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4일 일요일

CD 플레이어의 뚜껑을 다시 열지 말았어야 했다

진공관 앰프를 처음으로 들이던 2014년, 그러니까 꼭 10년 전의 봄날에 소리전자 판매장터를 통해서 중고 CD 플레이어(롯데 LCD-7500)를 구입하게 되었다. 뒷면에 붙어 있는 제조년월은 무려 1991년 4월. 30년이 훨씬 넘도록 지금까지 작동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레이저 픽업은 2015년쯤에 직접 교체한 일이 있다(관련 글 링크).




1년 반 동안 외지에 나가 있는 동안 대전 집에 방치해 두었다가 작동을 시켜 보니 전면 버튼이 잘 눌리지 않았다. 택트 스위치가 노후하여 접점 상태가 불량해졌을 것으로 여기고 이를 올해 안에는 교체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다가 오늘 마침 여유가 생겨서 작업에 착수하였다.

분해 시작.

아래의 것은 교체용 스위치. 아두이노 키트를 살 때 들어있던 것이다. 갖고 있는 것은 6개가 전부라서 가장 빈번하게 쓰는 버튼만 교체하기로 하였다.

교체 후 테스트.


기판 패턴쪽에 납을 약간씩 더 먹인 다음 흡입기로 빨아낸 뒤 어렵지 않게 낡은 스위치를 빼내고 새것을 장착하였다. 교체한 스위치는 아주 잘 작동하였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몇 년이고 더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재조립을 하였다.

재조립 후 작동 테스트.


수리 후 음악을 듣다가 문득 CD 플레이어 내부의 헤드폰잭 연결용 기판 커넥터를 미처 끼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마무리하기 위해 작동 상태에서 뚜껑을 연 것이 화근이었다. 뚜껑을 빼면서 철판 안쪽이 전원 스위치의 노출된 단자부에 닿은 것이 아닌가! 퍽!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가 났고 누전 차단기가 작동하였다.

교과서적인 와이어래핑의 결과. 그러나 노출된 단자에는 매우 위험하게도 220볼트가 직접 흐른다. 왼쪽 단자에 탄 흔적이 보인다. 무척 위험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더 큰 잘못은 전원을 넣고 작동하는 중에 뚜껑을 연 나에게 있지만. 안전을 위하여 나중에 절연 테이프를 감아 두어야 되겠다. 


차단기를 올리고 CD 플레이어를 다시 켜 보았다. 뚜껑 안쪽의 전원 스위치 단자가 닿은 쪽에는 까맣게 탄 자국이 남았다. 겉으로 보기에 전해 캐패시터가 터져 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디스플레이나 모터 구동 상태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출력에는 엄청난 잡음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평활회로를 적용하지 않은 미숙한 자작 앰프가 내는 소리처럼.

내 실력으로 전기적 충격을 받은 부품을 찾을 방법은 없다. 고민 끝에 전원쪽 레귤레이터(7805)를 교체해 보았다. 마침 갖고 있는 부품이 있었기에 이런 시도를 해 보게 되었던 것인데, 그러는 도중에 PCB의 패턴이 일부 떨어져 나갔고, 설상가상으로 아예 작동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디스플레이도 켜지지 않고, 구동 부위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허, 이런.... 헤드폰잭 연결을 마무리한다고 뚜껑을 여는 것이 아니었는데...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직류 전원을 공급에 완전히 문제가 생긴 것 같지만, 저 복잡한 회로를 놓고 내가 무슨 수로 문제를 해결한단 말인가.

기판의 상태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하다. 분해해서 세척을 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른다. 이대로 그냥 둔다면 어차피 좋은 상태로 오래 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위로를 해 본다.


2014년 언저리에는 별로 상태가 좋지 않은 중고 튜너를 두 대나 구입하여 직접 수리를 한다고 잘못 건드렸다가 역시 완전히 망가뜨린 일이 있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섣부른 자신감이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말았다.

앞으로는 진공관 싱글 앰프와 같이 내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면 주요 부위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겠다. 어차피 낡은 중고품이라서 금전적으로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내 손으로 수리에 성공했다고 잠깐 자신감에 들떠 있다가 급격히 자괴감에 빠지는 '정신적 롤러코스터'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유한 CD가 아주 많다고 할 수는 없고, 대부분은 USB 매체에 리핑을 해 둔 상태이니 앞으로는 오디오 CD를 사더라도 CD 플레이어를 쓰지 않는 음악 생활로 완전히 전환할 수도 있다.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던 USB ODD와 SATA DVD-ROM 드라이브를 꺼내어 점검을 해 보았다. 이런! 두 녀석 모두 트레이가 작동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구동하는 물건은 역시 세월 앞에 장사가 없구나...어차피 요즘은 장난감 같은 CD 플레이어 또는 일체형 오디오 말고는 구하기도 어렵다. 인켈의 거치형 CD 플레이어는 이미 자취를 감춘 것 같고(간혹 재고를 파는 곳은 있지만 찾기가 어렵다 - 예: 오디오마을, 코리아사운드), 마란츠나 데논, 로텔, 나드 등 외산 브랜드의 제품은 너무 비싸다. 카날스, LEEM, 소비코 등 국내 브랜드에서 만드는 소위 프로용 CD 플레이어(대부분 balanced output 단자 장착) 역시 가격이 매우 높다.

다른 방법을 찾아 보아야 되겠다. 음질을 확신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DVD 플레이어를 구입하는 것도 해결방법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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