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2025년 마지막 독서 기록 -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글쓰기

오늘 제목으로 잡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글쓰기'는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아니다. 챗GPT와 더불어 작업을 하다가 받은 문화적 충격이 최근 읽은 책의 내용과 상당히 맞닿아 있어서 이를 되새기면서 올해의 마지막 독서 기록을 쓰기로 했다. 

2025년에는 Korg X2 수선과 개조, 아두이노 나노를 이용한 드럼 패턴 재생기 DIY 및 프로그래밍 작업에 몰두하면서 상대적으로 독서에는 덜 열중하였다.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대여 기간을 연장하여 3주 정도에 걸쳐 읽고는 하였다. 때로는 빌려온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도 이번에 빌린 세 권의 책은 전부 읽었기에 2025년의 마지막 독서 기록을 남기기에 부족함은 없다.

  • 목 이야기('생물학적 기능에서 사회적 상징까지 목에 대한 모든 것') - 켄트 던랩 글, 이은정 번역
  • 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 - 이병한 글
  • 포식하는 자본주의('자기 기반을 먹어치우며 작동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 낸시 프레이저, 라엘 예기 글, 장석준 번역 


깃허브(https://github.com/jeong0449/NanoArdule)에 올릴 코드와 문서 작업을 하면서 챗GPT에게 어떤 취지의 글을 영문으로 작성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책임회피·설계 한계 설명 톤을 유지했습니다". 책임회피라니? 글 작성을 위해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사용자들이 얼마나 많은 이런 요구를 했으면 챗GPT가 알아서 작업을 해 주었겠는가?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극도로 언행을 조심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이나 분쟁이 생길 만한 영역에서는 변호사들이 활동하는 그런 사회를 따라서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책임회피'라는 단어로부터 쿠팡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다루기 위한 국회 청문회에 나온 헤럴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역시 그런 국가의 일원일 것이다)의 태도가 떠올랐다. 대국민 사과 같은 것은 일절 없이 그저 자체 조사에서 혐의자를 특정하고 문제를 일으킨 노트북 컴퓨터를 찾아냈으며 포렌식 결과 겨우 3천명의 개인정보가 유출(처음에는 '노출'이라는 부적절한 용어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고 애써 무마하려는 무책임한 태도. 만약에 우리 정부가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 같으면 미국 언론이나 정부를 앞세워서 통상 분쟁 문제로 만들려는 조짐이 강하다. 미국 정계에서 공식화되어 있는 로비스트의 역할이 클 것이다. 대부분의 이익을 한국에서 취하면서도 본사가 다른 나라에 있다는 이유로 실효성 있는 제재를 하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혹시 그들의 사고 체계 안에는 원조로 겨우 연명하던 아시아의 보잘것 없는 나라가 이렇게 성장하여 감히 미국 국적의 글로벌 기업 대표를 오라가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챗GPT가 제공한 영문을 잘 읽어보면 '매뉴얼 리뷰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한 것이 전부이다. 다시 곱씹어서 읽어보니 '책임회피'라는 부가 설명을 덧대면서 나의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한 면이 없지 아니하다. 특히 최근 벌어진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되면서 감정적 해법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서구 '선진' 사회의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까지 연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상의 흐름은 전혀 무익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병한의 테크노-차이나 탐문≫ 41-42쪽에 이런 글이 나온다.

(68혁명 이후로) 엔지니어가 아니라 로이어(Lawyer), 법률가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엔지니어들은 결과와 성과를 중시하지만, 로이어들은 절차와 과정에 집착한다... 로이오둘운 추상적인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입심이 입진보를 낳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법률가 사회를 추동한다...의회의 법정화, 정치의 사법화, 미국의 정치 수준이 갈수록 저열화되고 있는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인문·사회 전문가들은 한줌의 이론과 이념으로 세상만사를 다 설명하려 든다.

취미와 관련한 아주 세부적인 기술 분야에 대하여 글을 쓰다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 새로운 단서를 접하였고, 이는 2025년을 마무리하면서 읽은 책의 주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화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아주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 ≪포식하는 자본주의≫ 또한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려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결정, 그리고 삶의 형태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결정에 참여할 능력이 없다고 치부돼요.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처참하게 훼손되죠. 방금 말한 종류와 규모의 결정은 본래 민주적으로 조직되어야 하거든요. 자본주의는 정치 의제를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날카로움이 무너지게 만들죠. 자본주의는 마땅히 중요한 정치 사안으로 다뤄져야 할 것을 '경제적'이라 치부한 뒤 '시장의 힘'에 맡겨버려요.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죠. 사회적 잉여의 사적 전유는 우리의 자율성, 즉 집단적인 삶의 과정의 공동 창작자라는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을 집단적 능력 또한 제한해요. 자본주의는 위가 사회의 잉여와 관련하여 자율성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아요. 말하자면 여기에는 최소한 세 가지 관념, 즉 참여, 민주주의, 자율성이 함축돼 있죠. (242쪽)

오늘 제시한 두 가지 문제점은 우리가 글로벌 스탠다드라 여기고 따라하려는 어느 강대국의 현재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우리는 더 나은 대안을 요구한다. 자본주의와 시장은 결코 정치체제와 분리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은주가 생태적 한계를 향해 점차 치솟고 있는 요즈음, 쿠팡을 탈퇴함으로 인하여 포장 쓰레기는 현저히 줄었지만 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향해 어쩌면 스스로를 잠식하고 있는 현대 문명을 과연 우리 개인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오늘의 포스팅은 의도적으로 질서 없이 여러 주제를 기워서 만든 글이다. 내년에는 보다 진지하고 고민을 넘치게 하는 책을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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