 뒤 여기에 추가 기능을 단계적으로 더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너무 많은 양의 요구사항을 들이대면 실수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잘 되고 있는 것은 건드리지 말아라'라는 식의 너무나 당연하고도 구체적인 요구를 때로는 해야 한다.

챗GPT는 마치 머리는 꽤 좋은데 가끔 딴생각을 하고 주위가 산만한 천재를 대하는 것 같다. 가끔 고집도 피운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면 챗GPT가 없이 과연 내가 이런 취미 프로젝트를 단 한 발자국도 실현해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다소 오류가 포함된 소스 코드를 반복적으로 토해 내더라도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버튼을 한번 클릭할 때와 길게 눌렀을 때 서로 다른 동작을 하게 만드는 코드를 내 창의력과 검색만으로 짠다고 생각해 보라.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1602 LCD, 4개의 LED, 5개의 버튼, 로터리 인코더... 시프트 레지스터 칩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아두이노 나노의 모든 입출력 핀을 전부 사용해야 하는 데다가, 메뉴 구성도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버그,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비합리적이거나 무리한 요구사항을 재정의하여 개선하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모든 부품을 기판 위에 전부 올려서 배선을 한 날, 이것이 마지막 납땜이라고 호기롭게 자신했지만 그 뒤로 몇 번이나 회로 수정을 했는지 모른다. 코딩 역시 마찬가지다. 정의해 놓은 기능을 단계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즉 절대로 우회나 후진은 하지 않으면서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다시 중간 지점으로 돌아가서 기능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재 소스 코드의 분량은 700줄 정도이다. 마이크로SD카드에 데이터를 쓰고 읽는 기능까지는 아직 구현하지 못한 상태다. 바로 어제까지 작업하여 MIDI IN으로 들어오는 단일채널 키보드 신호를 MIDI 사운드 모듈의 2개 채널로 복제하여 보내는 것에 성공하였다. 채널은 서로 다른 악기(program)으로 할당해 둔 뒤, 버튼을 눌러서 어느 하나만 연주하거나 layer 또는 split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Korg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심플한 'combi' 음색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보람이 느껴지지만 몸은 고단하다.

돌이켜보니 연기를 피우며 납땜을 할 때, 즉 하드웨어를 제작하던 단계가 훨씬 덜 고되었던 것 같다. 정신건강까지 고려한다면 하드웨어 제작단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코딩 단계보다 더 적은 것이 아닐까...

'몰입'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너무 갉아먹을 정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가 사람의 수로고움을 대신한다고? 어떤 측면에서는 옳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을 더 하게 된다. 아무래도 다음번 글의 주제는 'AI가 촉발한 과몰입(또는 과노동)'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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