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OR(mammalian target of rapamycin)라는 단백질을 모른다면 생물학 전공자로서 기본 소양이 부족한 것일까? 로버트 러프킨의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이라는 책을 최근 읽으면서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난 미생물(유전체)학을 하는 사람이니까...'라는 변명이 통하기 어렵다. 미생물을 전공한다고 해도 감염병이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등 인체와 상호작용하는 통합적 시각에서 미생물을 바라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통합의 중심에 한상 인간이 놓여야 한다는 이기적인 사고 방식이 생명과학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다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TOR라는 약자를 처음 보았을 때 'target of rifamycin(리파마이신)'이라고 착각을 했다. 직업병이다! 식물에 유익한 토양 미생물 Paenibacillus polymyxa E681은 rifampicin(=rifampin, rifamycin 계열의 항상제)에 대한 자빌적 돌연변이체이고, 리파마이신의 타겟은 세균의 DNA-dependent RNA polymerase다.
라파마이신이라는 항생제는 1960년대 후반 칠레의 이스터 섬 토양에서 발견되었다. 흙을 캐서 그 속에 사는 미생물이 생산하는 유용한 생리활성물질을 찾는 것은 미생물학자라면 밥 먹듯이 늘 하는 일이다. 거대한 석상을 바라보면서 토양 샘플링을 하는 미생물학자! 참 낭만적이지 않은가? 가끔은 심해나 화산 분화구 근처, 또는 위험한 빙하 틈새에서 아찔한 샘플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 모아이. "Dumb dumb, give me gum gum!" 출처: 나무위키 |
토양 미생물 Streptomyces hygroscopicus가 생산하는 이 물질은 원래 항진균제를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한 것인데, 사람에게 쓸 정도로 충분히 안전하고 효율적인 항진균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강력한 면역억제 효과가 발견되면서 장기이식 후 면역억제제로 개발 방향이 바뀌어 결국 1999년에 면역억제제로 미 FDA 승인을 받았다. 바로 전형적인 drug repositioning 또는 drug repurposing의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동물에 먹였을 때 수명이 현저히 늘어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미국 잭슨 연구소의 Richard A. Miller 연구팀은 생쥐에 이를 투여했더니 최대 38%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대한 2009년 기사를 참고해 보자('Scientists discover Easter Island 'fountain of youth' drug that can extend by ten years'). 원래 이 연구의 목표는 노화 마커에 미치는 약물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2009년 Nature에 실린 논문의 제목은 'Rapamycin fed late in life extends lifespan in genetically heterogygous mice'이다.
효모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mTOR이라는 단백질이 존재한다. 이 단백질은 라파마이신과 상호작용을 하라고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진화해 온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세포과정을 조절하는 단백질 복합체의 핵심 구성 요소 역할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들러붙는 라파마이신이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러프킨의 책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은 바로 mTOR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문 영양사였던 어머니를 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미국 사회에서 권장되는 '건강한' 식생활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러프킨은 고혈압·통풍성 관절염·이상지질혈증·당뇨 전단계라는 네 가지 병을 얻게 되었다. 몇 가지는 나와 비슷하다! 왜 그런가? 우리가 섭취하는 칼로리와 이에 반응하는 신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했고, 소위 건강한 식품이라는 것은 고과당 옥수수 시럽(HFCS, high-fructose corn syrup)이 들어간 제품을 계속 팔려는 식품 제조 업체의 로비가 빚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러프킨,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Lies I taught in medical school) |
저자가 믿고 가르친 세 가지 대표적인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 비만 거짓말: "1cal는 1cal일 뿐이다."
- 당뇨병 거짓말: "2형 당뇨병은 인슐린 치료가 최선이다."
- 심장병 거짓말: "식이성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심장병을 일으킨다.:
인류는 진화 여정의 대부분을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이따금 단백질(육류) 위주이지만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한참을 굶는 생활을 해 왔다. 우리의 몸은 여기에 철저히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가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탄수화물의 '폭우'를 맞게 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농경생활은 인류 최대의 실수라고 한다.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고, 영양 불균형을 초래했으며,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를 통해서 문명이라는 멋진 결과물이 발생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m)TOR가 뭘 어쨌다는 것인가? 이 단백질은 영양상태를 감지하여 성장 상태를 끄고 켜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일종의 nutrient-sensing protein kinase이다. mTOR가 활성화되면 성장 모드요, 비활성화되면 정비 모드에 들어간다. 러프킨에 의하면 이 중간의 적당한 상태란 없다! 마치 디지털 신호와 같이 0 아니면 1인 것이다.
TOR가 켜지면 우리 몸은 지방을 저장하고 연료인 포도당을 태우기 시작한다. 베타 세포로 인슐린을 만들고, 앞서 언급한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인 UGF-1을 생산한다. 염증이 생기지만, 성장도 일어난다. 음식이 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74~75쪽).
이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대사증후군의 근본적인 원인인 인슐린 저항성으로 발전하는 것. 고혈당 상태이지만 세포는 인슐린에 반응하지 않아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는 만성적인 염증 상태와도 연결된다.
비만이든 아니든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긍정하자는 '자기 몸 긍정(body positivity)' 정신에 대해서도 러프킨은 부정적이다. 비만에 대해서 조롱하거나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비만은 결국 대사 이상으로 나아가는 문제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Fat pride 또는 fat acceptance로 표출되는 자기 몸 긍정은 요한 하리의 책 『매직 필(Magic Pill)』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내가 5월에 쓴 독후감 링크).
체중을 감량하려면 덜 먹고 더 운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심지어 인공감미료를 넣어서 칼로리가 전혀 없는 음료를 마셔도 인슐린 분비가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러프킨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음식을 먹는 시간대를 12시간 이내로 줄이라는 것(탄수화물을 일절 먹지 않아도 좋다는 주장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영양적인 요인인 스트레스, 수면장애, 환경호르몬, 노화 등도 비만을 촉진하는 원인이 된다.
식이나 대사는 그동안 의대에서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유전체와 오믹스 및 맞춤형 의약에 몰두해 있는 동안 과연 그 막대한 데이터는 정말 인류의 건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투입 대비 효과는 얼마나 있었는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그에 비한다면 건강한 식이와 생활 습관이 가져다 줄 효과는 '가성비'가 매우 높지 않겠는가?
"수명은 프로그래밍되어 있지만, 노화는 질병이다."
'그래요? 그러면 그 노화라는 질병을 막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주세요. 다른 노력은 하기 싫어요.' - 이것이 우리의 자세이다. 질병이라는 단순한 표적이 있고, 이를 제거하면 낫는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씨앗이론이라 하였다(316쪽). 루이 파스퇴르 이후 이 이론은 잘 먹혀 들어갔으며, 감염병이 아닌 질환에 대해서도 그런대로 잘 통했다. 문제는 대사증후군과 같은 만성병이다. 이는 생활습관을 통하여 고쳐 나가야 한다. 병원에 갔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 보라(319쪽).
약을 써보기 전에 먼저 환자분 스스로 설탕, 곡물, 씨앗기름은 드시지 마세요. 결핍된 영양을 바로잡고 독소를 제거하면서 근력 운동과 수면 개선 운동도 조금씩 해나가 보죠.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그때 약을 드리겠습니다."
실은 이 조언이 맞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이 곧바로 줄어들고, 식욕이 줄어드는 그런 약을 당장 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인 12장 <건강 설계>를 다 읽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실천해야 되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 영양 측면: 농업 이전의 수렵채집인 시절의 자연식을 섭취하자. 가공식품, 정제 탄수화물, 공장에서 만드는 씨앗기름, 곡물과 글루텐의 섭취량을 줄이자. 그리고 하루 중에서 첫 식사와 마지막 식사까지의 시간을 12시간 이내로 줄이자. 심지어 하루 한 끼도 좋다. 과일은 갈아서 주스 형태로 만들어 마시지 말라. 식사량 자체를 줄일 필요는 없다. 먹을 때에는 지방과 탄수화물로 시작하여 탄수화물은 나중에 먹는다.
- 기타 요소: 스트레스를 피하고, 충분히 수면을 취해라. 수면의 질이 나쁘면 포도당 대사 능력이 떨어지고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며, 인슐린 생산을 자극해서 혈당과 인슐린 저항을 높인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외국어나 악기 연주 등 두뇌를 써라.
- 단식 또는 단식을 모방한 식단
어떤가? 충분히 실천 가능하지 않은가?